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둘하나 17

 

 

여덟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4

 

이 시 중

. 여덟가지 티끌의 내용

 

즐거운 삶을 가로막고, 원치 않는 신상과 사정을 부르는 여덟 가지 티끌에 대한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색

용재핸드북에 보면 인색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본 설명이 나옵니다.

세상이나 남을 위해 마음을 쓰거나 행동하기를 꺼려하는 마음. 마땅히 내야할 것을 아까워하고, 빌린 물건을 돌려주기를 아까워하며, 궂은 일은 남에게 시키면서 자신은 편하게 지내려는 마음 등, 내기를 아까워하고 수고를 아까워하는 마음이 티끌.

인색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아까워서 내 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이길을 위해 마음과 몸 쓰기를 아까워합니다. 정성스런 마음을 내지 못하고, 능력을 내지 못하고, 시간을 내지 못하고, 금전이나 물건이나 마음을 내지 못하고 베풀지를 못합니다. 칭찬에 인색하고 감사에 인색하고 격려에 인색합니다.

인색은 누구나 손쉽게 짓는 티끌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인색하게 굴고 있는 지 찾아보려면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인색, 들어줘야할 귀를 열지 않는 인색도 있습니다. 가야할 때 가지 않는 인색도 있고,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인색도 있습니다. 줘야할 것을 주지 않는 인색이 있고, 내야할 것을 내지 않거나 미루는 인색도 있습니다.

내지 않고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수호도 없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는 바탕은 정성을 내고, 나누고 베푸는데 있습니다. 뿌리지 않고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뿌리는 씨앗은 적지만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할 때는 풍성합니다. 내고 나누고 베풀어야 덕이 쌓입니다. 덕은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는 바탕이고, 어려울 때 차고 넘어가는 지렛대가 됩니다.

마음이나 몸을 다하지 않는 것이 인색입니다. 진실과 정성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실과 정성을 다해야 즐겁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떤 일이나 사물을 통해 전해주시는 어버이신님의 깊은 의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길이 열리고 이루는 게 있습니다. 진실과 정성을 어버이신님께서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말씀에

나날이 다해서 즐겁다. 다하지 않고 씨를 뿌리면 나날이 장부를 더럽히고 있는 거와 같은 것. 나날이 장부를 지우듯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나날이 즐거운 씨앗 하나는 일립만배가 되어 나날이 다스려진다. (1891. 12. 19)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고맙게 눈을 뜨고 있어도 장님과 같다. (1906. 5.26)

어디에 있더라도 월일의 몸뚱이야. 어디에 있더라도 마찬가지, 정성스런 마음 하나야. 정성이 하늘의 리야. 하늘의 리에만 맞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길이 열리는 거야. 진실과 정성이 없으면 어디에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길은 좁아질 뿐이야. (1887. 7)

고 했습니다.

인색한 마음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에 인색하다

말에도 인색이 있습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적절한 충고를 할 때는 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는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할 때 해 줘야 하고, 격려할 때 격려를 해줘야 하지요. 적절한 말을 적절한 때 하지 않아 관계가 서먹해지고 심지어 깨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적절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면 마음이 살고,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말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도록 지도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일하면 일한 만큼, 하나 온전하게 되었구나 하고 기뻐할 뿐만 아니라, 옆에도 말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잘한다 하면서 말로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 선명치 않은 가운데 마음에 즐거움이라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거름 주는 것과 같은 것, 내버려 두어서는 그냥 흘려버리는 것, 수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나의 리로 깨우쳐 두니, 모두 잘 분간해 듣고 당장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1899.2.2)

모두 오는 자에게 부드러운 말씨를 써 다오, 써 다오. 말은 이 길의 거름, 말의 단노는 이 길의 거름, 거름. (1901.6.14)

 

위엄을 부린다고 말을 아끼거나 점잔을 빼며 말을 삼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충고할 것은 충고하고, 나무랄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나무래야 하지요. 섭섭할 때는 섭섭하다고 머뭇거리지 말고 악의 없이 가볍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크게 나빠지지 않을 테니까요. 상대에게 고칠 기회를 주고 나쁜 마음을 바꿀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구제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말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할말을 하지 않는 인색에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충고를 할 때는 따뜻한 사랑과 진실한 정성이 있어야 하겠지요.

자기에게 스스럼없이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두 세 사람만 있어도 그이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한히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변에 충심으로 충고해 주는 사람 한 명을 얻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충고를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 드문 탓이고, 아무런 사심이나 거리낌 없이 충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평생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친구 한사람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1년이 지나가도 충고 한번 하거나 받지 못하는 사이라면 참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된 친구라면 무슨 이야기든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친한 사이일수록 귀에 쓴 말을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상처받기도 쉽고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아내가 톡 찌르는 말을 하면 숨이 멎듯이 충격을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저를 잘 아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누구보다도 아내는 저에게 듣기에 쓴 말을 더 잘합니다. 하지만 적절하고 유익한 말이지요. 그 말이 맞는 줄 알면서도 충고를 듣는 순간에는 변명하고 싶고, 화가 나고, 역정을 냅니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고 충심으로 저 잘 되기를 바라면서 하는 사랑의 말인데도 그렇습니다. 지나보면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충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두세 명쯤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욕심 같고, 아내 말이라도 잘들을 수 있는 순한 귀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만이라도 저 하고 싶은 말 언제든지 할 수 있으면 합니다.

할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상대나 주변에도 이롭지 못합니다. 할말을 마음에 가두어두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며 은근히 반항하거나 심하면 병으로 발전합니다. 아니면 남에게 험담하고 비난하면서 티끌을 마구 일으키지요. 할말은 해야 합니다. 가슴에 묻어두지 말고 해야 합니다. 남에게 할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바로 해야지요.

그렇다고 막말 끊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니까요. 막말 끊는 말은 신님이 매우 싫어하시며, 인연이 되어 몸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지도말씀 1891.1.28) 아무리 옳고, 할 말이라 해도 때에 맞는 부드럽고 따뜻한 말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칭찬할 때는 칭찬하고 격려할 때는 격려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칭찬과 격려를 받는 사람은 얼굴이 빛나고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기 하는 일에 더 열심히 하고, 의지를 갖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겠지요. 믿어주고 기대해 주는 만큼 사람들은 행동합니다. 칭찬이든 격려든 사랑이든 보상이든 주는 것을 아까워하면 사람을 키우지 못합니다. 커지 못하니까 큰 일을 하지 못하고 자잘한 일만 하게 됩니다. 인색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을 얻지 못하니까 맡은 일에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앞길이 막혀버리고 맙니다.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칭찬과 격려는 아랫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료나 윗사람에게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동료는 라이벌 의식이 많은 탓인지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동료의 도움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동료가 잘 되어야 합니다. 동료가 잘 되지 않고 내 일이 잘되리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동료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협력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하는 일에 칭찬하고, 성과를 내는 일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치사해야 합니다. 축하할 일에 인색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라이벌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은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자 다른 인연과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하는 일이 다르고 못하는 일도 다르지요. 단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려는 것은 불행을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잘하는 것으로 도와주고, 못하는 것으로 도움 받는 것 이것이 교조님이 바라는 서로 돕기정신 아니겠습니까.

윗사람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보내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에게 무슨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냐고 따져 물을지 모릅니다. 그게 아부고 아첨 아니냐는 것이지요. 아부나 아첨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부와 아첨은 내 이익을 숨기고 겉으로 포장하는 말이지만 칭찬과 격려는 내 이익을 바라는 마음 없이 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은 만 사람을 대표해서 선두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보다 칭찬과 격려가 더욱 절실할지 모릅니다.

교조전 일화편45 ‘마음의 주름을에는

주름투성이 종이를 그대로 두면 뒤지나 휴지로밖에 쓸 수 없어. 이것을 정성스레 주름을 펴 두면 어딘가 요긴하게 쓰인다. 뒤지나 휴지가 되면 다시는 쓰일 수 없잖아. 사람의 구제도 이런 이치야. 마음의 주름을 말로써 펴 주는 거야. 마음도 주름투성이가 되면 뒤지나 마찬가지야. 그것이 뒤지가 되지 않도록 구제하는 것이 이 길의 리인 거야.”

는 교조님 말씀이 나옵니다. 구제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말임을 밝히신 내용입니다. 말이 왜 중요한 지 밝혀주시고, 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구제받아야 될 사람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입니다. 아랫사람만이 아니라 윗사람도 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때에 맞는 적절한 말을 지혜롭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말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곤 하지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겠지요. 무리는 아닙니다.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고, 사실이 아닌 거짓을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맑고 곱고 아름다운 말을 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 마음을 맑히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전제가 마음 청소임을 친필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청소만 깨끗이 하게 되면

신의 뜻을 알게 되어 말하고 말하게 되는 거야 (1-30)

이와 같이 좋은 말을 때에 맞춰 적절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마음에 쌓인 티끌을 터는 청소가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말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잘 들어주어야 적절한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의 말을 들어주는데도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구제하는 것도 잘 들어주는데서 출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잘 들어주는 사람은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듣는데 인색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은 상대 마음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친해지고 싶으면 잘 들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큰 사람은 남의 말을 광범위하게 듣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말만 듣지 않지요.

온갖 구실을 대며 반박하는 것도 인색한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남의 의견이나 남이 이룩한 성과를 받아들이기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변명하는 것도 인색입니다. 변명은 남 탓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책임지면 끝날 일을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지요. 안 내는 것만 인색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인색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