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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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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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차제 신전강화

하늘을 감동시킬 진실과 정성

 

배재기(광일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3월 월차제를 맞아 많이 참배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근행, 즐거웠습니다만, 여러분들도 근행이 즐겁지 않으셨습니까?

<친필>에 보면

모두 갖추어서 서둘러 근행을 하면

곁의 사람이 용솟음치면 신도 용솟음친다 1-11

라는 말씀이 있는데 오늘 근행이 이 말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근행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오늘 제가 지명을 받아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신전강화 말씀이라 드리고 싶은 말씀들이 좀 많이 밀려 있는데 1시간쯤 해도 되겠습니까?(하하하) 제가 한 시간까지는 안 하고 좀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우리교회 포교60주년 기념행사를 잘 마치고 또 올해는 지난 12일에 진주님 내외분께서 한국에 순교를 오시는 수호를 받았고, 29일에는 대교회 창립120주년에 맞아 고성교회에서 100여분이 참배하기로 계획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긴장된 상태이시리라 생각됩니다.

옛날 선배선생님들한테서 위에서 춤을 추면 같이 따라서 춤을 춰야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아래에서 춤도 추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위에 행사가 있고 어른이 춤을 추게 되면, 아버지가 춤을 추면 아들도 따라서 춤을 춰야 됩니다. 그래야 그 집안이 잘 되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부터 이렇게 세 번이나 되는 큰 행사들에 여러분들도 함께 마음이 용솟음쳐야 됩니다. 우리 회장님께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그 걱정하는 마음에 여러분들도 함께 스며들어서 같이 춤을 춰야 됩니다. 그래야 회장님도 수호를 받으시고 우리들도 같이 수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안 움직이면, 회장님이야 수호를 받으시겠지만 우리 수호는 없습니다.

제가 서두 인사가 좀 길었습니다. 잠시 말씀을 전해 드릴테니 귀 기울여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어버이마음에 스며들어 마음성인을 이루는 시순 - 연제

지금은 교조130년제를 시작하는 첫 해에서 벌써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가 마음작정하여 연제활동에 대한 실천을 열심히 해 나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연제는 제가 교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교조100년제부터 네 번째 맞는 연제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마음이 상당히 많이 바빠져 있습니다. 물론, 앞에 세 번의 연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바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아마도, 다음 140년제에 제가 계속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그 다음 연제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제 처지와 비슷하신 분들은 저처럼 마음이 많이 바쁘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연제라는 것은 10년 단위로 기간을 정해서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 스며들어 한 단계 성인되는 시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달 제3>

항상 남을 구제하겠다고 다짐해야만, 세계 구제라는 가르침을 표방하는 이 길의 신앙자이며, 그것은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 받는다.”라는 말씀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구제받는 길이기도 하다.

구제활동은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신상 사정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것이 다스려지기를 기원 드리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구제의 진실한 마음으로 수훈을 전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가슴속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까이 다가감과 동시에, 이버이의 말씀을 전하여 마음의 방향이 바뀌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 사람도 함께 구제에 나설 때까지 정성을 다해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들은 참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남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연제활동 기간, 삼년천일 동안 진주님께서 유달을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에 가까이 다가가는 수호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신님을 감동시키면 손뼉을 치십니다.

저는 요즘 어떻게 하면 수호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극정성을 기울이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천리교의 수호는 하늘, 즉 어버이신님께서 감동해야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도 하늘이 감동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버이신님께서 감동하실까에 대해 자나깨나 연구하고 남을 구제하는 길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감동시킨 첫 번째 예는 이부리이조오 본석 선생입니다.

<지도말씀>을 통해서 보면

여간 아니었던 저 38년 이전, 9월부터 착수하여, 충분히 길이 하나 겨우 겨우, 가옥 가옥, 가옥은 대단했었다. 조금 마디가 있었다. 모두 떠나가 버렸다. 목수 혼자 남았던 일을 생각해보라, 생각해 보라, 팔방의 신이 손뼉을 친 일이 있다. 손뼉을 친 일이 있다. 그보다 또 하나하나 이쪽에서 저쪽에서, 차츰 되어가는 동안, 9년이라 한다. 9년이라 한다. 해마다 섣달 그믐이라 한다. 그날의 마음, 그날엔 아무도 찾아오는 자가 없었다. 의지할 자도 없었다. 9년 동안은 목수가 와서 만사를 처리하며, 잘도잘도 따라온다고 기뻐한 날도 있다. 이것 그냥 두겠는가, 그냥 둘 수 있겠는가, 그로부터 만사를 맡긴다고 했다. 그래서 목수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래서 목수에게 맡긴다고 했다. 이것을 모른다. (1901.5.25)

이렇게 지도말씀에 적고 있듯이 전도·구제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 같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본석 선생님처럼 순직한 마음이 되면 어버이신님께서 감동하셔서 손뼉을 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신님께서 손뼉을 쳐 주실 정도의 진실과 정성을 내면 어떤 수호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본석 선생도 계시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본 고성 초대회장님을 비롯한 고성교회 산하의 초대 선생님들을 잠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이 많지만 사천, 도천, 남영, 구만, 진홍, 성천, 문산, 진양, 단계, 창녕, 성진, 평화, 안동, 본성, 지선, 중앙, 진전, 칠암, 충성교회 등 여러 교회가 있고 포교소가 있습니다만 그 초대회장님들은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진실과 정성을 갖추고 계셨으며, 모두가 나름대로의 근성과 특기를 갖고 계셨습니다. 이 초대회장님들께서는 신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성과 진실을 갖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각 교회 초대의 리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초대회장님들의 진실과 정성을 잘 전수를 받으면 틀림없는 수호를 받는다고 확신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이길을 걸어주셨습니다만 제가 전수를 제대로 못 받은 탓에 수호가 별로 없습니다. 초대회장님들께서 걸어오신 정성과 진실을 전수만 잘 받으면 수호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세 분의 이야기

제가 존경하는 초대회장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창녕교회 초대회장님이십니다. 제가 모르는 얘기도 많이 있겠지만 그분이 어떻게 실천하셨냐 하면, 식사할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밥을 드시는 걸 한 번도 못 본 봤습니다. 남들 다 먹고 난 다음에 드시고 자기 몸에는 한 푼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는 터전에 가는 데도 차비 안 들이고 가는 방법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상급에 이립하는 것 밖에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해들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남을 도우기 위해서 빙판, 얼음 위에서 잠을 주무시는 실천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려운 실천을 하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창녕교회의 발판이 되셨습니다. , 상급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는 온 정성을 다해서 빚을 내서라도 이립을 해서 회장님의 짐을 덜어드리고자 하는 그런 정성 진실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신님의 수호를 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신님이 감동하시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신님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고생을 안 하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40여 년 전인 1981년경에 포교할 때 대구로 포교를 나가기 위해서 집사람하고 같이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마산을 거쳐 가는 데 그날이 11월의 아주 추운 날이었습니다. 밤이 돼서 회원포교소에서 하루 묵고 가기로 했습니다. 당시엔 회원포교소 초대소장님이 계실 때였습니다. 거기서 저녁을 얻어먹고 자는데 그 소장님은 다른 신자집에 가서 주무신다고 하시고, 잠자리를 피해주셨습니다. 가시면서 연탄불문을 조절을 해주시고 가셨습니다. 가시고 난 다음에 너무 추웠던지라 좀 따뜻하게 자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연탄불구멍을 활짝 열어놨습니다. 그 선생님이 계시면 모르지만 안 보시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고 밤을 지내고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보니까 방바닥이 새까맣게 탔어요. 그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선생님이 근행을 보시기 위해 방에 들어오실 때 급한 대로 까맣게 탄 자리에 궁뎅이를 대고 앉아서 가렸습니다. 그렇다고 말도 안 하고 속이고 갈 수가 없어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불문을 너무 열어놓고 자다보니 방바닥이 탔습니다.”라고 이실직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괜찮다. 추워서 그랬지.” 하고 따뜻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서 그날 저녁에는 창녕교회에서 묵게 됐습니다. 창녕 초대회장님은 전도 나가셔서 안 계시고 다른 분이 계신데 그분이 교회에서 자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잘 수 있게 되긴 했는데 방바닥이 냉골입니다. 전날 마산에서 잘 때는 방바닥이 탈 정도로 뜨겁게 해서 잤는데 그런 냉골에서 자려니 곤욕이었습니다. 신전 옆에 작은 방이었습니다. 당시 제 무릎이 상당히 안 좋았는데 그 찬 데서 자다보니 무릎이 얼었습니다. 그 무릎 때문에 대구에 가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구로 가는 도중 걸음이 좀 늦은 집사람에게 눈치를 많이 줬습니다. “빨리 좀 가자. 빨리 가야 일찍 쉬고 아침에 또 출발할 것 아니냐.”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까불며 가다 영산쯤에서 무릎이 아파 그만 낙오를 하고, 어렵사리 집사람 도움을 받아 겨우 창녕에 가서 창녕교회 산하 이옥희 선생이 하시던 포교소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당시 창녕주차장 옆에서 포교소를 하시던 소장님이신데 다리와 팔이 불편한 데도 참 열심히 진실되게 하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거기를 거쳐서 다리 때문에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게 됐습니다.

그때 그렇게 창녕교회장님 덕으로 그 산하들의 도움을 받아서 대구까지 갈 수 있게 됐던 적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창녕 초대회장님께서는 이 길을 걸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이렇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입었던 은혜에 대한 보답은 제가 열심히 이 길을 걸으면 그게 은혜보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다른 한 분은 평화 전회장님이십니다. 이분은 항상 흐트러지는 모습이 없습니다. 산하와 이 길의 용재들에게 항상 힘과 용기를 주는 한줄기 마음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다리를 여러 번 다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리를 다치셨을 때 한 번은 신전에 침대를 설치해 놓고 거기서 주무시면서 생활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신님이 진좌하신 신전에 침대를 설치해 놓고 환자가 대소변 받아가면서 있다고 하는 게 어찌 보면 신님께 참 죄송스런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장님의 마음속에는 내가 근행을 빠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계셨던 모양입니다. 신전에 침대를 두고 있으면 어찌 됐든 근행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그럴 정도로 진실된 한줄기 길을 걸어오셨던 겁니다. 그렇게 항상 신님 받드는 마음을 후배들에게 들려주시곤 합니다. 그런 정성으로 오늘날의 고성교회에 이바지하는 평화교회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존경하는 다른 한 분은 성천 전회장님이십니다.

경북 의성에 가서 포교를 하셨는데 수훈을 전하려고 손만 대면 사람들의 신상이 나았습니다. 수훈은 많이 전하면 전할수록 좋은 것인데, 당시 그 회장님의 마음속에는 수훈을 너무 많이 전하면 리가 소모되어 효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너무 많이 수훈을 전하게 되면 진짜로 급한 신상자에게 수훈의 효력이 없어져 급한 신상자를 도울 수 없게 된다는 거죠. 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의 발로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이런 순직한 마음이 현재의 성천교회의 발판이 되셨던 겁니다.

 

이러한 회장님들의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날 각 교회들의 발판이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할 도리를 다 해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길을 가는 우리들은 정말 용재로서의 사명을 다 해놓고 신님의 수호를 기다리는 멋진 사람으로 거듭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물질을 중요시하는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호를 받는 길은 어버이신님께서 감동하시도록 자신을 만드는 방법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선배선생님들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는 진실한 정성을 가슴에 담아 한 푼 두 푼 아껴 덕을 만들어 나가며 물질의 풍요 속에서 탈피한 교조님의 모본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 집터는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낼 수 없는 곳이야.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만 생각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부자유하지 않는 집터야. 이것이 세상의 부자 집터인 거야.”<교조전일화편:78. 부자집터 중에서>

라고 하신 말씀이나,

고칸이 어머님, 이제 쌀이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조님께서는

세상에는 머리맡에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먹으려야 먹을 수 없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고맙잖아.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어버이신님께서 고맙게 보살펴 주고 계시는 거야.”

라고 타이르시고,

아무리 서글퍼도 서글프다 하지 마라. 거지 노릇은 안 시킬 테니.”

<교조전:3장 행적. 중에서>

라고 하신 말씀을 잘 새겨야겠습니다. 그런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말씀처럼 자녀들에게 거지노릇은 시키지 않았습니다. 슈지 선생이나 고칸님에게 쌀 얻어와라 뭐 얻어와라라고 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교조님께서는 허물어진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만인을 구제할 오늘의 터전을 만드시고 그 자녀들도 신님과 같은 입장에서 예배 받게 만들어주신 교조님께서 걸어주신 모본이야 말로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이 세상의 가르침 중에 완벽한 세계 구제의 가르침이라 확신합니다.

 

집 헐기로 가난의 모본을 시작하신 교조님

이번에 카톨릭에서 새 교황이 되신 프란치스코 제266대 교황이 즉위해서 처음 하신 말씀이 빈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라고 하셨답니다. 카톨릭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카톨릭의 교황이라고 하면 세계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생각되는데, 그런 분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주창하시는 걸 보면 세상이 앞으로 그런 흐름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라고 하는 것은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이런 흐름에 우리 천리교 용재가 앞장서서 구제의 선두에 서야 하는 시순입니다. 이 말씀은 교조님께서 벌써 가르쳐주셨죠. <지도말씀>

이길 시작은 집 헐기부터 비롯된 거야. 정말, 경사났다 경사났다고 하며 술과 안주를 내놓고 자축한 일을 생각해 보라. 별스런 이야기야, 별스런 이야기야. 자아 자아, 그러한 데서 오늘날까지 시작해 왔다, 시작해 왔다. 세상에서는 부자라도 오늘부터 부자유스런 날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데서 크게 되는 날이 있다. 집 헐기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1900. 10. 31)

교조님께서는 남을 돕는 본을 보이시기 위해 직접 그 대궐같은 기와집, 담을 헐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교황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난한 교회를 교조님께서는 벌써 모본으로서 실천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교조130년제의 시순에 이런 교조님을 따라서 세계구제에 나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교조130년제를 기회로 교조님께서 걸어오신 50년간의 간난고초의 길을 우리가 더욱 빛을 내고, 교조님께 기쁨을 드려서 감동하신 나머지 교조님께서 쳐 주시는 손뼉을 한번 받아보는 그런 연제의 시순을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으로 두서없는 저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