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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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리에 따르다

번역글

 

하늘의 리()에 따르다 5

 

나가다이 간지(中臺勘治)

이호열(성천교회장)

부모 자식간의 신뢰

자식은 보물인가?

山上憶良(야마노우에노오구라)가 읊은 유명한 시조가 있다.

(), (), 보석보다 나은 보물은 자식밖에 없구나.

자식에 대한 한없이 깊은 사랑을 노래한 이 노래는 만인의 공감을 얻어 천년의 세월을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바가 있다. 자녀의 기쁨은 어버이의 기쁨. 자녀의 슬픔은 어버이의 슬픔이다.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일할 의욕이 끓어오른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일한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부모를 따르며 무럭무럭 자란다.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 하는 부모들을 보면 저런 인생이 정말 좋구나 하고 느낀다.

이 길에서는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된다. 이 세상은 부모 자식 간의 은혜를 서로 보답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부모 자식 간의 의절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에는 가정 내 폭력에 까지 치닫고 있다.

어느 부부가 이런 탄식어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저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행복했을 텐데. 저 아이 때문에 우리 가정은 엉망진창이 되어 안심하고 살 수가 없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이 어떻게 해서든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마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어 주어도 당신이 만든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다정한 말을 걸어도 시끄럽다. 당신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중년부인이 머리가 아프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을 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갑자기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아이들의 씀씀이에 애간장 태우는 부모도 많이 있다. 아이라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로 다 큰 성인들이다.

벌써 몇 번이도 뒤치다꺼리를 했다. 이번에야말로 이제는 끝이라고 마음먹었지만, 이제 지쳐버렸다. 도대체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위어 초라해진 중년 부인의 상담을 받았을 때는 자식이 보물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몇 년 전이지만 신문에서 부모부양에 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리서치를 나라별 비교분석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을 비교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비율이 각각 70%, 40%, 20%였다. 현재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일본의 많은 젊은이가 부모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결과에 무언가 모르게 씁쓸함을 느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부모는 자식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키운다. 자식은 길러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부모 자식은 서로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 그곳에 따뜻한 혈육의 정이 흐르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신뢰는 즐거운 삶의 기본이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떠한 곳에 나타나는 것일까.

 

어버이가 키우면 자녀는 자란다

부모자식간의 단절, 가정 내 폭력. 이런 가정을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귀엽다, 귀엽다 라고 만 해서 키운 아이가 성장했어도 자립도 못하고 부모에게 반발하는 예가 많다. 부모는 자녀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다. 그런데 중요한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고 키워버린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새끼는 서푼 싸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이든지 응석받이로 길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모가 응석받이로 키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머니는 시댁부모님의 시중이나 남편의 일은 대충대충 하고 자식 일에만 온 힘을 쏟는다. 그런 가정에서는 결코 자립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지 못한다.

어느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자신의 생일날 회사에서 도시락을 열었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맛있는 음식이 들어 있었다. 평소에 서운함을 느꼈던 남편은 감격하여 회사에서 바로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부인이 한다는 말인즉 남편이 아이의 도시락을 들고 갔다고 크게 혼났다고 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여기까지 추락했는가. 라고 생각해 보면 웃어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결국 아이들의 마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이는 받는 것만 배우고 부모를 위하는 마음을 모르고 자란다.

세우면 세워진다. 1892. 2. 20 라는 지도 말씀이 있다.

응석받이로 키워져 세우는 것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자립할 수 없는 불쌍한 아이가 되고 만다.

최근에는 더 심하다. 제 자식 귀여운 것 보다, 제 몸 귀여운 제멋대로의 부모 탓에 아이들이 엉뚱한 변을 당하고 있다. 부모가 빠친코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어린 아이가 차안에 갇혀 열사병으로 죽는다든지, 엄마가 수다 떠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아장아장 걸어가 차에 부딪쳐 죽었다는 그런 사건들이 몇 건이나 있다.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 그것이 부모다. 그런데 자식을 방치하여 죽게 만든다. 이런 사건이 많다는 것은, 아직 어버이로 성장하지 못한 부모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바뀌지만,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가출한 어머니가 울먹이며 이런 말을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살아야 했다. 아이들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한 부인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제 몸 하나로도 힘들어서 미처 아이들까지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내버려져 성장한 아이들은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마음으로부터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인이 된 자식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자식을 원망하는 말투로 분개하고 있지만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가 한 살이 되면, 부모도 부모로써 한 살이 된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부모도 부모로써 열 살이 된다.

아이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 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키우면 자식은 자란다.

부모의 배려하는 마음이 자녀의 배려하는 마음을 키운다.

부모의 자제심이 자녀의 자제심을 키운다.

부모의 조부모에 대한 효행이 자녀의 효행심을 키운다.

부모 자식 간의 신뢰는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부모 자식이 되는 것은 인연

지도말씀에,

무엇이든 모두 인연끼리, 인연이라 한다. 부모 자식의 리, 인연의 리를 분간해 들어라. 좋은 자식을 갖는 것도, 나쁜 자식을 갖는 것도 인연, 이것 분간해 듣지 않으면 안 돼. 1901.3.11

인연이란, 알기 쉽게 말하면 짜맞춤이다.” 라고 말한 이 길의 선배가 있었다. 부모 자식이 되는 짜맞춤은 참으로 신기하고 깊은 연연이다.

그렇다면 좋은 자식을 갖는 것도, 나쁜 자식을 갖는 것도 인연라고 한다면, 좋은 부모를 갖는 것도, 나쁜 부모를 갖는 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모를 갖는 것도 덕의 소치다. 부모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부모 밑에 태어날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시와기쿠라지(柏木庫治)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덕한 부모는 자녀에 대한 어버이 마음이라고 하셨다.

어버이신님은 부덕한 부모를 이용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밝은 마음으로 걸어가신 카시와기 선생다운 발상이라고 감탄했지만, 자녀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부모 자식 간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카시와기 선생은 평생을 효도하는 자녀였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머리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여 모은 돈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송금했다고 한다. 선생의 전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중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만, 22엔의 월급을 받으면 50전을 남기고, 나머지 2150전을 부모님에게 보내는 식이었다. 가난한 환경,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송금. 그런 가운데 인간적으로 성장한 것일 것이다. 젊어서 무일푼으로 시작해 목재상의 주인이 되었고, 그 후 단독포교를 시작하여 대교회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카시와기 선생의 부모님이 부덕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모의 부족한 부분은 자녀에 대한 어버이마음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에서 배어 나온 생각이지는 않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면, 자식이 걱정을 끼친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부덕한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자신의 자녀는 모두 대단한 효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카시와기 선생의 세 명의 자녀 중에, 두 명의 아들들은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교회장이 되었다. 딸 또한 교회장이 되어, 세 명 모두 각각 책도 출판하고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 자녀 모두가 교회장이 되어 효도하는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부모는 뿌리, 자신은 줄기, 자녀는 잎사귀라고 한다. 부모, 자녀, 손자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나무와 같은 것이다.

뿌리가 상하고 여윈다. 뿌리를 못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줄기와 잎사귀는 말라버린다. 뿌리가 나쁘다. 뿌리의 책임이라고 뿌리에 계속 상처를 주면 줄기나 잎사귀는 더욱더 여위고 작아져 생기를 잃게 된다. 부덕한 부모를 구박하면 그 갚음은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반대로, 뿌리가 상처를 입고 여위어져 오면, 뿌리에 거름을 준다. 뿌리가 튼튼해지고 원기를 회복하면 끝에는 줄기나 잎사귀에 생기가 다시 돌아 푸르게 무성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되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무섭다.

부덕한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부모 또한 기뻐한다. 솔개가 매를 낳다. : 개천에서 용 나다. 라는 뜻라고 하듯이 이렇게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부모가 기뻐하는 모습은 자녀의 기쁨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번성하는 길이며, 자신의 자녀가 행복해지는 이치인 것이다.

부모 자식이 되는 것은 깊고도 신기한 인연이다. 자신이 선택하여 부모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신님께서 선택해 주시는 인연이다. 그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이 어버이신님께서 선택해 주신 의도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말한 것을 따르지 않는 자녀를 품고 사는 것.

남들처럼 자녀에 대한 육성도 제대로 못하는 부덕한 부모를 공양하며 사는 것. 가깝기 때문에 더욱 더 당사자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다하고 성심을 다하는 가운데, 끝에는 어버이신님의 섭리로 좋은 인연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어버이신님을 믿고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