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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년02월]작은이야기2 - 정선일

2012.05.14 17:02

관리자 조회 수:2475

작은이야기2

 

스마트폰과 스마트 세대에 대한 소고(1)

 

 

정선일(산청교회장)

 

스마트 세대란 한 마디로 스마트 폰을 비롯한 모바일 상품을 활용하는 세대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이전의 디지털 혁명의 시대는 가고, 386세대나 N세대로 부르던 세대도 가고, 모바일 상품의 주요 소비자들이 급격하게 세대교체를 하면서 스마트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은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하여 자신감과 풍요함 속에서 자란 세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스마트 기기들의 신속한 세대교체와 함께 스마트 세대의 개념 역시 빠르게 진화해 왔다. 그리하여 이제 스마트라는 개념은 단순히 똑똑하다거나 기능이 다양한 기기들(Intelligent & Multi-Functional)을 잘 활용하는 세대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는 외려 사용자 자신만을 위한 맞춤형 및 사회관계망의 기능을 가진(Self-Customized & Social-Networked) 세대라는 의미가 더 적절한 정의가 되었다.

손 안에 있는 작은 기기 속에 자신의 선택과 욕구가 그만큼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 세대가 자신이 원하는 기기를 가졌을 때의 애착과 자부심은 의외로 강하다. 그 덕분에 웃지 못할 중독 증상들도 속속히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화장실에 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에도 습관적으로 그것을 손에 잡고 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스마트폰을 수시로 만지거나 점검하면서 쉽게 산만해진다.

휴대폰과 달리 스마트 세대는 자신의 기기를 하루 평균 34회나 열어 본다고 한다. 어쩌다가 스마트폰을 깜박 잊고 외출을 했을 때는 다시 조우하기까지 불안하여 견딜 수 없는 하루, 거의 패닉(공황) 상태에 가까운 하루를 보낸다. 이전의 인터넷 게임 중독 현상이 고스란히 뒤따라 온 모양새이다.

스마트 세대에 있어서 시간의 낭비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휴가나 휴식시간에 스마트 기기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잠시도 심심할 시간이 없다. 잠시라도 자신을 스마트 기기의 혜택으로부터 멀리하는 것은 마치 기기를 모독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덕분에 잠깐도 자신의 눈과 몸을 위한 휴식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신체적으로는 뒷목이나 손목의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를 거북목 증후군 혹은 손목터널 증후군이라 부른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고, 잠시의 막간도 없이 무엇인가를 듣고 있다.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지고, 오직 쏟아지는 정보들을 소비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선택하느라 여념이 없다.

만일 스마트 세대의 자녀들이 친구를 만난다면 아마도 거의가 스마트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앱(Application)이나 악세사리, 비싼 케이스와 새로운 사회 관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마트 세대를 리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기기들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을 필두로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피시(tablet PC)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앞으로 2015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11억대의 스마트폰이 팔릴 거라는 예상을 하는 이들도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스마트 TV의 도래가 거실 중심, 혹은 방송국 중심의 텔레비전 문화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기기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모바일 인터넷 네트워크와 더불어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 관계망이 급속히 삶 속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마트 기기들은 스마트 세대의 가장 깊숙한 영역에까지 들어와서 일상생활의 언어와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더 이상 이 세대의 청소년들과 스마트 기기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스마트 기기가 곧 자기 자신이며 자신이 스마트 기기라고 생각하는 동일시의 정체성(identity of identification)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스마트 세대의 변화에 맞추어 사회 관계망의 기반이 변하고 비즈니스의 다양한 전략들이 등장하고 있다면, 여기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곧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교회)교육의 현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스마트 세대의 두 얼굴

스마트폰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할 무렵, 여전히 휴대폰 세대였던 나는 갑작스런 소외감 혹은 열등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버스 안에서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일반 휴대폰을 지니고 통화만 하고 있던 나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휴대폰 모델이 바뀌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스마트폰은 느낌이 달랐다. 앞서가는 세대에 뒤쳐진다는 느낌, 혹은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과 가시적으로 차별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낯설면서도 직설적인 어법으로 마음을 치며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물며 민감한 성장과정을 거치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가진 친구들에 대해 느끼는 차별감은 훨씬 클 것이라 생각한다. 가정형편이나 사정이 되지 못해 비싼 폰을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배려 역시 교회 교육의 현장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자신이 원하던 스마트폰을 구입한 나의 큰 아이의 일상은 그 구입을 전후하여 상당히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여는 것이다. 밤새 달라졌을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이 잠든 동안 누군가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는지, 뭔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 기기와 먼저 아침 인사를 나눈다. 혹시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하더라도, 가족이 자신을 부르지 않는 이상 계속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정해진 사용 시간을 지나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는 처음에 스마트 기기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딸들에게 새롭게 배우는 부분도 많다. 기계의 작동에 대해 물어 보면 딸은 잠깐만 줘 보세요!”라고 말하고는 빠른 시간 안에 답을 찾아낸다. 스마트 기기에 관한 한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잘 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답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스마트 세대의 핏속에는 스마트 혈소판들이 널려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스마트 세대가 가진 사회적 네트워크는 부패한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작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이어 인도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의 부패와 위선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사회 관계망 덕분이다. 심지어 선진국이라 여기는 영국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된 것도 블랙베리 메신저의 영향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이 세대의 청년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도구가 이런 사회 관계망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피해의식이 공통적으로 함께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들은 즉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도구를 손에 가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 세대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 가지 특성들을 볼 때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양면성의 얼굴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다소 인위적인 면이 있지만 그러한 양면성들을 편의상 다음의 몇 가지 범주들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 신속성 대 조급성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내지 스마트 세대에 대해 경외 내지 경계해 마지않는 것은 곧 그 빠른 속도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 세대는 디지털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정보를 입수하고, 신속하게 주어진 문제나 의문을 해소한다. 또한 자신의 정보나 타인에게 얻은 소식을 지구촌 구석구석에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실어 나른다. 내가 생산한 정보라 하더라도 같은 시간에 어떤 사람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될 수 있는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서울에 있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표시가 나오면 실시간 채팅을 시작할 수도 있고, 책을 읽다가 생긴 의문을 적어 놓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그 대답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타나 그 대답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 주기도 한다. 스마트 기기는 이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일일이 열어 보아야 하는 이메일의 거추장스러움까지 전부 실시간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때도 환자들은 이미 자문을 받고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의사의 설명이 환자가 뻔히 아는 내용일 때도 많다. 포털에 자신의 증상을 적어 넣기만 하면 유사하면서도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거기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 어느 정도는 자가진단을 먼저 하기도 한다. 물론 정확한 진단은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하겠지만 길을 찾든, 여행지에서 식당을 찾든, 삶에 있어서의 모든 문제는 스마트폰 안에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신속함은 스마트 기기의 단순함과 상통한다. 아이패드를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철학은 직관적이고 단순한 기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구나 손가락의 터치만으로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고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 기기의 신속성이 스마트 세대 사용자들의 생활과 성격 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우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곁에 누군가에게 문의하기보다 스마트 기기를 의지하려 하는 점이 그렇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나쳐서 교회에서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모임을 할 때도 그 모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폰에 눈과 손이 가 있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스마트 폰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신님말씀을 함께 음미하거나 읽고 생각하는 것조차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인생에 대한 답이란 전부 스마트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감정이라고 하는 사치스런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그저 내 손 안에서 빠르고 시원한 대답을 얻으면 자신들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에 대한 다소의 조급증은 스마트 세대를 더욱 역동적인 세대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주한미국 상공회의소 소장이었던 제프리 존스(Jwffry D. Jones)는 극심한 경쟁의 시대에 한국인들의 이런 급한 성미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언제나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 같은 조급증은 스마트 세대 자신들조차 매우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