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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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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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습소감문

 

신기한 수호

배주희(광일교회)

저는 이제 천리교의 신앙에 첫 걸음을 뗀 초보신앙자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광일교회라는 곳에 태어나 천리교의 활동을 이어가고는 있었으나, 신님, 교조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광일교회라는 회사에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 그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하나도 제출해 보지 않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직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직원을 사장은 좋아했을까요?

저는 글솜씨가 정말 없습니다. 하지만 혹시 나와 같은 입장이거나 신상과 사정을 앓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 부족한 글이라도 읽으시고 조금이나마 이 길의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적어 봅니다.

 

교회에서 나고 자라서 교회밥을 먹고 살았던 저는, 신님일을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특히 2년 전, 천리교 신앙인이 아닌 일반 사회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난 후는, 신님의 말씀을 남편에게 전해가기는 커녕, 함께 덩달아 신님을 점점 더 멀리했습니다. 교회에서 생활할 때에는 아침 저녁으로 근행을 봐야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많이 참아야 했으며 모든 것이 교회의 스케쥴에 따라 움직여졌으므로 늘 제약이 많아 생활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결혼은 나를 상당히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신혼생활은 더없는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는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잠을 잘 수 있었고, 토요일 저녁에 시켜먹는 치킨과 맥주 한 잔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살은 점점 찌기 시작하여 결혼 전보다 20kg 가까이 차이가 났고, 살이 쪄 갈수록 신님과 나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드디어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의 신상을 통해 신님께서는 저에게 손을 내미셨으나, 저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두 번째, 세 번째, 급기야 저의 유산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신님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시댁과 친정에서 무척이나 기다리던 아이였고 적은 나이가 아니었던 지라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회 밥을 먹고 자라온 내가 신님께 은혜보답을 하지 못하고 사회의 인간생각과 사욕에 휩싸여 있었으니,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때서야 이것이 신님의 인도임을 깨닫고, 아버지 광일 회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강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통학 강습을 하려했으나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 보자는 마음으로 남편을 설득시켜 주말에는 집에 오는 조건으로 기숙강습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리 수업, 손춤, 악기 등 내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엄청난 교만의 티끌을 짓고 있는 것이라는 걸 깊이 느끼고 처음부터 새로이 배우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3개월 강습(1128~228)을 받는 동안 저는 정말 신기한 수호를 받았습니다.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부터 그 신기한 수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여러 차례의 신님의 인도가 있었고, 종래에는 유산으로 인해 강습을 받게 되었으나 아무도 몰랐던 강습소에 오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실은, 재작년 5월쯤에 저에게 고통스러운 신상이 찾아왔습니다. 창원에서 진주까지 매일 운전을 하여 직장까지 출퇴근을 하였는데 운전을 할 때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곤란해지고, 오후가 되면 산소 공급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자유롭게 되지 않아 두통이 심해졌습니다. 그것이 1년 반 동안 점점 심해져, 운전할 때 외에 평상시에도 숨을 자유로이 들이쉬고 내쉼이 곤란했고, 뇌압과 안압이 차올랐으며 누군가 목을 조르듯이 갑갑하고 밤에 자려고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일부러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머리쪽으로 피가 몰리는 것 같은 느낌에 베개를 3개 이상 포개어야 겨우 잠이 들곤 했습니다. ‘괜찮아 지겠지하며 걱정시킬까봐, 남편에게도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리지 못한 채, 혼자서 한의원을 수차례 다니고, 마산 삼성병원에서 폐기능 검사도 해 보았으나,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강습을 받은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근행을 볼 때는 잠시 괜찮은 듯 하다가 계속적인 고통으로 다시 잘한다고 소문난 내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X-Ray, 초음파, 피검사 등을 해 보았으나 의사는 신경안정제만을 처방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상은 내가 명을 다할 때까지 가져가야 할 지병처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리 수업시간에 무엇이든 신님께 여쭈어보고 의논하라고 배운 대로 신님께 이 신상을 도움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며 기원 근행을 올리던 중 갑자기 3장 여덟에서 끝까지 신악가의 글자들이 크게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질병처럼 괴로운 건 없는 것이니 이몸도 이제부터 히노끼싱

여기까지 신앙을 하였지마는 으뜸의 신님인줄 알지 못했다

이번에야 나타나셨다 진실한 신님에는 틀림이 없다.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손춤을 추는 손이 떨리었습니다.

천리교 신앙을 하고 있었으나 언제나 진짜 계실까? 하는 의심에 가득 차, 저는 신님이 계신다고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부를 때, 갑자기 100% 믿지 못하고 있던 신님의 존재가 확실히 있다고 느껴지고, 신님만을 의지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긴가 민가하는 태도가 아니라 100% 믿고 따라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4장을 하고, 5장을 마쳐갈 때 쯤 갑자기 신전 문이 열렸습니다. 누군가 참배를 하러 오셔서 곁눈질로 봤더니, TLI 동기였던 신임 동광교회장님께서 오신 것이었습니다. 순간 신님께서 보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광회장님께서는 첫째,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늘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은 살아있는 꽃이 아니라 조화일 뿐이라고, 꽃은 떨어지고 다시 예쁜 꽃을 피우듯이 분명 마디가 있어야 더 단단한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신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신님께 여쭈어 보았던 것을 신님께서는 동광회장님의 입을 통해 답을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숨쉬기가 힘들 때마다 이렇게라도 숨을 쉬게 해주셔서 살리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루에 수십 번을 되 뇌이며 강습의 마지막 달을 맞이했습니다.

마지막 달에는 신찬 당번을 맡아 일요일에 잠시 외출을 하는 것 외에는 강습소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찬당번을 한 지 7일 만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신주 잔을 씻다가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퇴찬을 해 왔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무섭고, 신님이 벌을 주실까봐 가장 두려웠습니다. 몇 초 동안 몸이 얼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사감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다행히 여벌의 신주 잔이 있었습니다. 강습을 받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 분명 신님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도대체 무엇인지 신님께 여쭈어보았더니 그때 갑자기 신찬실에 있는 정성이라는 글자가 담긴 장식 접시가 내 눈앞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집에서 하던 것이라 빨리 하려고만 생각했지, 조심하지도 않고, 전혀 정성을 들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일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곳이 없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근행, 청소, 빨래, 운전, 식사준비, 물건쓰기, 정리정돈 등등. 살아오면서 듣기만 많이 들었지 정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신님께서는 벌을 주시려 했던 것이 아니라 정성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려는 큰 어버이마음에서 깨뜨리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니, 눈물이 절로 나오고 감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울러, 어렸을 때는 정성이 지금보다 없어도 깨지지 않더니 왜, 깨졌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제는 정성이라는 마음을 내어야 할 때이고, 자랑같지만^^ 낼 줄 알만큼 내 마음의 그릇이 커졌기에 신님께서 그렇게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래가지 못하고, 여전히 혹시 큰 마디가 오지 않을까?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걱정을 하니 다음날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급기야 한밤중에 위경련이 왔습니다. 강습기간 중에는 식당 사모님께서 해주시는 웰빙 음식만 먹는데 위경련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신경과민으로 인한 위경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배 아픔, 몇 번에 거듭된 토하고 사함으로 새벽근행도 좌근만 보고 당일 수업은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당사모님께서 약떡을 끓여주시고, 같이 방을 쓰던 이모가 수훈도 전해주시고, 강습동기님들께서 많은 신경을 써 주신 덕에 그날 오후가 되니 차츰 호전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이 올 때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가 좁아진 것처럼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제대로 눕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누워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막힌 혈관하나가 뚫린 것처럼 호흡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숨을 제대로 쉰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신님께 엎드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감사해서 감사해서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위경련으로 토할 때, 초록색의 덩어리 같은 것이 나왔는데 그것이 독소를 배출하게끔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신주잔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위경련이 오지 않았을 것이고 위경련이 오지 않았다면 독소가 배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탐정이 사건을 풀어가듯 내 머릿속에서 모든 과정들이 납득이 되어갔습니다. 모든 것이 자녀를 구제하고자 하는 신님의 한없는 어버이마음이셨던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으뜸하루입니다. 2년 가까이 앓아오던 신상을 기적같이 수호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신상을 말끔히 수호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 내가 티끌을 지을 때마다 호흡이 약간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5%밖에 되지 않는 불편정도이지만, 그때는 뭔가 또 내가 마음을 잘못 썼구나 하고 다시금 마음을 새로이 다잡을 수 있으니 오히려 내가 가진 이 신상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마음성인이 되어 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또한 그것은 신님, 교조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달은 신기한 수호를 받고, 강습을 마칠 때까지 12장 기원근행을 올리고 무엇이든 신님께 여쭈어보며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신님께 여쭈어보고 의논드리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신님께서는 한없는 어버이 마음으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손이 너무 차가워서 이렇게 차가운 손으로는 남에게 수훈을 전하기가 죄송스럽다고 신님께 말씀드렸더니 3일 작정 마지막 날 기원근행을 마쳐갈 때쯤에는 점점 따뜻해져오는 손을 느꼈고, 너무 기뻐 바로 해성이(근육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강습소 동생)에게 달려가 수훈을 전할 수 있었던 일, 어떻게 하면 낮은 마음이 되는지 여쭈어보니 정성의 마음으로 대하라! 나보다 낮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대답해주신 일, 남편을 존중하고 받들어야 하는 일 등의 신앙 체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3개월간 강습기간에 걸쳐 신님께서 인도해주신 단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향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늘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부모님의 삶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내 생활에 제약이 많을까 봐, 몸이 힘들까 봐, 그건 엄마, 아빠 인생이니까하고 외면하려 했던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늘 개운치 않게 해드렸고, 서운하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느꼈을 때는 가슴 밑 복부에서 우러나오는 통곡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죄송하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고리를 풀어가지 않으면 나는 늘 자식으로 인한 사정이 따라 다닐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지금부터는 부모님이라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예를 갖추어 교회장님, 사모님으로서, 또한 이 길의 신앙 선배님으로서 대해드릴 것입니다. 분명히 할머니, 부모님께서 이 길을 먼저 걸어주셨기에 더 오랫동안 신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이 교조130년제라는 시순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내가 인도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습소를 수료하기 전 용산교회장님의 교화수업시간에 교회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거꾸로 가라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속에 수호가 난다.”고 하신 말씀을 깊이 마음이 새기고 있습니다. 광일회장님께서는 강습소를 수료하는 날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교조130년제 이 연제 시순에 내가 열심히 신님 일을 보면 내 인생이 앞으로 잘 풀릴 것이고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하시며 남을 구제해라! 그렇게 마음작정을 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연제 시순에, 아직은 신앙의 초보자라 많이 서툴지만,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낮은 마음으로 이같이 신기한 수호를 내려주신 한없는 어버이마음에 최선을 다해 은혜보답할 것입니다. 또한 나의 으뜸하루를 늘 기억하며 이제껏 35년을 어떻게 살아왔든지 간에 이제부터 35년 이상 출직할 때까지는 신님일을 적극적으로 보며 은혜보답할 것을 다짐합니다.

혹시, 신상사정으로 괴로워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님, 교조님은 계시고, 마음을 바꾸어 신님께 의지하고 실천하면 하룻밤사이에도 신님께서는 수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니까요. 어서 신상사정을 떨치고, 신님의 한없는 어버이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늘 격려해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시고자 애쓰시는 아버지, 어머니 아니 회장님, 사모님, 진심어린 상담을 해 주신 강습소 여러 선생님들, 식당사모님, 강습생 동기님들, 무엇보다 3개월간 강습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혼자 생활하며 사느라 고생하신 남편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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