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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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년09월]여름을 달리다 - 강동월

2012.07.14 16:10

편집실 조회 수:2023

 

 

여름을 달리다

 

강동월(신화교회)

 

누구나 젊은 시절에 혹은 평생을 두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한두 가지쯤 있기 마련입니다.

저에게도 꼭 해보고 싶은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전국일주였습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닌 온전히 제 두 다리 힘만으로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는 전국일주 말입니다. 20대의 초입에 들어서던 그 해부터 줄곧 결심을 해 두었지만, 결국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하고, 계속해오던 공부를 하고 있던 올해 초까지도 가슴속 한 켠에 담아두었을 뿐, 어떤 결정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미루다가 결국에는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끔 들기는 했습니다.

결국 올 6월말쯤에 준비했던 시험을 치루고 나서야, 미지근하기만 했던 제 결의가 더 이상 미루다가는 결국에는 하지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일상을 정리하고 미루기만 했던 전국일주를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시작부터 약간 삐거덕 거렸으니, 계절상으로 장마기간이 시작되는 기간이었습니다. 만약에 장마를 이유로 3주정도 미룬 후에 가게 된다면, 후반기에 있을 시험과 계획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고, 7·8월의 무섭게 내리쬐는 무더위를 당해낼 재간이 있을 지도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그냥 강행하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출발하기 이틀 전에 결심을 하고 준비를 시작한 셈이니 꽤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일단 도보일주는 무리로 판단되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짐을 꾸렸습니다. 자전거도 평소에 집에서 타던 자전거를 이용했고 여러 가지 부족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경험들을 읽고 메모해 두었습니다. 기본적인 일정은 보름정도로 잡았습니다. 저희 신화교회 월차제일인 14일 이전에는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출발 당일인 628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전날 자정까지 짐을 꾸렸기에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이제 정말 가는 구나하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제부터 장마기간에 접어들기는 했으니 밤하늘은 무척 맑았고, 기상예보 역시나 30일이나 되어서야 비가 올 것이라 했기에 걱정을 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잔뜩 찌푸린 인상마냥 어두운 하늘을 보며 그리고 대지를 세차게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정말 어찌해야 하나 고민되었습니다. 그렇게 걱정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아침이 되었고, 부모님께서 집을 나서셨습니다. 매달 28일이 대구·경북교구 제()일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대구에 있는 교구에 가시는 것입니다. 집을 나서며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물론 아버지께서는 제가 비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여행을 미루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었지만 이미 결심하고 나서는 여행이니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라. 신님께서 보살펴 주실 게다.” 하시며 저와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그때 고민할 것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며 결심이 섰습니다. ‘그래 가자. 오늘이 아니면 그 또한 언제가 될 것인가.’ 아버지의 한 마디에 말끔히 고민을 접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께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맑게 게이며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며 기분도 좋고, 더불어 비 온 뒤라서 상쾌함도 더해졌습니다. 앞으로 보름 가까이를 제 두 다리에만 의지하여 전국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뛰고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렵사리 시작된 여행은 하루하루가 정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장마와 무더위라는 계절의 경계선에 놓인 7월초에 나선 터라 참으로 애매한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폭우가 내리다가도 곧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지치고 허덕이는 하루가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게 달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긴 여행 중 그런 날은 고작 하루의 몇 시간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집을 나선지 3·4일이 지나자, 얼굴은 곧 검게 그을리고 몰골도 말이 아니게 변했으며, 체중도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행길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식사와 잠자리일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특히 잠자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아무래도 고단한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내일의 시작을 위한 곳이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정상 고성교회에서 일박을 하거나 아는 형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비가 심하게 내리는 밤에는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습니다만, 거의 노숙을 했습니다. 노숙이라고 해서 그냥 길에서 자는 것은 아니고, 침낭과 모기장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저녁쯤에 도착한 마을의 정자나 마을회관을 이장님의 허락을 얻어 하룻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추억들이 많이 있지만, 논산에서 일박을 했을 때가 지금도 제일 기억 납입니다. 보통 저녁 무렵의 어김없는 일과는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며, 혹시 지나칠지도 모를 오늘의 보금자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야 논산에 도착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만, 오히려 시내에서 정자를 찾아 잠자리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시내를 조금 벗어나서야 주의 깊게 살피었고, 다행인지 한 마을 어르신의 도움으로 그분이 사시는 마을의 정자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게 된 이 마을의 정자는 소위 마을 할머님들의 아지트(?)로 이용되는 곳이었던 모양인지 제가 갔을 때도 십여 분의 할머님들께서 담소를 나누시고 계셨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시기도 했지만, 학생으로 뵈는 청년이 전국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다는 소개에 기특해하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도 하고 걱정도 참 많이 해 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솔직한 심정은 할머님들이 어서 댁으로 돌아가시어 꾸려둔 짐을 풀고 편히 쉬고 싶었습니다만, 그 마음을 아실 리 없는 할머님들은 해가 지고도 한참 지난 9시가 넘어서까지 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참으로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히려 저를 데리고 마을회관으로 가서 저녁도 챙겨주시고, (그 마을은 주말마다 동네 분들이 모두 모여 마을회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신다고 하신다고 합니다. 그날이 공교롭게도 토요일 저녁이라 저녁거리들이 각종 회 무침을 비롯해 완전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밤에 비라도 들이치면 어쩌나 걱정해 주시는 것에 정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다음날 아침에 제가 짐을 꾸려 마을을 나설 때 할머님 중 한분이 마을 정자까지 오셔서, 아침을 꼭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하시며, 빵과 토마토를 검은 봉지에 한가득 담아 오셨습니다. 그 할머님을 비롯해 마을 할머님들의 따뜻한 정에 감사함과 송구함이 더해져 정말 잊을 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추억뿐만 아니라 강원도 양구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어묵을 먹다가 동네아저씨들과 이야기가 길어져 받아 마신 막걸리의 시원함과, 충남 천안소방서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소방관분들께서 얼린 생수 여러 병을 주셔서 거절한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누구보다 힘들고 위험의 일선에 나서서 일하시는 분들이 목을 축이려 얼려 놓으신 생수이기에 도저히 받지 못하겠어서 거절하고 제 물병만 채우고 나오는 저의 뒤에서 힘내라며 환호해주시던 소방관분들도 기억이 납니다. 좋은 기억만큼이나 힘들었던 기억들도 많은데, 강원도의 고개 하나를 반나절이 넘도록 오르기만 하기도 하고, 3킬로미터가 넘는 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그런 터널이 여섯 개나 연달아 붙어있더군요), 폭우가 쏟아지는 해안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다가 경찰관께 검문을 받고 내쫓기기도 하며,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우리나라 국토를 고스란히 제 힘으로 제 발로 돌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당일 날도 폭우로 인해서 무척 힘들었지만, 웬일인지 그 전날들처럼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던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집에 도착하고서 목소리 높여 부모님을 불렀을 때,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에 온통 비에 젖어서 돌아온 아들의 귀가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제가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마주한 두 분 역시 엄청나게 내리고 있는 빗속에서도 저에게 우산을 씌워 주시면서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시는 모습 앞에서 저 역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음을 감사드리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계획을 세울 당시를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참으로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결정과 행동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나서는 여행이었고, 계획된 일상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강행한 작정이었기에 나서기 전날에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그 순간까지도 걱정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감에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정말 값지고 좋은 경험이라 여겨질 정도로 참으로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상에 젖어 그저 올라갈 목표만을 향해 무던히도 젊음을 태우고 있던 저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반성할 수 있었으며,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도 있는 큰 자극이 된 것입니다. 작게는 무엇인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자신감과 만족도 있겠지만, 저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낸 것에 대한 뿌듯함 또한 더해집니다.

다시 일상에 돌아와 생각해 봅니다. 과연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얻고 성장했을까? 안타깝게도 보이는 결과는 뚜렷하게 없습니다. 기껏 남은 것이라고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그을린 얼굴과 사진 몇 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시작이야 단지 전국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치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지 이번 여행이 그저 추억 만들기만의 의미가 끝나는 것이 아닌 저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느끼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해냈다는 긍지와 더불어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더불어 얻었습니다. 자신을 단단히 두드리고 연마했던 만큼, 그 만큼 성장한 계기가 충분히 되었다고 봅니다.

아직은 다소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허나, 이제 곧 지금의 더위마저도 한풀 꺾일 것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코스모스를 흔드는 가을이 올 것입니다. 여름날의 마른 대지에 흘려 두신 땀방울이 거름이 되어, 풍성한 수확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가을을 맞이하기를 저 또한 기다리며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