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1호
입교187년(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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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비우고 베푸는 삶

 

유상준(성진교회장)

 

녹음이 싱그러이 짙어가는 어느 날 아침 상급교회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데 누군가 뒤에서 회장님이 안 계셔도 성진교회는 잘 돌아가고 있답니다.” 라고 하신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별 생각도 없이 ~ 그런가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그 말씀이 귓가에 맴을 돈다. 되짚어보니 나라는 존재가 없어도 교회를 잘 꾸려 갈 것 같은 확신이 든다. 한쪽의 허전함과 외로움은 있을지라도 하늘을 날 듯 해방감도 느껴진다. 그 동안 남편이라는 위치에서 존재감의 위상을 내세우며 얼마나 위압적으로 큰 소리를 쳤던가?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허상이었음을 왜 몰랐었던가?

요즘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시대에는 초등학생부터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존재감을 가지기위해 리더십을 키우는 방법도 배우고, 취미도 개발하고, 춤도 노래도 배우고, 만능 재주꾼으로 변화되고자 시간과 돈을 엄청나게 투자를 하며 정성들을 쏟아 붓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존재감이 없다고 느껴봤다는 사람이 71%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 자신이 없어도 조직이 잘 굴러간다고 느낄 때 존재감의 상처를 받는 사람이 24%라는 결과도 나와 있다. 나 하나 없어도 잘 굴러가는 것이 비단 교회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광활한 대자연 속에 초목도 동물도 자연의 섭리에 잘 순응해 살아가고 있는데 왜 유독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나라는 존재감을 내세우며 내가, 내가하는 지나친 자만심과 교만심을 앞세우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들은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고귀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존비귀천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이름 모를 꽃들이 어떤 동물이 어떤 나무가 자기를 내세우며 앞으로 나서는가. ‘난 무엇, 무엇이야라고 아무리 말해 보아도 아무 것도 아니다. 다 고귀한 존재이기에 너도나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미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고 고귀한 존재이다.

<친필>

높은 산에서 자라난 나무나 골짜기에서

자라난 나무나 다 같은 혼인거야 3-125

라고 하셨다. 나라는 존재가 가장 낮아질 대로 낮아졌을 때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존재감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때로는 박자목을 치면서 신명을 전하다보면 막말을 하고 비방을 하며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순간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비참해 졌나 울화통도 터지고 서럽고 무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려다 보면 무수히 상처를 입지만 그것마저도 떨쳐버렸을 때, 시야와 마음도 넓어지면서 진정한 나, 자존감이 찾아오는 것 같다.

어려운 시련과 마디를 겪으면서 존재감이라는 것이 남이 평가해 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우고 나눌수록 존재감이 늘어나고 움켜쥐면 쥘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비우고 나누는 삶이야말로 꽃송이를 피우는 일이다.

우리 천리인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우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