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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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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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받기 40

한줄기 마음 2

 

김 위 태 (칠암교회장)

 

4) 1900. 4. 1 지도말씀은 신님의 말씀에 따라 한줄기 마음으로 걸어가야 시순이 올 때 크게 수호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자아자아, 차례차례 묻는 사정, 어떤 사정도 묻지 않으면 안 되겠지. 순서의 길이다. 길이라 한다. 한줄기의 길에 모여 있다. 때라 한다. 시순이라 한다. 될 대로 된다. 그때 그때 알릴 수는 없다. (1900. 4. 1)

 

위 지도말씀의 뜻은 무슨 일이든 묻지 않으면 안 되겠지. 무슨 일이든 신의 의도를 물어 그 깨우친 리에 따라 일을 행하는 것이 이길을 걷는 자의 자세이다. 이길은 이와 같이 신한줄기로 나아가는 마음 때문에 이루어진 길이므로 계속 신한줄기로 행한다면 시순이 왔을 때는 절로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너희들의 마음 나름이다. 그러므로 당장 묻고 있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위 지도말씀은 천리교교 개교식 거행에 대한 허락을 여쭌 결과 내리신 말씀입니다.

<천리교교 50년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190041, 본교 최초의 학교 천리교교 개소식이 거행되었다. 당일 오전 7시에 신전에서 개교 봉고제를 집행, 9시 교교에서 개교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교주는 초대진주 교장은 본부원 야마나시 히꼬시찌씨였고, 당시의 기따분교외 출장 사무실을 가교사(임시교사)로 해서 발족했다. 또 입학이 허락된 학생은 11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리교교는 교조님께서 은신하신지 13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길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난과 시련 끝에 시순이 와서 학교를 설립하는 수호를 받았기 때문에 많은 감격을 했을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학교를 설립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줄기로 걸어가면 때가 오고, 시순이 올 때는 저절로 수호가 난다는 내용의 친필 말씀이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산언덕 가시밭 낭떠러지 비탈길도

칼날 같은 험한 길도 헤쳐 나가면 (1-47)

아직도 보이는 불속 깊은 물속을

그것을 지나가면 좁은 길이 보이느니 (1-48)

좁은 길을 차츰차츰 넘어가면 큰길이야

이것이 확실한 본길이니라 (1-49)

이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신한줄기로서 이것은 자신의 일이야 (1-50)

위 친필 말씀을 <고설선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산언덕 가시 발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교조님께서 처음 이길을 닦으신 그 당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언덕 길을 넘어서면 다음에는 험한가시밭길이 나타나게 된다. 즉 고생이라는 길이 나타나게 된다. 그 길을 걸어가면 여기저기 어디서나 가시덤불이 가득해서 앞을 걸어가려니 걸어 갈 수 없고 물려 나려니 물러 날 수 없는 오도 가도 못할 어려운 고생 속을 방황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아무 신앙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자꾸 나타나서 신앙을 방해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즉 저쪽으로 가려고 하면 이쪽에 소매가 걸리고 이쪽으로 가려고 하면 저쪽에 소매가 걸려서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하는 그 험준한 가시밭길이 앞을 가로막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런 속을 박차고 나가면 온 몸이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러나 교조님은 그런 길을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걸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이 차츰 나아지면 이번에는 낭떠러지의 길에 접어든다. 이 낭떠러지라는 것은 자칫 한번 발걸음을 잘못 디디면 어떤 깊은 곳에 떨어질는지 알 수 없는 위험한 곳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역시 이곳에서 나가면 낭떠러지의 길이 찾아오는 데 이럴 때 낙오되어 버리면 그것이 끝장으로서 세상의 길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럴 때가 사람으로서 가장 서글퍼지는 때인 것이다. 교조님이 연못에 몸을 던지려 하셨던 것도 실로 이때인 것이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실 정도로 슬프고, 외로운 때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속을 지나가면 이젠 칼날같은 험한 길이 있다. 남편 젬베에님의 칼이나 수험자의 칼날을 받으셨으나 교조님은 태연자약하시며 조금도 놀라지 않으시고 하늘의 길, 즉 이길을 세우셨다. 그러나 이길의 사람은 누구나 교조님처럼 칼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절연을 당하고 시달림을 받는 그런 길을 나아간다는 것이며 자기가 가는 길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부모형제로부터 절연을 당하고 때로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고생 속을 걸어가는 것을 칼날같은 험한 길이라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길이 가장 괴로운 길이지만 이런 길이라 할지라도 정신이 안정되어 확고하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을 전해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길이 열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 밑바닥에 떨어져 버리면 그 이상 낮은 곳이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차츰 올라 올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사람이라도 따라온다는 것은 벌써 오르막길에 들어 섰다해도 좋다.]는 내용입니다.

위 해설을 간단히 설명하면 산언덕 가시밭길 칼날같은 험한 길을 걷고 부모형제들로부터 절연당하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극빈에 떨어져도 한줄기 마음으로 이길을 걸어가면 시순이 올 때는 사람이 따라오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5) 1902. 7. 23 지도말씀은 어공을 먹을 때 그 어공 속에는 자녀를 귀여워하시는 교조님의 한줄기 마음이 있음을 깨닫고 먹으면 도움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어공으로 모두 도와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공이란 음식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 음식은 모두가 일상으로 먹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 자체에서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리가 듣는 것이다. 분량을 달아서 짓는 약 같은 것과는 다르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교조님의 자녀 사랑하시는 한줄기 깊고 두터운 어버이 마음을 잘 깨달아 어버이신님, 교조님이 기뻐하시도록 마음을 굳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902. 7. 23)

 

위 지도말씀의 뜻은 교회본부 교조전에 올렸던 어공 자체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어공 자체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다. 어공을 먹는 우리들 마음이 어공 속에는 교조님께서 세상의 모든 자녀를 구제하시겠다는 한줄기 마음이 들어있다는 생각으로 먹어야 효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약방에서 팔고 있는 약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공 속에는 교조님의 자녀 귀여워하시는 한줄기 마음이 들어 있으므로 어공을 먹는 사람의 마음이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드리는 마음과 행동을 해야 어공 속에 들어 있는 교조님의 리가 활동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훈을 전해서 신상자가 도움받는 것도 교조님의 한줄기 마음의 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에 수훈을 전해 받은 신상자가 수훈을 전하는 용재의 몸에 존명으로 활동하시는 교조님께서 듭셔서 전해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사람이 그냥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수호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수훈을 전하기 전에 신님 말씀을 먼저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 재세 시 쯔지 추사쿠씨에게 거름 수훈을 내려 주셨는데, 처음에는 겨 세 홉, 재 세 홉, 흙 세 홉, 모두 9홉이 금비 40관의 효과가 있다는 교조님의 말씀을 듣고도 효과가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으로 논에 뿌린 결과 추수할 때는 병도 들고 하여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듬해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뿌린 결과 거름 수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공이나 수훈, 그리고 거름 수훈들에는 교조님께서 자녀를 구제하겠다는 한줄기 마음의 리가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6) 1907. 3. 13 지도말씀은 모두 한줄기 마음으로 한마음 한뜻이 된다면 과거에 다소 어긋남이 있어도 수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30년제라고 하면 먼 길 같이 생각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을 일러둔다. 그 날을 즐거워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더라도 한줄기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설령 다소 어긋남이 있더라도 참으로 그것을 뉘우친다면 마음이 산산히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1907.3.13)

 

위 지도말씀이 뜻은 교조30년제라 하면 아직도 먼 앞날의 일로 생각할지 모르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점 특히 말해 둔다. 그러므로 모두가 큰 마음을 갖고 즐겁게 나날이 용솟음치면서 그리고 아무리 많은 사람일지라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일에 임한다면 설령 이전에 한 두 가지 어긋난다 해도 이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제각기 마음이 흩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서로 갈라져 마음이 하나로 뭉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는 리에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들이 마음을 하나로 뭉쳐줄 것을 깨우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위 지도말씀을 내린 신님의 뜻은 교조 20년제를 약 400평 가제장(임시건물)에서 훌륭하게 치루었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이길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길을 따르는 사람도 점점 불어나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신전을 건축할 능력이 있으니까 준비하라는 뜻으로 내리신 말씀입니다. 신님 말씀(1898.1.19.)에서 한마음 한뜻에서 모두 뭉쳐 준다면 어떤 수호도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어떤 수호라는 것은 신님의 뜻에 맞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도 수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도본국의 6등급 교회가 되는 것이나 일파 독립을 신청한 일, 별 사탕 어공을 세미로 변경한 일등 모든 것이 한마음 한뜻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신님께서 허락한 것입니다.

7) 1907.4.6. 지도말씀은 이길은 한줄기 길인데 파를 가르면 신님은 수호해 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것도 나누고, 저것도 나누고 나누기 때문에 양쪽이 다 안 돼, 양쪽이 다 어렵게 된다. 한줄기의 길에 파를 가르기 때문에 걷기 어렵다. 어떤 것도 하나에서 시작된 것, 하나에서 시작하라. 이쪽저쪽 각각 하나 파를 가르기 때문에 안 된다.(1907.4.6.)

 

위 지도말씀의 뜻은 저래서는 안 된다하며 회계를 따로 해서 구별을 지으니까 양쪽이 더 어렵게 된다. 당연히 이길은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뭉쳐 신한줄기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별을 짓고 파를 가르니까 길이 어렵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길은 항상 하나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이 하나를 단단히 마음에 새겨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걸핏하면 제멋대로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고 파를 갈라 마음이 흩어지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길은 리적으로 여러 갈래의 교회가 교단이라는 명칭에 따라 하나로 뭉쳐있습니다. 모두가 각각 다른 계통의 용재나 신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조직을 운영하는 용재들이 마음을 한쪽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순식간에 마음이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습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교구 월차제 제원역할이 어느 한쪽 교회용재들에게만 치우치게 된다든가 교구 간부들이 어느 한쪽 교회 용재들에게만 치우치게 되면 너희들끼리 잘해 보라. 나는 교단이나 교구의 모든 일에 구경만 하고 있겠다.’고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고 모든 것이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길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길에는 이 파, 저 파, 또는 이 당, 저 당하면서 나누어져 서로 경쟁하는 것이 발전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지만 이길에서는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가르침에만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파를 나누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길에서 자주파니 종속파니 하고 구분 지으면서 파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어느 누구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모두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한 것이 모두 되돌아온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길을 언젠가 모두가 하나로 되는 신님의 수호를 받아야 더욱 이길이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1907. 5. 17 지도말씀은 신전역사는 신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을 따라가는 한줄기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자아자아 밤마다 밤마다의 이야기, 밤마다, 밤마다의 이야기 시작하는 한줄기 한줄기 자아자아 이제 이것 한번은 한번, 이야기 매듭짓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은 그래, 그래, 자아자아 앞서부터 지도말 아무것도 없는 데서 어렵다. 대강 표시는 해 두었다. 차례 차례 이야기도 하고 이만큼 하자, 저만큼 하자 모두 의논해서 이것 안돼, 저것 안돼 이것은 좋아 저것은 좋아. (1907.5.17)

 

위 지도말씀의 뜻은 자아자아 밤마다 신의 의도를 한줄기로 지시하고 있거니와 그 한줄기 지시에 따라 매번 이야기를 매듭짓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쯤이야라든가, “이것쯤은 별것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는 안된다. 앞서도 지시한 바와 같이 전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역사를 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신전역사에 대해서는 지시할 때마나 그 기준을 가르쳐 주었으니 거기에 따라 얼마만큼은 건물을 어떻게 세울까” “이것이 좋다,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모두가 의논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 지도말씀은 1907.5.16. 12시가 지나면서 본석님의 신상이 나빠져서 3시 쯤에는 갑자기 위독함으로 교장을 비롯하여 일동이 모여 무언가 일러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하고 여쭤본 데 대한 지도말씀입니다. 다음은 <천리교 약사>에 기록되어 있는 신전기공식과 낙성 내용입니다.

1911.10.27 신전(북예배장) 기공식

1913.12.25 신전(북에배장) 낙성

1931. 6.26 신전(남예배장)기공식

1934.10.25 신전(남예배장) 낙성봉고제

1978. 3.28 동서예배장 역사시작의 기원근행

1981. 7.25 서예배장 사용개시

1984.10.25 동서예배장 역사 준공의 감사근행

이상과 같이 19111027일 시작하여 19841025일에 천리교 교회본부 신전(동서남북 에배장) 역사가 완공되었습니다. 장장 73년 동안 이길의 용재와 신자들의 엄청난 노고와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본부 신전은 앞으로 3,000년 간은 유지 보존될 수 있는 건물로 언젠가는 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될 것입니다.

 

다음은 신악가 제 2장 둘에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 참말 번창하리라에 대한 해설로 <신악가에 얽힌 이야기들>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길의 역사는 참으로 신기로운 역사다 정월이라 거름의 수훈은 참말 진기하도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사도 또한 신기로운 역사다. 왜 신기로운 역사인가, 마음의 역사, 몸의 역사, 이것이 집터의 역사, 교회의 역사, 신한줄기의 역사다. 이길의 역사는 참으로 서로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신상 구제의 역사, 신상을 구제받는 신기로운 역사다. 설 수 없는 사람이 서게 되는 역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자도 눈을 뜨게 하는 역사, 귀머거리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지는 역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해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길은 신전역사를 통하여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전역사를 통하여 모든 것을 수호받는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길의 사람들은 각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면 최선을 다해서 이바지해 왔기 때문에 이 만큼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정, , 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사용하고 철학자들도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 뜻은 세상의 모든 일은 처음에는 바로 가나(), 가다가 보면 옳지 못한 일이() 생기지만 결국에는 좋은 쪽()으로 결말이 난다는 뜻입니다. 세상일이 가끔 불합리한 일이 많이 생기지만 결국에는 좋은 쪽으로 결말이 나고 있으며 또 정, , 합이 계속 돌고 도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생각합니다.

 

4. 교조전에 기록되어 있는 한줄기 마음입니다.

<교조전> ‘행적편에는 찾아오는 자녀들을 즐겁게 하여 주려는 교조님의 한줄기 마음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즐겁게 하지 않고서는 한사람도 그저 보낼 수 없다, 어버이에게는 세계 모든 인간은 다 같은 자녀다, 라고 자녀 귀여운 한줄기 의도에서 더욱 더 한없이 베푸는 일을 계속 하시어 끝내는 이창고, 저창고도 깨끗이 비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기록의 뜻은 이 세상의 모든 자녀가 어버이신님께서 창조하신 자녀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교조님에게 찾아오는 자녀들에게 이창고 저창고가 모두 빌 때까지 무엇이든지 베풀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극빈에 떨어져 있는 어느 날에 헌공받은 쌀 5홉이 있었는데 그 때 걸인이 찾아와 구걸을 하니까 모두 털어서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옛말에 설움 설움 중에서 배고픈 설움이 최고로 크다고 했습니다. 사흘 굶으면 남의 담장 안 뛰어 넘을 사람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공덕이 최고의 공덕이라 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식량공덕을 많이 베푼 후손은 지금 현재 재벌이 되어 있는 등 대부분 잘 살고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전 재산을 없는 사람들에게 베푼 공덕을 일본 정부에서도 인정하여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스님이신 성철스님께서도 전 재산을 이웃에게 베푼 교조님을 극찬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교조님께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주신 전통은 지금도 이길에서는 남아 있는 전통입니다. 상급인 일본의 원화분교회에서는 한국인 참배객들에게 불고기와 맥주등을 매년 제공하여 우리들을 즐겁게 하여 주었으며 지금도 부인제 참배객들에게는 맛있는 점심을 제공할 뿐더러 선물 봉지도 하나씩 나눠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쁘게 하여 주는 뜻은 산하교회장이나 포교소장들에게 자신의 신상이나 사정을 도움받기 위해서 오는 것이고 또 도움받은 은혜 보답으로 당연히 참배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천리입니다. 원남성 초대 최재한회장님께서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옛날 우리 고향에는 훌륭한 숲이 있었습니다. 고향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최재한 회장님 생가 부근에 숲이 있었다고 합니다. 숲이 항상 말썽이었습니다. 걸인들이 겨울철이면 숲에 모여 있다가 끼니 때가 되면 동네에 와서 구걸을 하고 잔칫날이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이 되면 고을 관리들이 숲에 찾아와서 피서놀이를 하면 동네에서 술과 밥, 그리고 안주를 장만하여 바치는 일을 수시로 했기 때문에 동네 어른들은 걸인과 관리들로 인한 피해를 없애기 위해 어느 날 숲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웃마을에는 아직도 울창한 숲이 있어서 마을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는데 고향마을은 민둥마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그 때 걸인들에게 공덕 베푸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고 관리들에게 술과 안주를 제공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숲이 관리가 잘 되어 왔으면 아까운 인재들이 많이 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부자도 많이 생겼을 것이며, 이웃마을과 같이 현직 국회의원등 고위 공직자도 많이 배출되었을 것입니다.

이길에서도 크게 성공한 용재님들의 조상 중에는 반드시 배고픈 사람들에게 크게 은혜를 베푼 후손, 사찰에 시주를 많이 한 후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찰 생태연구소 대표와 환경부 국립공원 위원이신 김재일씨는 조선일보 논설에서 우리나라에는 1,333개의 사찰 숲이 있으며 전국 유수한 마을 숲은 대부분 스님들의 안목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숲이란 것은 단순한 나무들의 집합이 아니고 모든 것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요, 생태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을 숲이 스님들의 안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마 풍수학 적으로 그 마을의 살기를 없애고 큰 인재를 양성하고 보호하기 위해 숲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숲이란 것은 생명의 터전이고 생태공간이라고 했는데 숲을 없앤다는 것은 한마디로 생명의 터전과 생태공간을 없앤 것입니다. 그러니 숲을 없애면 후손들이 안전하게 성장하면서 크게 성공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인재가 크게 성공하려고 하면 사고가 일어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황당하게 생각하는 사건도 씨앗의 원천은 조상님들께서 숲을 없앤 악업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고향 마을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숲을 복원해야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결론입니다.

<고설선집> ‘좌담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더라고 한줄기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한줄기 마음이 되지 않으면 어버이신님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줄기 마음이란 일사불란한 마음으로 일사불란한 마음이라는 것은 활에 화살을 걸어놓고 표적을 향하여 조준을 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조준을 하면서 자신의 집안일에 대하여 이것저것 걱정하고 있으면 표적을 맞출 수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버이신님께서도 다가오시지 않을 것이다. 어버이신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기원을 전하고자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잊고 한줄기 마음이 되어 어버이신님께 마음을 쏟아야만 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좌담록은 간단히 설명하면 이길의 신자나 용재는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항상 맞추어 놓고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수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바라는 수호는 못 받으면서 헛고생만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님 말씀에 넓은 길이 나타나면 오히려 잡념과 욕심이 생기면서 교만해져 걸어가는 데 고통을 받을 수가 있지만, 반대로 좁은 길로 지나갈 때는 마음가짐이 항상 조심조심해지면서 겸손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히 한줄기 마음이 되면서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신자가 늘어난다든가, 큰 교회를 인수받았을 때, 마음가짐이 교만해지면서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간 생각을 하게 되면 어려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려운 형편으로 힘든 길을 가게 되면 한줄기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외는 다른 길이 없으므로 자연히 겸손해지면서 전도구제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큰 사고 없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잘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형편이 좋아지면 과거에 어렵게 살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변해도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교조님의 모본을 따라가는 한줄기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그 정신이 말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