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9월 월차제 신전강화

 

욕심과 집착을 버려서 포도알처럼

 

이상봉(고성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9월 월차제에 참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잠깐 한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가을 날씨, 이런 날씨에 어떤 분은 잠자기 참 좋은 날씨라고 이야기하시던데, 참 기분이 좋은 날씨입니다. 지도말씀에 [언제나 맑은 하늘같은 마음]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마음도 맑은 하늘처럼 되어있으면 항상 즐겁고 용솟음칠 일 뿐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흐리더라도 마음만 맑으면 즐거운 일뿐인데 날씨가 맑더라도 마음이 흐리면 즐겁지 못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오늘도 벌초를 하러 가시는 분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민족처럼 많은 사람이 추석을 앞두고 도로가 막힐 정도로 벌초를 하러 간다는 건 다른 민족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조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섬긴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다른 민족에는 없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책을 낸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왜 자꾸 발전하느냐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다른 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다 사그라들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교세가 늘어났습니다. 한국 기독교만의 특징이 영성, 영적인 것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기독교는 그런 이야기는 별로 안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영성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이죠. 영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냥 빨려들 듯 온답니다.

 

얼마 전 우리아이가 역사 공부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나오는데 이게 왜 일어났어요?”하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 들어보고 공부했지만 잘 몰라서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 중에 큰 전쟁이 1,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1900년 초반에 일어났습니다. 1차도 2차도 독일이 일으켰는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발단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던 독일이 히틀러가 집권을 하면서 나찌당을 만들어서 일으킨 것입니다. 히틀러가 집권해서 첫 번째 한 사업이 유태인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독일내의 유태인을 나라밖으로 추방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파리에 있던 한 소년이 자기 부모가 히틀러 때문에 쫓겨나서 집도 절도 없이 하루아침에 굶어 죽을 정도가 되어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독일 대사관으로 찾아가 대사를 쏘아 죽입니다. 그것이 명목상의 구실로 발단이 됩니다. 히틀러의 생각 사상을 나찌즘이라고 합니다. 유럽에는 그 당시 여러 민족이 있었습니다. 독일민족은 잉글로 색슨계인데 그 중에서 아리안족입니다. 그 아리안족인 독일민족이 제일 뛰어나고 나머지는 천박하고 미련하니 다 없애야 한다고 믿고 다른 민족을 말살하는 정책을 썼던 것이죠. 제일 첫 번째로 유태민족을 꼽고, 그 다음은 슬라브민족이라고 폴란드, 소련쪽을 포함하여 동구권 민족을 말살하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8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 숫자는 우리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은데 그 주검을 늘어놓으면 지구를 한 바퀴 반을 돌릴 수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죽게 되었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발단은 결국 생각의 차이입니다. 나찌즘이라던지 프랑스에 대한 복수에서 비롯되었지만 속에는 우리 민족은 뛰어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유태인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세계에서 노벨상의 반이 유태인이 받았고, 세계부자의 반 이상이 유태인이고, 미국에 가면 아주 큰 석유 정유회사는 다 유태인 소유이고, 금융계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냐 하면 고난 속에서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때 대처하기 위해서 권력, 금력에 굉장히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게 민족적 특성과 맞물려서 많은 권력과 돈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독일 안에 유태인을 놓아두면 독일 돈을 다 쓸어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그래서 쫓아내고 말살하는 정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 생각에 차이라는 것이 엄청난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 생각에 일본, 이태리도 동조하여 세계 2차 대전에 동참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고, 지금도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고 있죠.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뒤 공산주의 자유주의하는 생각의 차이가 계속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데 지배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세상은 포도알과 같이 뭉쳐서 사는 거야.] 하신 교조님 말씀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포도알는 각자 껍질을 싸고 있지만 줄기로 다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포도알이 전체가 하나로 크게 뭉쳐져 있으면 좋겠지만 각자 하나씩 있으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면 우리 민족이나 다른 민족들도 각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전라도사람, 경상도사람, 충청도사람, 서울사람, 경기도 사람 다 다릅니다. 뭔가 틀려도 틀립니다. 각자 존재합니다. 그래서 경상도사람과 전라도사람은 서로 안 맞다, 싫어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각자 다른 것입니다. 자기와 맞지 않다고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뜻에 대단히 어긋나 있으며, 천리에 벗어난 생각입니다. 그것을 좁혀 들어가면 개개인도 포도알과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나와 같이 합쳐져야 돼하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틀렸으니까 고쳐야 돼하는 것도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제일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왜 내 자녀가 내 뜻대로 안 되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가만 보면 사실 자녀들은 부모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부모가 하는 행동, , 생각들을 보고 따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 가서 돈을 계산하는 데 식당주인이 잘못 계산해서 적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걸 알고도 그냥 작게 주고 나와서 아 오늘 참 덕 봤다.”고 하면 자식도 나도 어쨌든 되도록 적게 내야겠구나, 그게 잘 하는 거구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음에 그런 일을 하는 자녀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 해도 그것은 부모가 보여준 것이거든요. 결국은 부모의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보고 자랐다는 거죠. 교조님은 15살까지는 부모의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남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이질시하고 나한테 같이 맞춰라고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버이신님 뜻에 안 맞게 하는 것이 욕심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조님은 [사람은 집착을 버려야 마음이 맑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오늘같이 맑은 날이라도 즐겁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맑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욕심과 집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은 어쨌든 나를 잘 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오로지 거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생을 하고도 즐겁지 못하고 괴로움에 싸여 있는 것도 나를 중시하는 생각에 싸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착을 버리는 것을 항상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즘 사회에는 자기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 충족하려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런 풍조에서 자기를 희생해서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을 돕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견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풍조가 신앙하는 우리 속에서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가면 뭐가 좋다더라, 어디가면 이런 게 좋다더라, 뭐가 맛있더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하는 걸 보고 쫒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우리들 속에 있는 욕심으로 세상을 쫒아가는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이 즐거운 삶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겉껍질을 싸여 있지만 한 가지로 이어져 하나의 포도송이를 이루고 있는 포도알처럼, 각각 맛있는 포도알이 되도록 내면에 맛을 더해야 되겠습니다. 역시 사람은 욕심이나 집착을 버릴 때 남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주장하는 나찌쯤이라는 것이 언뜻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좋아 보이지만 그런 것은 교조님께서 깨우쳐 주신 포도알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면 정말 틀린 생각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남을 도와야 내 몸이 도움받는다]고 하셨듯이 내 욕심을 버리고 남을 즐겁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회사도 잘 되는 회사가 있고, 교회도 번창하여 잘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안 되는 회사나 교회도 있습니다.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만 원칙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우리가 갈 길이 굉장히 잘 보입니다.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도 다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게 가리고 있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욕심을 버리고 남을 즐겁게 하려는 교조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전석에서 상급회장님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전진주님이 119일에 고성교회에 방문하실 예정이었지만 일정상 취소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로만 생각하면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만 생각하는 욕심과 집착입니다. 그런 욕심과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급교회에 117일에 방문해 주시는 데 최선을 다해서 정성을 모아 주시기 빕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7일이 원래 부인회인데 11월에는 6일에 하고 7일에는 상급교회로 전진주님 오신 데 참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28 [174년02월]정성의 마음으로-이상봉 2012.06.11
27 [174년01월]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의 차이-정선일 2012.06.11
26 [173년11월]5푼 5푼으로 더 성인하여 나아가자 - 이상봉 2012.07.10
25 [173년10월]전(前) 진주님이 오신 감사한 수호 - 최정욱 2012.07.10
24 [173년10월]인생 적자를 면하자 - 유병희 2012.07.10
23 [173년09월]상급의 뜻과 시순에 맞추는 실천 - 김규수 2012.07.10
22 [173년08월]수훈 전하기에 두배의 노력을 - 김영진 2012.07.10
21 [173년07월]팀플레이를 갖춘 교회로 - 이상봉 2012.07.10
20 [173년05월]바보는 이길의 기둥 - 김위태 2012.07.10
19 [173년04월]가난에 빠진 교조님의 모본을 되새기자 - 배재기 2012.07.10
18 [173년03월]신앙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 김대경 2012.07.10
17 [173년02월]인간생각과 신님생각을 돌이켜 보는 시순 - 이상봉 2012.07.10
16 [173년02월]남을 도우려면 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 이상봉 2012.07.10
15 [173년01월] 172년12월 월차제 신전강화 - 이상봉 2012.04.11
14 [172년12월]십전수호의 리에서 살펴본 여성의 역할 - 오대원 2012.09.09
13 [172년11월]고생하지 않고서 즐거운 삶의 실현은 없다 - 이상봉 2012.09.09
» [172년10월]욕심과 집착을 버려서 포도알처럼 - 이상봉 2012.09.09
11 [172년09월]은혜 보답의 길 - 김규수 2012.09.09
10 [172년08월]즐거운 삶 - 전인수 2012.09.09
9 [172년07월]행복의 조건 - 유상준 201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