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참여마당

 

쌀 한 톨에 담긴 정성

 

이 희 선(고성교회)

올 여름에는 유난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이유 없이 좋았다. 왠지 비가 내리면 안 좋은 것들이 씻겨 지는 것 같았다. 비가 온 후 하늘은 더욱 더 파랗고, 주위의 나무들도 새 옷을 갈아입은 듯 말끔해 보였다.

하지만 올 여름동안 내린 비는 나에게 너무 많은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별일 아니구만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새내기 주부인 나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장마철에 접어들었을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쌀독을 보니 쌀이 똑 떨어졌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댁에 쌀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장마철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쌀자루에는 쌀벌레들이 생겨 있었다. 시어머니께선 쌀벌레가 생겼으니 먹을 거면 가져가고, 먹지 않을 거면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 아파트 단지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마구 가져다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요즘은 물건 소중한줄 모른다며 버릴 거라면 아예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다.

집에 밥 지을 쌀은 하나도 없고, 시부모님께선 두 분 모두 이미 강습을 받으시는 중이라 집을 비우신 상태이다. ‘이 쌀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쌀자루를 들여다보니 잡아내야 할 벌레들이 제법 많다. 어쨌든 쌀을 가져가지 않으면 당장 밥해 먹을 쌀이 없으니 쌀을 사야할 것이고, 시부모님께선 몇 달 동안 집을 비우실거니까 이 쌀을 누군가는 처치해야 할 상황이다.

일단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가져온 쌀로 당장 밥을 지어야 하니 벌레를 잡아야 했다. 어떡하지? 일일이 잡아내기에는 많기도 많지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너무 징그러웠다. 쌀을 조금 덜어 옥상에 말려보기로 했다. 옥상에 올라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돗자리를 깔고 쌀을 얇게 펴서 말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 쌀벌레들이 알아서 기어나갔기만을 바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일부는 기어나가고, 일부는 기어나가지 못하고 바짝 말라 죽어 있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으나 잡아내야 할 벌레들이 줄었기에 일단 말리기 전보단 만족스러웠다.

햇볕에 말린 쌀을 가져와 저녁밥을 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쌀을 조금 덜어 밥을 지었는데 밥통의 밥은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불어 있었다. 게다가 밥알은 반 토막이 나서 말 그대로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밥맛을 말할 것도 없었다. 왠지 밥에서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결하고, 남은 밥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누룽지로 만들어 보관해두었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초지정을 말했더니 쌀은 그늘에 말리는 거라고 하신다. 햇볕에 말리면 쌀에 수분이 달아나 반 토막이 나 밥맛이 없다는 것이다. 진작 물어보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하여 책을 꺼내 찾아보니 쌀은 아무리 잘 건조된 것이라 할지라고 장기간 보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쌀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간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상당히 짧은 편이며 햅쌀의 경우 기온이 선선한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는 약 2개월 동안의 보관이 가능하지만, 늦봄이나 여름철같이 고온다습한 계절에는 이보다 훨씬 짧다. 그리고 쌀은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4월 이후로 묵은 쌀이 되어가며 기온이 올라갈수록 제 맛을 유지하는 기간도 점점 더 짧아진다. 4~5월에는 1개월, 6~7월에는 20여일, 8월에는 15일 정도이다. 물론 그 이상 두어도 못 먹을 정도로 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맛은 현저히 떨어진다. 쌀의 보관 장소로는 통풍이 잘되고 습기가 없는 어두운 곳이 적당하며 직사광선 아래나 음식 할 때 열기를 받는 장소, 또는 습기가 많은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음날, 이번엔 그늘에 말려보기로 했다. 어제보다 더 신중해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먹을 만큼의 쌀만 꺼내 그늘에 펴서 늘어놓았다. 그늘에서 말린 쌀에는 기어나가지 못하고 쌀에 붙어 있는 벌레들이 제법 있었다. 이것들을 일일이 잡아내고서 밥을 지었다. 햇볕에 말린 쌀보다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리고 며칠 후,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보관 장소가 잘못돼 습기가 차서 그런지 쌀자루를 여는 순간 기가 막힐 정도였다. 며칠 전엔 분명히 기어 다니는 것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날아다니는 것들도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있었다. 너무 작아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까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징그러웠다. 한숨이 나왔다. ‘이걸 버려? 어째?’

순간 농사지으시는 시부모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안 먹을거면 가져가지 말라시던 말씀... 그리고 봄에 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어 모내기를 하고, 피를 뽑고 물을 대어가며 지극정성으로 돌봐 수확한 쌀인데... 이 더운 여름 농사지으신다고 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그리고 옛날 어릴 적 생각도 났다. 어릴 적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식사가 끝나면 다 먹은 밥그릇 검사하셨다. 밥그릇에 밥알 한 톨이라도 묻어있으면 혼을 내시곤 했던 기억도 난다. 또한 친정엄마는 어떤가? 친정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향대에 넣을 모래나 흙을 구하지 못해 쌀을 부어놓고 거기에 향을 꼽는다. 제사를 지내고 난후 그 향대에는 타다 남은 향들과 재, 그리고 제문 태운 재까지... 엉망이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이 쌀을 버리지 않고 따로 놓아두었다가 깨끗이 씻어 밥을 지을 때 같이 지으신다.

? 흔하다. 뉴스에서 보면 쌀이 남아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차마 쌀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쌀을 말렸다. 한바가지도 안 되는 쌀의 벌레를 잡는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처음엔 징그러워서 잡지 못하던 벌레도 눈을 질근 감고 잡고 또 잡았다.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잡기 시작한거 끝까지 잡아보기로 맘 먹고 잡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쌀벌레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며칠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쪼그려 앉아 벌레를 잡았다. 그리하여 쌀벌레와 전쟁은 끝이 났고 그 쌀은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조금씩 꺼내 먹기로 하였다. 쌀벌레를 다 잡은 순간 그동안 내 몸에 붙어 있던 벌레들이 다 떨어져 나가 내 몸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속이 시원했다. 며칠 동안 고생은 했지만 그 쌀을 결국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하여도 이 작은 한 톨의 쌀을 만들 수는 없다. 씨를 뿌리고 물, 햇빛과 거름을 주고 시간이 흘러야지만 쌀 한 톨이 만들어진다. 더욱이 여기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한 활동이 담겨 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없다. 이 모두가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 주신 자연의 혜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단지 지혜와 기술을 이용해 그 재료들을 여러 가지 도구와 식료품으로 가공해서 생활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리라.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감사드리기 위해서는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쉽게 버려서도 안 될 일이다.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면 어버이신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거리에는 음식물이 넘치고, 아무리 물질이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한 방울의 물, 한 톨의 쌀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여기에 깃든 정성을 소중히 여기는 감성이 길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