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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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14

고마운 당신 덕분에

박지수

 

다시 연말이 되었다. 1220일이 지나면 어느 편안한 날을 택해 한 해 되돌아보기-연기(年記) 쓰기-를 한다. 보통 이 날은 아무 계획이 없고,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이다. 편안한 시간에 무슨 의식을 치루 듯이 종이에 10가지 항목을 정해 정리한다. 이렇게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해를 기대 속에서 새로운 계획으로 채워놓는다. 이렇게 한 게 십 여 년이 지나 20년이 다 돼 간다. 일년에 한번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살아온 역사가 거기에 녹아 있다. 일기(日記)가 개인의 역사가 되듯이 그것 역시 우리 부부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 정리하는 항목은 이렇다.

1. 올해 가장 좋았던(행복했던) 5가지 이상쓰기

2. 올해 이루었던 일 5가지

3. 올해 이루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 5가지 - 못한 이유도 쓰기

4. 올해 어버이신님이 주셨던 마디, 선물, 깨달음 찾아보기 5. 올해 가장 힘들었던 일 하나와 그 일에서 깨달은 점, 그리고 감사 찾기

6.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7. 내년에 꼭 이루고 싶은 일

8. 시간, , 상황이 된다면 꼭 하고 싶은 일들 목록 작성하기

9. 자기 사명선언서 수정하기

10. 미래 이력서 다시 정리하기

 

올해도 어김없이 되돌아보기 의식을 치루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참 단순했다. 역사라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관련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렇게 한 해를 되돌아보기 하는 것은 자기 삶의 중간 체크인 셈이다. 되돌아보면 주로 반성과 참회, 그리고 감사가 우러난다.

역사 관련해서 주요 반성과 되돌아보기의 요점은 정성과 격려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에게 충분히 감사함을 전달했는가이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역사 후에 오는 마디와 어려움 때문에 충분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교조님께서는 말로써 마음의 주름을 편다고 하셨는데 말로라도 만족을 드렸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혹시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쪼그라들어 고마움을 표현하는데도 인색해져 버린 건 아닌지 우려한다. 자기사명선언 중에 언제나 무엇이든 베풀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베푼다.’는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에 마음이 묻혀서 원칙을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던 분들에게 충분히 감사를 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탓에 다른 분들의마음의 주름을 펴 드려야 했는데도 오히려 주름을 더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성하고 참회를 하지만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아 보인다.

감사함,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연기(年記)를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분은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은혜 받은 내용을 기록한 수첩(앙은첩)을 읽으며 되새겼다고 했다. 그렇게는 못하지만 평소에는 곧잘 잊어버리기 쉬운 은혜를 한 해가 가는 이 때에 다시 돌이켜 보고 보답을 다짐해 보게 된다. 이때 물론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은혜이다. 그것은 이길을 걷는 용재들이라면 누구나 매일 조석 근행을 통해 되새기고 있겠지만 한해 되돌아보기를 하면서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이렇게 감사함을 마음에 새기다보면 침울하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즐거움이 다가온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도 [사람의 두뇌가 의식하는 방법에는 대체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대체의 법칙이란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은 한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무지개원리, 차동엽 글, 228p 인용) 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채울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 연기를 쓰는 것은 일년 동안 일어났던 일에서 부정적인 쪽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게 만드는 일 같다.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도 적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달리 별다른 소망이 생각나지 않는다. 평소 해 오던 일을 더 정성스럽게 하자는 정도로.

문득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면 [어느 분이 인도에 가서 빈민촌에 사는 소년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 소년은 꿈이라는 게 뭐냐고 되묻더란다. 꿈이란 자기가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소년은 그런 거 없다고 하더란다. 지금 이 상태로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그 분은 그 소년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 역시 그것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다.

꿈이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그건 너무나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 소년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오랫동안 그 내용이 무슨 화두처럼 마음에 남았다. 하긴 뭔가 꿈이 있다는 건 욕망(뭔가 이루고픈)이 있다는 것이지. 욕망이 있다는 건 결핍된 게 있다는 반증이다. 행복의 가치를 상당부분 미래에 두고 산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현재, 여기서의 행복보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그럼 나도 그 소년처럼 이미 행복하고 만족하단 이야기인가?’ 싶으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올 한해를 지나면서 벽 하나를 넘은 것 같다. 신앙이 조금은 성장한 것일까.

결국 내년에는 다만 다가오는 일들을 통해 언제나 어버이신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라고 크게 썼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는 언제나 내 덕과 인연에 맞춰 가장 적당하게 맞춰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을 그대로 믿으며 잘 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게 요구되는 거 아닌가. 그 외 무엇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이미 알아서 다 해 주시는 데.

때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해야 할 일이 다음 네 가지 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어버이신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교조님의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리는 일. 두 번째,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일을 어버이신님의 선물로 감사히 받는 것. 세 번째, 이 세상 삼라만상을 만드신 어버이신님의 기막힌 솜씨에 감탄하며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일. 네 번째, 이 모든 감사함과 기쁨을 주위와 함께 나누는 것!!

이런 생각에 실천까지 옮기게 되는 순간이 일년 동안 몇 번이나 될까? 이때가 마음이 지극히 맑아진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마음에는 한없는 기쁨이 넘친다. 어버이신님의 따스한 손길이 포근히 나를 감싸는 지복(至福)의 순간! 신앙의 기쁨이란 결국 이런 순간을 늘려 가는 것 아닐까?

이런 순간을 늘려 즐거움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 어버이신님의 간절한 바람임을 친필을 통해 누누이 일러 주고 계시는 것 아닌가?

마음만 깨끗하게 맑아지면

무슨 일이든 즐거움 뿐이다 14-50

행복을 누리도록 충분히 수호하고 있다

몸에 받게 될 테니 이것을 즐거워하라 2-42

이것을 보고 무엇을 듣든지 즐거워하라

어떤 이야기도 모두 이와 같으니 3-27

차츰 차츰 어떤 일도 나타난다

어떤 길이건 모두 즐거워하라 4-22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져서

즐거움이 넘치게 살아가게 되면 7-109

나날이 저절로 마음 용솟음친다

즐거움이 넘치는 마음이 되도록 11-55

그로부터 온 세상은 마음 용솟음쳐서

저절로 즐거움이 넘치게 될 거야 13-25

이제부터는 마음 바꿔서

즐거움이 넘치는 마음이 되도록 14-24

내일부터는 무슨 일을 보더라도

무엇을 듣더라도 즐거움뿐이다 14-42

 

올해를 되돌아보면서 연기를 쓰며 넘치게 받았던 수호와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새해를 설계하면서 덤으로 행복에 겨운 한 때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