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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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13

 

목소리로 깨닫는 신님의 뜻

박지수

1130일 전도청에서 부인회 총회가 열렸다. 1부는 각 교회나 교구로 나눠서 부인회원들이 좌근에서 12장까지 근행을 올리는 것이고 2부는 부인회 총회였다. 우리 고성교회에 주어진 것은 제12, 마지막 장이었다.

이날 근행을 위해 앞서서 고성교회에서는 부인회원들로 근행봉사자를 짜 부인회 제전이나 월차제 제전 뒤에 서너 번 연습을 했고 또 각자 연습을 했다. 난 처음에는 남자악기인 소고를 맡게 되었다. 저녁근행때 배전에 있는 소고를 연습삼아 치고, 틈틈이 여가가 날 때마다 혼자 연습을 계속해서 이제 좀 소리를 낼 수 있구나싶었을 때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

소고보다는 창인을 하라는 상급 사모님의 말씀에 1창인은 자신이 없으니 2창인을 맡고 싶다고 했지만 어쨌든 1창인을 맡게 되었다. 1창인은 무대연출과 같은 입장, 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입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얼떨떨하고 부담스러웠다. ‘평소에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내게 이게 웬 날벼락이람?’싶었다. 도대체 신님은 내게 뭘 또 깨우쳐 주시려고 창인까지 시키시는 지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1창인이라니? 게다가 창인은 서열이 높은 분이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터라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졸아드는 기분이었다.

할 수 없이 맡았지만 밥맛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워낙 평소에 담대한 편이고 옆에서 더 강하게 엄살을 떠는 통에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묵묵히 있었다. 누가 해도 해야 한다면 그게 나라도 어쩔 수 없지. 창인이야 항상 남자용재들이 하는 일이니 누군들 평소에 창인을 해 봤겠는가. 모두 마찬가지지. 남편이 창인을 평소에 많이 하고 내 생각에는 잘 하는 것 같으니 배우면 되지. 연습하면 할 수 있겠지 하는 믿는 구석도 있었다. 창인을 맡길 때도 역시 그런 배경 때문에 맡기는 것이라 하니 놀랬지만 특별한 반발없이 맡았다.

그날 저녁부터 남편에게 맹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한 두 장만 목청껏 불러도 목이 쉽게 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남편의 피리 소리에 맞추거나 진주님 씨디에 맞춰서 12장 전체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물론 목소리가 말이 아니었다. 캑캑 막히고, 따갑고, 뭔가 걸려 헛기침을 해대고 걸걸하는 소리가 났다. 높은 음에서는 갈라지고 찢어지는 소리까지 나서 스스로도 민망하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옆에서 남편은 배에 힘을 더 주라고 소리친다. 가장 높은 음을 낼 때에는 부풀린 배에다 한 번 더 숨을 불어 넣어 최대로 부풀려서 배에서 나는 소리를 내라고 주문을 하고 코치를 했다. 좌근부터 12장까지 끝내고 나니 기진맥진! 이렇게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목청껏 12장을 불렀던 적이 포교를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었다. 언제나 한 두장을 부르고나면 한 두장 쉬었다가 부르거나 음을 낮춰서 작게 부르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12장 전체를 끝까지 열심히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러고 나니 목소리야 어떻든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이렇게 매일 부르면 창인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병이 다 달아날 것 같다. 신악가로 몸과 마음을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열흘을 했더니 목이 조금 터이면서 조금씩 자신이 생겼다. 함께 맞춰서 연습할 때 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총회가 열흘가량 남았을 때 조금 강도를 더 높여서 하루에 3번을 진주님의 창인에 맞춰서 연습을 했다. 예전 같으면 한번도 힘든데 세 번이나 부를 수 있는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한 보름 사이에 이렇게 발전하다니···. 역시 배우고 연습하면 다 되는구나 싶었다. 노래방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나 같은 음치라도···.

하루에 세 번을 목청껏 신악가를 12장 전체를 부른다는 건 내 생애 처음이니만큼 힘이 들었다. 나중에는 기력이 딸려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국악하는 분들이 피를 토할 때까지 연습한다더니 정말 이렇게 하다보면 피를 토할 것 같았다.

한의사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팔뚝 안 쪽에 뜸자리를 가르쳐주면서 거기에 뜸을 뜨라고 했다. 그러면 목이 더 잘 트이고 아픈 것도 가실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뜸을 뜨면 목이 시원해지면서 호흡이 더 깊이 수월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매일 연습과 뜸뜨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상당한 자신감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신악가를 부르는 것은 이제 이정도면 되었겠다 싶어 상단을 오르고 내리고 신호박을 치는 것을 연습했다.

그러던 중 총회 일주일 전 고성교회에서 실시하는 2단계 수련회인 ‘33야 기원수련회가 열렸다. 하루 612장 근행을 보는데 그 중에서 세 번은 창인연습을 하듯 열심히 불렀다. 3번 이상은 힘들어서 할 수 없었다. 밤 세 번, 낮 세 번 근행을 올리는 수련회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는 전력질주 형태의 기원이다. 그러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보통의 경우는 수련회 후에 몸이 심한 피로에 절게 된다. 34일이 지나고 수련회가 끝났다. 그 다음날은 아무 일정도 잡지 않고 쉬면서 한번 12장 근행을 올리며 연습을 했다. 나름대로 컨디션을 조절한다고 일찍 자고, 푹 쉰다고 쉬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몸살을 동반한 목감기였다. 새벽 근행때는 좌근부터 전혀 신악가를 부를 수 없었다. 말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니 무슨 이런 낭패가?’싶었다. 그래도 낮이 되면 괜찮겠지. 수훈을 받으면 낫겠지하며 별 걱정을 안 하고 지냈다. 수훈을 받고 낮이 되었지만 일상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대로 되는 데 신악가는 거의 부를 수가 없었다. 높은 음을 도저히 낼 수가 없고 숨이 찼다. 이제 내일인데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너무 억울해서 눈물마저 나려 했다. 목소리만 나오면 아무 걱정이 없으련만. 목소리가 어디론가 숨어버렸는지 나오질 않으니.

평소에 우리는 부부가 서로 수훈을 전한다. 그러면 아무리 심한 병도 웬만하면 하루 이상 가질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곧바로 나아지지 않아 더욱 애가 탔다. 당장 내일 수 백 명 앞에서 더구나 고성교회 대표로 창인을 해야 하는데. 지금 와서 2창인더러 하라고 떠민다고 될 일도 아니고 참으로 난감하고 기막힌 상황이었다. 어떻든 어버이신님·교조님께 수호를 받아야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어떻게 깨달아야 할지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 보고 반성한다.

목소리니까 풍기수호의리인데···. 풍기수호의리가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티끌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십전수호의리 도표 반대편에 있는 절단수호의리도 생각해 본다. 무슨 깨우침일까? 풍기수호의리, 미워하는 마음을 싫어하고 맛있는 말, 부드럽고 따스한 말을 좋아한다. 풍기수호의리라···. 바람이니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걸 원하시겠지. 맞아. 목소리가 한번씩 막히고 자주 걸리는 걸 보니 아마도 그런 걸 깨우쳐 주려하시나 보다. “마음에 자주 막히고 걸리는 것이 없도록 마음을 닦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미워하는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할 때는 부드럽고 듣기 좋은 맛있는 말을 하겠습니다. 따스한 말, 상대를 세워주고 키워주는 말을 하겠습니다.” 반성하고 거듭 참회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풀었다. 그러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목이 트이는 것 같긴 해도 전혀 만족할 상황이 아니었다.

상급교회에 계시는 선덕소장님이 내 사정을 듣고 기가 막힌 지 생강꿀차를 끓여 주셨다. 생강차를 마시니 목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고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어떤 이는 약을 먹어야 되지 않나?”하며 걱정을 해주었다. 다들 목을 따뜻하게 하면 잘 낫는다고 해서 하루를 목에 붙이고 칭칭 목도리를 감았다. 한의사 친구는 다시 어디를 지압하고 뜸을 뜨라고 가르쳐 준다.

그런데 저녁 근행 후에 수훈을 받으며 문득 이것은 어버이신님께서 내게 대물차물의 리를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이다싶었다.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야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 3-41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야 신의 자유자재 이를 모르는가 3-126

각자의 몸이란 것은 차물임을 모르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3-137

는 말씀처럼 신님께서 엄하신 목소리로 네 몸은 신의 대물이야.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하시며 나무라시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이어 그것을 깨달으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는 거야.’라고 달래주시는 듯 하다. ‘그래, 이 몸이 차물이란 것을 곧잘 잊고 있으니까 아무 것도 몰라지는 거야. 그래서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이렇게 깨달으니 인자로운 어버이마음이 느껴지면서 어찌나 감사한 지.

그리고 언젠가 읽은 내용도 생각이 났다. 나까야마 모또라는 분이 교조 40연제 때 수천 명 앞에게 감화를 하라는 명을 이틀 전에 갑자기 받았는 데 하루 전에 목소리가 잠겨서 안 나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온갖 방법으로도 안 되고 결국 대물차물의 리를 깨닫고 신님께 완전히 의탁하고 그 감화장소에 섰을 때 비로소 목소리가 나오는 수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도의 숨이 나오고 별 걱정이 안 되었다. ‘그래, 이건 어버이신님께서 내게 신님의 활동을 바로 느끼라고 주신 마디야. 몸으로 체험을 해 보라는 거지. 그러니 이제 수훈 외는 뜸을 뜨거나 지압을 하거나 약을 먹거나 하는 일 따위는 그만 두겠다. 오직 신님의 수호로 나아 보겠다. 신님께서 활동하시는 맛을 보여주신다는 데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 보자. 반드시 창인 자리에 앉으면 목소리가 나올 거야.’ 하는 배짱이 생겼다.

최근에 한동안 한의사인 친구 덕에 진료를 받으며 한방치료를 잠깐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처방해 준 대로 약을 먹고, 가르쳐 준 뜸과 부항을 열심히 뜨기도 했다. 몇 번의 효과를 보고 나니 친구에게 곧잘 의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디가 조금 불편하면 곧바로 원인과 처방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마음을 고치는 일에는 조금 소홀해 지는 느낌이다. 물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본말이 바뀌지 않도록 노력하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 주변의 용재분들이 수훈보다 약이나 의술에 의지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분들도 수훈을 받고 했겠지만 한두 번 병원이나 의술에 신세를 지다보니 의약에 더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았다. ‘병원가면 당신의 나쁜 마음, 행동을 고치라고 마음 아픈 곳을 찌르지 않으니 편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수훈을 받을 때는 다르다. 속이 쓰리더라도 때때로 듣기 싫은 소리,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병의 뿌리가 빠지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깊은 병에 걸려도 의사와 약보다 신님을 더 의지하고 본말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나름 돈독하다고 자신했던 신앙이 이 정도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던가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의술에 여지껏 그다지 의지한 적이 없었던 건 그 만큼 건강을 수호받고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어버이신님의 존재를 제쳐놓고 수리 거름에 불과한 의술에 의탁하려는 어리석음이라니. 이런 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단호하게 자신의 신앙을, 신의 존재를 확실히 느껴보자는 결심이 단단해 졌다. 당일 아침에 세 번째로 수훈을 받고 반성 참회를 깊이 하면서 신님께 의탁하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전도청 가는 동안, 혹은 전도청에서 주변 사람들이 연습을 많이 했냐고 물어온다. “연습은 많이 했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걱정이라고 엄살을 피웠다.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전혀 걱정이 안 됐다. 그 자리에 올라가면 당연히 목소리는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건 신님이 대물차물의 리를 단단히 깨우쳐 주기 위해서 내게 주신 신상이기 때문에 그것만 마음깊이 깨달으면 금방 도움받을 거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확신 속에 어버이신님 교조님께 의탁하는 마음을 더욱 다졌다.

전도청에서 근행이 시작되었다. 앞 장을 맡은 팀을 따라서 신악가를 불러봐도 목소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8장까지도 목소리가 안 나와서 배전을 돌아봤다. ‘회장님이 어디 계신지 한번 더 수훈이라도 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러나 회장님은 어디 계신지 찾을 수 없고, 목소리는 여전히 안 나오고. 조금씩 불안해 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열심히 풍기수호의리에 맞는 마음을 쓰겠습니다. 맛있는 말을 하겠습니다.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미워해서 마음으로 끊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연습한 대로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구나 맨 마지막인 제12장인데 여기 오신 모든 분이 함께 용솟음칠 수 있도록 흥겹게 신악가를 부르게 해주세요. 이 몸은 신님이 빌려주신 것이란 점을 믿습니다. 신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오니 어버이신님, 교조님 부디 저와 함께 올라가 주십시오.’ 하며 열심히 간절히 기원을 드렸다.

간절한 기원을 받아 주셨는지 제9장을 부르는 데 조금씩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 어버이신님. 교조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합장하며 깊이 감사드렸다. ‘이제 됐다! 이제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마음이 탁 놓이면서 즐거운 마음이 가득하였다. 드디어 우리가 맡은 차례인 제12장이 시작되었다. 금방 수호받은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열심히 제12장을 불렀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게 원만하게 잘 마무리 되었다. 남들은 목감기로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고생했다는 말을 믿지 못할 정도로 그 순간 말끔히 수호를 받았던 것이다. 흔감하게도 창인을 비롯한 손춤, 악기 모든 면에서 고성교회가 제일 잘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게 하면서 중심이 약하고 의심이 많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단련시키고 대물차물의 리를 깊이 깨닫도록 만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