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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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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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tenrikyo.kr/ani_lecture/5161


유달강습회 1


 

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

서용석(천일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5월 월차제를 맞이하여 산하 용재님, 신자님들과 함께 즐거운 근행을 올리게 된 것을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성교회는 한국의 천리교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큰, 이 길에서의 상징적인 본보기이며, 또한 표준으로 삼아야 할 모범교회라고 늘 여겨왔던 제가 오늘 이렇게 상급교회장님의 지명을 받아 고성교회 월차제에 참배할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방금 전에 유달 말씀을 다 함께 낭독했습니다만, 이번 전교 일제순교의 취지는 구제한줄기의 이정표인 교조130년제를 향하는 삼년천일의 발걸음을 내딛는 심기일전의 시순을 맞이하여 본부순교를 시작으로 각 직속교회가 모든 산하교회에 대한 순교를 실시하여, 소속하는 전 용재, 전 신자가 유달 제3에 담겨있는 정신과 연제활동의 의의를 가슴에 새김과 동시에 전 용재가 연제의 으뜸하루에 다시 한 번 마음을 작정하여 구제활동의 실천과 마음의 성인을 이룩할 것을 맹세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비록 유달 제3에 담긴 의의를 여러분들께 충분히 전달해 드리는 데는 제 역량이 미치지 못합니다만, 아무쪼록 지루하시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경청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4)

 

좋은 마음작정에 필요한 네 가지 자세

방금 여러분들과 같이 낭독했던 유달 제3에 나오는 말씀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들을 추려서 그 횟수를 한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요단어 중 근행이라는 말은 3, ‘용재라고 하는 말은 5, ‘즐거운 삶(세상)’이라는 말은 7번 나오는데 반해, ‘구제라는 말은 무려 18번이나 나옴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주요 단어에 비해 약 3배나 많이 나오는 것으로서, 유달 제3호 말씀의 핵심은 '마음을 작정하여 구제에 나서자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음을 작정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약속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미리 정해놓고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이라고 나옵니다. 약속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작정 한다고 하는 것은 약속한다는 말과는 비슷하면서도 그 대상이 다르고 그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고 엄중하다고 하는데 그 차이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천리교에서 용재가 작정한다고 하는 것은 신전에 엎드려 공식적으로 어버이신님과 약속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이나 여러 가지 약속을 정해놓고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볍다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버이신님과 작정을 하고도 그것을 제대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가벼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길에 처음 입신하여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했던 크고 작은 작정들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작정은 정말 큰 마디 속에서 신님에게 미리 목숨을 던진다는 각오로 했던 비장한 작정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역사가 길고 토대가 탄탄한 고성교회 용재님들께서 생명을 불사하고 작정했던 그 '작정 스토리만을 모아도 두꺼운 책 한 권은 거뜬히 엮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작정이 좋은 작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작정이 과연 '올바르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40년 전 이 길에 입신하여 크고 작은 많은 작정을 하면서 깨닫게 된 좋은 작정의 조건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좋은 작정이란,

첫째, 지켜낼 수 있는 약속이라야 합니다.

옛날에 신하가 임금에게 약속을 할 때는 '허언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허언이 없다는 말은 지키지 못했을 경우 언제든지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버이신님은 우리가 언제든지 매달릴 수 있는 육친의 어버이와 같다고 교조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우리가 작정을 할 때는 신하가 임금에게 다짐하듯, 그 정도의 비장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신님에게 '내일부터 전도하겠습니다라고 작정을 했으면 반드시 전도를 나가야 합니다. ‘100일간 상급교회에서 12장 근행을 보겠습니다라고 작정을 했으면 어떤 유혹이 따르더라도 기필코 12장 근행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님과의 약속이라는 작정의 엄중함에 대해서 깊이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로, 작정은 마음에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방금 전 작정을 할 때는 지켜낼 수 있는 작정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지킬 수 있는 작정만을 하는 것 또한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내일부터 금주를 하겠다라고 작정하는 것이나, 평소에도 일주일에 상급교회에 두 번 정도 가는 사람이 '일 주일에 두 번 상급교회에 근행 보러 가겠습니다라고 마음작정하는 것은, 아마도 100% 달성 가능한 목표이겠지만 그 진실성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작정을 할 때 그 작정이 100%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작정을 할 때의 마음가짐만큼은 100% 진실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가슴속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작정이야말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구제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기적과 같이, 아무리 병이 구제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활이 그대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속신앙의 수준이나 기도하고 절하는 차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이 바뀌는 데 있습니다. 언제나 부족의 마음을 품고, 불평불만만을 쏟아내고, 지금껏 어버이신님의 뜻에 맞지 않는 마음을 썼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밝고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나날을 보내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 어버이신님은 그 바뀐 마음을 받아들여 자유자재한 수호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마음작정은 '실천이 뒤따를 뿐만 아니라 앞 따르기도 해야 합니다.

이 길의 선배 선생님들은 마음작정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한겨울에 냉수목욕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자정근행이나 자정기원을 올린다든지, 먼 거리를 도보실천을 한다든지 해서 작정을 하기 전에 항상 무언가 실천적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그런 실천적 '품삯 지불이 너무 얕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큰 경기를 앞둔 선수는 워밍업을 충분히 합니다. 마찬가지로 '큰 작정앞에는 '큰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TV를 보다 나와서, 신문보다 나와서 하는 그런 작정은 '영적긴장이 갖춰지지 않아서 보나마나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립만배를 받기 위해 한 작정이, ‘일립반배로 돌아가는 경우도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30년 전부터 일 년에 두 번씩, 요즘에는 일 년에 한 번도 힘이 듭니다만, 크고 작은 마디를 만날 때마다, '마음을 바싹 낮추라는 어버이신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낮춰 바보가 될 수 있도록 그 '품삯으로 서울-부산 도보실천을 해왔습니다.

1월에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각오로 서울-부산 도보실천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서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어버이신님, 저를 부산까지 잘 데려다 주십시오.’라고 기원드리며 좌근을 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거지들로부터 온갖 욕설과 김밥세례를 받으며 봉변을 당하였지만 그런 실천들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작은 마디에도 금방 주저앉고 부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작정하는 방법에 대한 네 가지 자세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작정은 첫째, 지켜낼 수 있어야 하고, 둘째, 마음에 진실성이 있어야 하며, 셋째, 가슴속 반성이 있어야 하고. 넷째,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작정기한을 정해놓고 구체적인 숫자를 써서 마음작정을 하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정은 구체적인 것이 좋습니다. ‘세계인류를 구제하겠다는 작정보다는 ‘1년에 다다미 한 장에 세 명씩을 앉히겠다고 하는 작정이 훨씬 힘이 있습니다. 물론 '세계인류를 구제하는 용재로 거듭나고 싶다는 작정 또한 훌륭한 작정이겠습니다만,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작정이란, 행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작정이라야만 합니다. 작정을 하기 전과 작정을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다른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화가 나면 부인에게 모질게 욕설을 하곤 했던 어느 산하 교회장이 서울-부산 걷기실천을 하면서 깨우친 바가 있어 이제부터 가족에게 절대로 욕설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겠습니다.”라고 어버이신님에게 마음작정을 하였고, 그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인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작정을 할 때는 이런 정도의 단단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말씀>,

작정한 마음에 따라 섭리할 것이니 그 정신 하나에 의해 한 사람이 만 사람에 미친다. 신은 마음에 따라 섭리한다. 마음만 굳게 가지면 신이 자유자재로 마음에 따라 섭리할 것이니. (188910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작정을 통해서 인연이 털려 나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같은 상황에서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해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숫자를 써서 마음작정을 해보면 훨씬 힘이 있습니다. '전도를 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작정보다는 '매일 지인들에게 전도지 10장씩을 나누어 주겠습니다라는 작정이 보다 힘이 있습니다. '구제에 매진하겠다라는 작정보다는 '올해 안에 3명을 강습소에 보내겠습니다.’는 마음작정이 자신을 훨씬 더 바싹 긴장시키고 행동을 취하게 이끌어줍니다. 또한, 숫자를 써서 작정한다는 것은 신님도 나도 작정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나중에 변명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수치가 너무 크게 되면 부담감을 주어 빨리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 안에 ‘1000명을 전도하겠습니다라고 마음작정 한다면 그 포부와 기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팽팽한 대나무일수록 바람에 잘 부러지듯 금방 열기가 꺾일 위험도 있고 좀 막연한 감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은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람이 코끼리를 한 번에 다 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고 한 번에 한 숟갈씩차근차근 먹는다면 누구나 큰 코끼리를 다 먹을 수가 있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마음작정은 긍정문으로 제시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안 하겠다는 작정보다는 무언가를 하겠다는 작정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안 하겠다는 무행동인데 비해, '하겠다는 행동을 취한다는 의미이니 훨씬 건설적입니다. 또한 안 하겠다는 부정적인 표현인데 비해, '하겠다는 긍정적인 표현이니 불필요한 에너지를 갉아먹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용솟음치고 있을 때는 대부분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늦잠 자면 안 되지보다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라는 표현이 훨씬 듣기 좋고 거부감이 덜 합니다.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유달강습회는 곧 '마음작정강습회이므로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방금 말씀드린 내용을 참고하여 작게는 여러분의 마음성인을 이끌어주고 크게는 고성교회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음작정을 어버이신님께 해 보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입교 1751026, 추계대제에 진주님께서 유달 제3를 발포하셨습니다.

신전강화에서 진주님께서는,

교조님께서는 세계인류를 모두 빠짐없이 구제하고 인간 창조시에 의도하셨던 즐거운 삶의 세계 건설을 위한 길을 펼쳐 주셨습니다. 이 구제한줄기의 길의 근본으로서 구제근행을 가르쳐 주시며, 그 실행과 사람들의 마음성인을 촉구하시면서 현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러한 교조님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모든 용재가 이 시순에 크게 마음작정하고 남을 구제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중략) 이 시순에 한 분이라도 많은 용재가 구제활동을 실천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조연제를 향해 마음을 작정하여 실천하는 삼년천일은 구제의 시순에서 그 출발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달 제3의 핵심은 용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구제 활동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서로 마음성인을 도모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조연제의 으뜸하루는 1887년 음력 정월 26, 교조님께서 자녀의 성인을 촉구하시기 위해 정명을 25년 줄여 현신을 감추셨던 그 사정에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에게는 온통 땅이 꺼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온 세상이 암흑천지가 된 것 같았다. 진실한 어버이시며, 오랜 세월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흠모해 마지않던 교조님을 여의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슬픔에 잠겨 통곡했다.’라고 고본 천리교 교조전’(238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 당시 사람들이 뜻밖의 일에 얼마나 충격을 받고 낙담했었는지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부리 이조를 통해서 여쭌 <지도말씀>에서,

자녀가 귀엽기 때문에 어버이의 수명을 25년 앞당겨 줄여서 지금부터 구제하는 거야. 단단히 두고 보라. 지금까지와 이제부터 앞날을 단단히 두고 보라.

(1887. 2. 18)

라는 말씀을 듣고, 선인들은 지금부터 구제하는 거야라는 말씀에 한 줄기 광명을 발견하고 더 한층 구제를 위해 뛰어다녔던 바, 신기한 구제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교조님께서 용재들의 진실을 받아들여 진기한 수호를 해주시고, 이 길의 선인들 또한 형체는 감추셨으나 교조님께서 존명으로 활동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구제활동에 한층 더 매진한 결과 이 길은 더욱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 발걸음들은 교조130년제를 향하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길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존명의 리로써 활동해 주시고, 우리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교조님께서는 '극빈에 빠져라고 하시는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가난의 밑바닥에 스스로 빠지시어 먹으려야 먹을 쌀조차 없는 나날을 지내시는 가운데서도,

세상에는 머리맡에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먹으려야 먹을 수 없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고맙잖아.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어버이신님께서 고맙게 보살펴 주고 계시는 거야라고 가족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제가 몇 년 전 8월 초에 서울-부산 걷기실천을 할 때, 낮에는 삼복더위, 밤에는 열대야로 인한 찜통더위 속에서 몇 날을 밤낮없이 걷다보니 탈수증세가 일어나 곧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위는 물을 구할 곳이 전혀 없어 위험한 상황까지 갔는데, 그때 마침 지나가던 승용차가 가다말고 차를 돌려서 제 옆에 세우더니 생수병을 건네면서 ", 이것부터 빨리 마시세요.”라고 하며 "지나가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여, 마침 물이 있어 차를 돌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한테는 그 물이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물을 마시며 물맛이 난다.”는 교조님의 말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교조님의 말씀은, 우리가 대물차물의 수호의 고마움을 자각함으로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가짐 하나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소중한 모본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기 때문에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나고,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건강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사소한 것, 작은 것에 대해서도 소중하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천일교회 산하 모교회 전회장님께서는 항상 포교사는 쌀독에 쌀이 있으면 물맛을 몰라. 호주머니가 넉넉하면 물맛을 몰라.”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우리가 설사 신상이나 사정 등 마음이 우울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어버이신님께서 대물차물의 수호를 해주고 계신다는 데 대한 감사, 대난을 소난으로 수호해 주고 계신다는 기쁨, 나아가서는 마디에 담겨 있는 어버이마음을 알아차림으로서 여태까지 기뻐하지 못했던 것도 기뻐할 수 있게 되며, 즐거워하지 못했던 것도 즐거워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과는 달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운데 어느새 빌려 받은 몸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냥 아침에 눈을 뜨고 그냥 밥을 먹고 그냥 몸을 움직이며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조금만 몸이 아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버이신님의 신기한 수호가 있음으로 인해서만 가능한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으뜸인 신님이시며, , , 바람을 비롯하여 인간 몸에서는 온기, 수기, 숨의 수호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일체를 수호해 주시는 진실한 신님이십니다. 사람은 온기와 수기의 55(동등함)의 수호로 인 하여 신체를 움직일 수 있으며, 이 균형이 깨지면 고열에 시달리거나 자칫하면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공기조차도 그 공기가 없다면 단 몇 분도 살 수가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 어버이신님께서 살리어주고 계시고, 어버이신님께서 항상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마음가짐 하나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용재로서 되새겨 보아야 할 점은, 우리가 얼마나 한없는 은혜 속에서 살리어지고 있는가 하는 벅찬 감사를 머리가 아니라 다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 용솟음칠 수 있으려면 어떤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길의 선배 선생님들이 걸어온 전설 같은 실천담들은 결국 '감사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 생각합니다.

책상 위에 앉아 생각을 바꾼다고 마음이 바꿔지지는 않습니다. 책방에서 책을 몇 권 읽는다고 인연이 닦이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누에고치 안에 있던 번데기가 그것을 찢고 나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새로운 환생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입교의 참뜻과 즐거운 삶의 세계를 건설하는 용재로서의 큰 마음작정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인간들이 서로 도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함께 즐기 시기 위해서 인간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항상 해와 달처럼 당신의 뜻과 의도를 언제나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각자 개인의 사욕으로 인해 마음에 티끌이 쌓여 신의 빛은 굴절되어 버리고, 귀머거리가 다급한 외침에도 엉뚱한 길로 가듯 즐거운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항상 천국을 가게 해 달라며 평생을 기도하고 살아왔던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죽음에 이르러 눈을 떠보니, 자기 주위에는 절세의 미녀들이 춤을 추고 있고, 옆에는 마릴린 먼로가 누워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기독교인은 감격에 겨워 무릎을 꿇고, “신이시여,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이렇게 천국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치자, 옆에 누워있던 마릴린 먼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사람에게 싸대기를 때리며 "여긴 지옥이야. 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천리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행을 통해 마음의 티끌을 닦고 세상을 바라보면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 천국이요 극락입니다. 우리가 근행을 통해서 마음의 티끌을 닦게 되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눈으로 세상이 보여 지게 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될지가 눈에 보이게 되며, 그 길을 가면서 '과연 그렇구나하며 되어져오는 일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려도 천리를 알기 전에는 그 상황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남편의 탓으로만 돌렸지만, 천리를 알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과 부모세대가 걸어왔던 길을 돌이켜 보고, 자신이 그런 남편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의 오푼 오푼의 리를 깨닫고, 또 그런 인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작정과 신앙실천이 뒤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자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디를 만났을 때, 이전과는 달리 이 상황에서 신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달 제3>의 말씀 중에,

삼갈 줄 모르는 욕망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들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며, 결국에 는 세상의 조화를 문란케 하여, 장래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곳에 있다가 햇빛이 비치는 밝은 야외로 나가게 되면, 처음에는 밝 은 빛에 눈이 부시지만 곧 거기에 적응이 되어 생활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어떤 욕망을 달성하게 되면 그것이 영원히 계속해서 만족을 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만족해 버리고 곧 적응이 되어버려 다시 또 다른 욕망을 쫓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감각적 쾌락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된다면, 뛰고 또 뛰지만 결코 그 자리 를 벗어날 수 없는 다람쥐쳇바퀴의 다람쥐처럼, 잡을 수 없는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배와 같이 쾌락적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교조님께서 월일의 현신으로 거듭 나셨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지고 계신 모든 물질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일입니다. 그것은 결국, 물질이 즐거운 삶을 이끌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직접 모본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욕망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 혹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가질 필요가 있는 건강한 욕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돈이나 게임과 같은 쾌락적 욕망, 그 자체를 추구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부부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실한 우정과 같은,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관계에서 오는 행복과, 신님과 천리와 같은 근원적인 욕망을 등한시하게 되어, 자칫 끝없는 공허감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치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가듯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지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지난 520일에 있었던 유달강습회 강화를 두 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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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77년02월][기초교리강조 제62회]과연 기도 기원은 효과가 있는 것인가? - 남상우 2014.02.04
30 [177년01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2 ]교조님의 숨결 1-2 - 박용매 2014.01.03
29 [176년12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교조님의 숨결 1-1 - 박용매 2013.12.05
28 [176년11월][기초교리강좌 제61회]교조님의 숨결 2 –우리도 교조님처럼! - 박용매 2013.11.02
27 [176년11월][기초교리강좌 제60회]친필에 담긴 어버이마음 2 - 전인수 2013.11.05
26 [176년10월][기초교리 강좌 제60회]친필에 담긴 어버이마음 1 - 전인수 2013.10.07
25 [176년09월][기초교리강좌 제59회] 재미있는 인연이야기 2 - 정선일 2013.09.05
24 [176년08월][기초교리강좌 제58회]재미있는 인연이야기 1 - 정선일 2013.08.07
23 [176년07월][유달강습회 2]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2) - 서용석 2013.07.11
» [176년06월][유달강습회 1]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 - 서용석 2013.06.07
21 [176년06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3 - 이영수 2013.06.07
20 [176년05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2 - 이영수 2013.05.09
19 [176년04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 1 - 이영수 ▣동영상강연 포함▣ 2013.04.03
18 [176년01월][기초교리강좌 제46회]정성 3 - 이상봉 2013.01.04
17 [175년12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교조님의 숨결 1 - 박용매 2012.12.23
16 [175년10월][기초교리강좌 제51회] 리를 무겁게 - 김위태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