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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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야기원수련회 소감문 2

 

만족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송인수(만족, 삼성교회)

 

새벽에 눈을 떠니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준비를 합니다. 34일이지만 제법 긴 시간이니까 남은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준비해 놓고, 밥통에는 넘칠 만큼 밥을 합니다.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적어 붙여둔 쪽지도 잘 붙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봅니다. 아침밥 먹으면서 당부당부합니다. 국은 매일 끓이고 반찬은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고, 과일은 김치냉장고 파란뚜껑 통에 있고. 계속 계속 당부합니다. 신랑은 고개만 끄덕끄덕!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하고 집을 나섭니다. 그런데 신랑이 비가 오니까 고성교회까지 데려다 주겠답니다. 한편으로는 좋았지만 혼자 되돌아갈 신랑을 생각하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나 혼자 갈 수 있다고 우겨봅니다. 신랑이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갑니다. 덕분에 고성교회에 1등으로 도착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우리 두 사람을 맞아줍니다.

수련회 시작 시간, 정수기 옆 탁자 위에 커피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2단계는 커피나 차는 자유롭게 마실 수 있지만 세끼 식사 중 한끼만 먹는 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시중·지수님이 어련하시겠나!’ 지난 1단계 특별수련회때는 주는 것만 먹게 하고 그 주는 것 중에 하루에 한번 정해진 시간에 감칠맛 나게 커피는 주었습니다. 그게 기억나서 이제 며칠동안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못 마실 거야싶어서 오는 동안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배고프면 큰일이니까 점심밥을 많이 먹어야지하고 생각하며 마음으로 욕심을 부렸습니다.

첫 번째 기원근행을 올리고 나누기 시간에 이번 수련회에 참가하신 분들이 대단한 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늘 웃으면서이것은 이래서 감사, 저것은 저래서 감사하며 그저 감사 감사하는 말들이 어쩌면 신기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잠에서 금방 깨어 정신없는 중에도 기원근행이 시작되면 어디에서 그런 기운들이 나오는 지 신명나게 용솟음치며 근행을 올립니다. 정말 감사할까? 그런데 그 분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정말 감사가 철철 흘러 넘쳐 보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감사도 사실 인색한데 저렇게 감사가 넘칠까? 개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입으로라도 자꾸 감사를 찾다보면 몸으로 하게 되고, 몸으로 하다보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감사가 되어 온다고 감사에도 길이 나야 되는 가 봅니다.

감사의 기본이 되는 살리워지고 있는 것에도 순간순간 잊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에 감사했고 바라던 대로 잘 되어오는 것에만 감사하다고 생각해 오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심지어 청소를 하면서도 감사를 찾고, 그 공간을 감사와 축원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게 만들라니 그동안 감사를 찾는 일에서도 얼마나 내 중심으로 내 편할 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티끌의 중심은 제멋대로 하는 마음, 내가 내가하는 마음이라 배웠습니다. 감사와 은혜보답이 이 모든 티끌을 털고 닦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물론 어렵겠지만 정답을 알았으니 행하기도 몰랐을 때보다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에 이어 세 번째 근행까지 용솟음치며 새로운 마음으로 근행을 올렸습니다.

둘째 날 네 번째 근행부터는 왠지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나간 듯 축 처집니다. 지수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내가 왜 이러지?’ 33야 기원수련회에 오라고 잡아당긴 사람도, 가라고 등 떠민 사람도 없건만 왜 이렇게 어린 아이 마음이 되어 누군가 내 등 두드리며, 너도 여기 모인 용재님들처럼 많은 수호와 감사를 가슴에 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격려의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에 놀라며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교리없는 실천과 실천없는 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또 누군가 천리교를 물어올 때 알고는 있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없어 나 스스로 공부가 부족했었던 것을 알았기에 무엇에 이끌리듯 이곳을 찾지 않았던가. 오늘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과 감사를 찾으리라 생각하면서 다음 근행부터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근행을 올리며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강의와 감화도 열심히 듣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고쳐줘야 할 손춤 동작은 너무 많아 안타까워하시던 젊은 손춤 선생님은 곧바로 이어진 기원근행 때 맨 앞에 서서 함께 손춤을 추면서 동작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 나는 맨 앞줄이어서 선생님 동작과 시중님의 손춤 동작을 보고 따라 하며 근행을 올리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즐거웠습니다.

훌륭한 강사선생님들을 모시고 십전수호의 리를 배우던 시간과 여덟가지 티끌을 공부하던 시간도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갈 수 있을까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 대충은 알고 있지만 깊이 새롭게 배우게 되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8번째 근행은 교회의 정해진 새벽근행시간에 쫒겨 중단했다 뒤늦게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다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빠르게 올린 근행에 속도가 너무 빨라 손춤을 따라 할 수 없어 멍했지만 앞줄에선 용재님들의 손춤 모습에 너무나 웃음을 참지 못해 근행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던 근행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누기와 감사찾기 시간에는 감사연발입니다. 중단되었던 근행에서도 신님의 뜻을 깨닫고 인연을 자각하여 감사하며, 또 빨랐지만 시간을 딱 맞출 수 있어서 신명나고 즐거웠다는 말씀들!!

열 번째 기원근행 때 후반에 생전 처음으로 박자목을 쳤습니다. 신님을 모시고 있지 않아 박자목을 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수련회는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박자목을 치며 근행을 올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데 나도 쳐 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의 격려도 있어서 해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틀려 여러분들의 기원근행이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잠들기 전에 신님께 제발 틀리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 올렸더니 감사하게도 들어주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날, 16번째 기원근행에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목에서도 배에서도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신악가를 불러보며 애써 보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은 답답했지만 자신이 겪는 모든 일에서 신님의 뜻을 찾으라는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신님의 의도를 찾으려고 다음 근행은 더 정성을 들여 올렸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목이 트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근행의 좌근이 끝나고 팔수가 시작되면서 가슴이 뭉클해져 옵니다. ‘그래. 되어지는 대로 감사하게 근행을 올리면 될 것을 이것도 욕심이었구나. 작은 것에 만족하게 되면 감사는 저절로 될 것 같아 별명도 만족이라고 지었건만 역시 욕심이 많았구나.’하는 걸 깨닫고 반성참회하면서 신님전을 바라봅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날까요? 그렇게 6장이 넘어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진주님의 목소리도 옆 사람의 목소리도 즐겁게 들립니다. 정말 감사와 감격의 마지막 근행이었습니다.

순간 순간 묵언 원칙을 잊어버리고 많이 어겨서 지수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다시 함께 2단계를 하게 된 1단계 수련회 동기님들 정말 반가웠습니다.. 흙나르기 손춤 동작을 다시 보여주어 한바탕 웃음으로 활기를 넣어 준 등대님, 감동의 눈물 수훈으로 우리들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청아님, 언제나 밝은 미소와 깨달음이 빠른 미소천사님, 지난 번 1단계 수련회 때는 훌륭한 감화를 해 주셨던 오케이님이 이번에 참가자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닫는 근행을 올리고 모두 둥글게 서서 서로를 가슴 깊이 느끼기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묵언 해제 후 마지막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데 우연하게도 다시 비님이 오고 있었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오지 말라고 했다고 정말 신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바라고 있었나 봅니다. 설거지 히노끼싱을 함께 하다가 청아님께 뒷정리를 부탁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깁니다. 현관 앞에 감사하게도 신랑이 서 있습니다. 역시 나는 받는데 익숙한 가 봅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해 봅니다. 나 자신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인되어진 모습으로 비쳐진다면 누군가에게도 수련회에 참가할 것을 권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늘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감사하게 보낸 하루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나 소원하던 하루였을까요?

제게 허락해 주신 오늘 하루! 어버이신님, 교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