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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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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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야기원수련회 감화

 

 

참된 신앙인이 되자

 

이병석(고성교회 2대 교회장)

 

반갑습니다. 수고많으십니다. 밖에서 여러분이 신악가 부르는 소릴 들으니까 맘이 너무 즐거워지는 거 있죠. 지난 번 33야 때도 느꼈지만 ! 저것이 참으로 신앙하는 모습이다. 신앙하는 분위기는 저렇게 되어야 된다.싶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이 자리에 앉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편안하게 앉으세요.

제가 지금까지 신앙해 오면서 가장 마음 깊이 느꼈던 문제를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계적 종교를 보면 어떤 종교이든지 반드시 자기 수행이라는 걸 으뜸으로 칩니다. 우린 역사가 짧으니까 세계적 종교를 보면 완벽하게 자기수행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가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종교에서는 세속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전도 포교를 하는 교역자와, 또 자기 수행에 정진하는 사제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곳 고성지역 상리에 가면 카르멜 여자 수도원이 있습니다. 거기는 암굴처럼 되어 있습니다. 설립목적이 카톨릭 초창기 때 억압받던 시대를 되살리기 위해 설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긴 하루 종일 묵언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로 보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이런 종교성이 깊은 33야 기원수련 같은 행사를 많이 해야 하고, 더욱 더 확대되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구심점에 두어야 됩니다. 중심역할을 해야 되죠. 이길의 초창기에는 질서도 잡히지 않고 모든 것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어수선하게 이루어지지만 이제는 우리 교회 역사도 50년이 넘었으니 교직자 교육이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친필에 보면 교조님께서 용재에 대해 말씀하실 때 좋은 말씀만이 아니라

차츰차츰 많이 모아 둔 이 나무들 용재가 될 것은 없는 거야 3-49

어떤 나무도 많이 모으기는 했으나 비뚤어지고 구부러져 이것 마땅찮다 3-50

는 말씀이 잇죠. 주로 용재들이 근행을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교조님 은신 당시에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 근행에 나오고 나머지는 빠져라고 했죠. 근행을 통해서 구심점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6좌 근행이라고 신악가 12장을 올리는 이것은 아주 중요한 수행입니다. 지난 번에도 보니까 묵언 수행을 하시던데, 카톨릭에서는 묵언 기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묵언 수행승이란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세속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상대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니까 칠판을 걸머지고 다니며 거기다 문자로 기록하여 소통합니다. 근행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루 여섯 번 근행을 제대로 올리게 되면 거의 잠을 못잡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행을 통해 더욱 신심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직접 몸과 마음으로 33야 동안 해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우리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교조님의 역사에 대해 고난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같은 사람은 고생이지만 교조님이 겪으신 시련, 어려움, 간난과 고통을 합하면 가장 위대한 근행에서부터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전부다 모두 하나의 고난의 역사가 됩니다. 우리는 고생의 길이지만. 이것은 교조님의 길은 고난입니다. 옛날에 교조님의 고생의 길을 본받아서라고 했는데 신학적, 교의학적으로도 고난입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다 가셨습니다.

천리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기술된 바가 없습니다. 요즘 증산도같은 데를 보아도 거의 없어요. 기독교도 단 몇 줄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천리교는 인간창조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현대 과학이 밝혀낸 인간 생명 발생의 단계와 일치합니다. 교조님은 특이한 공부를 하시지도 않았고 그 시대에 주변 모든 환경도 그런 진화론이라든지 하는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일 사정이 아니셨습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것이 교조님이 말씀하신 뒤 26년이나 후에 일이니 신문물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 당연히 아니고, 일본자체에서도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교조님께서 천계를 받았다 것입니다. 인간의 논리나 상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적 영감, 창조주가 주신 우주적 영감에 의해서 이런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길의 인간창조과정 속에 우리 교리, 교의의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도와 행복하게 사는 목적뿐 아니라, 신과 인간이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 부부의 리라든지, 33야란 말도 인간창조에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인 인간 창조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교조님의 신적 인격을 완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근대를 빛낸 다섯 사람에 교조님이 들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1860-70년대를 근대라고 부르죠. 그 시대는 그네들의 현대적 문화가 싹틀 무렵인데 나머지 4명은 남자입니다. 유일하게 교조님이 여성으로 여기 수록되어 있습니다. 교조님이 근대를 만든 사람으로 핵심적 역할을 한 분으로 왜 손꼽히느냐 하면 인간은 모두가 형제다하신 것 때문입니다. 사실 이길 초기의 신자는 거의 다 하류계층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 무사사회였기 때문에 소위 무사계급 사무라이 외는 힘이 없었어요. 일반서민이 길을 지나가다가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고 무사들이 목을 칠 정도였습니다. 일본 메이지 유신 전인 1820-30년대에는 무사가 서민을 예사로, 맘대로 처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보다도 더 상상할 수 없는 인간차별, 그 위에다 모든 것을 수탈하고, 끊임없이 억압하는 비인간적 행위가 쉽게 자행되던 시대에 인간은 모두가 형제다,고 했습니다. 그 말 안에는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이 최고로 숭배하는 천황도 일반인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이야기이에요. 교조님이 18번의 옥고와 그 많은 간난고초와 고난을 겪으신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얼토당토없는 이야기이고, 아무리 신일본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죠. 여러분도 상상해 보세요. 평범한 가정 주부가 [세계와 모든 지구상 모든 인간들이 모두 동등한 권리와 형제라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잘 키우고 하는 것은 할 수 있겠지만. 엊그제 퀴즈에 나왔는데 5만원권에 나오는 초상화는 누구냐고 하니까 모르더라구요. 저는 압니다. 신사임당 아닙니까?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여성의 위치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남자지만 남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여성입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키운 아이들은 별로 이상없습니다. 근데 엄마없이 자란 아이들은 정말 볼품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인간이 갖춰야 할 인격적인 면에서 큰 상처를 입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여성의 위대함을 다시 고맙게 생각합니다(박수). 여성은 진짜 위대합니다. 여성없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는 모두가 형제라는 이 말씀을 통해 세계를 진짜 평탄한 땅으로, 밝은 땅으로 밟아 고르시는 일을 하신 거죠. 친필에 신, 월일, 어버이이라는 말나오죠. 그 중에서 월일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그것이 상징적으로는 해와 달이지만 이미지적으로는 광명 아니겠습니까? 우주에서 오는 큰 빛! 우주에서 오는 제일 밝은 빛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형제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셨냐? 그것은코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코우는 일본어인데 강, 강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지 신앙을 하였더라면 교회를 이루어야 할 것이 아닌가 했는데 번역이 교회로 되어 있지만 교회가 아니라 강, 우리말로 하면 두레라고 할 겁니다. 두레는 순수 우리말이라 한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두레는 옛날 조선시대의 우리 농촌 서민들이 농사에서 장례식까지 온 마을이 한꺼번에 모여서 하던 공동체 작업입니다. 두레하는 마음- 모든 인간이 차별없이 모두 모여 서로 기뻐하고 서로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서로 도와가는 마음을 펼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조님곁에는 항상 가난하고 천대받고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최하층민들이 모여오기 시작하죠. 이런 하나의 역사를 통해 교조님의 길이 닦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본근행을 제대로 보시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근행을 보는 걸 들으면서 은신하셨죠. 저는 과거에 -그때는 신앙심이 지금보다 더 깊었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교조님!”하면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상태가 일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교조님을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것은 정성도 아니죠. 진짜 그분이 천계를 받은 분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목이 메이심). 저는 그런 마음을 되찾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젠 쇠락해서 좀 어렵겠지요. 이 가르침을 통해 신앙의 구심점을 찾고 나름대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올리시는 6좌 근행, 33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6좌 근행의 가장 중심되는 생각은 타인에 대한 행운을 서원을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3일간 기원을 해 오셨으니까 정말 한가지소원은 다 이루어 가셔야 합니다. 개인서원이 아주 중요합니다. 신앙심(信仰心)(平常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신앙한다고 사람이 잠을 안 잘 수 있습니까? 안 먹을 수 있습니까? 아이를 안 낳을 수 있습니까? 세속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뭐가 하나 다릅니까? 그것은 그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그가 향하고자 하는 그 곳, 그가 머물고 싶어하는 곳이 다릅니다. 우리 같으면 교조님의 모본,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향해 끊임없이 가는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타인에 행운에 대한 기원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한번 돌아 보십시오, 교조전에도 나옵니다만 대물차물의 리가 굉장히 중요하죠.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빌려 주셨으니까 대물이고 우리들이 빌려 받고 있으니 차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을 다 빌려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이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 , 바람이 비롯한 모든 것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주 짧은 시간 잠시 머물다 갑니다. 우주나 세계 역사에 비하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찰라적 존재이죠. 이런 찰라적 존재가 하나에서 열까지 안 빌려 쓰는 게 어디 있습니까? 아침근행에 나가보면 본교 신자분들이 - 여기 본교 신자분들도 이제 할머니가 되었죠. 그땐 젊은 부인이었는데- 정상적으로 걷는 사람은 몇이 없습니다. 아침근행에 오시면 제가 꼭 인사를 드리거든요. 왜냐하면 그 모습이 너무 새기고 싶고, 저도 곧 그리 되겠습니다만 그것이 신앙의 모습에서 너무너무 깊이 살아있는 거예요. 그것 생각하고 나면 근행을 올리면 어버이신님! 저 분들 좀 안 아프게 하시고 대신 저 좀 아프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어쨋든 타인에 대한 서원을 꼭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적 원리죠. 만약 타인을 생각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그건 자기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것을 꼭 부탁드립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우주적 생명의 본질에 대해 그것을 빌고 닦고 하는 마음이죠. 이것을 다른 종교 용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서원이라고 하는데 맹서를 하고 기원하는 것-서원이죠. 아마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최고의 평화나 기쁨을 찾으려면 타인의 생명을 통해, 타인의 삶을 통해, 타인의 행운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불변의 사실입니다. 이게 꼭 들어가야 되죠!

세 번째는 이것은 큰 자기 수행입니다. 얼마나 큰 수행입니까? 잠을 제대로 잡니까? 먹는 걸 제대로 먹습니까? 이 안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라오죠. 이건 일종의 자기와 싸움입니다. 이것은 동양사상에 예부터 전해오는 훌륭한 사상에 범아일체사상(凡兒一體思想)이 있습니다. 교조님의 말씀 가운데 그런 사상에 깊이 담겨있습니다. 크게 보이는 우주와 조그만 순간적으로 살아가는 나는 하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로 보이지 않은 경우는 뭐냐면 예를 들어 항아리에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바깥에 항아리를 내놓았을 때 그 항아리 위에 우주적 존재인 큰 하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가 나라고 하면 그 항아리의 뚜껑을 닫으면 남이 됩니다. 그러나 그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버리면 그 우주적 존재인 하늘과 하나가 됩니다. 결국 인간은 죽으면 우주적 존재로 사라집니다. 다시 태어오겠지만 인간은 순간을 살지만 우주적 존재입니다. 세계 생명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커지면 얼마나 커지는 줄 아십니까? 그렇게 살고 싶고 살기 위해 매달리는 목숨도 나라를 위해, 남을 위해 쉽게 내 놓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성자에 대해서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어요. 카톨릭은 천 몇 백명의 성자가 있습니다. 성자는 추기경, 교황이 죽어도 성자가 안 됩니다. 근데 가장 어린 성자가 13살입니다. 그 나이는 국민하교 6학년인데 어떻게 성자가 되겠어요? 그런데 그 성자들이 순교할 때 모습이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끝까지 신을 찬양했다. 끝까지 기뻐했다. 옆에 사람에게 끝없이 웃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가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에는 나이가 필요없습니다. 괜히 나이 들면 턱도 아닌 권위의식이 자칫 잘못하면 생길 수 있죠. 그건 큰 오만이죠, 사람에게가 오만이 아니라 신에게 오만입니다. 성자가 된 그런 분들은 한갓 보잘것없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다 훌륭하게 이겨내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수련회를 통해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꼭 한번 이겨보세요. 첫 번에는 고통스러워도 내면의 세계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명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곳곳에 많은 수도원과 수도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겠습니다만 꼭 이루어 집니다.

제게 초대회장님이신 아버지께서 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너는 단명이야.” 하셨어요. 저도 그리 믿었지요. 한데 제 육체를 생명과 바꾼 일이 두 번 있었거든요(두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 그래도 왠지 절대로 병원은 안 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 보면 배가 왼쪽만 이만큼 불러있었어요. 남들이 보면 큰일 날 일이었죠. 병원에 가지 않고 저는 아버님께 늘 기원하고 끝까지 신님께 기원했어요. 완쾌까지는 한 두 달 걸렸어요. 근데 지금은 말짱하거든요. 그렇게 수호받은 게 개인적으로 너무 고맙고 고맙습니다. 어버이신님, 교조님께 개인적으로 받은 수호에 대한 감사함을 다 표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사람이 너무 오래 살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너무 오래 살아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서원하세요. 근행 올릴 때마다 서원을 하세요. 그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일순에 사라지도록 서원하시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말씀이었지만 여러분의 신앙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밤에 근행 올리는 신악가 소리-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고 일정한 속도로 정성스럽게 올리는 소릴 듣고 있으면 진짜 마음이 평온해지거든요. ‘저게 진짜 신앙하는 생활이다. 진짜 저런 근행모습, 수행이 빨리 우리 속에 깊이깊이 들어와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아마도 차츰차츰 될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도와서 될 수 있도록 애써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수련을 통해 점차 마음성인이 되셨으면 좋겠고, 수련회에 참석해 주셔서 너무 고맙고, 어려움을 참고 수행하시는 것이 너무 대단하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습니다. 한 가지 자기 소원을 이루어져 가시길 정말 간절히 빌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