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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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새끼 주주리

 

이희선(고성교회)

 

오늘날은 흔히들 무한경쟁시대라고 합니다. 경쟁이라는 말이 서로 앞서거나 이기려고 다투는 것을 의미하듯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이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경쟁이라는 말이 꼭 나쁜 의미를 지니는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치열한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옛날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옛날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 선비는 시험만 쳤다하면 계속해서 낙방을 하였습니다. 또 다시 과거시험을 치르는 날이 되어 시험장에 갔는데, 그 날은 하늘이 도왔는지 그 선비가 아는 문제가 시험에 나왔습니다. 시험장 안에는 병풍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병풍 뒤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맞추는 것이 시험문제였습니다. 그 선비는 병풍 뒤에 있는 물건이 학의 새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말은 나오지 않았고 우물쭈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험관 앞에서 주주리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비는 자신도 모르는 말을 했으니 당연히 떨어졌겠죠?

선비는 낙심하여 시험장을 나서는데, 자신의 시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행색이 초라한 선비가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갑자기 가여운 생각이 들어 선비는 답을 가르쳐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병풍 뒤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물을 것이오. 그러면 학의 새끼라 대답하시면 되오.” 라고 말하자, 행색이 초라한 선비가 당신은 답을 아는 것을 보니 합격하셨겠구려하고 묻자, “답을 알긴 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말이 나오지 않아 우물쭈물하다 나도 모르게 주주리라 말하고 말았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행색이 초라한 선비의 차례가 되어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방금 전 그 선비가 말했던 대로 시험문제는 병풍 뒤의 물건이 무엇인지 맞추는 문제였습니다. 그 선비는 자신있게 그 물건은 학의 새끼 주주리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험관이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그래도 그 선비가 똑같은 대답을 하자, “학의 새끼를 주주리라 하느냐?”하고 묻게 됩니다. 그러자 그 선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 저희 고을에서는 학의 새끼를 주주리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뒤의 결과는 다들 예상하시겠죠? 그 말을 들은 시험관은 앞서 나간 선비를 다시 불러 합격으로 처리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 모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시험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비는 자신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가르쳐주었고, 그 결과로 자신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둘 다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덕()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덕이라는 그릇의 크기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접시처럼 깊이 없이 넓기만 넓은 그릇을 지닌 사람도 있고, 반대로 너비는 좁지만 깊이만 깊은 그릇을 지닌 사람도 있을 것이며, 너비뿐 아니라 깊이까지도 깊은 그릇을 지닌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빨리, 그리고 많이 채울 수 있는 깊고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일수록 덕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깊고 넓은 그릇을 지녔다 하더라도, 어버이신님의 혜택을 받기만 받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 그 혜택은 넘쳐흘러 결국에는 버려지게 됩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주시는 그 혜택이 필요 없는 걸로 여기셔서 더 이상 주시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주위의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면 어버이신님께서는 하늘의 혜택을 또다시 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면 내가 모자라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을 보고 어버이신님께서는 기특하게 여기셔서 더 많은 혜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대가없이 베풀 때 그에 대한 보상은 어버이신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남을 구제하면 제 몸 도움 받는다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을 빌려주셨고, 지금도 무한한 수호를 베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어버이신님께서 살려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 잊은 채 자신의 욕심에만 사로잡혀 잘못된 마음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버이신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무한한 수호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의 몸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친필말씀에서도,

잘 깨닫도록 가슴 속 깊이 생각하라.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 받는다.

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구제 받기 위해 남을 돕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이라면 남을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