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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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년07월]행복의 조건 - 유상준

2012.09.09 18:53

편집실 조회 수:1997

6월 월차제 신전강화

 

행복의 조건

유상준(성진교회장)

 

반갑습니다. 오늘은 상급 원남성회장님께서 조금 더 말씀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다른 때보다 더 일찍 끝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달 강화 당번이어서 일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슨 말씀을 올려야 할지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합니다. 듣다보면 여러분에게 거슬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발음이 잘 안돼서 좀 어눌하더라도 잘 이해해 주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고성교회는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평소에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즐거운 삶에 이로운 마음가짐을 열 개로 나눠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아라비아숫자로 1에서 10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일일이 챙기자.

현대를 사는 우리들 모든 사람들은 요즘 바쁘게 살아가므로 집안의 대소사에 인사가 빠지는 일이 무척 많습니다. 양가 부모님 생신, 부부에 관한 일(결혼기념일, 생일), 자녀의 생일 등등 모든 쪽에 빠짐없이 일일이 내가 먼저 잘 챙겨주자는 것입니다. 일일이 챙기려 하면 그 순간은 자신은 피곤합니다. 하지만 챙겨주고 나면 마음이 맑아지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2. 이것 저것 너무 알려고 하지 말자.

본인의 일도 복잡 다양한데 남의 일까지 신경쓰다 보면 괜히 자기가 해야 할 일도 잊고 살게 됩니다. 자기 일에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또 너무 많은 것을 알다보면 자연히 남의 말을 많이 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다 심해지면 소송으로 가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찮게 이웃사람이 자기를 모함하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어진 사람의 집은 부부간에도, 자식과 부모 형제 친척간에도 무척 잘 지내고 다복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 심술궂은 사람이 있어서 모함을 했습니다. 원래 어질고 말이 없는 사람인지라 곧 조용해지겠지. 나는 결백하니까하고 생각했는데 소문은 걷잡을 수 없으리만치 퍼져나갑니다. 해서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가 따져 물으니 소문을 낸 자는 인정하면서 시기와 질투심으로 그리 했으니 용서를 해 주십시오하고 사죄를 하였다. 그 어진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이 진정 내게 용서를 구한다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므로 그럼 좋다, 내하고 같이 산에 올라가자.”하면서 오리털 베개를 가지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베개를 가지고 올라가는 가 궁금했는데 산꼭대기에서 베게를 찢어버립니다. 그러자 아주 부드러운 오리털이 바람에 다 날아 가버립니다. 모함한 자에게 저 날아가는 오리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워서 베개 속에 넣어라고 합니다. 오리털이 얼마나 가볍습니까?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린 그것을 주워 담기란 불가능합니다. 모함한 사람이 다시 무릎을 굻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합니다.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용서를 바랍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오리털도 가벼워서 멀리 멀리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말은 더 그렇습니다. 형체도, 무게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말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앨 수도 없습니다.” 하면서 모함한 사람에게 좋은 깨우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말은 항상 깊이 생각하고 조심해서 해야 하고 좋은 말만 하고 상대를 칭찬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3. 삼삼오오 모여 살자- 더불어 살자.

요즘 세상은 핵가족화 시대라 하지요. 어릴 적에는 부모님과 더불어 살지만 성인이 되면 독립해 살려고 애를 씁니다. 저 자신도 상급 고성교회 오면 혼자 있는 걸 원하지 같이 있으면 불편해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놀 때는 같이 있지만 잠을 잘 때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그렇다 보니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많이 보듯이 부모가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보름 만에 알게 되었다는 그런 뉴스도 많이 듣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가 독립된 생활을 원하고 더불어 사는 것, 모여 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진교회 건물에 202호라는 방이 있습니다. 거기는 결혼을 하지 않은 43살쯤 된 노처녀가 작년 5월인가 세 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그 처녀가 우울증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는 행동도 이상한 줄 몰랐는데 작년 10월 달쯤에 처녀 아버지가 와서 그 방문을 열려고 애를 써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럽니까?”하니 딸이 회사에 사흘간 결근했다는데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고 연락이 와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아가씨를 봤는데 츄리닝입고 손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걸 봤습니다. 인사를 해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걸 보았습니다.”했습니다. 아침에 아가씨를 봤는데 저녁에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안에서 잠긴 문이 쉽게 열리겠습니까? 번호키라도 안 열립니다. 열쇠 따는 사람을 불러 보아도 안에서 잠겼기 때문에 열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었는데 겨우 열었습니다. 문을 열었지만 동생되는 분이 혼자 안 들어가려 하고, 제게 같이 들어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저도 겁이 많거든요. 어두워졌는데 들어가니 그 처녀가 오그리고 누워있었습니다. 농약을 먹고 자살한 것입니다. 그 처녀는 우울증이 심했답니다. 집에서 독립해 나갈 때 못 나가게 부모가 엄청 반대를 했답니다. 그래도 워낙 본인이 나가는 것을 강하게 원했고 나가서 아무런 나쁜 생각을 안 할 테니까 독립시켜달라고 해서 약속하고 혼자 방을 얻어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사람은 부모 곁을 떠난 지 3-4개월 뒤에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부모 곁에 있었더라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버이신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일이 없도록 당부 드립니다. 농약을 먹고 죽은 모습은 참 처참합니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이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입에서는 계속 거품을 내고 있는 모습이 아주 처참하게 보입니다. 근데 그 사람이 죽은 지 한달 넘도록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 방을 전세 줘야 하는데 자살했다는 소문이 나면 안 들어옵니다. 119에도 소문이 안 나도록 제가 사정을 했습니다. 119가 싸이렌을 울리면서 왔기 때문에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119에서는 세 사람이 왔는데 죽은 사람은 119에서 안 실어 간답니다. 저희는 시체를 치워달라고 부른 건데 ... 그래서 그냥 돌아갔습니다. 이것도 참고로 알아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 뒤에 신혼부부가 들어왔습니다. 이 신혼부부는 그 노처녀가 시집 못간 한으로 그 사람들에게 좋은 기를 주었는지 모르지만 아주 금슬이 좋습니다. 집사람은 그 광경을 안 보았지만 본 저는 아직 그 쪽으로 가면 섬뜩합니다.

 

4. 사생결단의 말을 하지 말자-사욕을 버리자.

가족간, 보모자식간, 이웃간에 친인척간에 사소한 일로 절교하거나, 인연을 끊는다던지, 부부간에 이혼한다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저도 성이 나면 막실(그만두자)하자고도 합니다만 화가 났을 때는 앞 뒤 잴 겨를도 없이 막말을 뱉어 버립니다. 화가 풀리면 후회막급입니다. 절대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은 항상 조심조심 잘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사욕이란 자신을 패가망신시키는 일입니다. 조금 전 상급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박연차 게이트라고 아실 겁니다. 그것도 욕심에 일어난 것입니다. 자기가 돈은 많이 벌었는데 노무현 대통령때는 비호를 해 주니 괜찮았습니다. 정권이 바뀌니 감사를 받겠다 싶어 많은 돈을 뿌리면서 세금 안낸 것 들키지 않으려고 힘쓰다가 거기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 특히 전직 대통령까지 스스로 투신자살하는 비운을 맞게 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모두 과도한 욕심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본 양심, 소중한 양심마저 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옛날 한 마을에 농부가 소를 몰고 길을 가다가 아주 귀한 가죽신 한 짝을 주웠습니다. 귀한 신발이기는 하나 한 짝은 쓸모가 없다 싶어 멀리 던져 버립니다. 신발 잃은 주인이 찾아가도록 눈에 잘 띄게 놓아두지 않고 던져버린 것입니다. 자기 갈 길을 가다가 또 가죽 신발 하나를 주웠습니다. 농부는 조금 전 버린 신발과 똑같은 신발임을 알았습니다. 이 신발이 너무 고급이라서 한참을 망설이다 소를 소나무에 꼭꼭 동여맵니다. 그 때 건너편에서 수상한 두 사람이 소나무 뒤에서 얼른 숨어서 보았습니다. 농부는 소를 매 놓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던져버렸던 신발 한 짝을 찾아 맞춰보았습니다. 짝이 맞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날듯이 소 있는 곳으로 달려 왔습니다. 그러나 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수상한 사람들이 소를 훔쳐간 것이죠. 가죽신을 가지고 싶은 조그만 욕심에 젖다 보니 진짜 소중한 양심을 버렸습니다. 신발을 주웠으면 주인이 찾아가도록 배려를 해야 되는데 욕심을 내다보니 진짜 큰 재산인 소 한 마리를 잃게 된 것입니다.

또 말장난에 넘어가서 패가망신당한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요즘 말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도 회사 회장들이 중국에 골프여행을 갔다가 말장난, 사기에 넘어가서 십억씩 손해를 봤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순간적인 욕심에 나의 양심을 버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제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일에 속지 마시고 아무쪼록 신한줄기로 이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5. 5050이다.

이 세상은 5050입니다. 남자라 해서 우쭐대고 여자라 해서 종 부리듯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옛날에는 남존여비사상이 강했지만 요즘은 여존남비입니다. 여자 분들이 더 단가가 셉니다. 요즘 남자들 중에는 여자에게 얻어맞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라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현재는 전국적으로 땅값이 너무 오릅니다. 땅은 여자 아닙니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때 가정에 평화가 있는 것이고 모든 게 잘 되어져 옵니다.

친필에

높은 산에서 자라난 나무나 골짜기에서 자란 나무나 모두 다 같은 것 (3-125)

높은 산에서 살고 있거나 골짜기에서 살고 있거나 같은 혼인 거야 (13-45)

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나는 회장이니까, 회장사모니까 하면서 군림하려는 것은 교만의 극치입니다. 회장이나 사모는 어떤 어렵고, 난감한 일에 부닥치더라도 스스럼없이 손발 걷어붙이고 커버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좀 더 비약하자면 교회를 위해서, 산하와 신자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가 되어야 진정한 용재입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지금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나를 없애고 나를 비우고 남의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옳은 성직자가 됩니다. “감히 니가 나를 보고!” 또는 니가 나를 시켜?” 하는 마음은 안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고구마나 감자는 제철에 수확을 하면 열매가 됩니다. 그러나 봄에 밭에 나가서 심으면 씨앗이 됩니다. 열매인 동시에 씨앗인 것입니다. 씨앗 안에 열매있고 열매 안에 동시에 씨앗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일체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쌀이든 무엇이든 세상만사는 그렇습니다. 절대 니가 낮다, 내가 높다하는 편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제가 어릴 때 들은 부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바랍니다. 부처님 제자가 아주 많았답니다. 그 제자 중에 마팅거라는 제자가 아주 뛰어났답니다. 말도 잘 듣고,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제자가 시기심에서 부처님께 고자질을 했습니다. “마팅거는 천한 집안의 자식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보게, 그런 말 말게나. 사람이 태어나면서 귀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없고, 천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귀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릴 때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까 친필에서 인용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나는 장애인이고 당신은 비장애인이라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든요. 장애인이라도 어느 한 곳이 불편할 뿐이지 우리와 모두 다 똑같은 혼이고 넋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아우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6. 육체적인 접촉을 많이 하자-스킨십을 많이 하자.

잘못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 스킨십을 많이 하자는 것입니다. 매달 항상 제가 17일에 먼저 고성으로 내려옵니다. “내 갔다 올게. 수고하소!” 하면서 오는 데 악수라도 하고 오고 싶습니다. 그것이 육체적 접촉을 하는 겁니다. 배웅하는 아내에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돌아서 내려오면서 , 손이라도 잡아주는 건데.’ 하고 후회를 해도 늦습니다. 문 닫고 들어간 뒤니까요.(웃음) 어떻든 스킨십을 많이 하자는 것입니다. 지하철이나 길가에서 보면 젊은 남녀간에 사랑표현이나 애정표현을 많이 합니다. 저는 그게 잘 안됩니다. 부부간에 서로 격려로 토닥거려 주는 것이나 손을 잡아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좋은 말, 아름다운 미소로 칭찬해 주며 서로 손도 잡아보고 포옹도 해 주고 하는 스킨십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7. 70%에 만족하자.

너무 많은 것을 취하면 소화불량이 되고, 비만과 고혈압, 당뇨병이 옵니다. 고지혈증 같은 병도 오고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저도 다른 건 없는 데 고지혈증이 있어 약을 먹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적게 먹으려고 하는 데 고성에 오면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습니다. 그렇지만 무병장수하려면 7부 정도 섭취하는 게 매우 적당합니다. 술도 적당량을 마시면 약이 되지만 과음하게 되면 인사불성이 되어 몸에 독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일생을 망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습니다.

 

8. 팔자 타령하지 말자.

여러분이 1~9까지 써 보세요. 8을 제외하고는 다른 숫자는 모두 자기 뜻대로 바꿔 쓸 수가 있습니다. 8자만은 고쳐 쓸 수가 없습니다. 세워도 8, 눕혀도 8 어떻게 해도 8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신세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에 전념하면 서서히 팔자가 바뀝니다. 우리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팔자를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 천리교 신앙인들은 어버이신님의 품속에 안겨 꾸준히 신앙에 정진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닥치는 어떠한 괴로움이나 고통에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타나는 리를 순직하게 받아들여 나아감으로써 어떠한 괴로움이나 고통도 도리어 기쁨으로 바뀌게 하고 팔자도 바뀌게 합니다. 단노는 전생인연의 참회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참으로 단노하는 마음이 되면 전생의 인연이 닦여 팔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팔자 타령할 필요가 없습니다.

 

9. 구질구질한 일들은 다 잊어버리자.

부부간에, 친구간에, 이웃간에 좋지 않는 지나간 기억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을, 가슴 속 깊은 곳까지 각인되어 있던 지난 날 좋지 못했던 기억들을 다 쓸어내자는 겁니다. 쓸어 내고 쓸어 내고 해서 내가 먼저 다 비우고, 숙이고 나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저도 안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꽁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꽁해 있으면 얼굴에 표가 납니다. 그렇게 꽁해있지 말고 잊어버리고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되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비워있는 그릇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비워있는 그릇이어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담을 수도 있고 채울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무얼 담아야겠는데 그릇마다 가득 차 있으면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땅바닥에 놓아야 하죠. 좀 더 좋은 것이 있어도 담을 수가 없으니까 빈그릇이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은 잊어버리시고 지우십시오. 우리는 깨끗한 빈그릇이 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저도 노력할 것입니다.

 

10. 10%는 나누며 살자.

잘못 들으면 기독교 십일조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요즘 보면 나만 나만하는 풍조가 많습니다. 나를 버려야 참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제인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아무도 안 볼 때, 혼자 있을 때 모습이 자기 참 모습입니다. 남이 볼 때는 아는 척, 잘하는 척, 있는 척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안 볼 때 하는 행동이 참 자기 모습입니다. 남 앞에서는 돋보이기 위해 미화하고, 가장을 합니다. 항상 우리는 참 나를 찾아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도회지 사람들은 마음수련원이라는 걸 접해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거기 가서 일주일 가서 있다 왔습니다.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이 천리교에서 지 마음을 못 고쳐서 거기 갔나 하실지 모르지만 어떻게 마음 수련을 하는가 싶어 궁금해서 다녀왔습니다. 거긴 8과정까지 있는데 1과정을 하고 왔습니다. 8과정을 거치는 데 6개월이 걸리는 데 45십만원이 듭니다. 1과정을 밟아보았는데 거기는 무조건 자기 자신을 죽여 버리는 과정을 밟습니다. 내가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있으면, 그 수련원의 마음수련이 되지 않습니다. 8과정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죽여 없애는 것입니다. 눈은 카메라입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저장을 합니다. 저 사람은 사기꾼, 나쁜 사람, 저사람 진짜 칭찬 받을 사람, 좋은 사람, 여러 각도로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에 저장합니다. 그것을 자꾸 지워서 참 자신을 알게 되고 내 스스로가 선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제가 3과정까지 해 보려고 했는데 어버이신님게서 신상을 주셔서 1과정 후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니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뒤에 2,3과정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지만 안 갔습니다. 그 과정은 나를 없애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내가하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 지도말씀에도 내가 내가 하는 것을 엷은 종이로 앞을 가린 것과 같은 것, 앞을 보고 있지만 잘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항상 나를 버리고 항상 상대에게 베풀고 도우려는, 상대의 아픔과 괴로움을 내가 끌어안고 같이 가겠다는 마음이 10% 나누고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서로 도우며 나누며 살아갈 것을 당부드리면서 두서없는 말씀 마칠까 합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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