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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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13

 

신앙은 감사와 은혜보답의 길 13

 

이 시 중

 

. 나가는 말

마음은 수신 안테나와 같다. 세상에는 온갖 전파들이 떠다니지만 수신 안테나의 주파수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공중에 KBS, MBC, SBS, YTN 정보들이 떠다니고 있지만 각각 자기에게 맞는 주파수나 채널을 맞추어 영상을 보내고 말을 보낼 수 있을 뿐이다. 보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KBS, MBC, SBS, YTN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세상 만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기 마음이 이끄는 파장에 맞춰서 끌려온다. 욕심을 내면 더 큰 욕심이 끌려오고, 원망과 걱정을 하면 더 큰 원망과 걱정이 따라온다. 원망한다고 원망이 사라지고,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불어날 뿐이다. 불평과 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큰 불평과 불만이 판을 치며 자기를 괴롭힌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행복을 누리고 싶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많이 키워야 한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 지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감사함은 천지에 늘려 있다. 저 멀리 산 너머 있거나 어떤 조건이 맞아야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늘 함께 했고, 우리를 떠나서 있었던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넘쳐나고 있는 게 행복과 감사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살 게 된 것은 남 탓이 아니다.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이 가로 말고, 불평하는 마음이 방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감사를 모르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행복을 쫒아 내게 하였다.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고 있으니까 감사를 모르게 되고, 지금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마음이 빼앗기니까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마저 저 멀리 내치고 말지 않았는가.

행복도 불행도 매순간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하는 대로 주어진다.

마치 철수야하면 철수가 대답하고, ‘혜주야하면 혜주가 달려오듯이 말하는 대로 되고, 생각하는 대로 되어 오는 것이다. 철수가 반응하기 때문에 철수를 부르고, 혜주가 와 있기 때문에 혜주를 부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지금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처지가 어떠하든 감사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선택하라는 말이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감사를 미룰 필요가 없다. 감사도 불평도 선택이다. 감사와 불만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다. 상황이 감사해서 감사를 느끼고, 상황이 불만스러워서 불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사도 불평도 선택이다. 아무리 상황이 좋아도 기대에 못 미쳐 불만스런 것이 있고,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감사할 일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어디에 주파수를 맞추고 살 것인가. 세상은 자기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을 탓할 것인가. 내 마음을 탓할 것인가. 거울을 아무리 바꾸어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만이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행복해 지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불평불만을 줄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는데 있다. 지금 현재 주어진 자기 자리에 감사하고, 자기 앞에 주어진 모든 기회를 감사하자. 신상과 사정 마디까지도 모두 기회이다. 언제나 감사를 선택하자.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나 먼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는 말을 더 자주 해 보자. 감사는 주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진지하게 전하고, 진실하게 표현하자. 이것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발판이다.

신앙은 이러한 선택을 매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고 방편이다. 신앙은 날마다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바르게 삶을 여는 열쇠이다. 그래서 신앙은 감사와 은혜보답의 길로 이어진다. 이 때 어버이신님의 가르침과 교조님의 모본은 즐거운 삶의 기준이며, 길잡이이고, 나침판이 된다.

신앙은 단지 절하고 빌면서 복을 바라는 마음을 키우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든 더 많은 감사를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길러내는데 있고, 은혜 보답할 줄 아는 심성을 길러내는 데 참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신앙할수록 기쁨이 늘어나고,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져 가는 것이다. 반대로 신앙해도 기쁨이 적어지고, 외로워지고,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적다고 느껴진다면 바르게 신앙을 한 것이 아니다. 바라거나 기대하는 마음이 많아졌다면 올바르게 신앙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진정한 감사란 멋진 집을 얻고, 아이가 원하는 직장에 가고, 신자가 내 말을 따라주고, 멋진 옷이 생겨서 좋아하는 그런 세속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일어나고 있는 경이로운 삶의 기적을 가슴 깊이 느끼는데 있다. 또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히 늘려있는 풍요로움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누리는데 있는 것이다.

상황이 좋다 나쁘다는 조건이 문제가 아니다. ‘누가 옳으냐 틀렸느냐도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누가 잘 했다 못했다를 따지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더 행복해지는 길인가가 문제이다.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는 게 행복해 지는 길인가, 아니면 만족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행복해 지는 길인가 하는 것이다.

만족은 마음의 리. 부드러운 사람은 나날이 만족한다. 만족은 작은 것이라도 세상에 큰 리로 된다. 이보다 큰 리는 없다. 만족은 넓히고 부족은 앞길을 좁힌다. 만족이라는 것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즐겁다. 즐거운 리는 하늘의 리에 통한다. 통하므로 번창한다. (19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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