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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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20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박 지 수

 

화단에 많은 꽃씨를 뿌렸습니다. 때는 봄날이라 새로 만들어진 휑한 화단에 욕심껏 꽃씨를 뿌리고 또 뿌렸습니다. 이 꽃씨들은 많은 종류를 몇 해 걸쳐서 여기저기서 딴 것입니다. 우리가 다닌 궤적대로, 인연대로 구해진 꽃씨들인 셈이죠. 지역으로 보면 전국적으로, 환경으로 보면 대도시에서 깊은 산이나 들까지 어디나 꽃씨 채집 대상이었습니다.

봄이 되어 단비가 내리고 따스한 봄바람이 부니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싹이 나면서부터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게 풀인지, 꽃인지 구별이 잘 안 되었던 탓입니다. 그 꽃씨들의 이름도 잘 모르거니와 안다 해도 꽃이 피었을 때 꽃모양을 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싹과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 꽃이 피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꽃이 필 때까지 판단이 안 서는 싹들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풀밭인지 꽃밭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해도 뽑아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꽃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두 가지 풀이라고 확실히 아는 것들만 뽑아주며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날이 지나는 동안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온갖 꽃들이 기쁘게 피어났습니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 꽃들은 어여뻤습니다. 저마다 귀엽거나 아름답거나 청초한 꽃들을 피워대며 보는 이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옛날에 어느 유명한 명의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분은 의술이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신의(神醫)라 불릴 만큼 대단한 분이었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든지 의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분의 제자가 되려고 꿈을 꾸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상 와서 공부를 해보면 글은 가르치지 않고 일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질이 급한 보통의 젊은이들은 얼마간 버텨보다가 이거 글렀구만. 자기만 의술을 통했지 전혀 일러줄 마음이 없어이렇게 판단하고는 모두가 떠나 버렸습니다. 사실 스승을 섬긴다는 것이 여간 인내심을 요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근데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제자가 한사람 있었더랍니다. 떠날 줄도 모르고 그저 묵묵히 시키는 대로 한 가지씩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는 이 신의가 신통하게 생각을 하셨든지 한 두 가지씩 비법을 일러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러주면 이 젊은이 또한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 그림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젊은이가 손가락을 헤아려보니 여기에 온지도 어언간 십년의 세월이 흘렀더랍니다. 그러자 고향의 부모님도 염려가 되고, 자기의 의술 수업이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부님, 이제 제자도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하산은 언제나 하면 되려는지 궁금해지는 군요.......”

, 그런가, 그럼 지금 당장 산에 가서 약초를 살피되, 약이 되지 않은 풀을 한 가지만 구해오게. 그럼 당장 하산을 하도록 해 주겠네.”

젊은 제자는 사부님의 입에서 하산하도록 해 주겠다는 말이 나오자, 갑자기 고향도 그리워지고 부모님도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듯이 산에 올라가서 약이 되지 않은 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그렇게 넓은 산을 뒤졌지만, 이 젊은이는 운이 없어서인지 약이 되지 않은 풀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온종일 돌아다녀도 약이 되지 않는 풀 하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운 가족들을 떠올리며 아직도 하산 할 때가 멀었구나!’ 싶어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의술을 구하러 온 지 어언 10, 제자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지치도록 헤매고 다니던 젊은 제자는 풀이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래, 약에 안 쓰는 풀을 한 가지 구해왔겠지?”

그러자 제자는 고개를 떨구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옵니다. 스승님, 제가 불민하여 하루 종일 부지런히 온 산을 헤매고 다녔지만, 넓은 산의 어디에서도 약이 되지 않은 풀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하산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님은 껄껄 웃으시고 말했습니다.

허허허! 그랬느냐……. 그럼 당장 하산하여라. 허허허.”

스승은, 기분 좋게 웃으며 하산을 허락했습니다. 하산을 허락하는 스승의 모습,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약이 되지 않는 풀이란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것을 실제로 제자는 깊이 터득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게 하루 아침에 되었겠습니까.

 

언젠가 산에 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산나물이고 약초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는 산나물이 늘어나고, 약초도 하나 둘씩 알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반찬 해 먹을 게 없었는데 나중에는 반찬거리가 풍성해 졌습니다. 알자고 들면 하나 둘씩 알게 되지만 아무리 산을 오르내리고, 들을 지나 다녀도 관심이 없으면 나물이고 약초를 알 수가 없습니다.

도시에 사는 어떤 사람이 농촌에 이사 간 이런 이야기도 있더군요. 어느 날, 이웃도 사귈 겸, 밭일도 배울 겸 일을 거들어준다고 이웃집 밭에 놀러 갔습니다. 마침 김매기를 하고 있어서 자기도 밭에 들어가 풀 뽑기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허리를 펴 보니 주인이 남겨 놓은 것과 자기가 남겨 놓은 것이 달랐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자기가 한 일이란 채소를 뽑고 풀을 남겨놓은 것이지요. 참으로 난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농부인들 그 양반이 설마 풀과 채소를 구별 못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도시양반도 모르면 물어나 볼일이지 뭐라도 열심히 뽑으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일을 망쳐놓게 된 것이죠. 무엇이든 처음 하는 일은 된장인지 똥인지 모릅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흥이 나는 것도 아니며, 무슨 의미를 알고 하는 것도 아니지요.

 

제가 처음 친필 읽을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도무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기독교 성경처럼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몰랐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스토리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 비신앙인을 불문하고 오랫동안 전 세계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로 많이 읽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친필은 초라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섭섭함, 노여움이라고 표현하는 친필 속의 신은 화를 잘 내는 쩨쩨한 신 같았습니다. 실망을 했습니다. 얼마 읽지 못하여 한쪽 구석으로 밀쳐 버렸습니다. 몇 달 혹은 몇 년 지나는 사이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 했습니다. 조석근행 때 조금씩 읽거나 어쩌다 작정하여 의무로써 통째로 읽어본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흔쾌하지도 않았고, 즐겁거나 재미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양껏 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때 마침, 한국청년회에서는 작년 초부터 삼년 천일, 친필 100번을 읽읍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내심 반가웠습니다. 친필읽기에 새롭게 도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독경 수행법에 버금갈 거라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선비들은 중요한 책은 소리 내어 몇 번씩 거듭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훌륭한 공부법이자 수행의 한 방편이 되었습니다. 이길에도 여러 가지 훌륭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걷기, 단식, 12장 근행보기와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하는 방문전도까지 다양합니다. 여기다가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어떨까요. 친필읽기지요. 이번 청년회 활동으로 친필읽기도 중요한 실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친필읽기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정말 올 봄에 야생화 화단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게 분명 뭔가 깊은 뜻이 있긴 있을 텐데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읽어도 별로 감흥이 없거나, 깨달음이 생겨나질 않아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버이신님께서 직접 일러 주신 말씀이니까, 이왕 작정했으니까 매일 읽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보며 하루 분량을 읽고 빨간색으로 표시를 합니다. 어쩌다 읽지 못했을 때는 다른 날 시간을 내어 읽고 검은색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읽다보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맑아져 뭔가 깨닫는 게 있겠지!’하는 위로를 스스로 하며 매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성교회에서 실시하는 특별수련회 프로그램 중에 친필읽기를 넣었습니다. 청년회에서 제시하는 요령대로 말이죠. 집행부라 이런 저런 다른 준비 때문에 복도를 지나다 친필을 함께 낭독하는 소릴 들었다. 순간, 소름이 돋으며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냥 글 읽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오묘한 음악 같은 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맞춰 소리내어 친필을 읽으니, ! 이런 기운이 이는 구나!’싶었습니다. 친필을 읽고 있는 용재회의실과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복도 전체에 어떤 신령스런 기운이 가득 찼습니다. 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확연히 느껴지는 감동의 파노라마, 신묘한 기운이 출렁이었습니다. 여기에 치유 에너지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뒤로는 친필읽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여럿이 소리를 맞춰 노래하듯 읽는 것과 두 세 명이 읽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소리에서 나오는 치유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왜 요즘엔 소리치료()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친필읽기는 어느 시간에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마음이 맑아진 상태인 근행 후에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제 경험으로는 근행 후 신전에서 읽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함께 둘러 앉아 읽는 것도 좋겠지요.

청년회에서 제시하는 친필읽기 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읽기 전에 먼저 주변 정리를 하고, 전화를 꺼놓기입니다. 읽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게 우선이라는 게지요. 그래야 흩어진 마음이 모이고 중심이 잡히지 않겠습니까.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는 준비를 하는 겁니다.

둘째, ‘친필 읽을 때 마음가짐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 친필 읽을 때 마음가짐

1. 친필은 내가 읽지만, 실제로는 친필을 통해 어버이신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기 때문에 맑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습니다.

2.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적당한 속도로 정성스럽게 읽습니다.

3. 친필 읽는 시간은 어버이신님을 만나는 귀중한 시간이므로, 잡된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일을 내려놓고 오로지 친필에만 집중해서 읽습니다.

4. 친필을 의무로써 읽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신님의 무한한 수호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5. 친필에 담긴 어버이신님의 깊은 뜻을 잘 깨달아 순직하게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셋째. 잠시 눈을 감고 친필을 공손히 받들어서 이 말씀이 제 가슴에 오롯이 들어와 피와 살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하고 기원을 드립니다.

넷째, 이윽고 소리를 내어 그날 정해진 친필내용을 읽기 시작합니다.

다섯째, 다 읽은 후에도 다시 잠시 눈을 감고 친필을 받들어서 읽었던 내용이 차곡차곡 가슴에 쌓여 피와 살과 그리고 뼈가 되도록 기원을 드린 다음 마칩니다.

그동안 친필읽기 작정대회가 여러 번 지나갔습니다. ‘100일씩 끊어서 10번씩 읽자는 작정대회 말입니다. 벌써 5번째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500일이 지났고, 그대로 읽었다면 50번은 읽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 6번째 작정대회를 할 시기가 왔으니 삼년 천일의 절반인 일년 반이 지났습니다.

작정대회가 있을 때마다 친필의 권위자이신 전도청장님께는 친필에 대한 강의를 직접 해 주셨습니다. 강의를 통해 친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리고 매일 읽는 친필을 통해, 조금씩 알아지고 깨달아지는 어버이신님의 말씀이 늘어갔습니다.

‘3차 백일 작정대회를 했을 즈음부터는 노트에 그날 그날 읽은 분량 중에 마음에 와 닿거나 깨달음이 있는 구절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적기 시작할 때는 친필 한 호에 노트 한 페이지정도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적다보니 그게 점점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친필을 다 적을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적어야 할 만큼 늘어났습니다. 읽다보면 나날이 흙속에 묻힌 보석을 캐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하나씩이었습니다. 그러다 드문드문, 이제는 노다지를 캐는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친필 읽는 재미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조금씩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친필! 마침내 그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내 주변에 늘려있는 꽃밭처럼 갖가지 빛깔과 모양으로 보석이 영롱하게 열리는 날이 오겠지요. 마침내 약초 아닌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의술에 통달하는 젊은이처럼 말이죠. 의미 없이 지나치던 모든 구절이 하나도 빠짐없이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날, 그런 날에는 마음이 텅 빈 하늘처럼 청정하게 맑아져 신의 뜻을 말하고 말하게 되는 날이 될 겁니다.

청소만 깨끗이 하게 되면

신의 뜻을 알게 되어 말하고 말하게 되는 거야 (1-30)

나날이 맑아져 알게 되는 신의 뜻

성인됨에 따라 나타날 거야 (6-15)

 

삼년천일, 친필 100번 읽기는 이런 길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시작 한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도 시작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무엇을 하기에 늦는 법이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어떨까요. 친필을 소리 내어 정성스럽게 100번 이상을 읽는 사람이 100사람 이상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에는 우리 주위에 아주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넘쳐나겠지요. 이 기운을 타고 벌과 나비도 많이 날아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