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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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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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즐거워지는 방법

이 상 봉(교회장)

 

고성교회 춘계대제에 많이 참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동안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작년 12월 초에, 일본 후쿠오카 교구에서 실시하는 기초강좌에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기초강좌라 하는 것은 천리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천리교 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앞으로 한국에서도 개최할 예정인데 그 앞서서 견학을 간 것이죠.

천리교를 모르는 사람이 천리교는 과연 어떤 종교입니까라고 질문을 해 오면 지금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참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교조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해도 교조모본 90년에 걸친 것인데 한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원전만 하더라도 친필 1711수가 있고, 신악가도 좌근 1·2·3절과 또 손춤도 팔수부터 12장 까지 13종류가 있죠. 또 지도말씀도 20년 간 내린 지도말씀이 종류로는 21,000가지가 됩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단시간에 줄여서 이야기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천리교는 실천종교라고 하지만은 가르침을 모르고 실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리를 잘 설명을 하더라도 설명하는 사람이 신앙적 태도가 없다든지 혹은 천리교 교리대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남들한테 아무런 느낌도 전해 줄 수 없습니다. 교리 설명은 잘 못하더라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진지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신앙을 권한다는 것은 실천 없이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이나 엘지같은 대기업에서 물건을 판다고 생각해 봅시다. 많은 사원들 중에서 어떤 회사원이 설사 개인적으로 인격이 다소 뒤떨어지거나 사람 됨됨이가 보잘것없고 성실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기업 물건은 잘 팔립니다. 왜냐하면 인지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관계없이 어떻든 상품은 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는 다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교리가 훌륭하더라도 전하는 사람의 태도가 불성실하다면 천리교를 신앙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신앙을 전한다는 것은 교리나 교의 내용을 설명을 잘 하는 것보다는 신앙하는 자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인격과 인간적인 매력에 이끌려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해 보면 초대회장님에게 이끌려서 입신한 경우가 많습니다. 교리보다는 사람의 매력에 이끌려서 신앙을 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대 진주님은 천리교란 어떤 종교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를 봐 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2대 진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만한 신앙적인 태도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상생활 태도가 교리에 따라 살고 있고, ‘나를 보면 천리교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신앙인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신자분이 초대 때 입신했습니다. 그 분은 나는 입신 당시에 천리교 교리는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교회장님의 모습이나 태도를 보고 이분을 따라가면 틀림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신앙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보시기에 교회장님은 어디를 보더라도 존경할 가치가 있는 신앙자였다는 겁니다. 인격이나 성실한 태도가 사람을 이끌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와 반대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리는 잘 설명하지만 평소에 하는 것을 보면 별로 따라가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천리교에서는 신앙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천리교 교규에 보면 신앙인이라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얼마 전에 한 조사결과에서 한국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인구수보다 많다고 합니다. 불교 신자수가 39백만, 개신교 신자수가 천 수백만, 이런 식으로 발표를 했는데 모두 합하면 한국 전체 인구보다도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일년에 한번 절에 와서 절하면 신자라 하고, 여타 종교에서도 교회만 오면 신자라고 부르고 있는지 모르지만 천리교 교규에는 이 길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신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천리교 신앙의 핵심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매일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예전에는 양기(陽氣)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즐거움으로는 양기를 표현하는 데 부족합니다. 양기에는 즐거움보다 따뜻하고 밝은 의미가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괴롭고 슬픈 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즐겁게 사는 건 천리교 신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요즘 돈 잘 벌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이길에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괴롭고 어려울 때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괴롭고 어렵지만 용솟음치면서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한탄하고 슬퍼하고만 있으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난이 있는 가운데도 양기로운 마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이길에서 가치있는 신앙의 태도라고 봅니다.

양기 반대는 음기 혹은 침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신기하게도 남들에게 전염이 잘 됩니다. 밝은 사람, 용솟음치는 사람 곁에 가면 저절로 밝아집니다만, 침울하고 음기로운 사람에게 가면 바로 침울해져 버립니다. 결혼식 같은 축하할 날에도 음기로운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잘 즐거워지지가 않습니다. 양기로운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남들에게 신앙을 잘 전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교조님이 과연 양기로운 분이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조님은 과연 얼마만큼 즐겁고 양기로운 사람이었을까요? 실제로 교조님은 반대로 절대로 양기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만 별석말씀에 보면 교조님이 어릴 때 아이들이 밖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을 때 나는 부모님 곁에서 있었지. 밖에 나가서 놀지 않았다.”했다든가, 교조전에는 결혼 하실 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나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정토를 동경하여 비구니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설득을 당해서 결혼을 해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염불을 하게 허락해달라는 조건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시집간 나이가 13살인데 요즘으로 보면 초등학교 6학년으로 그 나이는 뭐든 재미있고 즐거운 나이죠. 인생에서 보면 반빡반짝 빛나는 나이인데 그 나이에 불단 앞에 앉아 염불을 외운다는 겁니다. 물론 염불을 외운다고 침울한 사람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보통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밝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결혼이후 시집가 살다가 친정나들이를 갈 때는 입은 옷은 젊은 여자들이 입는 밝은 옷을 입었지만 머리는 십대인데도 수수하게 중년부인처럼 꾸미고 가서 십대 새댁이 어쩜 30대 같다며 마을사람들이 쑥덕거렸다고도 하죠. 여러 가지 면에서 젊은 시절 교조님은 결코 밝고 즐거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교조님이 근행을 만드셨는데 그 노랫말 가운데 팔수 마지막 구절에 모든 인간을 조속히 도울 것을 서두르므로 온세상 마음도 용솟음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이 용솟음쳐야 온 세상 사람들이 구제받는 신앙이 된다고 가르치시느가 하면 언제나 도움을 서두르시니 조속히 즐거웁게 되어오너라고 신악가 4장 다섯에도 즐거운 마음이 되면 도움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친필 11-53수에서는 지금까지 마음을 단단히 바꿔서 즐거움이 가득한 마음이 되도록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음기로운 마음을 바꿔서 즐거운 마음이 되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보통사람이 보면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고 음기, 즉 침울했던 교조님이 구제받기 위해서는 양기롭게 되어오너라, 즐겁게 되어오너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교조님이 월일의 현신이 되시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펼치시면서 근행을 가르치실 때는 아주 양기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즐겁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즐겁게 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기록에 보면 교조님의 자태가 어릴 때는 아주 내성적이고 인상도 딱딱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만년이 되어 갈수록 굉장히 온화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침울하고 딱딱한 표정이 밝고 따뜻한 성품이나 인상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천리교에서 올리는 근행은 악기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또 춤까지 추는 것으로 종교의 형식으로는 정말 양기로운 밝고 따뜻한 의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행을 올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친필에 무엇이든 즐거움이란 모두 근행이야 (7-94)이라 하시면서 근행을 올리면 무엇이든지 즐겁게 되어져 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큰 목소리로 신악가를 부르고 손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마음이 밝게 바뀌어 옵니다. 우리 마음은 평소에 여러 가지 일상생활의 잡일에 시달리기 때문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어두워지기 십상입니다. 근행을 보더라도 그런 마음이 일순간 한꺼번에 모두 밝게 변하기가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근행 보는 순간에는 그런 어두운 일들을 잊게 되고 마음이 밝아져서 가볍게 됩니다. 근행을 통해서 마음이 가볍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특히나 침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교조님이 즐거운 근행을 만들고 즐거운 삶이라는 가르침을 펼쳐 주셨다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교조님 자신이 근행으로써 즐겁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께서 나는 어린 아이 때는 침울한 성격이었다. 남들 앞에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조금도 나갈 수 없었지만 나이 70이 넘어서는 서서 춤을 추게 되었지.”고 하셨습니다. 교조님 자신이 근행을 통해서 마음이 밝아진 것을 증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무라카미 가즈오라는 천리교 용재로서 유전공학을 전공하신 박사님이 당뇨병과 웃음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많이 웃게 되면 혈당치를 약으로 조절하지 않아도 치료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당뇨병뿐만 아니라 고혈압에도 웃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그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대부분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없애야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기정사실이 되어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이란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마음이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주변을 살펴봐도 장수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분들은 대부분 다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집착하지 않고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건강하고 장수를 한다는 것이죠.

천리교에서 말하는 즐거운 삶이라는 것은 죽어서 가는 천국처럼 현실을 떠나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즐거운 극락을 실현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교조님은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옷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부자유가 없는 집터야. 이것이 세계의 부자집터야 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인 경지에서 풍부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도 마음은 항상 용솟음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을 즐거운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즐겁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걱정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즐거움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 중에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걱정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성장하면 인간관계가 많아집니다. 인간관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걱정도 늘어납니다. 인간관계가 많아지면 챙겨줘야 할 배우자도 생기고 배우자에 연결된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그 사이에 자녀가 생기면 자라면서 사고라도 만나지 않을까,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학교 공부는 뒤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상대방 배우자와 제대로 행복하게 잘 살까, 결혼생활은 원만할까 걱정합니다. 자녀의 배우자의 건강도 걱정하게 되고 또 손자가 나면 손자까지 걱정하게 됩니다. 또 돈을 들여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까지 걱정을 해야 합니다. 거기 딸린 식구들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교회장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교회에 이어지는 신앙하는 신자분들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관계가 아주 넓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넓다는 것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인간관계가 없고 천애 고독한 사람은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겠죠. 그저 자기 혼자 몸만 생각하면 되는 사람으로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누구나 걱정할 일이 있습니다. 걱정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습니다. 걱정을 잊는 그 순간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될 때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풀어갈 실마리가 생겨나게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용솟음치고 즐거워지는 방법은 근행을 올리고 히노끼싱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급료를 받고, 돈을 받고 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빨리 하고 끝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히노끼싱은 돈을 받지 않더라도 하며는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근행과 히노끼싱을 통해서 우리는 즐거운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신악가 7장 하나에 한마디의 말씀도 히노끼싱 가르침만이라도 전하여 두자 는 말씀이 있듯이 남을 전도하고 구제하는 것도 히노끼싱의 일환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근행에 충실해야 하고 남을 전도하고 구제하는 데 정성을 바쳐야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천리교 교리를 알고 남한테 전한다는 것은 교리를 자세하게 잘 설명해서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태도나 매력에 끌려 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근행이나 전도구제에 정성을 쏟게 되면 저절로 신앙적인 매력이나 성인됨이 자라나서 자연스럽게 끌려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118일부터 전도청에서 1개월 과정의 한국수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3개월 강습을 받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기간을 단축해서 빡빡한 일정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수양회를 개최하기로 논의할 때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습니다. 과연 몇 명이나 오겠냐는 말들도 많았고 처음에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68명의 수강생들이 모여왔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교회는 23명이나 등록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현저하게 많은 강습생을 내게 되어서 정말 여러분들이 수양과생을 배출하는 데 마음을 내어 주셨구나 싶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께서 자녀분의 대학입학을 말씀하셨습니다만 교회로서는 혹은 용재로서는 수양과생을 배출해 내는 일이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에 버금가는 즐거움이라고 여기면서 노력해 나간다면 앞으로 전도가 안 되어서, 혹은 수양과생이 없어서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내 일로 생각해서 앞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당부 드립니다.

앞으로 매년 1월과 7, 2회 개최할 계획이니 내 일처럼 여겨 많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기존 강습소에서도 3개월 강습을 계속 하고 있으니 3개월 강습을 할 수 있는 분들은 반드시 3개월 강습에 가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어 갈 수 없는 분들은 1개월 수양회를 가시면 되겠습니다. 권유하기 따라서 3개월 강습이나 1개월 수양회를 선택할 수 있으니 길이 넓어지고 더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해는 기초강좌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전도청에서 개최하지만 차츰 각 지역으로 흩어져서 교구에서도 개최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런 기회들을 적극 활용해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수강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려운데 되겠나, 천리교가 앞으로 어찌 될까하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든 해 보자, 지금부터 다시 해 보자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양기로운 마음이 되고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이래서 될까하는 마음이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올해로 교조님께서 은신하신지 123년 되는 해 입니다. 교조님께서 그토록 고대하시며 서두르신 근행완성에 다가가기 위해서 가르쳐 주신대로 근행을 올릴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양기로운 근행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서 다같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