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교조탄생의 날 월차제 신전강화

 

교조님 일대기를 둘러보면서

 

 

이상봉(고성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교조탄생의 달 월차제에 참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교조님 일대기에 관한 것을 둘러보면서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올해는 교조님이 탄생하신지 211년째 되는 해입니다. 교조님은 1798년 음력 418일 야마베군 미시이 삼마이뎅이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마을은 천리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는 곳이죠.

7살 때 아버지한테서 읽고 쓰기를 배웁니다. 그리고 9살부터 12살까지 3년 동안 절에 있는 글방에서 공부를 배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절에 있는 글방에서 3년 동안 공부한 영향이 교조님한테 아주 크게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정토종을 신앙하게 된 것도, 비구니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절에 있는 글방에서 3년 동안 공부한 것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열두 살 때 재봉질, 베짜기를 두 사람 몫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12살 때 정토화찬이라는 부처님을 찬양하고 극락세계(정토)를 찬양하는 노래를 외워 불렀습니다. 그때부터 비구니가 되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13살 때 나카야마씨댁 젠베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젠베씨가 23, 교조님 13살로 10살 차이입니다. 16살에 시어머니가 살림을 다 맡기게 됩니다. 그것은 교조님이 굉장히 현명하고 일처리를 아주 잘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살 때 선복사라는 절에서 오중상전이라는 계를 받게 됩니다. 오중상전이라는 것은 정토종의 교의를 압축시켜 놓은 법회를 계속 들으면 일종의 속가 제자로서 계를 주게 되는데 천리교로 말하자면 별석같은 것으로 오중상전을 받게 됩니다. 19살 때 집에 있는 하녀에게 독살을 당할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음식에 독을 넣어서 독살하려 한 것이죠. 그 때 교조님은 시집오셔서 6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하녀와 가까이 하게 됐는데 그 하녀가 본처로 앉고 싶어서 이일을 벌이게 된 것이죠. 그러나 교조님은 하녀를 나무라기 보다 이것은 신불이 내 뱃속을 청소하게 해 주시는 거야 라고 하셨죠.

23살 때 시아버지가 62세로 출직, 24살 때 장남 슈지를 낳게 되고, 26살 즈음에는 집의 하인 중에 아주 게으른 하인을 덕화시키는 이야기가 교조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 하인을 볼 때마다 거듭해서 참 수고하십니다. 부지런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처음에는 더 거드름을 피웠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자진해서 열심히 일하는 하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에 찾아온 여자거지에게 음식을 먹이고 아이에게는 젖을 먹여서 보내는가 하면 쌀을 훔치러 온 도둑을 잡고도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쌀을 들려서 보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줘서 보낸다.”는 말씀을 남겼죠.

28살 때 장녀 마사가 태어나고, 30살 때 차녀 야쓰가 태어나게 됩니다. 31살 때 시어머니 출직하게 되고 그 즈음 옆집 아이를 맡아서 기르게 됩니다. 마침 그 아이가 천연두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불에게 이 아이를 살려 주면 자식 둘 목숨을 바꾸고, 그것도 모자라면 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기원을 해서 도움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2년 뒤 33살 때 야쓰가 네 살 때 출직하게 됩니다. 그 이듬해 34살 때 셋째 딸 하루를 출산하고 이어서 그 다음해에 남편 젬베씨가 쇼야시키 마을 대표를 맡게 되고 36살 되던 때 넷째 딸 쯔네가 태어납니다. 이 넷째도 3년 있다가 교조님 38살 때인 3살로 출직하게 됩니다. 이것은 교조님이 31살 때 맡아 기르던 아이가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이 둘을 바치겠다는 기원이 현실로 나타난 모습이었습니다.

마흔 살 때 1026일 밭농사를 하다가 슈지가 다리가 아프게 됩니다. 그로부터 일년 동안 수차례 제액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그해 막내딸 고칸을 낳습니다. 고칸은 한자로 소한이라고 하는 데 절기가 소한에 해당되는 날에 막내딸을 낳았기 때문에 소한이라 짓고 발음으로 고칸이라 했습니다. 고칸 출생에 대해서는 둘째언니와 넷째언니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혼으로써 출직하고 환생하고 다시 출직하고 환생해서 막내 고칸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뒷날 교조님이 말씀하셨죠. 두 사람이나 출직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혼을 출직하고 환생시켜 다시 출직하게 해서 막내로 태어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막내딸은 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두 번이나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젊은 신이라 하고 교조님과 같이 어버이신님의 계시를 받는 입장으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41살 때 드디어 교조님은 허리, 남편 젠베은 눈, 아들 슈지는 다리에 격통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1023일 오후 10시에 수험자를 불러 제액기도를 올리게 되고 마침 신장대 잡을 사람이 없어서 교조님이 대신 잡았는데 그 때 천리왕님이 내려오셔서 계시를 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월일의 현신이 되신 이후 약3년 동안 창고에 들어가 계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어떠한 리도 자세히 깨우쳐 주시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43세 때부터 가난에 빠져라는 말씀에 따라 시집올 때 자기가 가져온 물건을 다 베풀었습니다. 교조님은 친정집도 잘 살아서 시집올 때 세 수레의 혼수를 가져 왔다고 하는 데 그 가재도구를 다 베풀어버립니다.

44살 때 자신의 몸에 순산시험을 하게 됩니다. 자는 동안에 나온다. 어디든 가선 안돼.”는 신님 말씀이 있은 후 그날 밤에 저절로 유산하게 됩니다. 이것을 순산시험이라고 합니다.

45세 때 지붕을 헐어라.’는 신님 말씀이 있어서 지붕을 헐게 됩니다. 지둥을 헌다는 것은 기와를 덜어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비가 올 때 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카야마집안은 상당히 격식있고 재산이 있는 집안으로 그 권위를 상징하는 이중 지붕이 있었는데 그 이중 지붕을 걷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권위를 없애고 평지붕으로 하게 된 것이죠. 그 때부터 친척들의 반대가 시작됩니다. 친척들이 맹비난이 시작합니다. “며느리 잘못 들여 집안 망친다.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렸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친척들이나 마을 사람들의 왕래가 일체 끊깁니다. 그 때 교조님은 굉장히 괴로워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신님께서는 서둘러서는 안돼. 서둘러서는 안돼는 말씀을 귓가에 속삭여 주셔서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51세 때 어버이신님께서는 교조님께 바느질, 재봉을 가르치게 하고, 슈지는 읽고 쓰기를 가르치게 합니다. 55살 때 하루가 옆 동네 가지모또 소오지로오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56세 때 남편 젠베가 66세로 출직하게 되는 데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나까야마 집안의 안채를 헐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그때가지 남편이 살아 있어서 차마 안채를 헐어버리지 못했는데 남편이 출직하자마자 바로 안채를 헐게 됩니다. 그리고 막내딸 고깐을 오사카에 보내서 신명을 전하게 합니다. 56세부터 본격적으로 가난에 떨어지고 모본을 향한 일을 가일층 더하게 됩니다.

57세 때 셋째 하루에게 순산허락을 해서 무사히 안산하게 합니다. 출산하는 그날 큰 지진이 일어나 벽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가운데도 무사히 잘 순산하게 됩니다. 그해 장녀 마사가 시집갔습니다. 그 때는 나카야마가에는 재산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전 해 남아있던 세 정보 전답을 전당포에 잡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그래도 하루가 시집갈 때는 남편도 살아있고 재산도 있어서 가재도구를 갖춰서 보냈죠. 그런데 늦게 시집간 맏딸에게는 아무것도 줄게 없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너에게는 아무것도 줄게 없으니 목숨을 줄게.”하셨다고 합니다. 교조님의 자녀는 51남입니다만 둘째, 넷재 딸은 어릴 때 요절을 하고 셋째 오하루는 42살 출직, 고칸도 39살에, 장남 슈지도 먼저 출직했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교조님보다 먼저 출직하게 되는 데 은신 이후까지 첫딸만 남아 오래 장수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조님 60세 때 처음 신자가 쌀 네 홉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61세 때 처음으로 외부에서 순산허락을 받으러 오기 시작합니다. 시미즈 유끼라는 부인이 순산허락을 받으러 왔는데 처음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때 왜 순산하지 못했습니까?”하고 물으니 의심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도 순산허락을 받으러 터전에 가면 일러주는 이야기 중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보통은 티끌이나 인연자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순산 허락을 받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티끌을 쌓고 인연을 지었을 지라도 그것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어버이신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반드시 도와주신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 일화의 주인공인 유끼라는 부인이 교조님 62살 때 다시 순산허락을 받고 안산을 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순산허락을 계기로 입신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교조님 66세 때 ()을 만들어라고 하셨는데 강을 만들 정도면 꽤 많은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67세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는 데 그 당시는 교조님이 주변의 마을에 직접 가 머무시면서 구제 활동을 하셨습니다. 한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거리의 마을에 가서 며칠, 길게는 몇 십일 머무시면서 근처 사람들에게 구제활동, 즉 순산허락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순산허락에 의해 많은 사람이 모여오자 67세 때부터 수훈을 내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채, 어폐, 거름 수훈의 리를 내려주시게 됩니다. 1026일에 최초의 근행장소를 상량하고 건물 짓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람이 많이 옴과 동시에 여러 가지 간섭과 박해를 받게 됩니다. 의사들이 불법의료행위로 소송을 걸게 됩니다. 산에 있는 수험자 승려들도 방해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이 병이 나면 치료를 해주거나 기도를 해서 병을 고쳐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근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쇼야시키의 산신님이라 소문이 난 교조님께 다 가버리니 천리 일대의 의원이나 사찰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송을 걸고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68세 때 30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그때는 신자들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 때 이단 사건이 발생합니다. 천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스케조오라는 사람이 교조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불이다. 그래서 쇼야시키는 불의 집터이다. 나는 남자이니까 물이고 그래서 여기는 물의 집터이다. 물은 불을 이긴다. 그러니까 내가 더 강하다. 이쪽으로 오면 더 많이 도움받고 수호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스케조오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30일간 단식을 한 후 찾아가서 납득시키고 철수하게 만듭니다.

69세 때 악한 것을 제거하고 도와 주소서 천리왕님이시여라는 노래와 손짓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천리왕님이시여라고 반복하며 근행을 올렸다고 합니다. 69세 때 처음으로 악한 것을 제거하고노래와 손짓을 가르칩니다. 69세 때 가지모또가에 시집간 오하루가 초대진주님인 신노스케를 낳게 됩니다. 그 전에 셋째 딸 오하루가 시집가서 장남인 가메조오를 출산했는데 교조님은 그 장남을 우리에게 양자로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냥 인연을 가진 애가 아니라 태초의 혼의 인연을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이쪽으로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가지모토 집에서는 거절했죠. 장손인데 양자로 줄 수가 있겠습니까? ‘안 된다. 안 보낸다했더니 다음해 출직해 버렸습니다. 몇 해 뒤 셋째 아들로서 신노스케가 태어났는데 장남을 달라하면 인간생각으로 안 주기 때문에 셋째로 다시 태어나게 해서 받아들였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69세 때 그런 와중에 수험자들이 와서 칼로써 북을 찢고 다다미를 찢고 행패를 부립니다. 친필에 칼날같이 험한 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정말 칼날이 보이는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70세 때 신악가 1~12장까지를 팔 개월 걸쳐 노래를 만드시고 거기에 3년 동안 손짓을 만들어 가르쳐주십니다. 70세가 되는 해부터 신악가 손춤을 가르치게 되는 데 뒷날 술회하신 내용 중에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남 앞에 못 나서는 성격이지만 나이 70세 때 일어나서 남 앞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71세 때 기록에는 손춤을 연습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난동을 피웠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참배자가 너무 많아서 마을 사람들이 볼 때 민폐가 되어서 생업에 지장이 줄 정도로 많이 드나드니까 집터로 와서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72세 때 친필 1,2호 집필하시고 그해 38일 단식하시고 장남 슈지와 마쯔에를 결혼시킵니다. 그 때 장남 슈지님은 이미 아이까지 두고 있는 몸이었지만 교조님은 한사코 반대했습니다. 친필에서도 나쁜일 치우고 젊은 아내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9세 슈지님과 19세의 마쯔에님을 결혼시키는 데 이것은 혼의 인연으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는 비웃겟지만 혼의 인연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신은 좋아한다고 친필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세상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해부터 어공을 내려 주게 되는 데 처음에는 미수가루로써 내려줍니다. 73세 때 잠깐 이야기, 팔수를 가르쳐 주십니다. 75세 때 75일간 단식을 하게 됩니다. 그해 42세인 오하루가 출직하게 됩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그 당시 오하루의 남편 가지모토 소오지로가 말을 거칠 게 했습니다. 오하루의 오빠 슈지님이 잔치집에서 자기에게 기분상하는 말을 해 체면이 구겨졌다고 해서 술을 먹고 자기 아내에게 너 같은 건 죽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있은 그 이듬헤 오하루는 출직하게 됩니다. 그 뒤에 소오지로오가 교조님께 찾아와서 신세한탄을 하자 교조님께서는 지나가는 말로 네가 그렇게 해 달라 했잖아. 그대로 해 주었다. 막말 끓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고 했습니다. 교조님 자녀들의 출직은 전부다 지도말씀이나 친필이나 교조전일화편으로 그대로 다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냥 예사롭게 출직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75세 때 별화별과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월일이 몸에 드셨기 때문에 그냥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른 곳이 있는 아궁이에서 따로 밥을 지어서 먹어야 된다.’하십니다. 거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합니다. 76세 때 본석님에게 지시해서 감로대 모형을 만들게 하고 그해 큰아들 슈지가 마을의 대표자가 됩니다. 77세 되던 해 친정오빠에게 신악탈을 만들게 합니다. 교조님의 형제는 23녀입니다. 오빠, 장녀가 교조님, 여동생 둘,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 오빠에게 신악탈을 만들게 합니다. 다 만들자 그것을 가지러 가서 생가에서 교조님이 직접 쓰고 신악탈 시연을 했다고 합니다.

77세 되던 해부터 본격적 탄압이 시작되는 데 그때 오야마토 신사 사건이라든지, 야마무라 어전에서 취조를 받고 손춤을 춰 보이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78세 때부터 구류에 관한 기록이 계속 나옵니다. 은신하시기 전 해인 89세까지 18번에 이르는 구류기록이 나옵니다. 짧게는 하루에서 수십일 구류기록이 나옵니다. 그 해 78세 때 감로대 노래를 가르치고 11가지 근행의 손짓을 가르칩니다. 11가지 근행의 손짓이란 감로대근행을 올리는 신악탈을 쓰고 올리던 손짓이 다 틀립니다. 그 당시의 11가지 근행의 손짓을 다 가르칩니다.

79세 때는 신자들이 너무 많이 오니까 장남 슈우지가 숙박과 목욕업 허가를 받아 냅니다. 너무 많이 와서 묵을 수 없고 여러 가지 탄압을 받으니까 숙박·목욕업을 하면 사람들이 숙박이나 목욕하러온다는 구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나중에는 지도말씀에 의해 치우게 되는 데 지저분해서 견딜 수 없어서 치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80세 때 여자악기를 가르칩니다. 12, 9, 8살 되는 아이들에게 여자악기를 가르쳐 주시고, 그해 40일 동안 구류를 당하게 됩니다. 구류를 당하게 되는 이유는 어공 가운데 마약을 넣었다. 몰핀이 넣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먹고 나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해서 고소를 당하게 됩니다. 미수가루 가운데 마약을 넣었다고 고소를 당하고 위생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그해 별사탕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 별사탕도 고소를 당해서 그 다음 씻은 쌀로 바꾸어서 지금의 형태로 어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해에 지복사에 소속된 전륜왕강사를 만듭니다. 탄압을 피해 보려는 뜻이었습니다. 전륜왕은 불법에 나오는 부처의 한 이름입니다. 그해 교조님의 외손자 신노스케가 슈지의 양자로 집터에 들어옵니다. 뒷날 초대진주님이 되는 것이죠. 그 이듬해 84세 때 슈지가 출직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친필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83세에 지복사의 말사로 전륜왕강사출원을 해 허락을 받는 데 교조님께서는 극구 말리시면서 그런 일을 하면 숨이 끓어진다고 하면서도 말렸습니다. 그렇지만 슈지님은 어머니인 교조님이 구류를 사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생각으로써 전륜왕강사를 허락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슈우지는 출직해 버립니다. 그래도 그것이 신의 뜻을 배반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84세 때는 감로대를 만들 돌을 발견하여 그것을 옮기게 하는 것도 이때 일입니다. 85세 때 그 돌로써 이단까지 쌓은 감로대를 몰수당하게 됩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신악가를 고칩니다. 그전에는 신악가 3절이 악한 것을 제거하고 도움을 서두르니 온세상 마음 맑히는 감로대라 했는데 그것을 마음 맑혀 감로대로 바꿉니다. 감로대가 있으므로써 마음이 맑혀 준다는 뜻이었지만 이제 감로대가 없어졌으니 마음이 맑아지면 온전한 감로대가 세울 수 있다는 뜻으로 바꾸게 됩니다.

85세 때부터는 근행의 완성을 위해 막바지 박차를 가해 굉장히 급하게 서두르시게 됩니다. 그해 10월에는 15일 동안 매일 근행을 올렸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계속 근행의 연습을 서두르시게 됩니다. 그리고 교조님 연세 85세 되던 해 친필 전권을 쓰시게 됩니다. 1-171711수를 85세까지 다 쓰십니다. 86세 때는 휴식소로 거처를 옮기시게 됩니다.

87·8·9세에 걸쳐서 투옥과 구류가 계속 지속적으로 거듭됩니다. 그 당시 나라 감옥소에 주로 투옥되실 때가 많았는데 87세 때 기록을 보면 교조님이 투옥당하고 나오실 때는 마중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나라에서 천리까지 인력거로 줄을 세워서 다 이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거리는 11킬로 정도인데 그 안을 사람들로 이어서 채워놓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마중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교회 독립 운동이 본격화됩니다. 교조님을 투옥하는 일이 점차 집중되고 더 심해지니까 본격적으로 교회 독립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교조님 88세 때 외손자인 신노스케가 처음으로 출원했는데 신도산하 6등교회로 인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89세 때 218일부터 12일간 마지막 노고를 겪게 됩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근행의 손짓을 악기와 도구를 갖추어서 연습하도록 계속 재촉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듬해 11일 교조님께서는 목욕탕에서 나오면서 비틀거렸습니다. 이때 이것은 세계가 움직이는 증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깨우치시게 되는 데 그때부터 받은 문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법률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님 의도대로 근행을 올리려 해도 세상에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률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조님은 근행을 올리라고 하시지만 세상에서는 근행을 올리면 교조님이 잡혀가십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는 뜻을 여쭙자 [자아 자아 월일이 있어서 세계가 있고, 세계가 있어 온갖 것이 있다. 온갖 것이 있어서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서 법률이 있다. 아무리 법률이 있어도 마음작정이 제일이야.]라는 말씀을 내리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든지 의심이 많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불안과 의심을 마음작정으로 헤쳐가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조님 90세 때 양력 218(음력 126) 악기를 넣어서 근행을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들으시면서 오후 2시에 은신하셨습니다.

일대기를 되돌아보면 한 인간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려면 교조님 인생이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첫째 자녀의 문제를 봐도 교조님은 15녀의 자녀를 두셨습니다. 그 중 다섯을 먼저 보낸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자랑하거나 내놓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조님은 세상 인류의 어머니 혼을 지니신 분이셨고 줄곧 그런 이야기를 해 오셨습니다. 교조님 자녀들이 출직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르침으로 깨우쳐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교조님 탄신 211년째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만약 교조님처럼 90세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지금 교조님 연세에 해당하는 나이에 살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교조님 모본을 비추어 보면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얼마만큼 역할을 다하고 있는 지, 어떻게 하면 교조님 모본을 따라갈 수 있는지를 각자 각자 깨우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리교 신앙은 나를 버림으로서 내가 도움받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어떤 수호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십전 수호에 보면 3번째가 결합수호의 리이고 7번째가 절단수호의 리인데 결합과 절단을 둘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끓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교조님의 모본에서도 보면 여러 가지 고비가 있습니다. 그 고비를 마음작정하고 끊음으로써 새로 연결된 길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큰 고비가 여러 번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인생의 아주 큰 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인생에서 아주 큰 고비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 마디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전환이 되는 기회입니다. 마디에서 이겨내는 슬기를 교조님 모본 속에서 찾아서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수호의 세계를 우리 눈으로 깨달아서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상식과 비상식이라 말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간혹 비상식적으로 신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술을 먹어도 천리교 신앙하기 때문에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는다든가 안 잡혀 간다는 것은 굉장히 비상식적인 신앙입니다. 한편 천리교 신앙을 하기 때문에 병원에 안 가도 낫는다하는 것이 굉장히 비상식적인 이야기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님을 의지해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수호를 받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우리는 비상식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신님께 의지하고 교조님이 걸어가신 노고의 길에 근거해서 세상 상식으로 도움받기 어려운 것도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