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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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 기초교리강좌

 

정성 3

 

이상봉(고성교회장)

 

인간은 모두 신의 대물

 

인간은 모두 신의 대물. 어떤 리도 일러줄 것이니 분간해 들어라. 마음의 정성이 자유자재라는 것을. 자유자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성스런 마음에 있는 거야. 몸은 신의 대물, 마음은 제 것, 마음에 따라 몸을 빌려주는 리를 분간하라.

(1888. 2. 15)

우리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육체를 빌려 받고 있지만 육체를 자유자재하게 써는 것도 내 마음의 정성에 따라서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육체를 빌려주는 것도 부자유한 육체를 빌려주시는 것도 마음에 따라 빌려 주신다, 라고 하셨습니다.

 

진실 정성은 길의 길. 단단히 정하라, 마음을 다스려라, 단단히 다스려라. 이것이 하나의 마음작정의 길..... 단단히 마음을 작정하는 것이 제일이야. (1888.3.29)

마음에 정성만 정하면, 자유자재라 일러둔다. (1888.5)

정성에 마음을 작정하면 우리 몸에 신상이 일어나는 일이던 또 주변에 일어나는 사정이던 자유자재로 다스려질 수 있다. 이런 지도말씀을 여쭈는 배경에서 보면 다 신상이나 사정에 대해서 여쭈었을 때 이런 말씀이 내려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콕 집어서 이걸 했으면, 이런 대답을 해 주었으면 했는데, 다 정성으로서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은 애매모호하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정성으로서 자유자재한 수호, 신상도 수호 받을 수 있고 사정도 다스려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면 우리 아이가 신상(복통)이 계속되어서 지도말씀을 여쭈었는데 마음의 정성이 자유자재라 한다.고 해 버리면 대체 뭘 하라는 것인지 모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신의 입장에서도 이리하라 저리하라 라고 일러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정성은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 되어서 나타난다던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마음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정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님이 판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의 길은 정성의 길

 

자아 자아 신한줄기의 길은 겉과 속이 있다. 속의 길은 정성의 길, 하나 자아 자아 나날이 나르는 곳은, 정성이라는 지나기 어려운 것이다. 음의 길은 어려운 길, 겉의 길은 지나기 쉽다. (1888.5.21)

속의 길, 겉의 길이라고 나와 있는데, 겉의 길은 그때 보이는 모습, 형태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속의 길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겉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것을 따라 하기가 쉽고 실천하기가 쉽지만 마음의 길은 지나가기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 겉모습으로는 따라하려고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어려울수록 마디를 만날수록 겉으로는 마음 작정하여 용솟음치면서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안 생기고 속으로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되지? 하는 어두운 마음으로 억지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길입니다. 속마음까지도 마음이 그렇게 용솟음치면서 밝은 마음으로 지나기가 정말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정성처럼 강한 것은 없다. 정성은 하늘의 리이다. 정성만 있으면 세상에서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한다. (1888.6. 2)

정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기 때문에 강합니다.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기 때문에 강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하늘이 받아주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세상에서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도 훌륭하다.’ 라고 하는 것은 성공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변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 나갈 수 있으면 세상에서도 성공합니다.

 

천리왕님이란 정성스런 마음없이는 안 된다. (1888.7. 4)

전에 말씀드린 단노는 정성이다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단노 하나의 리를 다스려라. 단노는 정성에서 밖엔 안 나온다. 단노는 정성스런 마음이야. 정성이면 곧 받아들인다. 듣고 과연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새겨지면 신상도 곧 좋을 것이니. (1888.10. 28)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납득하는 마음이 되면 신상도 곧 수호를 받습니다. 나한테 왜 이런 신상이 오지? 하고 생각을 해 버리면 수호도 오지 않습니다. 내가 이런 신상이 올만한 마음 씀씀이를 썼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납득만 되면 신상도 다스려집니다. 그것이 바로 정성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까? 대단한 노력으로 마음을 닦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전혀 납득이 안가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내 마음을 수양을 안 하면 납득하는 마음이 안 생기죠. 여러 가지 신상이나 사정을 겪어보고 마디도 만나 갈고 닦기면서 점차 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종국에는 그런 길로 가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마음도 아니고 닦고 갈리면서 되어가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단박에 되는 마음이 아니라는 거죠.

 

과연 그렇구나 하는 리

 

이 리 하나 명심하라. 과연 그렇구나 하는 리는 정성스런 마음이 과연 그렇구나 하는 리이다. (1888. 11.11)

이 말씀에서는 듣는 일, 보는 일, 겪는 일 모두 다 납득이 가는 일이다. 납득이 안가는 일이 없다. 그런 마음이 된다는 것이 정성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납득도 안 가는 그런 일이 자꾸 생긴다는 것은 정성의 마음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이 걸어가신 모본의 길도 다 그렇지만 모든 일, 즉 하는 일이나 이루어지는 일이나 나타나는 일들이 교조님께서는 어버이신님이 보여 주시고 시켜주시는 길이라고 다 이야기했거든요.

이 길에서 큰 마디를 만날 때, 예를 들어서 오야마또신사 사건의 마디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집터의 근행장소 역사에 상량식을 마쳤을 때, 그 때 야마나까 주시치 선생이 자기 집에 와서 잔치를 하자 하여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집에 가는 중간에 오야마또신사라는 큰 신사가 있었죠. 그 신사 앞을 지나가면서 교조님께서 참배를 하고 가라는 말씀에 사람들이 그 앞에서 근행을 봤습니다. 북을 치고 박자목을 치고 근행을 보니까, 그 안에 있는 신직이 와서 그 사람들을 잡아서 시말서를 쓰게 하고 벌금을 물게 하고 며칠씩 구류를 살았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마디를 당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 마디 때 이길을 신앙하니까 감옥에 잡혀가는 일이 생기는구나해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그만두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큰 마디인데 그런 일이 있었을 때, 교조님의 막내딸 고칸이 처음부터 아예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교조님께서는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니야 두고두고 이야기의 근거가 될 것이니하시며 오히려 마디를 만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마디를 통해서 진짜 이길이 열리고 뻗어 나간다고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일이 처음부터 안 했으면 좋았을 걸,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신님이 이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보여 주셨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깨달음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성스런 마음이 큰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성스런 마음이 남을 돕고 구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 길은 정성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나는 길인데 남을 돕고 세우고 구제하는 마음 없이는 아무것도 진짜 해결이 안 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교내에서 마디라 할까, 사정으로 복잡한 교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판으로 가고 막 치닫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모습으로는 아무런 수호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재판이라고 하는 것은 한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는 승리하는 것, 그것 밖에 길이 없는 것인데 과연 누구 편을 들어줘서 그것이 신님의 수호라고 하겠어요? 상대방이 서로 도와주면서 구제하려는 마음이 있다면요, 재판에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지 않겠어요. 서로를 도우려는 정성이 반드시 들어야 신님의 수호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은 정성이란 관점으로 볼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란 냉정한 것이 있지만 이 길은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남을 돕고 세워주고 구제하는 그 마음에서 수호가 다 일어나지 그것 없으면 재판이고 법이고 아무리 이겨도 그것은 이 길하고는 전혀 상관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성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렇구나하는 것은 정성스런 마음에서 나오는 리입니다.

 

나날이 항상 실천하는 것

 

또 하나의 리, 항상 정성스런 마음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하늘이 곧 받아들여 곧 돌려준다 돌려준다. 자유자재는 각자가 나날이 항상 실천하는 데 있는 거야.

(1888.11.11)

정성이라는 것은 나날이 항상 써는 것, 실천하는 것 그것이 정성입니다. 그것을 변함없이 주~욱 이어가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큰 마음을 썼다 해서 정성인 것은 아닙니다. 매일같이 변함없이 꾸준히 애쓰는 그런 마음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고 나날이 뿌린 씨앗은 나날이 거두어들입니다. 365일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씨를 뿌리며 살면 365일 동안 즐거운 열매가 맺히겠죠. 그런데 한 30일 정도는 즐거운 씨앗을 뿌리고 나머지 335일 정도는 다른 씨앗을 뿌렸다면, 30일 정도는 즐거운 싹, 나머지 335일은 다른 싹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계속 매일매일 정성을 써 가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합니다.

 

그 고장에 한 사람이라도 정성이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싹이 튼다. 당장에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한 사람이라도 리가 있으면 싹이 튼다. 차츰 차츰 차츰 1, 2년 리가 쌓여 크게 된다. (1888.12.22)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을 지니면 집안이 화목해지는 수호가 나타난다. 세상에서, 참으로 과연 그렇구나, 훌륭한 사람이구나 하는 리가 나타난다. 과연 그렇구나 하는 리를 받아들이는 거야.

정성스런 사람이 고장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거기서 싹이 트고 집안에서도 한사람이라도 정성스런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이 화목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남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정성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이 우리 집안에 누구를 신앙시켜 정성스런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정성스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고 하면 됩니다. 나만 잘 하면 집안이 다 화목하게 다스려집니다. 남을 정성스런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일을 하면 생애를 하루로 줄이는 거야. 그래서 처음은 작은 것에서 작은 것에서 시작하면 아무래도 이리하자, 이리하자 하며, 저절로 되어가는 것이 정성이야. (1889. 2. 15)

처음부터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다 준비를 해서 시작하고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을 해 잘 돼 보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마음을 모아가는 것이 정성입니다. 그런데 좀 안됐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해서 그냥 좌절하여 주저 앉아버리는 것은 정성이 아닙니다. 사업하듯이 미리 완전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실천하는 가운데 실패를 경험하면서 마음을 모아가는 정성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무리한 일을 하면 생애 하루를 줄이는 거야라고 하신 것처럼 갑자기 너무 크거나 분에 넘치는 일을 하면 반동이 오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마음의 길은 정성, 정성은 천리, 하늘의 리로 혜택이라 한다. (1890. 4. 6)

정성의 길은 마음으로 걷는 길이고, 마음의 길은 하늘의 리에 통하므로 나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정성 하나의 리를 모르면 아무것도 안 된다. (1890.4.16)

이 길은 정성을 모르고 실천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안 되는 길입니다.

 

마음은 한사람, 한 사람의 것이므로 남과 사귀는 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사람 자신이 모른다면 어쩔 수가 없다. 각자의 마음 가운데에 어버이신이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성 하나다. 정성스러운 마음은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진실로 마음이 정해졌다면 남이 무어라고 하던 변치 않는 것이 정성이다. (1890. 4. 16)

 

안 되는 가운데 단노하는 것은 정성, 정성은 받아들인다. 안 되는 단노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 안 되는 하나의 리는 많은 것을 분별해서 단노. 안 되는 가운데 단노하는 것은 전생참회라 한다. 이것 잘 분간하라. 이만큼 깨우치면 자유자재의 리를 알겠지.

재세하는 동안에 즐거움도 없이, 리를 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교조의 리를 보라. 활동하면 활동한 만큼, 각자 각자의 마음에 정성만 있다면 걸어서 헛되지 않는다. 이렇게 깨우치면 알 것이다. 활동하면 활동한 만큼 이제부터 나타날 거야.

(1897. 10. 8)

이 길은 쉽고 형편에 맞고 걷기 좋은 길만 걸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렵고 고생스런 마디 가운데 단노하면서 걸어온 것입니다. 그런 것이 정성입니다. 단노를 하는 정성의 마음으로 걷는다면 무슨 일이든 자유자재한 수호의 리를 받는 섭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말은 참다운 정성

 

진실한 말은 참다운 정성. 정성은 이밖에 없다. 이 이야기 전하면 다스리기, 또 이야기하는 방법의 리도 된다. 어떻게든 다스려지는 것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도 진실한 말이 리. 이런 곳에 있는 자도, 저런 곳에 있는 자도 뒤에서 진실한 말을 해 주는 것이 이 길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는 입으로 그럴싸한 말을 했다가, 뒤에 흥 하는 따위로서는 안 된다. (1898. 12. 31)

진실한 말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돕고 세워주는 마음을 밝게 만드는 말입니다. 앞에서는 그런 말 하고 뒤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전에 나오는 말인데요, ‘병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비롯되고, 재앙은 입에서 나가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입에서 나간 말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재앙이라는 것이 뭡니까? 생각지도 못하는 불시에 일어나는 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씨앗은 어디서 뿌립니까? 말로 뿌립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한마디가 재앙의 씨앗이 된다고 했거든요. 왜 재앙의 씨앗이 되느냐? 뭔가 남의 마음을 어둡게 말로써 뿌리는 거예요. 내가 이 말을 해서 누군가 마음이 어두워지면 재앙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병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가지고 거의 다 병이 오지만 입에서 나가는 것은 말 밖에 없지 않습니까?

말이 재앙의 씨가 되는 것은 남이 있는데서 하는 말이든 없는데서 하는 혼잣말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신병증에 보면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이면 혼자 있을 때 욕을 한답니다. 혼자 있는 데 욕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사람들하고 대화를 할 때는 괜찮다가 혼자가 되면 욕을 막 하는 것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튀어나오는 것이라 하거든요. 그래서 무심결에 자기가 욕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자신과 이야기를 자꾸 해 보아야 합니다. 안 되면 남에게 상담을 받아 보던지 이렇게 하여 자꾸 마음의 짐을 들어내어야 합니다. 욕을 하는 것이 마음의 짐이 있어서 욕을 한다고 하거든요. 아마 짐이나 걸리는 것이 없으면 남이 있는데서나 없는데서나 덕을 심는 이야기 밖에 안할 거예요. 남이 있는 앞에서도 욕을 하는 것은 굉장히 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마음의 짐이랄까 좋지 않는 인연을 끊고 좋은 이야기를 남이 있는 자리에서나 없는 자리에서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이좋은 것은 정성

 

무엇이나 사이좋은 것은 하나의 리. 사이좋은 하나의 리는 세계라 한다. 사이좋은 것은 이것 정성. 정성 없으면 다스려지지 않는다. 다스려지면 모두 용솟음친다. 용솟음치면 신도 기뻐한다는 리를 깨우쳐 두마. 잘 분간하라. (1899. 10. 8)

 

이상으로 원전에서 나오는 정성에 관한 나름대로 인용을 했습니다. 각자 각자의 정성이라고 하는 기준은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마음의 힘을 숫자로 나타내 면 100이라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70%정도의 힘을 신님의 일에 쓰면 대단한 정성이라는 말을 듣겠죠?

‘3,7의 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인간 생각을 70%라 하고 신님의 일을 30%만 하고 사는 것이 보통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마디를 만나면 반대로 신님의 일을 70%로 바꿔서 하고, 인간 생각은 30%하면 마디를 넘어 갈 수 있다고 하거든요. 마음의 힘이 100인데 70을 쓰면 대단한 정성으로 받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힘이 10밖에 안되는데, 70을 낼 수 없습니다. 7정도만 써도 대단한 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성은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형태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마음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덕이라는 것을 그릇에 비교하면, 작은 그릇도 있고 엄청나게 큰 그릇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남을 보고 평가하여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의 그릇에 맞게 각자 각자 정성을 기울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신님의 수호도 분명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많은 분들의 요청에 의해 제46회 기초교리강좌 녹취록을 풀어서 실었습니다.

풀어주신 김상용선생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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