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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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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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대제 신전강화

 

고생하지 않고서 즐거운 삶의 실현은 없다

 

이 상 봉 (고성교회장)

 

 

추계대제에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많이 참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한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4)

교전6인도의 첫머리에

[사람은 모두 고생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구하며, 괴로움을 피하고 기쁨을 바란다. 그것은 어버이신님이 즐거운 삶을 시키시려는 의도에서 인간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천리교가 표방하는 즐거운 삶은 과연 괴로움이 없어지고 아무런 고생도 없는 즐겁기만 한 세계를 말하고 있는 걸까요. 교조모본을 따라 가면 즐거운 삶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만 보통 세상의 관념으로 보면 즐거움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교조님의 모본가운데 즐거운 삶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부분이 즐겁게 사는 모습이었을까요.

 

교조님 50년의 모본 가운데 처음 20년은 남을 구제한다며 재산 전부를 누구라 할 것 없이 남들에게 베풀고, 시가인 나까야마 집안을 가난의 밑바닥으로 이끌며, 정신이 이상하다, 귀신이 붙었다며 비웃음을 받는 모습에서는 조금도 즐거움이라는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또한 남은 30년은 순산허락을 계기로 쇼야시키 마을에는 영험이 있는 신님이 계신다는 소문이 퍼져서 구제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교조님께 모여 왔습니다. 그러자 시기질투를 하는 수험자나 승려들이 교조님께 난동을 부리고, 또한 경찰의 단속도 더해져서 12년에 걸쳐 약18번에 이르는 감옥의 고생을 고령이신 교조님께서 겪어야 했습니다. 보통 생각하는 즐거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재산을 전부 베풀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정도의 고생, 그리고 신기한 수호를 보고 이 길이 뻗어나가고, 많은 신자들이 생겨, 겨우 감사하게 되었구나 생각할 때, 이번에는 박해간섭, 탄압을 받는 고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조님의 행적을 보면 교조님의 주변에는 즐거운 생활과는 거리가 먼 고생의 연속인 삶이었습니다.

그때는 흔히 천리교를 신앙하면 가난해진다.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받고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는다며 천리교의 신앙이 싫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그만둔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생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길의 가르침에서 고생은 어떤 의미일까요?

[태초에 이 세상은 진흙바다였다. 월일 어버이신님은 이 혼돈한 모양을 무미하게 여기시어, 인간을 만들어서 그들이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함께 즐기려고 생각하셨다.]

이것은 천리교 교전 제3으뜸인 리에 처음 부분입니다만, 계속해서 나오는 내용에는 인간세계를 창조하시는 어버이신님의 고심과 그 연한은 실로 깊고, 긴 시간이 걸렸다고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들 인간도 즐거운 세계를 이 세상에 실현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고생이나 연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이야기에 나오는 구억 구만 구천 구백 구십구라는 자녀의 숫자나 연한, 또한 신체의 아홉 가지 도구의 가르침 등에 나오는 숫자 는 고생이라는 와 통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인생에는 반드시 고생이 필요하고 그것이 없으면 진정한 즐거운 삶은 맛볼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스포츠나, 예술, 학문 등 어떤 세계에서도 고생을 안 하고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난 여름에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 터전귀참으로 고적대가 참가했습니다. 고적대의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가 경연대회입니다. 726일부터 8410일 동안 고적대에 참가한 단체들이 서로 경연대회를 하여 시상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참가한 고적대 400-500군데 단체가 나와서 경연대회를 합니다. 인상 깊은 것은 고적대 한 뒤 오후에 시상식을 하는 데 그 때 아이들이 우는 거예요. 장려상, 동상, 은상, 금상, 제일 잘한 한 팀에게 대상인 그랑프리가 있습니다. 작년에는 시상식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울었어요. 최고상도 아니고 은상을 받았는데 막 우는 겁니다. 그 애들에게 물어보면 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동안 했던 고생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다른 고적대에도 역시 열심히 한 아이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연습을 별로 하지 않은 아이들은 울지도 않습니다. 고생과 노력을 한 만큼 감동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고생이라는 어감을 놓고 보면 즐거움 삶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생각되지만, 고생과 감동(즐거움)은 묶어진 한 세트로 별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을 해야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생을 해야 참된 즐거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가 고플 때 먹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맛있는 음식은 한 세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가 부르면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고생이라는 것은 즐거움 삶과 한 세트로서 둘이 하나가 되어야만 참다운 즐거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교조일화편 173 ‘모두 좋은 날이야에서

[교조님은 다까이 나오끼찌에게

불만스러운 날은 없다. 모두 좋은 날이다. 세상에서는 혼담이나 상량 등을 할 때 택일을 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용솟음치는 날이 제일 좋은 날이야.”하고 가르치셨다.

1일 시작한다

2일 풍족하다

3일 몸에 덕이 붙는다

4일 행복해진다

5일 리가 솟는다

6일 건강하게 된다

7일 아무것도 말할 것 없다

8일 팔방으로 뻗어 간다

9일 괴로움이 없어진다

10 충분하다

11 충분히 시작한다

12 충분히 풍족하다

13 충분히 몸에 덕이 붙는다

(이하 같음)

20 충분히 풍족 풍족하다

21 충분히 풍족하게 시작한다

(이하 같음)

30 충분히 풍족 풍족 풍족하다

30일은 한 달, 12개월은 1, 1년 중 하루도 나쁜 날은 없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이 중에 9일의 고생이 없어진다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글자 그대로 아무런 고생이 없는 세계라고 해석을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해석을 하면 좀 전에 말씀드린 고생과 즐거움이 한 세트가 된 모습이 즐거운 삶이라는 관점과는 맞지 않습니다. 고생이 없어진다는 것은 고생을 고생으로 생각되지 않는 마음, 그러한 마음자세,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3가지 고생

 

이길에서 가르치는 고생에는 크게 나누어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고생은 생활하는 데 있어서의 고생입니다. 일하는 고생, 낳아서 기르는 고생, 살림을 하는 고생, 공부를 하는 고생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즐거운 삶은 절대 맛볼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와 비교를 하자면 기독교의 노동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신의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축복을 받아서 조금도 일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신의 명령을 배반하고 금단의 과실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벌을 주셨습니다. 원죄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 벌은 여자에게는 아이를 낳는 괴로움이고,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 빵을 얻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인간이 신을 배반했기 때문에 신이 내린 벌로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입니다. 출산의 괴로움이나 고생은 신이 내린 죄이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신이 내린 죄라는 것입니다.

생활의 고생을 교조님의 모본에서 배운다면, 교조전 제3발자취가운데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난의 밑바닥에 지낼 즈음의 유명한 일화에

[고깡이 어머님, 이제 쌀이 떨어졌습니다.”고 말하자, 교조님은

세상에는 머리맡에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먹으려야 먹을 수 없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고맙잖아.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어버이신님이 고맙게 보살펴 주고 계시는 거야.”라고 타이르시고,

아무리 서글퍼도 서글프다 하지 마라. 거지 노릇은 안 시킬 테니.”

하고 격려하셨으므로, 자녀들도 쓰러지려는 마음을 되살려 교조님을 따랐다.]

고 나옵니다.

이 일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들 인간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고 살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 경우를 만나더라도 이것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다. 고맙구나 감사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 순조롭게 풀리면 좋은 환경이나 상황이라는 형체로 보이는 부분에만 사로잡혀, 진실로 고마운 것을 모르며 교조님께서 걸어주신 참된 즐거운 삶도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고생과 통하는 라는 숫자는 충분한 것에는 조금 모자란 것을 말합니다. 9다음에는 10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가장 완성된, 충분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의 만족, 고마움이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습니다만, 형체의 만족, 생활의 만족은 너무 많으면 넘쳐나고 맙니다.

예를 들어 목욕탕에 들어갈 때 물이 욕조에 가득 차 있으면 물이 흘러넘칩니다. 적당한 물의 양과 온도가 목욕하기 좋지만, 너무 많으면 물을 버려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됩니다. 또한 식사를 할 때도 먹을 것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을 내놓아도 배가 부르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깝지만 음식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도 조금 모자란 듯이 먹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다고 합니다. 너무 많으면 흘리거나 버려야 합니다.

어떤 라디오방송에서 사회자가 요즘의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모자라는 것을 겪지 못하는 상황을 빗대어 한 말입니다. 너무 고맙고 충분하면 모처럼의 혜택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부족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고맙다고 만족하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고생은 악인연에 의한 고생입니다.

이것은 과거, 혹은 전생에서 자신이 뿌린 나쁜 씨앗이 자라나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금생에서 악인연을 끊지 않으면 영원한 즐거운 삶은 누릴 수 없습니다. 그 악인연은 백인연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예사롭지 않은 고생이 필요합니다. 인연을 끊기 위해서 하는 고생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역시 즐거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생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교조일화편 147 ‘진정한 구제에서

[야마또 지방 구라하시 마을에 사는 야마모또 요헤이의 부인 이사(당시 41)는 오랫동안 앉은뱅이였는데, 1882년 신기한 도움을 받아 아랫도리가 부드득부드득 소리를 내며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손이 약간 떨렸는데 좀처럼 잘 낫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으나 본인은 이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1884년 여름, 터전으로 돌아와 교조님을 뵙고 그 떨리는 손을 내밀며 숨을 불어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그러자, 교조님은

숨을 불어 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나, 자네는 다리를 도움 받았으니까 손이 약간 떨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말끔히 도움 받는 것보다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전생의 인연도 잘 깨닫게 되고, 언제까지나 잊혀 지지 않아서 그것이 진실로 도움받는 리가 소중한 거야. 숨을 불어 주는 대신 이 책을 빌려 주마. 이것을 베껴서 끊임없이 읽어라.”하고 깨우쳐 주시면서, 친필 17호 전권을 주셨다. 이때부터 이사는 손이 떨리는 것은 조금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베껴 주신 친필을 평생 언제나 읽곤 했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열심히 포교하며 89세까지 오래 장수했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맨 처음에 아홉가지 도구의 도 고생의 와 통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차물인 신체도 오체만족으로 너무 건강하면 때에 따라서는 흘러넘치고 맙니다. “말끔히 도움받는 것보다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전생의 인연도 잘 깨닫게 되고,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아서 그것이 진실로 도움받는 리가 소중한 거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홉가지 도구의 의 의미도 충분하지 않고, 조금 모자란 것, 조금 부자유를 느끼는 생활이 적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자유한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인간이간 부자유해졌을 때 대물, 차물의 리가 더욱 더 마음으로 깨닫게 되고,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실감하고 감사의 생각이 솟아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야 말로 즐거운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고생은 구제를 위한 고생입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뛰어들어 하는 고생으로 교조님의 모본을 따라 걷고, 남을 구제하는데 진실을 다하는 고생입니다. 이 고생을 쌓아나가면 악인연의 고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편리함과 물질이 풍족한 지금의 생활 속에서도 그것에 빠지지 말고 생활의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서로 돕는 남을 구제하는 고생을 적극적으로 하면 악인연에서 오는 어렵고 부자유한 고생이 없어져서 어버이신님이 바라시는 즐거움이 가득 찬 세계가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겪는 온갖 고생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형인플루엔자, 경제, 전쟁, 환경문제들로 세계가 겪는 고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길을 가는 우리 용재들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이 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고생을 해 나감으로써 즐거운 삶을 넓혀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필에

이 길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길 (6-4)

이라고 했습니다.

교조님이 걸어가신 50년 모본이 고난과 고생의 연속이셨지만 그 고난과 고생을 우리들의 것으로 여기고 기꺼이 따라 걸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더욱더 어버이신님이 바라시는 즐거운 삶에 가까이 따라가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다음달 7일에는 전진주님께서 상급교회인 원남성교회에 참배해 주십니다, 여러분들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배해 주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다음달에는 6일에 부인회 제전을 거행하도록 알려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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