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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년09월]은혜 보답의 길 - 김규수

2012.09.09 18:55

편집실 조회 수:2046

8월 부인회 신전강화

 

은혜 보답의 길

 

 

김 규 수 (성원교회장)

 

오늘 상급교회 부인회 제전에 모두 다 함께 즐겁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덕한 제가 여러 가지로 못합니다. 그렇지만 지명을 받았기에 잠시 생각한 바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4)

요즘 들어서 저 역시도 그렇게 가끔 생각하지만 옛날처럼 수호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작은 생각이고 진짜 이길이야말로 광대무변하신 어버이신님의 크나큰 수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좁은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엄청난 수호로써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이길은 교조모본의 길을 걷지 않고서는 낼 수가 없습니다. 지도말씀에 모본을 걷지 않고서는 모본은 필요 없다 모본을 고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교조님이 오신 목적도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을 구제하고자 오셨습니다. 그런 뜻을 생각하면 우리는 교조님의 도구로써 얼마만큼 수호해 주는 이 감사함을 타인에게 전달했느냐, 얼마나 전달할 수 있었느냐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선 저 자신부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부덕하고 불효인연이 깊어서 은혜보답을 못했습니다. 초대로서 걸어가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다른 생각으로 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잠시는 될지 모르지만 이길을 영원말대까지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길을 걸어가는 즐거움을 잠시만 가져서는 안 되고 오랫동안 가져야 합니다.

친필에

올해부터 70년은 부부 다 같이

앓지 않고 쇠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면 (11-59)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으리라

이것을 참으로 낙으로 삼아라 (11-60)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슈우지선생 부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70년을 살아간다면 앓지 않고 늙지 않게 살아가라는 그 속에는 엄청난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부부 다 같이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뭔가 거창한 게 아니고,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인연을 끊지 않으면 결코 그렇게 만들 수 없습니다.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그것밖에 안됐나 하시겠지만 저도 많이 변했습니다. 또 뒤돌아보면 수호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호의 대가만큼 은혜보답은 하지 못했습니다.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길은 은혜보답의 길입니다. 죽을 목숨을 수호 받았는데 감사하고 감사한데 무엇이 두려워서 은혜보답을 안 하겠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은 묵은 인연 때문에 그 감사한 수호를 받았는데도 은혜보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게 잘 하십니다. 저도 엄청난 수호를 받았는데도 은혜보답을 못했습니다. 이것이 제게 가장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 인연을 잠시 되돌아보겠습니다.

제가 청년 근무할 때 초대 사모님께서 사감선생아, 내 좀 보자.” 해서 하고 사모님 방에 들어갔습니다. “배둔에 가면 방앗간 집 딸이 있는데 그 애가 손목이 하나 없느니라.” 하시며 결혼을 권유하셨습니다. 아무런 뜬금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길래, “그래요? 상의해 보겠습니다.” 하고 나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건강하고 우리 형제도 다 건강한데 우리집안에도 그런 사람 없는데 내가 천리교를 믿어서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가면 뭐라고 하것노.’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야무야하고 넘어갔습니다.

제가 청년근무 후 결혼을 하고 포교를 할 때 서울에서 상급으로 걸어갔습니다. 15년 전 함양에서 산청으로 오는 길인데 고갯길이 있습니다. 한쪽 어깨에만 가벼운 가방을 매고 가는데 그때 갑자기 뒤에서 느닷없이 차가 와서 어깨를 쳤습니다. 그 순간 제 생각에는 팔이 하나 날아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팔은 이상이 없는기라. 그때 친 차는 2톤 트럭으로 촌에서 닭똥을 가득 싣고 가다가 저 어깨를 세게 친 것입니다. 그 기사가 차를 세우고 나와서 안 다쳤습니까? 어떻소? 미안합니다.” 하길래 괜찮소. 미안하다고 말씀하지만 당신이 나를 만난 것이 다행입니다. 당신이 뭔가 좋은 일을 많이 했나 봅니다. 나를 만난 것을 보니. 나도 바쁜 사람이니 그만 가시오.” 했습니다. 산청에 와서 저녁근행을 올리려고 박자목을 꺼냈습니다. 그 때 박자목을 까만 비닐에 싸여 있었는데 꺼내보니 박자목 뒷부분이 움푹 파이고 한쪽이 깨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 이 박자목이 나를 살렸구나. 신님이 이렇게 수호를 해 주셨구나.’하고 감격했습니다. 지금도 그 박자목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녁근행을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 팔이 하나 없다. 초대사모님께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아, 내가 그렇게 될 인연이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런 인연을 대충 알았는데 올해 57일 상급교회 부인회 제전을 보기 위해 오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진동까지는 걸어와서 진동에서 버스를 타고 옵니다. 박자를 치고 전도하며 걸어서 진동 근처까지 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차가 치고 지나갔습니다. 박자목은 찻길로 날아가 버리고, 순간 , 손목이 날아갔구나.’ 싶어 보니 손목은 그대로 붙어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다친 게 아직 부어있습니다. ‘. 참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박자목을 주워야 되는 데 박자목이 찻길 한가운데로 날아가 있었습니다. 박자목이 차에 깔리면 안 되는 데 걱정하며 보니까 1차선과 2차선 가운데 줄 그은 곳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박자목 주워가지고 오른쪽을 보니까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차가 뒤집혀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저 차는 뭔데 저기 뒤집혀 있나?’ 싶어 가보니 젊은 사람이 두 사람 차 안에서 나왔습니다. ‘, 저 차가 나를 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이 차에 받쳤지만 순간적이라 어느 차인지 알 수가 있습니까? 차는 작은 티코였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나오더니 아저씨, 안 다쳤습니까?” “나는 괜찮은데 자네들은?”하니까 젊은이들이 괜찮습니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떨어진 곳이 골재, 자연석을 재어놓은 곳인데 그 가운데 모래밭에 뒤집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도 괜찮고, 나도 괜찮았던 것입니다. 시간 맞춰 가서 나는 근행을 봐야 하니까 마음이 급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보니 한명은 스물 댓쯤 되었고, 한 명은 스무 살 쯤 되었는데 아무리 내가 손이 아프지만 이 아이에게 수훈을 전해주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고 스물 살이라 해서 내 딸도 스무 살인데 딸 같은 아이에게 수훈을 전했습니다. “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되는 데 내가 바빠서 그러니 자네가 데려가라.”하고 왔습니다. 저는 근행이 생명이라 무엇보다도 근행 올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만약 그 차가 사고를 내고 바로 옆에 뒤집혀져 있었으면 그 사람들이나 내가 신고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이 신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다쳤으니까 병원에 가야 되고, 그러면 근행에 못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님 수호로 그 차를 쥐도 새도 모르게 안 보이는 구석에 떨어지게 신님이 해 놓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마침 진홍회장님을 만나 차를 타고 근행 시간에 맞춰 고성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근행에 빠지지도 않게 되고 내 인연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 내가 불구 아내를 맞이하지 않은 대신에 지금 집사람이 이렇게 되어 있구나.’싶었습니다. 결혼할 때 우리 집사람도, 그리고 집사람 형제들도 다 아주 건강했습니다. 제가 청년근무를 거치고 포교 30년인데 지금 그때 건강했던 우리 집사람이 장애 2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손목없는 아가씨도 장애 2급은 안됐겠나. 같은 2급이죠. 저도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요새 그래서 인연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지금은 집사람 몸이 워낙 약해서 신님 수호가 아니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님 수호로 32킬로라는 몸을 가지고 애들 학교 뒷바라지, 제 뒷바라지해 내고, 근행 올리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열심히 실천하고 더 적극적입니다. 더 교조님 가까이 가 있습니다. 32킬로 몸무게로 신님 수호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저는 자나깨나 집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진작 좀 그렇게 하지. 내가 건강할 때 그랬으면 이렇게 안 되었을 텐데합니다. 그래도 건강할 때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이 보기 싫었습니다. 나 보다 덕이 나은데도 인연 때문에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내가 덕이 모자라서, 내 덕에 과한 인연인데도. 그래서 집사람 몸이 저렇게 되었고 그건 제가 관리를 못한 것입니다. 요즘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남은 기간을 집사람을 편안하고, 위해 줄까만 생각합니다. 가정이 첫째라 하는데 가정의 토대는 부인이죠. 가정이나 교회나 토대가 없으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지탱이 안 됩니다. 토대가 제대로 앉아있어야 합니다. 토대는 보물입니다. 토대가 있어야 가정이 있습니다. 토대가 없으면 가정이 없습니다. 오늘날 가정이 사회가 망가져가는 이유가 토대가 무너져서 그렇습니다. 제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길을 걸어가는 우리 용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전도는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게 사는 것을 사회에 비쳐주는 것입니다. 내 가정이 화목한 것을 이웃이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 없는, 말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고생의 리가 쌓여서 되어져 가면 하나하나 이 세상 사람이 알도록 신님이 내 놓습니다. 얼굴도 내놓게 합니다. 요즘은 전도를 가면 제게 얼굴이 좋다,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리가 쌓이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옵니다. 내가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을 때는 말을 해도 피해 갑니다. 인연이 끊어지고 고생의 리가 쌓이면 자기들이 먼저 와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만 이것은 하나하나 쌓여 오래도록 가는 것입니다.

 

2대 교회장님께서 재임 시에 사석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 손을 잡고 옥천사절에 따라 갔지. 할머니 따라 절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자다보니 할머니가 그때까지 계속 절을 하고 계시더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이 교회는 할머니 공덕으로 초대회장님이 저렇게 이룩하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 생질인 노선생이 학생으로 교회 왔는데 재곤아, 니 고성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크게 이룩되었는지 아나?” “제가 우찌 알겠습니까? 초대회장님이 포교해서 그렇겠지요.” “그것도 그렇겠지만 할머니가 옥천사 절에 가서 공을 들여서 그렇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초대회장님 곁에서 오래 계신 소장님들이 말씀하시기를 할머니가 얼마나 공덕을 쌓았는지 아요? 엄청나게 물질을 올렸습니다.”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2년 전에 노선생님이 꿈을 꾸는 데 초대회장님이 앉아있는데 뒤에서 부처가 받치고 있더랍니다. 그 부처도 보통 부처가 아니고 금부처였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초대회장님 어머니인 할머니였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초대회장님은 그냥 사람인데 뒤에서 받쳐주는 부처의 얼굴이 할머니다. , 맞다. 우리 부모는 절에도 안 가던데, 공을 안 쌓은 거 같고, 내가 해야겠다. 내가 전도를 많이 하고 할머니처럼 고생을 많이 해서 우리 상철이 에게 받쳐주어야겠다. 그러면 나는 안 되도, 우리 상철이가 되도록 해야 안 되겠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노선생아, 그것은 니 꿈도 되고 내 꿈도 된다. 니도 너희 부모가 열심히 공덕을 쌓아주지 않았지만 니가 그렇게 해서 열심히 씨앗을 뿌리면 니 자식들은 그렇게 안 되겠나. 얼마만큼 될지는 니 덕 만큼 안 되겠나? 나도 그렇다. 덕을 심고 노력하자.” 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에는 고성교회보다 큰 교회도 있었지만 오늘날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고성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공덕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되는 게 없고 엄청난 고생의 리가 있어야 합니다.

절에는 108배 하는 데 밤새 합니다. 우리 집 옆에 절이 있는데 그 절을 보고 많이 깨닫습니다. 교리는 우리 교리, 그것 이상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절에는 밤낮 참배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9시에 문을 닫고 새벽 3시 되면 목탁치는 소리가 온 주위에 진동을 합니다. 4시 되면 종을 칩니다. 그것이 내가 간 그때도 하고 있었는데 그 절 생기고 나서부터 안 했겠습니까. 그 절을 세우신 사람이 김규하선생이라고 통도사 주지도 했던 분인데, 아주 유명합니다. 그 당시 일본사람들이 그 주위 창동이나 부림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답니다. 그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절을 세웠답니다. 1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스님이 얼마나 유명하던지 봄에 햇살을 쬐면 지금 어느 절에 목단꽃이 피었다 아시고, 말년에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햇빛을 손바닥에 받으면 10초 이상 틀리지 않고 시간을 정확하게 맞췄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참배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당시대 인간으로서 이병주칼럼에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유명합니다. 그런 고난의 길과 나라를 세우려고 자주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절을 세웠고, 자기 자식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데...오로지 남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분은 그만큼 고생의 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옆에 좋은 교회가 있는 데 왜 안 오나 하지만 내가 덕이 없는데, 리가 없는 데 어쩔 겁니까? 끊임없이 고생의 리가 쌓여야 합니다. 하다보면 때가 되어 어느새 이루어집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은혜보답을 해야 되는 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에 대해 교조님 77세 때인 1874230일 저녁에 하신 말씀입니다.

나날이 남을 돕는 일인거야. 말로는 남을 돕는다고 하지만, 남을 돕는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거야. 처음엔 남을 돕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더라도 날이 지나감에 따라 수호가 보여 지게 되면 자기가 수호를 받게 했다는 마음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마음이 안 되는 것이다. 자기가 돕는 것이 아니야, 신님이 도와주는 것이야. 신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여도 신님은 말이지, 도우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 활동해 주시는 거야. 돕는 사람은 도와주는 것으로 즐거움을 가지는 것이야. 이것이 은혜보답이 되는 거야. 남을 돕는 일은 신님에 대한 은혜표시도 된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언제나 신님과 함께 한다는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자기가 돕는 것이 아니야. 신님이 도와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내 몸은 어떻게 되어도하는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돼. ‘내 몸은 내 몸은 어떻게 되어도라는 마음이 은혜보답이 되는 거야. 이것은 자기 혼자만의 길이 아니야. 말대까지의 길, 말대까지 남기는 길을 만들어 다오.

사람에게 말할 때는 말이지. 내 몸은 신님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새겨두지 않으면 안 돼. 빌려 받은 것이라는 것을 잘 가르쳐주어다오. 잘 일깨워주는 거야. 도움을 전하는 사람이 빌려 받은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명심하게 된다면 어떠한 병도 도움을 받게 된다. 염려 없다. 걱정하는 마음 갖지 않도록.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돕는 사람이 정성의 마음으로 빌려 받은 것이라는 리()를 확실히 마음에 새겨놓으면 그 다음은 신님이 활동을 해 주시는 것이니. 무엇이든 걱정하는 마음은 필요 없는 거야. 정성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거야. 이것이 은혜보답이 되는 거야. 기뻐하며 열심히 일해 주길 바래.

은혜보답이 되는 길, 나날이 길을 걸어감으로써 만족하게 되어 지는 것이야. 용솟음치며 가지 않으면 안 돼. 사람을 도움 받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마음이 되어서 항상 낮고 인자하고 순직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전하도록 하는 거야. 상대의 마음을 도움 받게 하는 거야. 빌려 받은 것이라는 리, 마음에 새겨두면 새겨둔 만큼 수호를 받게 된다. 빌려 받은 것이라는 리, 확실히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돼. 남이 도움 받게 된다는 것은 은혜를 갚는 일이 되기에 언제 어느 때라도 그 마음으로 지내지 않으면 안 돼.”

 

여러분, 어쨌든 이길을 가는 데 있어서 인연도 끊어야 되고, 전도도 해야 되고, 덕도 사야 되지만 핵심은 대물차물임과 동시에 단노의 리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본부의 어느 포교사가 너무 어려워 먹을 게 없어서 아기가 굶어죽었습니다. 그래서 포교를 정리하고 상급에 오니 신찬실에 쌀이 썩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나와 마당에 집어던지면서 우리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었는데. 이렇게 해 놓았다니.’ 화를 내면서 천리교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자기가 전도한 신자 세 사람이 터전에 참배를 하고 있었답니다. 포교를 하면서 먹을 게 없어서 자식까지 보내는 그런 고생의 씨앗, 리가 싹이 트면 얼마나 커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 단노를 못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 순간 단노를 못하면 자기도 끝나고 자기 후손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길은 그런 것입니다. 좋은 것을 줄 때는 한없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시험에 어떻든 뛰어넘어 합격하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내가 당합니다. 누구 잘못입니까? 내 잘못, 내 인연입니다. 상대가 이렇다 저렇다 하지만 내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안 된 것만 보입니다. 내 주위에 보이는 것이 나이고, 내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어떻게 하든, 산하가 어떻게 하든 내가 은혜보답을 하고 덕을 만들어야 합니다. 더욱이 용재는 공인입니다. 내 가정만이 아니고, 산하도 있고, 산하의 후손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 이길을 갔을 때 내 가정만 문제가 아니라 산하의 가정까지도 잘못 가게 합니다. 그래서 용재는 사소한 것, 작은 것을 버리고 그렇게 가야 합니다.

 

이길은 즐거움의 길입니다. 즐거워야 합니다. 결국 마음성인이 되면 즐거운 것입니다. 즐겁지 못한 건 내 문제입니다.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우려면 첫째 빌려 받은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몸이 아프면 감사가 없습니다. 그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구제받은 것이 감사해서, 그 감사함에 은혜 보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져 가면 언제나 즐겁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말씀 죄송합니다. 마치겠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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