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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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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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강습회 2

 

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2)

서용석(천일교회장)

 

부모의 뒤를 자녀가 이어간다

우리가 교조님이 걸어오신 50년 모본의 길을 항상 가슴에 되새겨 보지 않는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즐거운 삶안락한 삶으로 오해하게 되어, 자신은 즐거운 삶을 걷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쾌락의 삶과 다름없는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유달말씀중에,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함으로서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한층 약화되고, 가족 간의 정리마저 위협받는 오늘날의 세상이다. 참으로 즐거운 삶과는 등을 진 모습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가정을 중시하고 가족과 연결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졌던 문화에서, 갈수록 개인을 중시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관계의 끈이 갈수록 느슨해지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급속도로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가족조차도 서로 따로 밥을 먹으며, 아버지는 신문을 어머니는 TV를 자식들은 인터넷을 하며, 같은 집에 살지만 마치 서로 언어가 다른 것처럼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장난감만 사다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라고 노래 부르며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호소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장난감만 사다주면 그만입니다.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입니다.’라는 식으로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 대신 물질만을 바라는 시대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관심과 접촉이 필수비타민처럼 가장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7월 본부 신전강화에서 다나카 노부유키 본부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날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터전에 돌아온 초등학교 저학년 정 도의 여자아이와 대여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이 신전에서 부모님과 함께 좌근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목소리를 높여 신악가를 부르면서, 게다가 정확한 손짓으로 근행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면서 보고 있었습니다.(나는 신전당번으로 봉사 중이었습니다.) 참으로 화목한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님 역시 모범적인 손짓이었습니다.

그러한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는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고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은 부모님이 손짓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외웠을 것입니다. 부모가 열심히 근행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배웠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배운 것은 근행의 손짓만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부부의 사이도 좋고 밝고 화목한 가정일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힘찬 목소리로 근행을 올리는 모습은 이 신전에서는 나날이 끊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훈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렇게 어릴 적부터 함께 어버이신님을 중심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근행을 올리며 서로 대화하고 교감하며 소통하게 되면, 덕이 쌓이고 정도 더불어 쌓여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며, 한마음 한뜻과 맞추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이고 마음에 익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서도

진실한 리를 본 이상 부모의 뒤를 자녀가 이어간다. (1893.6.2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신전에서 신님께 경건하게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모습, 신님의 뜻에 그대로 따르려는 모습, 신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보답하는 모습, 신님께 정성 을 다해 참배하고 인사드리며 기도드리는 모습 등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히 심성이 착해지고 인성교육이 저절로 되어져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진실한 모습을 보면서 자란 자녀들은 절대 엇길로 가거나 빗나가지 않습니다. 비행 불량 청소년으로 탈선하지 않습니다.

원래 길이란 어릴 때부터 마음에 심어주지 않으면 안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 음에는 아무래도 어렵다. 세상일에 마음을 쓰고 세상에 구애받으면 이 길은 내기 어렵다. (1900.11.16.)

라고 지도말씀에서도 일러주셨듯이 성장한 후부터의 신앙은 아무래도 논리적이고 타산적으로 되기 쉬우므로 어렸을 때부터 신앙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자녀가 모르는 것이 아니야. 어버이의 가르침이 미치지 못한 거야. 어버이의 가르 침이 구석구석까지 미친다면 올바르게 성인된 자녀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교조 일화편 196)

라고 교조님께서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의 확고한 신앙신념은 자녀의 신앙심을 싹트게 하는 근본이 되며,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신앙생활 속에서 자녀들이 바람직하게 성장해 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련회나 고적대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참여시켜서 어릴 때부터 신앙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이 길을 걷는 것에 대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자녀들을 이끌어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자녀들의 신앙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며 따라갑니다. 부모의 말이 아니라 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입으로 좋은 말을 해도 신님께서는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입으로 한 말에 행동으로 실천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님께서 값으로써 실을 사는 거야라고 타일러 주셨듯이 진실한 마음, 진실한 행동이 신님의 ()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화합을 이루는 데 있어 자식문제보다 더 어려운 것이 부부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인간생활 중심의 근본

유달말씀중에,

천지가 서로 마주하는 리를 본뜬 부부를 비롯하여 가정을 본연의 모습으로 바르게 다스리고 서로 돕기를 실천하며 가까운 곳에서부터 즐거운 삶의 모습을 넓혀 나가자.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가정에서, 자녀문제가 원인으로 부부불화가 일어나기 보다는, 부부불화 가 원인으로 자녀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 최고라고 하며, 올해는 황혼부부 이혼율이 신혼부부 이혼율을 추월했다고 합니다. 가정이 분해되고 해체되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결손가정이 생겨나고 그 연장에서 자녀들의 가출로 이어져 탈선하는 비행청소년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범죄증가 유발의 주요원인을 분석해 보면, 결국 거기에는 가정불화가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어느 동네에 수훈을 전하고 오던 중 슈퍼마켓 앞 평상에 그 동네 사람 들이 모여 있어서 신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분이 대응하는 말이 천리교 믿으면 뭐합니까? 저 집에 사는 박사장이 천리교 믿는데 저놈의 집구석에는 허구한 날 싸우고, 사니 안 사니 하며 고함치고 욕하는 소리, 술 먹고 살림살이 부수는 소리 밖에 안 들립니다. 저게 부부입니까. 원수지. 천리교 믿어도 저 모양인데 천리교 믿어봐야 뭐합니까?”

저는 순간 낯이 뜨겁고 겸연쩍어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거울같이 비추어 보이나니라라는 신악가 구절처럼, 부부사이가 좋게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결국 매일 매일의 마음가짐이 상대에게 비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에 얼룩이 묻어 있다고 한다면, 손으로 자기 얼굴을 직접 닦아야지 거울을 닦고 있어서는 얼룩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는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신님과 마주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 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근행을 보고 은혜보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많은 여자 용재님들에게는 세계인류 모두를 구제하는 것보다는, 자기 남편 한 명을 구제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더 어렵게 다가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천리교 용재 스스로가 부부와 가정을 바로 세우려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여다보면, 가정에 문제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족 내 문제가 심각한 지금, 우리가 부부관계를 포함하여 가정을 어떻게 하면 화목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성공적 체험 노하우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입니다. 신악가 제2절에

잠깐이야기 천신의 말을 들어다오 그릇된 말은 아닐 것이니, 이 세상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으므로 이것이 이 세상의 시초이니라

라고 하는 리를 마음에 잘 다스려서 인연을 깨닫고, ‘부부와 가정이 진정되면 넓게는 세상이 안정이 된다는 이런 훌륭한 가르침을 지금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사이가 좋고 나쁨에 따라 어떠한 사정도 신상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사이가 나쁘면 그 부부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자식까지 불행해지며, 그렇게 쌓인 인연은 다시 자식에게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되게 됩니다.

부부는 인간생활의 중심으로 근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부와 가정의 구제, 이 문제 하나만을 집중해 포교·구제를 하여도 장래에 틀림없는 길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정이나 신상이라도 처음에는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의 문제부터 나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부부간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그 단계에서 한 발 앞서서 우리 용재들이 구제의 손길을 내밀어 양기생활의 길로 방향을 바꾸어 가게 도와준다면, 그런 한 발 앞선 구제가 결과적으로 많은 신자의 도움 받음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저 또한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월덕수기의 리, 여자는 일덕화기의 리이므로, 부부가 55푼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정성껏 세워주고 하늘의 리를 세워나가고, 남편은 부인을, 그 줄기가 뻗어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족의 뿌리이자 그 토대라는 것을 자각하고 땅의 리를 세워나간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머니에게 기댈 수 있으며 부부사이 또한 되어져 오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 신님이 활동해 주시는 것

그리고 포교를 통해서 마음을 청소하는 것 또한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역시 신앙의 기본은 전도와 구제입니다. 이것은 아직 신앙이 얕은 분이나, 대대로 신앙을 하고 있는 교회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안녕하십니까하고 말하며 머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음도 자연히 낮아지게 됩니다. 신님말씀을 전할 때 나, 전도지를 전할 때 몸을 뒤로 제끼고 뻣뻣한 자세로 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말하면, 낮은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녕하십니까하는 머리를 숙이는 인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용재인 이상은, 언제나 구제의 대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은 흐르면 맑아지고, 고이면 썩어 버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용재도 교회도 항상 구제활동으로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썩어버리고 말게 됩니다. 남을 도우려는 포교구제 활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청소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지 전도지를 돌리고, 박자목을 치고, 노방전도하는 방법으로는 좀처럼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보다는 유달말씀에서

구제활동은 주위사람들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신상·사정으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것이 다스려지기를 기원드리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구제의 손길을 뻗쳐 나가자.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마음으로 수훈을 전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가슴속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까이 다가감과 동시에, 어버이의 말씀을 전하여 마음의 방향이 바뀌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 사람도 함께 구제에 나설 때까지 정성을 다해 이끌어 주어야 한다.

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마음에 덕을 쌓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 을, 교조님의 가르침을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 ‘역시나 어떻게 해서든지 한 사람이라도 기어코 교회에 데려오겠다. 절대로 놓치지 않고 참 배시키겠다.’라고 하는 적극적이고 끈질긴 전도정신이 필요합니다. 이 길의 초대선생님들께서는 거의가 포교를 나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제받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초대선생님들은 전도를 하면서 문전박대 정도는 핍박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온갖 조롱, 비방, 냉대 그리고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리고 괄시하고 반대하는 사람의 마음조차도 신님의 마음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하겠다는 지속적이고 끈질긴 구제한줄기의 열정과 신념, 그 진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전도하러 갔다가 거절당하면, ‘저 사람은 안 되겠다. 저 집은 안 되겠다고 우리 스스로가 단정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전도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어버이신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다만 도구이자 수족이며,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그 수족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신님의 말씀을 뿌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장차 나를 통해서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든 어버이신님께서 반드시 거두어들이게 해 주십니다.

 

돕는 리가 도움 받는다

만 사람이 다니는 큰 교회도 처음에는 한 사람의 마음작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노력이 결국에는 만 사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처음에 입신해서 교회장님의 말씀을 들을 때보다, 처음으로 내가 전도한 신자를 데리고 와서 같이 말씀을 들을 때 훨씬 말씀이 더 잘 이해되고 와닿게 된다는 것입니다. 강습을 받을 때도 처음 입신해 구제를 받는 입장에서 강습을 받을 때에 비해, 신자분을 데리고 인솔자의 입장으로 와서 갈이 들으면, ‘그래, 과연 그렇구나하고 마음에 더 잘 들어오게 됩니다. 자식을 낳아봐야 진정 부모마음을 이해하게 되듯이, 사람을 구제하는 입장이 되면, 듣는 마음가짐 자체가 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교하지 않으면 성인이 될 수 없고, 하늘의 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재는 항상 도움의 상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데려오게 되면 어떻든지 이 사람이 구제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동시에 나도 더 관심을 가지고 더욱 깊이 듣게 되고, 그러므로 깨닫고 납득하는 마음이 되어 서로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구제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바뀌고 인연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리가 도움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교에 임하는 데 있어 사모의 역할은 교회장의 역할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포교의 형태는 대부분 우선 부인이 먼저 신앙을 시작하고 남편은 뒤에서 자연히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사모에게 포교열이 없다면 그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토대이므로, 힘든 가운데서도 부인이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포교를 하고, 신자에 정성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도 교회도 번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남성은 하늘의 리이므로 역시 이친(상급)에 이바지를 하는 역할을 우선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기교회의 이바지는 누가 짊어져야 하냐면, 역시 사모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기쁘게 떠맡아, 교회장에게 안심을 줄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함으로써, 부부가 55푼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또한 신앙은 맛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삶의 기쁨을 직접 맛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시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하는 흉내만 내어서는 아무리 말하는 내용이 맞더라도 상대의 마음에는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학교를 다닐 때 드넓고 광활한 평야를 가로지르면서 학교를 걸어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하굣길에 깊지 않은 도랑에 민물고기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다니는 걸 보고, 아무런 장비도 없이 교복을 입은 채로 맨손으로 들어가 도랑을 파서 둑을 쌓고 맨손으로 물을 퍼 올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큰 붕어, 잉어는 말할 것도 없고, 메기, 가물치, 민물장어 등이 많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담아 올 그릇이 없어 큰 고기 몇 마리만 긴 갈대에 꿰어서 멀리 집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 보니 갈대에는 매듭이 없어 도중에 그 고기들은 다 빠져나가고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허탕치고 말았습니다. 이 길의 신앙도 마찬가지라도 생각합니다. ‘신님께서 돌봐주신 덕택으로 이렇게 과분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참 감사하다.’는 신앙의 기쁨과 감동이 몸에 베어 생활 속에서 그런 모습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고기를 갈대에 꿰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물고기는 솔 솔 빠져나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용재는 가르침을 몸에 익혀 나날이 실천함으로써, 각지각처에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자

라는 유달말씀이 있습니다.

포교라는 것도 결국은 보여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아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아보라고 말 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이 아닌 기쁨이, 감동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그런 행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그 비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도되어 어떤 종교를 갖게 될 때, 사실 그 종교의 경전을 꼼꼼하게 읽고, 여러 가지 장점과 단점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나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보다는, 대부분이 결국은 사람에 이끌려 사람을 믿고 종교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 종교가 좋으니 그 사람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므로 그 종교도 좋은 종교일 것이라고 믿고 종교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재로서 주위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매일매일 근행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것은, 결국 포교의 씨앗을 스스로에게 뿌리는 것 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유달 제3후반부 말씀에,

어버이신님께서는 자녀의 장래를 염려하시는 의도에서, 때로는 갖가지 마디를 통 해 마음을 바꿀 것을 촉구하신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월일로서는

구제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마음뿐이야 (친필 12-78)

라는 말씀처럼, 그것은 모두, 오로지 온 세상 인간들을 구제하고 싶다는 어버이마음에서 라고 일러주신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국비로 유학을 다녀와 고등학교 영어선생으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뒤틀리는 듯 아파서 그냥 단 순한 소화불량이겠거니 하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가 보니 의사로부터 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늘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해 온 터라 갑자기 찾아온 위암 말기판정이 본인에게는 너무 충격적이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 전부터 25년간 기독교 신앙을 해 왔는데, 의사의 수술권유도 약도 뿌리치고 식이요법, 은사침을 맞아도 그것도 신통찮아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손만 대면 낫는다는 기독교, 그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여러 기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손을 써봤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어 급기야는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훈을 전하러 처음 병실에 갔을 때, 그 환자는 마치 미이라처럼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앙상한 모습에 호흡하기조차 힘든 상태에다 구토와 통증으로 음식은 거의 못 먹고 미음과 물만 몇 숟가락씩 삼킬 정도였습니다. 저는 두 달 동안 매일 수훈을 전하러 갔었지만 가족들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의아해 했지만, 곧 평소 이 환자의 행실로 인해서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병실에서도 의사나 간호사 누구에게나 화를 내고 그 괴팍한 성질 때문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환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경질적이고 항상 찡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다 기피하는 환자였습니다.

부인과는 이혼 아닌 이혼으로 별거생활을 한 지 오래됐는데 그 원인은 이 환자의 한량기와 외도 때문이었습니다. 한량기가 많은 이 환자는 여자인연이 심했고, 그러다 보니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어도 부부가 다정하게 함께 살아본 적은 신혼시절 잠깐 뿐이었다고 합니다. 늘 이 여자, 저 여자로 바뀌고 자기 부인은 아예 남이나 다름없이 등한시하고, 어느 때는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리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제가 수훈을 전하러 병실에 갔을 때도 처음에는 딴 여자들이 찾아왔지만 결국 나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병실에 갔을 때, 병원측에서는 제가 보호자인 줄 알고, “이 환자는 1주일 못 넘깁니다.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리하고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손쓸 수가 없으니 빨리 퇴원 수속을 밟으세요.”라고 재촉을 하길래, 담당의사에게 한 달만 여유를 달라고 매달리고 간청을 했습니다. 저는 천리교 포교사인데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겠다고 하니 황당하다는 눈으로 저를 보더니, “안 됩니다. 퇴원 준비하세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달만 기한을 달라고 붙들고 간곡히 빌었습니다. 그러는 통에 그 의사도 , 참 기가 막히네.’ 하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후, 저는 두 달 동안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수훈을 전하러 갔습니다. 수훈을 전하고 난 후 한두 시간 동안 대물차물의 말씀을 전하면서, ‘가슴 속 반성 이것이 제일이야라는 신님의 말씀처럼 살아오면서 잘못 써 온 마음씨나 빌려 받은 몸을 신님의 의도에 맞지 않게 함부로 써온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게 한 뒤, 남은 인생을 어버이신님의 도구로써 남을 구제하는 데 신한줄기가 되어 평생 이 길을 걷겠다는 마음작정을 하도록 단단히 시키자, 그 후 앉지도 못하던 사람이 조금씩 남이 부추겨 주면 앉을 수 있게 되고, 다음에는 혼자서도 앉을 수 있게 됐으며 그리고 혼자 걸어서 병원 근처에 먹고 싶은 음식도 사 먹으러 밖으로 나가게 되는 수호를 받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의사가 저를 좀 보자고 해서 갔더니, 사진을 찍어보니 아직 100% 완치는 아니지만 정상에 가깝게 치료가 됐다고 하며, “신기하네요. 정말 기적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우리는 수술만 할 뿐 나머지는 신의 영역인가 봅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좀 지나서 그 담당의사에게 이 환자를 퇴원시켜 천리교 강습소에 공부시키려 하는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너무 무리만 하지 않으면 생활하는 데는 별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소견을 듣고 운전도 본인이 직접 하게 해서 강습소에 입소시켰습니다. 그리고 강습을 받으면서부터 사람이 점점 밝은 표정으로 변하더니 누구보다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싱글벙글하며 열심히 강습을 받았고, 수료 후에는 별석, 검정강습, 터전에서 실습까지 하고 난 후에 포교까지 나갈 정도로 수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어려운 질병도

숨과 손춤으로 모두 구제할테야 (12-50)

아무리 어려운 질병도,

진실한 숨으로 구제하리라 (6-108)

라는 친필말씀 그대로였습니다.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자

이 길에 입신하여 가르침을 듣고 대물차물의 리를 마음에 깊이 새기는 동시에 마음 의 티끌을 차츰 털면서 인연을 깨닫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보고 듣는 세상은 그대로 변함이 없지만 마음에 비치는 세상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용재가 구제를 받은 기쁨은 절로 밖으로 나타나 남을 구제하는 행위가 되고, 이에 그 사람은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즐거운 삶의 세계를 건설하는 일꾼이 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용재는 가르침을 몸에 익혀 나날이 실천함으로써 각지각처에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자

라는 유달말씀처럼, 우리 용재가 그 고장의 모범이 되어야만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은 과연 다르구나. 말과 행동이 바르고, 정말로 참다운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듣게 되며 그런 용재 한 사람 한 사람의 평가가 모여서 천리교는 과연 훌륭한 종교구나라는 평으로 이어져, 이 길이 넓혀지고 훌륭한 용재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2대 진주님께서는 천리교는 어떤 가르침이냐고 물었을 때, ‘저를 보십시오. 그러면 천리교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용재가 돼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만약 누군가가 천리교는 어떤 종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속으로는 제발 저를 보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대 진주님의 말씀에 빗대어 보면 저는 스스로 항상 부끄럽고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보지 말고 천리교의 저분은 꼭 봐 주십시오라고 소개해주고픈 용재가 한국천리교에 점점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항상 희망하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교조130년제라는 시순을 맞아 고성교회 산하 용재·신자님들께서는 바람이 세찰수록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와 같이, 그럴수록 은혜보답과 전도·구제라는 신한줄기에 더 한층 매달려서, 그 향기가 안으로부터 밖으로까지 퍼져나가, 이윽고 천리교 전체와 지역사회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것으로 참고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4)

 

* 지난 520일에 있었던 유달강습회 강화를 지난 6월호와 이번 호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 본 강화는 고성교회보 홈페이지(www.tenrikyo.kr)에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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