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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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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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14

 

8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1

 

이 시 중

 

. 즐거운 삶을 가로 막는 방해꾼(8가지 티끌)

 

세상에서는 온통 경제 이야기를 합니다. 돈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죠. 돈에 쫓아 사는 세상입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좋은 차를 가져야 행복하고, 좋은 김치냉장고나 가구를 들여 놓아야 행복하다는 가치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행복하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것을 가진다고 해서 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니까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나 돈도 필요하고 옷도 집도 가구도 있어야 하지요. 그러나 남과 비교해서 더 많이, 더 좋은 것, 더 고급스러운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주어진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짜증이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어진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인색하게 굴고, 욕심내고, 교만하게 굴게 되지요. 그런 까닭에 오히려 행복과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TV나 온갖 매스컴에 등장하는 상업광고에서는 더 좋고, 더 편리하고, 더 고급스러운 것을 더 많이 가지라고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래야 더 즐겁고 더 행복하다고요. 그런 믿음이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벌떼처럼 그것을 추구하며 쫓아갔죠. 그 덕에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자연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사람사이에 끈끈한 정은 끊어져 갔습니다. 행복도 어디론가 더 멀리 달아나고, 예전에 없던 질병이 늘어만 갑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뭔가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길에서는 돈버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 먹고 싶다거나 좋은 옷 입고 싶다거나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기는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즐겁게 사는 길을 이야기 하죠. 즐거운 삶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빠짐없이 바라고 원하는 일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누구나 빠짐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이 어버이신님의 진실한 마음임을 우리는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즐거운 삶이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부자만 행복하겠지요. 권력이나 지위나 명예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권력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즐거운 삶은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를 가리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즐겁게 살자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며, ‘즐겁게 살아라한다고 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절하고 빈다고 되는 일도 아니지요. 즐겁게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을 깨끗하게 맑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냥 마음을 깨끗이 맑혀라해서는 막연합니다. ‘무슨 마음을 어떻게 깨끗이 하고 맑히라는 말이냐 싶죠. 막연해서는 아무 것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해야 실천이 가능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탁하게 하느냐하는 점입니다. 이길에서는 마음을 어둡고 탁하게 만드는 것으로 8가지 티끌을 들고 있습니다. 8가지 티끌은 인색, , 미움, 편애, 원망, 분노, 욕심, 교만을 말합니다. 8가지가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운명을 막히게 하고 즐거운 삶을 가로막는 방해꾼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고오끼이야기 14년본 기따본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별석 말씀에도 실려 있습니다. 여기다 거짓과 아첨을 더해 열 가지 티끌이라고 하지만 보통 경우는 앞에 8가지 티끌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원전 중에 친필에서는

어떤 것이든 질병이란 전혀 없다

마음 잘못 쓴 길이 있으므로 (3-95)

이 길은 인색 탐 편애

욕심과 교만 이것이 티끌이야 (3-96)

하며 8가지 중에 5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5가지 밖에 안 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친필 원본에는 1수에 5,7,5,7,7이라는 제한된 글자로 운율을 맞추려 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한편 신악가에는 8가지 티끌 중에 대표해서 욕심(사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상당히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비중이 아주 높다고나 할까요.

사욕이 없는 자는 없을 것이나

신님의 앞에서는 사욕이 없다 (5장 넷에)

사욕의 마음을 저버리고서

독실한 마음으로 작정하여라 (8장 넷에)

살피니 세상사람 마음속에는

사욕이 섞이어서 있는 것이니 (9장 셋에)

사욕이 있으며는 버리어다오

신님이 받으시지 않을 것이니 (9장 넷에)

사욕이 한이 없는 진흙물이야

마음이 맑아지면 극락이로다 (10장 넷에)

사욕을 저버리고 히노끼싱

이것이 첫째가는 거름이 된다 (11장 넷에)

신악가는 다른 원전에 비해 그 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노래말이기 때문에 매우 함축된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서 8가지 중에 사욕(욕심)만 언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욕심을 대표로 해서 내세웠을까요. 아마 모든 티끌이 모두 욕심과 연결되어 있으며 욕심으로 귀결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지도말씀에는

인간이란 몸은 대물, 또 여덟가지 티끌, 이 리만 알게 되면 무엇이든

알게 된다. 그 다음 단노의 리를 깨우쳐 주라. (1888.7.4)

고 하신 것처럼 여덟가지 티끌이라는 말이 그대로 나오고 있으며 대물과 단노를 연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죠. 이것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말씀일 뿐 아니라 전도를 할 때도 그 상대에게 분명히 납득시켜야 할 중요한 요점으로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대물이란 대물차물(貸物借物)’의 줄임말로 어버이신님 입장에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몸을 빌려주시므로 대물이고, 인간 입장에서 보면 어버이신님한테서 몸을 빌려받아 쓰기 때문에 차물입니다. 이렇게 빌려주고 빌려 받아쓰는 근본바탕은 인간이 자유롭게 쓰는 마음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에게 그냥 몸을 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나날이 쓰는 마음을 보아서 그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빌려 주시는 것이죠. 마음에 따라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 하면 부자유하게 받아 쓸 수 있습니다. 사용기한도 길게 하거나 짧게 할 수 있죠. 몸이 부자유스럽거나 사용기한(수명)이 짧다는 것은 인색, , 미움, 편애, 원망, 분노, 욕심, 교만이라는 여덟가지 티끌된 마음을 많이 썼다는 말이 됩니다. 반대로 티끌을 적게 쌓고 어버이신님의 의도대로 이 세상을 평화롭고 즐겁게 하는데 마음을 잘 살려 쓴다면 몸은 더 자유롭고, 사용기한도 더 늘려 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단노란 자기에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이나 자기 주변에 되어오는 모습을 어버이신님의 뜻으로 진실로 수긍해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기 마음에 따라 신님께서 수호하시는 모습이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임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태도이지요. 원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누구나 좋아하며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문제는 원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일이 닥쳤을 때 아닙니까. 이것을 자기 것으로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단노이지요. 흔히 잘된 일은 자기 덕, 잘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는 말을 하며 일이 어그러졌을 때 도망가거나 피해가려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든 남 탓을 하지 않고 분명하게 자기가 책임을 지는 태도가 단노입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즐겁고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남 탓을 하지 않는다, 분명한 태도로 자기가 책임을 진다, 즐겁고 흔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단노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단노가 될 때 과거전생에 쌓은 악업(두터운 티끌)이 사라지고, 장래에 좋은 꽃을 피울 리가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노는 전생인연의 참회로 받아준다. 그리고 단노는 즐거운 꽃이 필 만큼 충분한 리가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물차물과 여덟가지 티끌 그리고 단노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이 진실로 구제받는 중요한 요점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구제받기를 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널리 전해 가야할 중요한 포인트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티끌이 쌓여 마음이 흐려지면 마치 안개 속에 사는 것 같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라집니다. 티끌이 가슴에 쌓이면 행복해지고 싶어도 그 방법과 길을 몰라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어둡게 하고 즐거움을 앗아 갑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쌓인 티끌을 털어내고 말쑥하게 청소를 하게 되면 마음이 청명하게 맑아집니다. 자기 앞에 가로 놓여있던 장애가 걷힙니다. 무엇을 해야 올바른지, 어디로 가야 즐거운 삶에 도달할 수 있는 지 저절로 드러나 알게 됩니다.

그래서 친필에서는

온 세상에 많은 사람 살고 있으나

사람들은 모두 안개 속에 사는 것 같아서 (6-14)

나날이 맑아져 알게 되는 신의 뜻

성인됨에 따라 나타날 거야 (6-15)

하셨습니다.

지도말씀에서도

밤의 어둠은 걸어갈 수 있지마는 낮의 어둠은 걸어갈 수 없다. (1901.10.13)

고 하였습니다. ‘낮의 어둠이나 안개 속에 사는 것은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이 맑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 마치 안개 속을 더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무리 햇빛이 내린 쬐이는 밝은 날에 길을 걸어도 마치 어둠속에 사는 것 같아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옳은 길, 즐겁게 사는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눈 부릅뜨고 있지만 마치 장님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길에서는 악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악당이니 악마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와 누구를 구별해서 선택한 사람만이 구제한다는 편협한 가르침이 없지요. 인간의 근본 바탕에는 누구에게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영혼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해 왔으며,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버이신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이러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수한 세월동안 알게 모르게 자기 중심된 마음을 써니까 그것이 티끌이 되어 조금씩 혼을 더럽히고 어둡게 만들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어버이신님이 우리 몸속에서 자유자재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우리 몸과 인간관계가 부자유스러워지겠죠. 이것이 괴로운 신상과 어려운 사정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그런데 이런 잘못된 띠끌만 털어내면 누구나 자유롭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길의 위대한 가르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친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 온 세상을 살펴보아도

악이란 전혀 없는 거야 (1-52)

모든 사람들에게 악이란 없는 것이지만

다만 조금 티끌이 묻었을 뿐이다 (1-53)

티끌만 깨끗하게 털어 버리면

다음에는 진기한 구제할 거야 (3-98)

한편 신악가 1절에는 악한 것을 제거하고 도와주소서 천리왕님이시여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때 나오는 악한 것의 손동작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입니다. 즉 가슴에 쌓인 티끌을 털어내는 모습입니다. ‘악한 것이란 흔히 말하는 어떤 존재나 외부적인 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죠.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티끌이 쌓여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죄와 벌이라는 개념도 없지요. 잘못하기 때문에 죄와 벌을 주고, 잘 하기 때문에 상과 포상을 준다는 식이 아니지요. 가슴에 티끌이 묻었기 때문에 어버이신님께서 활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저절로 병이 오고 사정이 생기는 것이고 불행을 불러들인다 말입니다. 반면에 티끌을 털어 마음을 깨끗하게 맑히면 어버이신님이 활동하기 쉬워지니까 건강이 찾아오고, 하는 일이 수월하게 되고, 마음에는 행복이 저절로 찾아드는 것이죠. 이보다 더 믿음직한 가르침은 없죠. 권력이 없어도 행복해지고, 돈이 없어도 행복해지고, 지위나 명예가 없어도 행복해 지는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는 가르침이니까요. 더군다나 누구나 빠짐없이 모두에게 보장해 주는 가르침 아닙니까.

 

이와 달리 세상에서는 돈, 권력, 지위나 명예를 얻어야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잘못된 믿음을 강요하며 세뇌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믿음을 과감히 깨치고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TV보는 시간보다 근행을 올리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하겠습니다. 상업광고나 드라마 보는 시간보다 친필이나 지도말씀을 읽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하겠지요.

신앙을 하면 운명이 바뀌고 팔자가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하고 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길 즉, 인연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지요. 마음의 길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신앙을 오래해도 운명이 바뀌지 않고 팔자도 바뀔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길을 바꾸지 않으면 제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자라도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이 마음을 바꾸는 실마리가 8가지 티끌에 대한 가르침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