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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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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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차제 신전강화

    

근행을 올리는 태도

 

김영진(진양교회장)

 

오늘은 제가 월차제 감화 당번으로 지명을 받아서 잠시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잘 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감화할 때 오래전의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만, 오래전 이야기 하나만 하고 지나가야겠습니다.

25년 전쯤, 제가 신앙을 시작하고 학생회활동 등을 하며 교회에서 많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실천도 하고 기원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하는 실천이 부족한 게 있을 것 같아서 좀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금도 여기 계신 성원교회장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실천을 하면 신앙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대뜸 하시는 대답이

교조전 앞에서 12장 근행을 올리면 좋다.”

라는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원회장님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밖으로 실천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 돼서 저에게도 그런 밖에서 할 수 있는 실천방법을 가르쳐주실 줄 알았습니다. 헌데, 제가 주로 교회 내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아마 그걸 감안하셔서 그런 실천방법을 가르쳐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제 기억으로 고성교회에서는 1년 중 약 300일 정도는 저녁근행에 12장 손춤 근행을 올렸습니다. 당시는 잘 몰랐지만, 그 덕에 신악가와 손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배전에 남자악기는 물론이고 여자악기까지 갖추어 근행을 올리던 때였습니다. 신전에는 큰 신악가 차트를 걸어놓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걸 보고 신악가도 부르고 손춤도 추곤 했습니다.

저녁에는 그렇게 12장 근행을 보니 저는 성원회장님 말씀 따라 아침 근행 후에 따로 12장 근행을 교조전 앞에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근행을 시작하려는데 교조전 앞이라면 어디쯤에서 보라는 것인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위치에 대해서는 듣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이면 교조님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교조전 중단으로 올라가서 12장 근행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한 행동이고 황당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성교회만 해도 상단의 결계 안에는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아마도 터전의 교조전 같았으면 이중 삼중으로 된 결계 안쪽의 문을 지나 가장 안쪽에서 근행을 올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참으로 당돌한 행동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는 구신전(지금의 은혜어린이집)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상단에 올라가서 12장 근행을 보는 모습을 당시 3대회장님이나, 다른 여러 선생님들이 보셨을 텐데 뭐라고 하시는 분은 단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지난 15일까지 특별당직을 서서 옛날의 그때처럼 12장 근행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몇 년 전에 12장 근행 볼 때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손춤 근행을 보면 도는 동작이 있어서 근행 보는 4,50분 동안 신전에 참배하러 오시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현재의 신전에서 12장 근행을 보는데 그 시간 동안 참배하러 오시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실 때도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근행 볼 때는 참배하러 오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때마다 식후에어버이신님 덕분에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에 교회에 참배하러 오시기도 했습니다. , 어떤 분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에도 잘 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교회에 와 신전에 가서 참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들어오고 나갈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일들에도 늘 감사하다는 마음에 참배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손춤을 추는 동안에도 참배하러 오시는 분들을 많이도 볼 수 있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그때와 지금, 어버이신님을 의지하는 마음에 차이가 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신전에서 정성의 향내가 납니다

제가 교회장 취임한 지 이제 10년이 다 돼 갑니다. 제가 교회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포교소장님께서 예전에 진양교회 신전에 들어오면 신앙의 향기, 정성의 향기가 느껴졌다.”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전이라는 공간이 교회 내부에서 활동하시는 용재님들께서는 항상 기원하고 근행보고 실천하는 장소입니다. 교회 외부에서 활동을 하시는 용재님들도 도보를 한다든지, 전도를 나간다든지 할 때마다 신전에 와서 참배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고성교회 안에서 정성의 향내를 많이 풍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에게 느낌으로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 포교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 이유가 아마, 저희 진양교회에서 예전에 초대선생님들 계셨을 때 풍겼던 그런 정성의 기운이 많이 나지 않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분의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충격도 좀 받고 제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까 하고 반성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 고성교회에서도 월차제, 부인회 때가 되면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합니다. , 그런 때가 아니더라도 교회 안에서 오고 가며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저 사람이 부족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요즘 어려운 일이 있는지 아니면 정말 즐거움에 넘치고 있는지, 신악가 말씀대로 용솟음치고 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 말 없이 지나친다고 해도 느껴지게 됩니다. ‘, 저 사람이 무슨 힘든 일이 있구나.’ ‘저 사람은 즐겁게 용솟음치며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걸 아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거의 모든 분들이 그런 걸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악가 구절구절을 마음에 새겨요

한편으로 보면 요즘 근행을 올릴 때 근행을 틀리지 않고 잘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신악가에 구절구절에 담겨 있는 어버이신님의 말씀의 의도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비록 이렇게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따로 전한다고 신전강화를 하고 있지만, 제가 지금 여러분께 드리는 이런 말씀들의 8,90%는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전에 좌근부터 12장까지 근행을 올리면서 우리가 신앙하고 생활하며 필요한 말씀들이 이미 그 신악가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근행을 보며 신악가 구절구절을 모두 마음에 새겨가며 노래를 부르고 손춤을 추는 가운데 오늘 월차제 근행을 마쳤다면 제가 지금 드리는 이런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감히 말씀드리자면 12장까지 근행을 보면서 잘 해봐야 십 내지 이십 프로 정도만 그 말씀들을 잘 새길 뿐이지 그 이외 것들은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몸은 근행을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의 혼이 어버이신님의 말씀 속에 안 빠져 있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 사람이 악기는 제대로 치고 있는가, 손춤은 잘 추고 있는가, 틀리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저처럼 이렇게 누가 감화를 하고 있으면 저 사람은 언제 저 감화를 끝낼까?’ ‘배가 고픈데 빨리 밥 먹고 집에 가야 되는데...’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죠. 손춤을 추고 근행을 봉상하면서도 그런 생각들 때문에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악가를 모두 외고 손춤을 다 출 수 있다고 해도 근행을 보면서 어느 한 구절이라도 오늘 이 부분은 참 마음에 와 닿는구나. ,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지 못했을까.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근행은 참 잘 봤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악가 1절에 보면 악한 것을 제거하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티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티끌을 터는 경우보다 티끌을 쌓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전에 와서 근행을 통해서 그런 걸 자꾸 제거하는 겁니다. 천주교에서는 성당에 가서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하면 신부나 위의 교직자가 그 죄를 사해준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일주일 내내 나쁜 마음으로 살다가도 일요일 한 번만 교회에 나가서 기도만 잘하면 일주일 내내 가졌던 죄를 없애준다고 합니다. 천리교는 그렇게 합니까? 신자가 티끌을 잔뜩 쌓고 난 후에 교회에 와서 제가 이렇게 많은 티끌을 쌓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교회장이 그럼 내가 당신의 티끌을 없애주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진 않잖아요. 그런 마음의 티끌은 사람이 털어주는 게 아니라 근행을 통해서 어버이신님이 털어주시는 겁니다. 어버이신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근행을 보면서 악한 것을 제거하고...’ 하면서 내가 쌓은 티끌을 반성하고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내 자신의 티끌을 스스로 터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마음 속 티끌을 다 털어드리고 싶기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잖아요. 자신의 티끌은 자기 자신이 털어야 하는 겁니다. ‘악한 것을 제거하고...’부터 12장 열로 까지 근행을 보는 가운데 그 구절구절 녹아있는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마음으로 깨우치며 마음속에서부터 , 티끌을 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서 티끌을 털고자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신악가 3절에도

악한 것을 제거하고 도움을 서두르니 온 세상 마음 맑혀 감로대

자신부터 악한 것을 제거하고 주위를 도와주며 나아가면 감로대 세상이 온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감로대 세상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내 자신이 티끌을 하나하나 털어가면서 주위를 도울 수 있는 행동을 하나하나 해나가기만 하면 감로대 세상이 오는 겁니다.

신악가 제4장 아홉에

여기는 이 세상의 극락이라오

나 역시 어서어서 가고 싶어라

극락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겁니다. 마음자리만 바꾸게 되면 그 순간부터가 바로 극락의 세상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말씀들을 교조님을 통해서 이미 지금 올해까지 176년 동안 계속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 겁니다. 너무 형식에 얽매이다보니 이런 귀중한 말씀 하나하나의 의미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서 틀리면 근행에 집중을 못해요

근행을 보다 보면 누가 한 군데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을 만나게 되면 자꾸 거기에 신경이 쓰여서 저 사람은 왜, 저기서 저렇게 틀렸을까하고 되뇌어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도 구절구절 의미를 마음에 새겨야 하는 신악가 노래는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 틀려 자꾸 귀에 들리게 되면, 그런 신악가의 어버이신님의 말씀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제가 조금 전에 드린 말씀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정반대의 의견인 것 같지만 그 두 가지는 서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용재들이 악기연습을 하고 손춤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나 혼자만 근행을 보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상단에서 근행 보는 사람도 있고, 배전에서 앉아서 근행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원을 하기 위해 근행을 보는 각각의 사람들의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신경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악기연습을 하고 손춤연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함께 근행을 올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의 실수에 신경이 쓰이게 되는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함께 근행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이런 것들이 앞에 얘기한 신악가 구절구절의 말씀들을 마음에 담는 것과 연결해서 함께 즐겁게 악기도 연주하고 손춤도 추고 노래도 잘 맞춰서 불러가면서 즐거운 근행을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근행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즐거워야 합니다. 이게 바로 아까 말씀 드렸던 신악가 제3절의 악한 것 제거’, ‘서로 돕기’, ‘즐거운 감로대 세계가 실현되는 겁니다.

 

손춤 동작에 감정을 담아요

어느 교회장님께서는 손춤의 용솟음치는 손의 동작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마음이 용솟음치는지 어떤지 알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것은 용솟음치는 손의 동작만 잘 한다고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용솟음치는 마음이 손춤의 동작으로 연결될 때 그렇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흔히, 라디오나 TV에서 노래경연대회를 하는 걸 보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심사기준이 되는 게 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정확한 가사전달을 위한 발음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이 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별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기분 좋아하면서 부르거나, 사랑 노래를 부르는 데 죽겠다는 식으로 감정이 거꾸로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신악가도 노래입니다. 신악가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어버이신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 한 단어 한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들입니까. 그런 신악가의 단 한 자라도 정확하게 발음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스며든 감정도 여러 가지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각기 다른 부분들에 맞는 감정을 실어서 손춤을 추고 신악가를 이해하면서 듣다보면 신악가에 대한 생각들이 좀 다르게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많이 와 닿는 손춤동작이 하나 있습니다. 2장 일곱에 어려움’, 3장 여덟에 괴로움’, 5,9,10장에 고생이라는 단어들의 손춤동작입니다. 그 부분들의 손춤을 기억하시겠죠? 주먹을 쥔 두 팔을 가슴에 안고 웅크리는 동작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신상, 사정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감사함을 알게 되어 신앙을 이어나가게 되어 이 자리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고통이 있고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의 손춤동작들도 그렇게 가르쳐주신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그 동작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나 긴장이 극에 달하게 되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신악가 손춤 동작을 하면서 노래의 내용과 맞지 않게 환하게 기쁜 표정을 짓는 것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작을 할 때는 가사에 맞춰서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도 생각해보면서 손춤을 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 괴로움, 고생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사용된 부분들은 이것들이 다입니다. 반대로, 팔수에 용솟음친다’, ‘용솟음쳐라’, 1장에 든든하구나’, 2장에 즐거웁구나’, ‘번창하리라’, ‘세상밝아’, ‘평화이루리’, 4장에 즐거웁게 되어 오너라’, ‘용솟음친다’, ‘극락이라오’, ‘감사하도다등과 같이 제4장까지만 언급을 해도 이렇게 정말 감사한 말씀들을 신악가에서 많이 보여 주고 계십니다. 마음의 티끌을 털고 주위사람들과 서로 도와서 즐겁게 나아가면 이 세상이 극락이 되고, 감로대 세상이 온다고, 즐거운 세상이 온다고 신악가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이 모두 신악가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신악가에 용솟음치는손동작이 많지 않습니까. 이렇게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을 어버이신님께서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생각하면서 근행을 보고 손춤도 추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히노끼싱이라는 동작에서는 덩실덩실 하면서 온 몸 전체에 즐거움이 묻어나야 합니다.

신악가 제11장 넷에

사욕을 저버리고 히노끼싱

이것이 첫째가는 거름이 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상급교회나 하다못해 여러분들 집에서라도 사욕을 버리고 히노끼싱을 하다보면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그런 시간들이 조금 지나고 나면 누가 봐주거나 칭찬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더 많이 경험해 보셔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시켜서 해야 한다든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든지 하면 일을 해도 흥이 안 나고 기분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런 부분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많이 체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 더 잘 하고 계시겠지만, 근행을 어버이신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보기 위해서 자기가 담당하게 되는 손춤이나 악기를 철저히 연습하셔서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신악가를 부르면서 그 말씀들에 좀 더 집중하고 귀 기울여서 마음에 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신악가 말씀 하나하나에 반대의 토를 달 사람은 한 분도 안계시지 않습니까. 신악가 이야기는 정말 영혼 말대까지 변하지 않을 주옥같은 말씀들입니다. 이런 귀중한 말씀들을 근행을 올릴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가슴에 심어서 어버이신님께서 의도하시는 대로 용재로서의 길을 즐겁고 용솟음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수련회는 제가 입신한 계기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82일부터 4일까지 학생신앙수련회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수련회를 통해서 신앙에 입신하게 되어서 이 수련회에 남다르게 애착이 많이 갑니다. 여러분들 주위에 자녀나 손자 혹은 이웃에 자녀가 있으면 학생수련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권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런 아이들이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 훌륭한 용재로써 활동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만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처럼 저거 뭐 교회에 가 봐야 뭔 덕이 되겠나?’ 이런 생각하시지 말고, 어버이신님께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참배 한 번 시킨다는 생각으로 권했으면 좋겠습니다. ,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면 신앙생활 뿐 아니라 동년배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좋은 기회들 덕분에 여러분들께서 어떤 학생을 보내더라도 분명 후회할 일은 없으실 겁니다. 학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독려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들 중에 다소 지나친 부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좋은 부분들만 잘 받아들여서 신앙에 많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