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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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년09월][21]여름나기 - 박지수

2012.07.18 16:55

편집실 조회 수:1369

명경지수 21

 

여름나기

박 지 수

 

올해도 여름이 다가왔다. 여름엔 우리 포교소는 펜션 수준이 된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미리 예약하거나 초청한 반가운 분들이 와서 놀고, 쉬고 머물다 간다. 올 여름도 연인원이 100여명을 넘겼다.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20명 가까이 다녀간다. 그래서 우리의 여름은 첫손님과 함께 시작되고 마지막 손님이 가시면 끝이 난다. 가장 더운 여름 한 가운데를 손님들과 함께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보통 고요하고 가지런하고 한적하다. 그런 생활을 원해 왔고, 그렇게 노력도 한 덕분인지 환경 역시 그렇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어느 도심보다도 소란스럽고, 번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여름날의 새로운 풍경과 환경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마음 수양을 요구된다. 그것도 하루나 이틀, 한번이나 두 번이 아니고 여름날 내내! 산에 살던 새가 갑자기 도시로 이사 간 느낌이 이럴까? 시끄럽고 번잡하여 정신이 없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달쯤은 그런 복잡다단한 사람들과 일 속에서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그것도 큰 공부일 게다. 고요한 생활 속에서는 그다지 티끌이 일지 않으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오면 생활리듬인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은 여지없이 깨어져 버린다. 매일 하는 친필읽기와 일기조차도 하루 이틀, 혹은 여러 날 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용솟음치게, 밝게, 향기로운 것이 요구되는 일상이 여름날이다.

올해는 작년에 포교소 개수 역사를 한 뒤라 더 많은 분들을 초청하거나 맞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에 쏟아지는 수호를 해 주셨던 어버이신님, 교조님께 은혜 보답하는 나름의 길이라 여기며, 한편 정성을 모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었다. 또 역사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은혜를 입은 분들에게 여기 초청하여 한끼 식사라도 나누며 감사를 전하고 싶기도 했다.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멀리 사는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여름이기도 하다.

역사 이전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낡고 누추한 세면장 같은 건물의 불편함 때문에 쉽게 맞이할 수 없었던 분들도 맘껏 초청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기뻤다. 누가 봐도 반듯한 신전과 네 개나 되는 화장실, 밝고 깨끗하고 환한 샤워실이 2, 넓은 부엌! 한꺼번에 스물 명쯤이 온다 해도 문제없다. 이것을 생각하면 신전개수 역사에 노력하신 모든 분들이 항상 감사하고 너무나 흔감하다.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진 기적을 겪은 느낌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같다. 이렇게 훌륭한 건물을 주셨으니 많은 분들이 쉬었다 가고, 행복하고 밝은 이길의 향기를 가슴에 담아갈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

옛말에 여름 손님은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요즘이야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고 냉장고도 있으니 좀 낫겠지. 그래도 그 말이 실감날 때가 있다. 우리만 있으면 하나도 안 덥고 시원하기만 한데 다른 사람이 와 있으면 덥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신경 쓰는 일이 불어나고 사람 열기가 있는 탓일 게다. 손님이 적은 숫자면 좀 낫고, 많은 사람이면 더 더워진다. 우리야 에어컨이 없으니 더 실감을 하게 된다. 모기도 꼭 손님이 오면 따라 들어오는 지 나타난다. 평소에는 파리나 모기가 거의 없는데 말이다.

그럴 때 마음 공부하기 참 좋다. 덥고 불편해지니 짜증스런 마음이 슬며시 올라올 때도 많다! 해서 여름은 지난 한 해 동안 내 마음성인 정도가 얼마나 되었나를 가름하는 좋은 시험대가 된다. 짜증이나 화, 마음속 투덜거림인 불평불만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얼마나 기쁨과 반가운 마음, 사랑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지. 물론 남들은 잘 모르지만 스스로는 너무나 잘 알게 된다. 그동안 듣고 깨쳤던 많은 가르침들이 단지 말로만 끝난 것인지, 정말로 몸과 맘에 붙어서 자기 것이 되었는지.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손님을 청하고 맞이한다. 물론 초청하지 않아도 쳐 들어오는 불청객도 가끔 있긴 하다. 그래도 그것조차도 기쁘게 맞아들이려 마음을 다스린다. 교조님께서 이 집터에 오는 사람 누구든지 즐겁게 하지 않고는 보낼 수 없다하신 말씀을 명심하기에.

손님들이 오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곁에서 계속 뒷정리를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있을 자리에 물건이 있게 되어 필요할 때 쉽게 찾아 쓸 수 있고, 정리가 된다. 그렇지 않고 내버려 두면 굴러다니는 물건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집을 보면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저절로 싫은 소리가 목구멍으로 넘어온다. 그래도 꿀꺽 얼른 삼킨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휴가 와서 까지 깔끔 떨 필요는 없겠지!’ 하며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는 일한다는 건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줘야 일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신 교조님 말씀을 떠올리며 이건 교조님이 가르쳐 주신 의미의 일을 하는 거야.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야!’하고 자신을 달랜다.

 

마음이 가장 무거운 손님은 역시 가족들이다. 친정, 시댁 식구들이 같이 어렵긴 하지만 친정식구들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다른 이들은 우리 삶에 대해 상당한 이해와 배려를 가지고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곳까지 오는 것이리라. 그런데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가족이니까 서로 가진 기대도 크고, 바라는 것도 많다. 또한 아직도 이길을 걷는 것에 대해 흔쾌하지 않은 마음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가족들이 사는 일반사회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 보면 이해를 위해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쓰게 된다. 전혀 다른 방향의 마음을 쓰고, 전혀 다른 동기로 행동하고, 전혀 다른 생각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삶을 이해하려고 힘들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가족이다 보니 나름대로 기대가 있고, 너무 가까워서 배려 없이 함부로 이야기하다보니,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족이 와서 좋았던 것도 많았다. 우선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포교사 같은데 이렇게 번듯한 건물에 사는 것을 신기해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역사를 해낸 걸 보면 잘 모르지만 뭔가 있긴 한 모양이라고 하는 눈치다. 그리고 또 양쪽 다 가족 수가 많은데 다 모일 곳이 있다는 게 고마운 모양이었다. 그렇지. 어느 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는 거, 화장실, 씻는 일들, 잠잘 곳이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인가? 큰 펜션을 빌리는 것도 아니니 돈도 안 들고. 먹는 것도 별로 신경 안 써도 되고. 나름 좋은 점이 많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는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진다. 이길을 가면서, 가족 대소사에 필요한 할당된 돈을 전혀 내지 못할 때 느꼈던 수많은 경우의 미안함과 죄송함을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으니 고맙다.

 

손님 치르는 일 중에서 가장 싫고 까다로운 일은 종교적인 분위기에 맞지 않은 일을 할 때이다. 신전을 포함한 이 건물은 근행을 올리고 정성을 들이는 곳인데 비록 하루 이틀이지만 술, 담배, 기름진 음식으로 흥청망청할 때 싫다는 느낌이 나도 모르게 올라온다. 정갈한 교당의 분위기를 흐트려 놓는 것 같아 어버이신님께도 죄송스럽다. 그렇게 기름진 음식 때문에 씽크대와 그릇들이 기름끼로 끈적거리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평소에 여기, 내게로 오는 모든 사람들은 신님이 보내주신 선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럴 때는 이 사람들, 신님이 보내신 선물 맞아요?’하고 투덜거리며 묻고 따지고 싶어진다. 기름기로 오염된 그릇들을 소독할 물을 끓이면서도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투덜거림이 새어나온다. 그런 마음을 바라보며 신님이 보내주신 선물인 이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입었던 은혜를 다시 상기해 본다. 그리고 싫어하는 내 마음도 무심히 바라본다. 그러면서 물을 끓여 소독하고, 대청소로 혼탁한 기운을 몰아낸다. 구석구석 감사와 축원을 담아서 청소하면 공간이 다시 정화되어 맑아진다. 아직도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소란스러움은 신악가로 몰아낸다. 마지막으로 향 하나를 피워서 정화를 마무리하면 뒷정리가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가 된다.

우리가 여름을 나면서 거치는 모든 손님들을 한 팀씩 치를 때마다 무슨 거룩한 사명,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길의 가르침, 향기를 전한다는. 그래서 가르침을 전하거나 수훈을 전하거나 함께 근행을 올리게 되면 그 즐거움은 한껏 늘어나게 된다. 어떤 팀은 전혀 그럴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내가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위로한다. 이곳의 분위기, 향기, 그리고 근행을 통해, 또 달라진 지금의 우리 모습을 통해 느끼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조금 아쉽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워낙 인터넷이나 대중매체로 많은 것을 듣고 알다보니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꽃 같은 말이라도 말 그 자체로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거기에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비로소 온전하게 통하게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손님맞이 하기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숨김없이 온 몸으로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참 어렵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하든지 마음속으로 감사와 축원을 드리며 한다. 음식을 할 때는 이 밥 먹고 훌륭한 용재되세요! 이 음식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길의 신자 되세요!’ 차를 만들 때는 이 차 마시고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사시길 빕니다! 이 차를 마시고 여유있고 행복한 생활이 되시길 빕니다.’ 청소를 하면서 이 장소가 있기까지 정성을 기울여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여기에 오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 장소에 오는 모든 이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지냈다 가게 도와주세요. 이 신전에 들어오는 누구라도 이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기에 발길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수없이 많은 감사와 축원을 담아 음식을 만들고 차를 끊이고, 이 공간을 채운다. 그런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하게 되면 마음이 소란스럽게 되는 일도, 짜증이 날 일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우리 몸은 70%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면 물이 그것에 반응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기분좋고, 따뜻한 말에는 물의 결정체가 아름다운 육각형을 나타내고 나쁜 말, 악담, 욕 따위 말에는 악마같이 찌그러진 모양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1,2, 에모토 마사루, 나무심는 사람)

그것은 결국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내 몸속의 물들인 피와 체액과 세포 속에 수분들이 그렇게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구에게 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곧바로 내 몸속 물에 반응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래서 교조님은 험담, 나쁜 말, 막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어느 날 축원을 하며 밥을 짓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나 음식을 가장 많이 먹게 되는 건 바로 일 것이다. 그리고 축원하는 장소에 가장 많이 머물게 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아닌가! 남에게 축원을 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나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감사와 축원이 내 몸의 물 결정체들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 축원들을 곧 바로 내가 받는 셈이다. 이것이 남을 도우면 내가 도움 받게 되는 이치가 한번 더 증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이길을 가는 것일까?

[무탄트 메시지]로 유명한 참사람부족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생일에 축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먹는 일은 아무 노력도 들지 않은 저절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축하하는 건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해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것을 축하한다, 더 나아진 것을 축하한단다. 그것은 물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무탄트메시지, 정신세계사, 말로 모건, p117)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여름을 마무리 지으며 스스로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작년보다 사람들을 맞이하는 데 조금 더 즐겁고 편안하게 되었던 것을 축하한다. 그리고 은혜보답을 위해 충분히 흔쾌하게 맞이한 스스로가 대견하다. 작년보다 훨씬 피곤함이 줄어든 것도 축하할 일이다. 자신이 편안하고 즐거워야 손님도 즐겁게 대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축하할 일은 그런 모든 사람들을 통해 신님의 뜻을 깨닫고 더욱 성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신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이제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우리 마음성인의 시험기간 이었던 여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