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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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리에 따르다

번역글

하늘의 리()에 따르다 3

 

나가다이 간지(中臺勘治)

이호열(성천교회장)

 

가출(家出)

낮은 마음

가정이란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포근한 가정에서 피곤을 풀고, 다음 날 아침에는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일터로 출근한다. 가끔씩 떠나는 여행도 좋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역시 자기 집으로 돌아오면 긴장의 끈을 풀고 편안히 쉴 수 있다. 가정이란 그런 따스함이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곳이다.

그렇게 소중한 가정을 버리고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가출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매우 힘들다. 남편이 가출하면 가계가 쪼달리게 된다. 아내가 가출하면 가정의 따스함은 사라지고 살벌하고 차갑게 바뀐다. 자녀가 가출하면 부모는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다. 누가 없어지더라도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보면, 가출한 사람이라고 좋아서 가정을 버리고 나간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도 있을 수 없어서, 참을 수 없어서 그런 이유로 해서 불안을 품고 나가는 것이다. 가출은 남겨진 사람이나 나간 사람에게나 심각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 하나로 가출을 해서 정말로 행복해졌을까?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가족을 버리고 가출한 사람은 대부분 쓸쓸한 말로를 맞이한다. 그 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가 되어 외로운 인생의 종말을 맞는다.

인생이란, 자신의 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싫은 사람을 피해서 장소를 바꾸어도, 그 대신에 또 싫은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비슷한 일로 이직(移職)상담을 가끔씩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이전에는싫으면 그만두지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나 직장을 옮겨도 같은 고민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래서 최근에는절대로 그만두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요컨대 피해도 안 되는 것이다. 피해도 반드시 쫓아오는 것이 있다. 피하는 것보다 당당히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마음의 성인됨이라고 생각한다.

가출은 가족 간에 마음의 연결이 끊어져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 연결은 어버이신님의 십전의 수호의 리에서 말하자면, 결합수호의리의 활동이다. 결합수호의리는 태초 세상 창조 시 진흙바다 속의 모습은 거북”, 그러므로 거북과 같은 낮은 마음. 나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 착실하게 천천히 걸어가는 마음. 그런 마음이 되도록 마음의 전환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일어났다. 철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내에게 좋아하는 남자가 생겨서 가출을 하게 되었다. 그 남편은 모두 알고 있었다. 상당히 기가 센 아내로 한번 말하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으로서는이렇게까지 바보 같은 가혹한 이야기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남편의 훌륭한 부분이다. 단념하고 아내를 기분 좋게 가출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가출하는 아내의 짐까지 챙겨서 역까지 배웅했다. 한편, 아내는 역에서 전차를 타고 양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남자의 곁으로 떠나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흥미가 떨어진 불륜상대의 곁을 떠나 뜻밖에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염치없이 돌아온 아내도 뻔뻔스럽지만, 그것을 받아준 마음씨 고운 남편의 마음도 넓다. 그 후 부부는 사이좋게 살아서 지금은 벌써 손자가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다. 서로가 여보’ ‘당신하는 여느 노부부 같지만, 그런 옛일이 있었는가 의심할 정도로 오순도순 의좋은 모습이 좋아 보인다.

생각해 보면 짐을 챙겨서 배웅한 남편의 낮은 마음, 불쑥 집으로 돌아온 자기 밖에 모르는 아내를 받아 준 부드러운 마음, 그 마음이 가출을 막은 것만은 틀림없지만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낮은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 되면, 연결의 활동이 나타난다.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반대로 높은 마음이 되면 연결은 끊어져 버린다. 가출을 하고 싶을 때나 가족의 끈이 끊어져 흩어져 버렸을 때에는 거북의 모습을 떠올려 낮은 마음, 나를 내 세우지 않는 마음으로 걸어가고자 생각한다.

 

중심을 잃어버리면 가족은 제 각각

가출청소년들을 상담해 보면, 거의가 부모에 대한 존경심뿐만 아니라 정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모라는 형태는 있어도 부모의 역할을 못할 뿐만 아니라 존재감마저 없는 것이다.

어느 가출소녀에게 부모 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자, 얼굴색이 확 바뀌면서 그런 말은 두 번 다시는 하지 말아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녀에게 있어서 부모란 생각하는 것조차 싫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모르는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 청년은 부모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정의 중심은 부모이지만, 형태로서의 부모는 있지만 마음속에 부모가 없다. 중심이 없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가출을 하게 된다. 가출하는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원인은 부모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가출소녀에게 왜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은지 물어보면,아버지는 완고한데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부모답지 않은 것이다.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것이 과한 것이다. 또 왜 모르는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드는지 묻자,아버지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정도 없으며 마음도 통하지 않는다. 더 이상 같이 사는 것은 싫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부모는 부모로써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중심,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때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가정과 핵가족의 가정에서의 아이들의 마음이 틀리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틀리는가 하면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의 아이들이 마음이 풍부하고 배려심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조부모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정()속에서 정서가 안정이 된다.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는 핵가족화가 빨라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정이 줄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효행의 본보기가 없다. 그 때문인지 부모를 당신 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바보라고 까지 부른다. 이것도 시대적 흐름이라고 단념하는 경향도 있지만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잔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부모의 언행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가정이 가출의 원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는 바뀌지만, 최근 신흥종교에서 조상공양, 부모에 대한 효도를 제일 덕목으로 내세우는 교단이 증가하였다. 옛날 같으면 이런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가정에서든 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것을 일부러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회의 근본이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가 성묘를 하고 신님에게 손을 모아 기원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마음이 풍부하게 만들어진다. 자신의 부모의 부모를 알게 된다. 그 근본되는 신님에게 손을 모은다. 이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없어지고 감사의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이 길에서는 옛날부터 가정의 안정을 원한다면 일참을 하라고 가르쳐 오고 있다. 일참을 하게 되면, 아무리 혼란스런 가정이라도 반드시 안정되어져 온다. 이것은 가정의 중심에 신님이라는 중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은 즐거운 삶의 근원이다. 부모자식이 제 각각이라면 즐거움도 줄어든다. 신님을 중심으로 부모자식이 서로 다정하게 지내는 그런 가정이 한 집이라도 더 생기면 얼마나 근사할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출의 인연

여러 가지 인연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가출하는 것에도 인연이 있었는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소녀를 만나고 부터다.

벌써 20년도 지난 일이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가출한 한 소녀가 교회로 이끌려 왔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 많은 도시에 단신으로 가출을 했구나 하고 놀랐지만, 사정을 듣고 보니 이것 또한 인연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이구나 하고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소녀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녀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더군다나 잘 들어보니 길러주신 할머니도 옛날에 가출한 경험이 있었다. 가출한 할머니, 가출한 어머니를 이어서 소녀가 가출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소녀가 이 길의 신앙을 마음에 단단히 새기고 있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서 어디에도 그 옛날 가출한 흔적도 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있다.

지도말씀에,

인연이라는 것, 한 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888414)

라고 되어 있다. 간단하게 자신의 인연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 20, 30년 오랜 세월을 지나서 왜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지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중에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이번처럼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 이어진 가운데 인연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연을 자각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인연을 끊고 바꾸는 길을 향하게 된다. 그 소녀는 지금은 화목한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 때때로 전도구제에도 나가고 있다. 자녀에게 그런 슬픈 인연이 이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인연이라도 인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괴롭다. 쫓기는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구제는 보람이 있다. 밝음이 있다. 구제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밝고 명랑함과 용기를 마음속에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은 씨앗. ()은 밭이다. 씨앗과 밭. 둘이 하나가 되어 모든 작물이 결실을 맺는다. 인연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나쁜 인(씨앗)이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면, 나쁜 환경의 장소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이 중요하다.

도박에 인연이 있는 사람은 카지노나 경마, 경륜장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술 인연이 있는 사람은 술집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색정인연이 있는 사람은 밤거리의 환락가에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좋은 환경의 장소에 가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신님이 계신 곳으로 한 번이라도 많이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교회와 이어지면 그 만큼 마음 속 티끌이 씻기고 털리게 된다. 마음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신님에게 다가서면 마음이 맑아져 온다. 신님에게서 멀어지면 인연의 마음이 나타난다고 듣고 있다.

어떠한 인연이라도 그 마디를 통해서 즐거운 삶의 꽃을 피우게 하시려는 신님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 길의 선배선생님들은 깊은 인연을 자각하는 가운데 명랑함을 되찾았다. 그런 신님의 마음과 선배선생님들이 걸어온 길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어떠한 가운데서도 용솟음치며 걸어가고자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