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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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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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받기 42

 

구제한줄기 마음 2

 

김위태(칠암교회장)

 

4) 친필 6-130, 131호는 어버이신님께서 하시는 일 모두가 자녀를 구제하는 일이며 임신을 하고 태어나게 하는 것도 모두 어버이신님의 구제한줄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월일

진실로써 하는 구제한줄기 (6-130)

태내에 잉태하게 하는 것도 월일이니라

출산하게 하는 것도 월일의 보살핌 (6-131)

위 친필 말씀의 뜻은 무슨 일이든 모두 어버이신이 하는데 그것은 진실로 인간을 구제 하고자 하는 일념 때문이며 태내에 아기를 잉태케 하는 것도 어버이신의 수호가 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수호나 임신을 하는 수호 모두가 구제한줄기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위 친필에서 진실로써 하는 구제한줄기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버이신님께서는 인간을 구제하고자 하는 한줄기 마음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구제 받고자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어버이신님께서도 어쩔 수 없다고 <고설선집>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아무리 인간을 구제하고 싶다는 의도를 갖고 계신다 하더라도 그러한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제 멋대로 마음을 쓰는 사람은 구제받을 수 없다. , 어버이신님께서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정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구제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쓰지 않거나, 죽기만을 바라고 있어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교조님께서는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이 남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인사를 해 버린다면, 설령 본인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또 주인이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입으로 인사를 하였기 때문에 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략)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질병에 걸렸다고 하여 이제는 구제받을 수 없다든가 이제는 살 가망이 없다는 식으로 말해 버린다면 어버이신님께서 구제해 주고 싶어도 스스로 정한 마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세상과 작별을 하는 듯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라고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은 어떤 경우라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막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더라도 하루 하루 살아 움직이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수호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암을 선고 받은 사람이 죽을 바에야 이왕이면 좋은 일이나 하고 죽자는 생각으로 매일 각종 시설에 다니면서 기부를 몇 달 계속하고 나니까 암이 없어졌다는 내용이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시설에 기부를 하게 되면 마음이 최고로 즐거워지니까 머리에서 암균을 죽일 수 있는 엔돌핀이 계속 나와서 건강이 회복된 것입니다.

위 친필 6131수에서 태내에 잉태하는 것도 월일이라 했습니다. 잉태하는 것도 인간을 구제하고자 하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임산부들이 낙태를 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낙태라는 것은 임산부 배안에 있는 태아가 정상적으로 태어나기 전에 사람의 힘으로 유산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50,000명 정도가 낙태를 하고 있는데 결혼한 여성이 200,000명 정도 되고, 150,000명이 미혼여성입니다. 그 중 합법적인 낙태는 17,500명 정도인데 이렇게 불법적인 낙태가 많은 것은 옛날에 실시한 산아 제한 정책 때문에 국가에서 낙태를 모른 척하고, 방치해 온 결과 때문입니다.

종교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태아도 생물학적으로 보면 생명이 있는 사람이며 도덕적인 입장에서도 태아는 인간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낙태를 살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태아를 낙태시키는 방법이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낙태를 하면 산모의 몸이 망가지고 다음에 임신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없는 사람들이 낙태를 시키면 임산부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남자아이 선호 사상 때문에 태아의 성을 미리 확인한 후 여자일 경우 낙태를 시키게 되면 전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아이들이 커서 결혼적령기가 되면 큰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처녀들이 적기 때문에 주로 농촌 노총각들은 중국, 베트남, 몽골, 필리핀, 중앙아시아 처녀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모습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웃나라들도 잘 살게 되면 외국인 처녀들과 결혼하기도 힘든 세상이 올 수 있습니다.

다음은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태아가 치명적인 장애가 있다든가 질병이 생겼을 때는 낙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태아로 인하여 임산부의 생명이 위독하다든가,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는 낙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태아가 임산부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낙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강간이나 성폭력, 근친상간으로 임신을 했을 때는 우리나라 현행법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어린소녀나, 미혼의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는 아기를 키울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까 낙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국가에서 낙태를 허용하지 않으면 태어난 아이의 보육을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다든가, 아이가 필요 없다고 생각 할 때는 아무도 낙태를 못하게 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낙태를 심하게 단속하면 불법낙태로 부작용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낙태의 자유화를 인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은 임신 12주까지, 일본은 임신 153일까지는 낙태하는 것이 합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출산률로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비상이 걸려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하여 출산장려금 지급 등 많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입장에서 보면 낙태는 인간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임산부가 특별한 사유 없이 마음대로 낙태를 하면 그 티끌은 훗날 액운으로 변하여 되돌아오면 많은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태아의 존엄성을 잘 표현한 일본의 TV연속극 순정의 내용은 신파극과 현대극의 중간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주인공 임신부는 결핵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담당의사는 임산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낙태를 해야 된다고 권유를 하고 있지만 나만 살기 위해서 뱃속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주변의 권유를 뿌리쳤습니다. 몇 달 후 태아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자신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출직을 맞이하게 된다는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태아의 존엄성, 임산부보다 태아의 생명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TV드라마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낙태의 풍조를 고발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계속하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는 낙태금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으나,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언론에서 논평을 하고 있습니다.

5) 친필 7-46, 47호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원을 하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어버이신님께서 이 세상 모든 자녀를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내용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빨리 기원하라 곧 이루어지리라 (7-46)

무엇이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아

구제한줄기를 서두르고 있으므로 (7-47)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빨리 어버이신님에게 기원토록하라. 그러면 어버이신은 그것을 받아들여 마음에 따라 모두 이루어 줄 것이다.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어버이신은 오직 구제한줄기만을 서두르고 있으므로 진실한 마음으로 원한다면 무엇이든 수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위 친필 말씀에서 기원을 하면 도와진다고 하였습니다. 기원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을 이루어지도록 신님께 부탁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교조님께서는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에게 기원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였습니다.

20045월호 도우지에는 진주님께서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하실 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아침근행에는 건강하게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잘 수호해 주십시오 라는 기원을 드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 모두 아침근행에 오늘 하루 무사히 활동할 수 있도록 수호해 주십시오하고 기원드리는 것은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조전 일화편> 199 ‘한살이야에서 교조님은 창만으로 배가 불러있는 세이씨에게 기원을 올리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이싱 심메이강의 주선인인 혼다 세이는 1882년 두 번째로 터전에 돌아왔다, 그때도 지병인 창만으로 배가 크게 부어 있었다. 그것을 보신 교조님은 세이씨, 세이씨. 당신 그런 배를 안고 있으면 괴롭겠지. 그러나 금생에 쌓은 티끌이 아니야. 전전생에서부터 지고 나온 거야. 신님이 반드시 도와주실 거야. 마음이 변해서는 안 돼.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이 끈을 놓으면 안 돼. 당신, 전전생일은 아무것도 모르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원하면서 신님께 사례 드리면 되는 거야라고]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이씨는 하시다 등 신자들이 밤낮 6좌씩 33야 기원근행으로 완전히 수호 받았습니다.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은 어려운 신상과 사정이 생기면 조석근행을 올릴 때 기원을 하여 수호 받은 이야기는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고설선집> ‘크고 넓은 마음이 되어에는 기원방법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님은 사물의 구역을 끊는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들은 날을 한정해서 다음과 같이 기원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이 만큼 사례 하겠습니다.”

몇 년 몇 달 동안에는 틀림없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모든 일을 잘라서 작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큰 착오인 것입니다. 이를 테면 이곳을 졸업하면 3년 이내에는 꼭 교회를 세우겠다고 맹세를 했을 때 이것은 도리어 신님에게 거짓을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는 물질, 혹은 시간을 잘라서 신님에게 맹세 할 수는 없다. 이 길을 걷는 사람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많이 있으나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작게 할 뿐만 아니라, 신님을 속이는 것이 된다. 더구나, 그 때문에 커다란 신님의 활동을 작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무래도 사물을 끊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10여 년 전 신세를 많이 진 분께서 간질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나에게 내 생명 3년을 간질병 환자에게 주십시오. 라고 약 18개월 정도 조석으로 기원을 계속 했는데 나에게 중풍신상이 와서 그 기원을 중단했습니다.

위 고설선집 글을 읽고 난 후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기원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수를 한정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어버이신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기원은 내 생명의 일부를 간 신상자에게 주십시오.’ 하고 기원드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6) 친필 8-47, 48, 49, 50호는 어버이신님은 터전에서 인간을 창조한 리가 있으므로 자녀들을 마음먹은 대로 구제하여 주시는 것이며 어버이신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은 처음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월일 으뜸인 터전과 으뜸인

인연 있으므로 자유자재를 (8-47)

이 이야기 왜 이처럼 되풀이 하느냐 하면

구제한줄기를 맡는 근본임으로 (8-48)

이 근본은 어디를 찾아보아도

아는 자는 전혀 없으리라 (8-49)

그러리라 월일 몸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야 (8-50)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어버이신이 자유자재한 수호를 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한 으뜸인 터전과 진실한 어버이가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야기를 왜 이처럼 되풀이해서 일러주는가 하면 그것이 (터전과 어버이신님) 곧 구제한줄기를 보장해 주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이 만 가지 자세한 근본을 어디에 가서 찾아보아도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버이신이 사람 몸속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을 구제 할 수 있는 근본인 터전과 어버이신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천리교 교조전> ‘어버이 마음편에 있는 친필 대의에는 터전과 어버이신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은 인간이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을 바라고 으뜸인 터전에서 인간을 창조했다. 모든 인류의 진실한 어버이이며, 그 마음은 자녀를 귀여워하는 한줄기 마음이다. 인간은 모두 어버이신의 자녀이며 따라서 세계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자매로서 서로 위하고, 서로 돕는 것이야말로 본래의 인간 생활이다.

인간 몸은 어버이신의 대물, 인간으로서는 차물. 마음하나가 제 것이다. 질병이나 재난은 모두 자녀 귀여운 어버이 마음에서 인간에게 마음가짐의 잘못을 반성시켜 즐거운 삶으로 이끌려는 소용, 인도, 길잡이, 훈계, 섭섭함, 노여움 등인 것이다. 마음을 바꾸고, 티끌을 털어 성진실한 마음으로 원한다면 어떤 자유자재한 구제도 맡아 준다.

이번에 어버이신은 태초의 약속에 따라 혼의 인연, 집터의 인연, 순각한의 인연이 서로 일치되기를 기다려 미끼를 현신으로 삼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서 구제한줄기의 길을 가르친다.

인간 세계를 창시한 증거로서 으뜸인 터전에 감로대를 세우고 구제 한줄기의 근본되는 길로서 이것을 둘러싸고 올리는 감로대근행을 가르치시며 다시 신상구제를 위하여 수훈을 내려준다. 근행으로써 만 가지 구제를 나타내고, 수훈으로써 어떠한 난병도 구제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차츰차츰 즐거운 삶의 세계로 바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기록의 내용은 친필 안에 담겨있는 어버이신님 마음을 요약해서 정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버이신님께서 인간들이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함께 즐기시려고, 터전에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들은 모두 형제이며,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하고, 또 구제한줄기의 근본이 되는 감로대근행을 가르치시고 신상구제를 위하여 수훈을 내려 주시어 어떤 난병도 구제하게 되면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모든 구제의 원천은 터전과 어버이신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내용입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터전과 어버이신님을 무시하고는 진기한 구제는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7) 친필 8-68, 69호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구제 받으면 용솟음치는 마음이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이 다음에는 어떤 자도 한결같이

구제 하고자 하는 수단뿐이야 (8-68)

앞으로 구제 한줄기를 시작하면

어떤 자도 용솟음칠 뿐이야 (8-69)

위 친필 말씀의 뜻은 다음에는 어떤 사람도 다 구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 또 앞으로 구제한줄기를 시작한다면 어떤 사람도 마음이 용솟음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친필에서 월일이 나날이 용솟음치게 해서 즐거움이 넘치도록 만들어 갈테야 ’(11-56)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나날이 용솟음치게 해서 이 세상을 차츰차츰 즐거움이 넘치는 세계로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어버이 눈에 맞는 자는 나날이 차츰차츰 마음 용솟음칠 뿐이야’ (15-66) 라고도 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뜻에 맞는 마음을 쓰는 사람은 나날이 마음이 용솟음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버이 신의 눈에 섭섭한 자는 언제 꿈결같이 사라질지 모르는 거야’ (15-67) 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자는 물, , 바람의 수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진기한 수호를 받아 건강이 회복되어 활동하는 것 보다 더 즐겁고 용솟음치는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감정입니다.

나는 신상 수호를 받은 후, 12년을 정상적으로 더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신님말씀에 모두들은 용솟음치게 해야만 참된 즐거움이라 한다. 제 혼자만 즐기고 남을 괴롭혀서는 참된 즐거움이라 할 수 없다’(1897.12.11)고 했습니다.

위 신님 말씀의 뜻은 자기 혼자만 용솟음쳐 즐거운 것은 참된 즐거움이 아니고, 모두가 용솟음치고 즐거워야 참된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이웃사람은 밥을 못 먹는데 자신은 진수성찬을 즐기면서 이웃을 못 본채 하면 참된 즐거움이라 할 수 없으며, 그 업보로 자신이나 후손들이 언젠가는 가난의 고통을 겪게 되어 있으며,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도 상급이나 산하들의 고통을 못 본채 하고 자신만 즐기면 언젠가 자신도 사정에 빠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천리입니다.

고설선집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을 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서로 형제라는 자각을 갖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으면 신님께서 용솟음쳐 주지만 형제라는 자각이 없이 서로서로 자기 입장과 편리에만 치우쳐 남을 괴롭히고 욕보이는 것은 신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이가 나빠서 남을 욕보이고 괴롭히는 것은 신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위 글의 뜻은 서로서로 도우지 않고 자신만 즐거우면 된다는 마음은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버이신님의 마음을 괴롭힌 결과는 신상과 사정으로 변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