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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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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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15

 

여덟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2

 

이 시 중

 

. 티끌의 특성

 

1. 티끌의 특성

1) 쉽게 쌓인다

티끌이 얼마나 쉽게 쌓이는 지 자주 집안 청소를 하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어쩌다 청소하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지요. 그냥 예사로 며칠을 지나치다가 어느 날 티끌이 뭉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빗자루를 들고 걸레질을 하지요.

우리들 영혼에 쌓이는 티끌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날이 쓰는 마음에 인색도 있고, 탐도 있습니다. 미움과 편애, 원망과 분노, 욕심과 교만도 있습니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쓰지 않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근행을 보며 어버이신님의 거울에 비춰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흔히 우리들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든가 나는 올바르고 곧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곤 합니다. 혹은 내 아이는 착하다.’거나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합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과연 그럴까요.

교조전일화편31 <하늘의 자>에 보면

[교조님께서는 어느 날 이브리 이조에게

이조씨, 산에 가서 나무를 한 그루 베어다가 쪽 곧게 기둥을 만들어 봐요.”

라고 하셨다. 이조는 곧 산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와 쪽 곧은 기둥을 한 개 만들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이조씨, 자를 한 번 대봐요.”

하고, 다시 이어서

틈이 없는가요?”

라고 말씀하셨다. 이조가 자를 대봤더니 과연 틈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틈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교조님께서는

그렇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쪽 곧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하늘의 자에 대면 모두 어긋나 있는 거야.”

라고 가르쳐 주셨다.]

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브리 이조오는 소문난 목수장이었습니다. 그 만큼 실력이 있었죠. 더구나 교조님이 부탁하는 일이라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곧은 기둥을 만들어 교조님 앞에 가져가서 자를 대어 보니 빈틈이 있었습니다. 놀랐을 겁니다. 이처럼 아무리 쪽 곧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늘의 자에 대어보면 어긋나 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왜 이브리 이조오에게 하셨을 까요. 이조오는 교조님이 가장 신임하셨던 분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틈이 있고, 어긋나 있고, 티끌이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 만큼 방심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기를 잘 다스리라는 말일 겁니다. 이브리 이조오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이면 보통 사람인 우리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우리들은 착각하며 살고들 있죠. 마치 자기는 아무런 티끌을 쌓지 않는 것 같이요. 이런 모습이 교조전일화편에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교조전일화편130 <작은 티끌은>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 보겠습니다.

[1883년경의 일이었다. 교조님의 명을 받들어 당시 20대의 다카이 나오키치(高井直吉)는 집터에서 남쪽으로 30리쯤 떨어진 곳에 구제하러 나갔다. 그리하여 환자를 붙들고 신상에 대해 깨우쳐 주니, 상대방은 나는 말이야, 아직까지 나쁜 일을 한 기억이 없어.”라고 펄펄 뛰면서 반박했다. 다카이는 나는 아직 그런 일에 대해서는 교조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들은 바 없으므로, 지금 곧 돌아가서 교조님께 여쭈어 보고 오겠습니다.”하고는 30리 길을 달음박질로 되돌아와서 교조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그것은 말이야, 아무리 새 집이라도 말이지, 더구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틈틈이 종이를 발라 두어도 말이야.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다다미 위에 글자를 쓸 수 있을 만큼 티끌이 쌓이는 거야. 거울에 얼룩이 지지. 큰 티끌이라면 눈에 띄기 때문에 청소를 하겠지만, 작은 티끌은 눈에 뛰지 않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는 거야. 그런 작은 티끌들이 스며들어 거울에 얼룩이 지는 거란 말이야. 그 이야기를 해 주어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카이는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여쭙고, 즉시 30리 길을 되돌아가서 상대방에게 방금 이러한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교조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잘 알았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고는, 그로부터 신앙하여 말끔히 신상을 수호받았다.]

위 이야기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상이란 나쁜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쁜 일이란 티끌이 쌓여서 나타나는 일이고, 셋째는 큰 티끌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반성참회가 쉽지만 작은 티끌은 예사로 생각해서 청소를 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긴 시간 방치하다가 원치 않는 병을 부르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카이 나오키치라는 분의 성품에 관한 것입니다. 정말로 순직하고 겸손하고 열정적인 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문이 막혔지만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모습이라든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곧장 교조님께 달려와 여쭙는 모습, 그리고 답변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곧 바로 또 30리 길을 되돌아가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어디에도 자기를 내세우는 교만한 냄새가 없습니다. 자기를 아끼는 인색함도 묻어나지 않습니다. 순박하고 겸손하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 여기에 구제가 열리게 하는 열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티끌은 누구나 쌓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게 되는 거지요.

일찍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교조님을 뵙고 당신께도 티끌이 있겠지요.”하고 무례한 질문을 했습니다. 교조님은 이에 대해 그래, 나도 말이지, 이렇게 별실에 가만히 있으면 티끌이 붙지 않아. 그러나 잠깐 부엌에 나가면 역시 티끌이 붙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조님 자신도 티끌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티끌이 쉽게 쌓인다는 말이겠지요. 홀로 가만히 있을 때는 티끌이 별로 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일을 통해 관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마음작용이 일어나지요. 여기에 인색, 탐을 비롯한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알게 모르게 주고받습니다. 이것이 티끌이 되어 자기를 더럽히고 또 남도 더럽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티끌은 어느 순간에 한번 생겼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생겨나죠. 이것을 모로이 마사이찌(諸井政一)가 쓴 <정문유운 초>에서 다음과 같이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옷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마. 원래는 목화인 거야. 여러 가지 티끌을 털어내면 깨끗한 목화가 된다. 그 목화를 뽑으면 또 티끌이 나온다. 베틀로 감으면 또 티끌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을 다 뽑고 나면 아무런 티끌도 없이 깨끗이 되는 거야. 그러나 이것으로 베를 짜다보면, 보푸라기도 나오지만 실밥도 나온다. 베로 옷감을 만들면 깨끗한 거야. 티끌은 하나도 없어. 버릴 것은 전혀 없는 거야.

하지만 옷을 재단하면, 또 티끌이 날리겠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작은 티끌인 거야. 또 버려야 할 자투리도 나오는 거야. 그렇게 해서 깨끗한 옷이 지어지는 거야. 이처럼 목화에서 깨끗한 옷이 되기까지는 얼마만큼 티끌이 나오는지 모르는 거야.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티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티끌이 없을 리는 없는 거야. 이것을 잘 분간해 다오.]

목화에서 옷이 될 때까지 매 순간마다 티끌은 생겨나지만 그것을 걷어내면 단계별로 쓸모있는 좋은 물건이 탄생합니다. , , , 옷으로 새롭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지요. 옷을 옷장에 간수하는 동안에도 먼지가 앉고, 옷을 입고 다니는 동안에도 때가 묻습니다. 매 순간마다 손질을 하지 않으면 깨끗한 옷을 입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에게도 살아가는 단계마다 늘 여러 가지 많은 티끌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방치하지 않고 매 순간마다 닦아내고 씻어내면 언제나 맑고 깨끗한 향기와 풍모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흔히 향기와 풍모는 잊어버린 채 티끌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잘못 이해하고 불평불만을 곧잘 하지요. 그리고 처음부터 악당이나 선한 사람이 있는 듯이 취급하고 대접을 하지요.

언젠가 어느 분에게 신앙을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되받아 하신 말씀이 신앙해도 별 수 없던데요.” 했습니다. 주변에 신앙하는 사람을 아는 데 큰 병이 생기고, 평소에 마음쓰는 것을 보니 신앙하지 않는 나 보다 나은 게 없더라는 겁니다. 솜이나 아름다운 천을 보지 않고 솜먼지나 조각베나 실밥을 본 탓이겠지요. 사실 신앙을 해도 병 생길 때 병 생기고, 마음 잘 못 쓸 때도 많습니다. 병이나 티끌만 보면 당연히 신앙해도 별 수 없다는 말을 하게도 되고 듣게도 됩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마음 다스리는 방법과 수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하는 만큼 신상이나 사정에 휘말리는 횟수나 강도가 당연히 줄게 되겠죠. 설사 횟수나 강도가 그대로라 해도 삶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티끌은 초 신앙자에게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5, 10, 30년 신앙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티끌에 의한 신상과 사정도 계속 잇따라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는 가운데도 마음은 성장하여 깊이와 넓이가 더해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티끌이나 신상 사정에 집착하다보면 신앙을 해도 왜 이렇노?’하며 침울한 마음으로 빠져들거나 몇 십 년 신앙했다더니 그 꼴이 뭐냐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되겠지요.

누구에게나 티끌이 쉽게 쌓인다고 이해한다면 마음이 지금보다 더 너그러워지고 느긋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이나 악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만 마음에 티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티끌이 쌓입니다. 그래서 나날이 청소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나 쌓고 쌓이게 하는 티끌이지만 초신앙자나 아랫사람이 교회장이나 윗사람보다 덜 생겨나게 한다고 봅니다. 영향력이 별로 없는 탓이지요. 하나 잘못하더라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기껏해야 3-4개로 티끌을 만들어 내는데 그치겠지요. 그러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못을 하나 한다면 100사람 1000사람에게 미쳐서 티끌을 1001000개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윗사람이 되어갈수록 마음수양이 더 깊어지고 더욱 철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