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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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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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차제 상급교회장 인사말씀

남 도울 마음이 있는가

 

최정욱(원남성교회장)

 

(4)반갑습니다. 고성교회 포교60주년 기념봉고제가 107일에 열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은 대교회장님께서 오시기 때문에 회장님께서 인사말씀을 해 주실 거니까, 저는 오늘 먼저 축하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초대회장님을 즐겁게 해드리도록

오늘 차를 타고 들어오는데 보니까 현수막이 붙어있더라고요. 그 현수막을 보는 순간 고성초대회장님이 딱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고성교회 초대회장님을 뵈어서 정확하게 기억나는 부분은 별로 없습니다만, 어렴풋이 기억은 나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 (원남성)초대회장님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바로는 원남성 초대회장님한테 들었을 때도 그렇고 고성 초대회장님에 대해서 들어서 아는 부분은 정말로 순직하신 분이였다는 거, 그 다음에 아주 단노를 잘 하신 분이였다 거예요. 그러니까 고성 초대회장님을 떠올리면 먼저 아주 순직한, 그 다음 단노를 잘 하시는 분이라는 그런 것이 떠오르고, 원남성 초대회장님을 떠올리면 용기라든지 전도가 떠오르듯이, 사람 사람마다 이미지라는 게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교회를 불문하고 옛날 초대 선배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주 풍요로운 혜택 속에 살려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인연에 따라서 신상 사정으로 고생을 하는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초대 선배선생님들에 비한다면 우리의 지금 이 고생은 솔직히 말하면 고생도 아니다 할 정도로 아주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뭐가 달라졌는가? 살기도 좋아지고, 신앙하기도 더 좋아지고 편해지고, 그때 당시만 해도 정부의 탄압도 심해서 근행을 보는 가운데도 여러 가지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신앙하기도 많이 편해지고 모든 면에서 다들 좋아졌지만, 틀려진 점이 뭐가 있냐 하고 생각해보니까, 초대 선배선생님들하고 비교를 해보면 저를 비롯해서 다들 정말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번에 고성교회 포교60주년이 다가오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여러분들이 마음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아서 용솟음치는 모습을 보고 어버이신님께서 같이 즐거워하시고 수호도 여러 가지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한 가지는 생각해야 할 것은, 많은 행사를 하고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서 하는 것도 고성 초대회장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부분이지만, 정말로 초대회장님이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고성 초대회장님을 그리는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초대회장님의 모본을 따라가려고 하는 마음,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상급에 순직한 마음으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옛날에 초대 선배선생님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좀 계산적이라는 거죠. 옛날의 초대선생님들은 계산이 없습니다. 일단, 주판을 엎어놓고, 위에서 내려오는 말은 신의 말씀으로 믿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마음이 됐다 이거죠. 근데 우리는 가려가면서 합니다. 일단, 계산을 한번 해 보고, 나한테 약간 득이 되겠다, 뭐 좀 좋겠다 싶으면 하고, 나한테 불리하고 싫으면 (no)’입니다.

옛날하고 그런 부분들이 많이 틀려진 부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굉장히 발전하고, 어버이신님의 수호도 많았던 게 아닌가? 근데, 지금 우리들은 참 좋은 환경에 살고 있지만, 그 마음이 안 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인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상급보다 자기 산하 신자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상급은 약간 뒷전이고, 내 산하 신자가 중요시하며 우선합니다.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상급한테도 부족 불만하게 되고, 뭔가 자기 자리가 좋아야 되는데 이게 안 되면 상급이고 뭐고 별 필요 없는 세태로 흘러가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스스로 쓰고 있는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급에서 무슨 말이 내려왔을 때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든지 내게 불리하다든지 그런 건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겠는데, 내 산하한테 뭔가 불편을 끼친다든지 그런 게 있으면 저도 좀 안 좋은 마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이길의 말씀에, 뿌리에 거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비추어 보면 역시 내 산하, 내 자식 보다는 내 부모, 내 상급을 먼저 받들어 세우는 것이, 지금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 계산을 해 보면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들이 초대 선배선생님들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많이 틀린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교60주년이라고 한다면 반 백 년이 넘어서는 시순입니다. 고성교회는 뿌리를 튼튼히 내려서 교세도 단단하고, 많은 용재들이 계시고 건물도 아주 훌륭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 갖춰져 있는 상태에 맞게끔 여러분들도 마음성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순이 아닌가? 정말로 고성초대회장님께서 즐거워하시는 부분이 무엇일까? 정말 훌륭한 건물, 이런 것 보다는 초대의 본을 따라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을 보고 고성초대회장님께서 더 즐거워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여러분들도 정말 이 분위기에 맞고 이 시순에 맞는 마음성인이 되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어버이신님의 용재에게 책임이

이번 9월에는 태풍이 연이어 3개가 왔습니다. 저녁에 천둥 번개가 막 치고 우르릉 쾅쾅 하니까 저는 겁이 나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라도 번개가 번쩍번쩍하고 우르릉 쾅쾅하면 겁이 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게 왜 그러냐 하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남모르게 거짓말을 해도 했을 것이고, 뭔가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들이 있다면 겁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 지진, 태풍, 해일, 뇌성벽력, 산사태 이런 재난을 사회 사람들은 천재지변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길에선 친필에 어버이신의 노여움이다.’고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은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지 벌을 주는 신님이 아니거든요. 우리들의 부모라 했어요. ‘부모가 자녀 귀여워하는 마음을 보라고 했듯이 역시 어버이신님은 자녀들을 귀엽게 생각하시는 아주 자비로우신 부모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번씩 그렇게 뇌성벽력, 태풍으로 이 노여움이 나타내실 때는 얼마나 노여우시면 그런 노여움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엔 아침에 신문을 보든지 TV뉴스를 보든지 즐거운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쩌다 한 번씩 간혹 나옵니다. 대부분이 아주 흉측한 사건들이 신문을 덮고 있어요. 아침에 그런 신문을 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침울해질 정도로 어휴, 세상이 이리 무서워서 우찌 살겠노.’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듭니다.

근데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천재지변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천재지변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한 번씩 합니다. 어버이신님이 저렇게 노여워하셔서 무슨 쓰나미니 지진이니 태풍이니 해서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고 출직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게 되는 것은 천리교, 이길의 용재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왜냐면 우리가 우리 할 도리를 빨리빨리 잘 못하니까 어버이신님께서 더 저렇게 노여워하시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서로 돕고 즐겁고 명랑하게 사는 것을 보고 같이 즐기시려고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버이신님이 그런 천재지변이라고 말하는 무서운 분노를 일으키시는데, 왜 그렇게 노여워하실까 하고 생각을 하면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서로 돕고 즐겁게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서로 돕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버이신님이 노여워하신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하늘도 없고 땅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캄캄한 진흙바다일 때 인간과 세계를 창조했을 때부터 어버이신님이 천리교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옛 성현을 통해서 아홉 가지는 가르쳐 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옛 성현에는 예수도 석가도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석가모니는 사람이잖아요. 신이 아니잖아요. 워낙 마음이 성인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거지. 사람이거든요. 신이 아니거든요.

아홉 가지를 옛 성현을 통해서 다 가르쳐 놨다는 말 그대로 다른 종교에서 좋은 말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라. 서로 돕고 살아라. 이웃을 도와라. 사랑을 베풀어라.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옛 성현을 통해서 너무나 많이 배워 온 거예요. 그런데도 서로 돕고 즐겁게 사는 생활이 되지 않으니까 어버이신님이 마지막 한 가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나까야마 미키님을 현신으로 삼아서 이 세상에 직접 하강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한 가지가 뭐냐?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왜 인간과 세계를 창조했으며, 어디서 창조했으며, 사람은 어떻게 마음을 쓰고 살아야 된다는 걸 가르쳐 주셨어요. 명확한 근본을 일러주러 나오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제일 선두에 서서 조물주를 받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예요. 근데 어버이신님이 입이 없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 천리교 용재를 만들었는데 그러면 천리교는 교회장만 명칭의 리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신자분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다 리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신자분들이라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수훈의 리를 다 받았어요. 수훈의 리를 받았다는 거는 무슨 말이냐? 교조님의 도구로 쓰여지는 용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조님이 존명으로 계시지만 모습이 안 보이니까 옛날처럼 직접적으로 활동하실 수 없잖아요. 교조님께서 직접적으로 수훈을 내린다든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거예요.

지금 이 세상은 매스컴을 통해서 보면 너무나 잔인한 사건이 많습니다.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이 있으면 AB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서로 살인을 한다든지 죽임을 당한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어요. 우리가 알기로는 그 사람들은 서로 그런 인연이 있어서 그렇거든요. 요즘 보니까 묻지 마 살인이라고 길거리 가다가 기분 나쁘다고 자기하고 아무런 원한 없는 사람한테 칼부림 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하필 그 많은 사람 있는 가운데도 유독 당하는 사람은 당하고 안 당하는 사람은 안 당한다 이거죠. 그런 인연이 있어서 그런 일 당하는데 그 인연을 모르고 두 사람 다 출직을 했다가 다음에 돌아오면 뻔한 거 아니예요? 또 혼백이 복수를 할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인연이 끊어지질 않는 거예요.

어버이신님이 이래가지고는 즐거운 삶이 될 수가 없고 서로 돕는 세상이 안 되니까 이걸 하기 위해서 천리교를 만들어 놨는데, 신님의 의도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용재들이 제일 선두에 서서 그걸 제일 빨리 알리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잠자고 있으니까, 그게 잘 안되니까 어버이신님이 더 노여워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마다 우리들 책임이 반 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좀 더 분발해서 더 열심히, 열심히 신님의 도구로 쓰여져야만 빨리빨리 좋은 세상이 올 텐데 그리 하지 않고 교회장이나 포교소장이나 수훈의 리를 받은 용재나 전부 마음이 잠자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는 어버이신님의 눈으로 볼 때는 노여워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그런 사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천재지변이 그냥 천재지변이 아니고 진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순간에 번개하고 벼락이 치면 더 겁이 나는 거예요. 정말입니다. 뭐 잘못했는 거 아닌가 싶고, 내가 할 도리를 다 못해가지고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겁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인연이란 마음 써온 길

인간은 정말 미련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정말 멍청해하는 친필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무 사람의 마음이 미련하고 멍청하니까 어버이신님이 너무 갑갑하고 답답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연이라 것은 마음 쓴 길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인연이 가만히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툭툭 떨어지는 게 아니고 신님의 말씀 그대로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써온 길이라 했습니다. 그럼 그 마음의 길이 뭐냐? 윗대부터, 전생부터 내가 써온 마음씨가 내 인연이 됐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좋은 인연만 있는 사람이 100% 있겠습니까? , 100% 나쁜 인연만 있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인연이 좀 많은 사람이 있고, 좋은 인연이 좀 많은 사람도 있고, 그 차이 뿐이지 100%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해 봅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대통령이 됐겠습니까? 분명히 대통령이 될 만한 인연이 있어야 대통령이 되는 거 아닙니까? 인연은 마음 써온 길이라 했으니까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그 집안이 윗대부터 분명히 굉장히 공을 많이 세운 사람들이거나, 조상대부터 분명히 나라를 도우려고 굉장히 노력한 혼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재벌은 그냥 재벌이 됩니까? 재벌은 하늘이 내린 부자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재수가 좀 좋다고 재벌이 되겠어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으로서 정말 사회에 기부를 많이 했다든지, 좋은 일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 놓은 사람이 재벌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대통령이나 재벌이라 해서 100% 좋은 인연만 가지고 있습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재벌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요. 대통령도 자살할 수 있잖아요. 그럼 그건 또 왜 그런가? 대통령이 될 만한 큰 인연이 있어서 대통령이 되는데, 왜 자살하느냐? 그건 불효인연이 중해서 그래요. 나라에 큰 공은 세웠는데 대신 부모에 대한 불효, 신에 대한, 아니면 자연에 대한 불효, 뭔가 천리와 자연에 안 맞는 마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연이라고 하는 거는 좋은 인연도 붙어있고 나쁜 인연도 붙어있다 이겁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게 100% 좋고 나쁜 게 어디 있어요. 근데 다만 덕이 있어 보이고 잘 풀리는 사람은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을 누르고 있는 겁니다. 나쁜 액운은 요만 하고 큰 덕이 많아서 누르고 있고, 나쁜 일이 자꾸 생기고 자꾸 안 되는 사람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누르고 있는 겁니다. 그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잘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답은 나와 있는 거 아닙니까? 잘되고 싶으면, 인연은 마음의 길이라 했으니까 나쁜 인연을 덮을 만한 좋은 마음을 자꾸 써야 된다. 그럼 좋은 마음이 어떤 건가? 궁극적으로 들어가면,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쓰는 게 덕이 되는 겁니다.

 

거짓말도 가려 하면

살아오면서 우리가 거짓말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어요. 사소한 거짓말부터 큰 거짓말까지 하거든요. 근데 단연코 생각해 보건데, 저는 지금까지 태어나가지고 남을 해코지하는 음해하는 거짓말은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이 사람이 이런 말 안 했는데 서로 싸움시키려고, 이간질시키려고, 저 사람이 당신 욕하더라, 안 한 걸 했단다, 이런 음해하는 거짓말은 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근데 사소한 거짓말은 해요. 가령, 누가 밥 먹었냐 하면 안 먹어도 먹었다 할 수 있고, 기분이 안 좋아도 기분이 좋다 할 수 있고 그런 사소한 거짓말은 합니다. 교조님께서 팔계명 외에 거짓과 아첨 이것 싫어하셨는데, 거짓과 아첨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하겠어요? 여기서 거짓이란 남을 해코지하고 음해하는 그런 거짓말을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령, 내가 상급인데 내 산하 둘이서 싸우고 있다. A하고 B 둘이서 사이가 안 좋다 그래서 저한테 와서 AB 욕을 한다 말이예요. 그럼 B가 와가지고 “A가 내 욕을 하지요?” 하면 내가 욕을 들었다고 말을 해줘야겠습니까? 그건 아니라 이 말입니다. 그건 선의의 거짓말입니다. “아이고, 오데~ 그런 말 안 하든데, 절대 그 사람은 너 욕 안 한다.” 서로 붙여줘야 됩니다. 설마 그런 거짓말을 교조님이 하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모든 게 사리분별이 돼야 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남을 해코지하는 거짓말, 아닌 것을 만들어 내서 음해하는 거짓말, 그런 거짓말은 어버이신님이 하지마라는 그런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행 보는 마음에 따라

고성 초대회장님께서 근행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고성 초대회장님 시절 분위기는 모든 면에서 지금하고는 틀렸을 거예요. 얼마나 아픈 환자 신상자들이 많이 있었겠습니까? 결핵에 걸려서 피를 토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미쳐 날뛰는 정신병자도 있을 것이고, 별별 병자가 다 우글우글하고 있는데 근행을 볼 때 어떤 마음으로 보셨겠습니까? 아마 피눈물 나는 마음으로 근행을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어떻게든 근행을 봐야 된다. 근행을 봐서 빌어줘야 되니까. 어떻게든 신님에게 빌어서 한 사람이라도 도와줘야 되니까. 그런 애 끓는 마음으로 근행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버이신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많은 구제가 일어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디 그렇습니까? 근행도 같은 근행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근행만 본다고 무조건 초대회장님 따라하는 게 아니라 이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근행 보면서 마음은 콩밭에 있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드라마 보다가 근행 보러 뛰어 올라왔는데 그 사람은 우찌 됐는고? 그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축구할 때 축구보다 뛰어 올라오면 , 우찌 됐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초대 때하고 틀리단 말입니다.

중요한 거는 이 길은 형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길입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진실로 상대를 위해서 빌어줄 수 있는 마음, 근행을 보더라도 정말로 어버이신님에 감사를 느끼고 상대를 빌어주는 마음으로 근행을 보는 거 그 마음에 따라서 같은 근행을 보는 데도 어떤 사람은 정말로 수호가 나는데 어떤 사람은 백날 근행을 봐도 수호가 안 난다 이 말입니다. 박자만 치고 있고 정신은 딴 데 가 있는데 무슨 수호가 나겠습니까? 그래서 이 길은 마음으로 하는 길이니까 우리 용재들이 선두에 서서 어버이신님이 좀 더 노여워하지 않게 용재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신님의 노여움을 좀 안 사도록 우리 용재가 선두에 서서 마음을 빨리 빨리 맑히고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돼서 움직일 때 신님의 노여움도 조금씩 가라앉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고성교회 산하 여러분들께서는 포교60주년도 다가오고 있고 다들 아시다시피 대교회 120주년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큰 행사가 다가오는 큰 시순에는 무리에 리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무리를 해야 될 때는 해야 됩니다. 내가 큰 액운을 하나 떼고 뭔가 크게 신님한테 바라는 게 있고 할 때 어찌 무리를 안 하고 수호를 받겠습니까? 사람은 편리하게 말을 갖다 붙이거든요. 뭔가 답답한 게 없을 때는 무리에는 리가 없다는데 뭐하려고 무리를 해?’라고 하거든요. 무리할 때는 해야 됩니다. 그래야 어버이신님한테 큰 수호를 받지 언제까지 가만히 자기 혼자 꽁꽁 계산하고 있으면 절대 신님한테 수호 못 받습니다. 자기 액운에 맞게 능력이 요만하니까 요만큼 한다 이게 아니고 내 인연이 어떤 인연인가를 잘 생각을 해서 무리해야 할 때는 무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성인된 모습으로 거듭나 주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는 요정도로 마치겠습니다. (4)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