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추계대제 신전강화

 

 

55푼으로 더 성인하여 나아가자

 

 

이 상 봉 (고성교회장)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 추계대제에 멀리 혹은 가까이서 많이 참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822일에는 전진주님께서 상급 원남성교회에 순교 오셨습니다. 그때 내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청천심이라는 글자를 휘호로 내려주셨습니다. 청천심이란 맑은 하늘과 같은 마음입니다. 맑은 하늘과 같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지낸다면 어버이신님의 수호도 선명하게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라도 맑은 하늘같은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맑은 가을 하늘 속에 즐겁게 추계대제를 올리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교조님은 212년 전 1798418일 지금 천리시 남쪽에 있는 삼마이뎅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세계를 창조하실 때 어머니의 혼을 가지신 분이 교조님이라고 우리들은 듣고 있습니다. 교조님은 13살 때 나까야마댁에 시집가셔서 주부로서 삶을 보내시다가 18381026일 월일의 현신이 되셨습니다. 어버이신님은 인간이 즐겁게 사는 길을 가르치기 위해 교조님을 현신으로 삼아 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인간창조의 진실이 되는 근본을 밝혀 주셨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 잉태한 자녀수와 같은 연한이 지나면 잉태한 장소로 데려와서 신으로 예배받게 하겠다는 태초의 약속에 따라 어버이신님은 교조님을 현신으로 삼아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친필에서는

인간을 창조한 집터이니라

그 인연으로서 하강했다 (친필 4-55)

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어머니 혼의 인연이 있는 교조를 약속한 연한이 다가옴에 따라 월일의 현신으로 받아들이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리교에서는 사람, 장소, 시간을 교조 혼의 인연, 집터의 인연, 순각한의 인연이라 하여 입교의 3대 인연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길에서는 이 3대 인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터전에 이어지는 리를 받은 각 교회도 사람, 장소, 시간 세 가지를 꼭 지켜야 할 중요한 약속을 함으로써 허락받아 이렇게 월차제 근행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은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지신 다음 몸을 감추시기까지 50년 간 세계구제를 위한 모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노고하신 길이었지만 우리에게 노고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조님의 모본은 우리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맛을 알게 하기 위하여 몸소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교조님은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존명의 리로써 세계구제를 위해 밤낮없이 활동해 주시고 계십니다. 천리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교조님이 지금도 밤낮없이 활동해 주시는 덕분으로 고마운 수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조님이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교조님의 모본을 따라가기만 하면 그야말로 신기로운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님은 우리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맛볼 수 있도록 친필, 지도말씀, 신악가, 그리고 근행, 수훈, 어공, 순산허락, 증거수호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리왕님이란, 50년 전부터 정성의 리이다. 여기 하나의 장소를 천리왕님이라 하는 까닭은, 원래 없던 인간을 만든 신한줄기이다. 원래 5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근본을 분간해 들어 다오. 어느 곳 누구라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농사짓는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사람의 여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대저 구극의 가르침을 일러주는 리를 분간해 들어라. 어디로 보러 간 것도 아니요, 무엇을 배운 것도 아니다. 여자인데도 하강하여 리를 펴는 것을 잘 분간해 들어 다오. (지도말씀 1888.1.8.)

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길은 인간의 지혜나 학문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지혜나 학문으로 이루어진 가르침이라면 천리교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을 가진 종교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명이나 과학이 발전해 감에 따라 천리교 같은 종교는 시대착오의 종교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길은 교조혼의 인연, 집터의 인연, 순각한의 리에 의해서 어버이신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펼치신 가르침의 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나 학문으로 이루어진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길의 가르침을 구극의 가르침, 마지막 가르침이라 일컫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필에서는

단단히 들어라 입은 월일이 모두 빌리고

마음은 월일이 모두 빌려 주고 있다 (12-68)

라고 밝히시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의도하신 것을 우리들에게 일러주시고 납득시키기 위해 교조님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고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교조님의 모습이 인간과 다름없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라 그것을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세상 보통일로 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조님께 귀신이 붙었다, 너구니나 여우가 붙었다고도 하면서 비방하는 사람들조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께서 이길을 열어주시고 이 순간에도 존명으로 활동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나날이 살아가는 수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은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난한 가운데를 생활하시면서도 물질이 없는 빈한함과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한탄하지 않고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상이나 사정을 만났을 때 먼저 낙담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앓고 있는 것보다 건강한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고맙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가난하여 물질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한탄하는 것보다는 나는 물질이 없지만 뭘 먹어도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즐거움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병으로 앓고 고생하고 괴로워할 때도 몇 배라도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씀씀이가 어버이신님이 바라시는 즐거운 마음이며, 신기로운 수호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길은 천연자연의 길입니다. 하늘의 리, 으뜸인 인연에 따라 저절로 되는 길입니다. 천연자연의 길이라는 것을 바꿔 말씀드리면 순서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서를 무시해서는 천연자연의 길은 없습니다. 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라나는 것은 모두 순서의 리에 따른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이것이 하늘이 정한 순서입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은 데 열매가 맺을 수는 없고, 어떤 사람이라도 이 순서를 뒤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순서가 중요합니다. , 부모가 있기 때문에 자식이 있고, 옛사람이 있어 새로운 사람이 있고, 구제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구제받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또 남을 세워주기 때문에 남이 나를 세워주고, 내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혜택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와주면 내가 도와주겠다, 내가 혜택을 받으면 일을 해주겠다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순서가 뒤 바뀌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도말씀에서는

이렇거나 저렇거나 순서에 따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 걸어서는 안 된다. 본래 서도 동도 북도 남도 아무것도 모르는 데서 생긴 대단한 길인 거야. 가시밭길이라고도 벼랑길이라고도 오솔길이라고도 한다. 용이치 않은 이 길인 것이니. 지금의 길은 지금 당장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거야. 이러한 마음 단단히 명심해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이 길의 꽃이라고 한다. (1899. 6. 6)

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지금 마음먹고 말을 해서 당장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에 지금 당장 이루어진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순서의 리는 또한 교회의 순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천리교회는 교회가 있고 그 교회는 계통이 있습니다. 그 계통 안에는 순서나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부모자녀 관계라는 기초를 이루고 있지만 인간 사회의 많은 조직도 규칙이나 제도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길에서 교회 계통과 순서도 근본을 따져보면 천연자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운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리교는 리의 부모자식이라는 강한 연에 의해서 교회내용도 충실해지고, 번영,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길에서 말하는 부모의 리를 세운다는 것은 말을 바꿔하면 어버이를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장의 리를 세운다는 것은 그 교회장을 즐겁게 하는 일이고, ‘상급이나 대교회, 터전의 리를 세운다는 것은 그 어버이를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신앙의 목표는 분명히 어버이신님이지만, 어버이신님의 의도가 드러나고 표현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늘 만나는 당사자인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각자 자신이 어떻게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걸어갈 지는 각자의 인연으로써 만나는 장소인 교회를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하지만 마음이나 주장을 서로 앞세워서 부딪히기 때문에 수호를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할 때 어버이신님은 세 번의 출직을 반복하면서 인간을 키워주셨다고 합니다. <교전> 3장에 보면

[최초에 태어난 것은 똑같이 5푼이었으나, 55푼으로 성인하여 99년을 지나서 세 치가 되었을 때 모두 출직했다.]

고 나옵니다. 게다가 출직한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 세치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5푼으로 태어나 99년이 지나서 세치 5푼까지 성인한 다음 모두 출직했다. 거기서 다시 세 번째 잉태를 하셨는데, 이들도 5푼으로 태어나 99년 지나서 네 치까지 성인했다.]

로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태어날 때는 다같이 5푼으로 태어났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성장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부모의 은혜 그 덕분으로서 고맙게 이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만 부모와 똑같이 신앙의 길을 오푼 오푼으로 걷고 있어서는 부모보다 더 성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보다 5푼 더 성인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걸었던 길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제활동은 이길을 걷는 사람에서는 생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구제하러 나가서 수훈을 전하기 때문에 존명하신 교조님을 우리는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사정이나 신상을 구제하러 나갔을 때도 교조님과 함께 한다, 교조님을 모시고 간다는 심정이 되면 비로소 교조님 존명의 활동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를 하는 사람은 교조님의 모본을 항상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근거지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병이 낫는다는 것과 구제받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구제를 받는다는 것은 운명이 바뀌어간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두 번 다시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운명을 바꾸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교조님이 계시는 터전에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에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조님께 받은 수훈의 리를 한사람에게라도 더 전해야 하고, 터전에 이어지고 터전의 리를 이어받은 교회에 참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구제에 맛볼 수 있도록 문을 열고 평탄한 땅으로 고르러 나가신 교조님의 큰 마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추계대제를 맞아 인사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28 [174년02월]정성의 마음으로-이상봉 2012.06.11
27 [174년01월]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의 차이-정선일 2012.06.11
» [173년11월]5푼 5푼으로 더 성인하여 나아가자 - 이상봉 2012.07.10
25 [173년10월]전(前) 진주님이 오신 감사한 수호 - 최정욱 2012.07.10
24 [173년10월]인생 적자를 면하자 - 유병희 2012.07.10
23 [173년09월]상급의 뜻과 시순에 맞추는 실천 - 김규수 2012.07.10
22 [173년08월]수훈 전하기에 두배의 노력을 - 김영진 2012.07.10
21 [173년07월]팀플레이를 갖춘 교회로 - 이상봉 2012.07.10
20 [173년05월]바보는 이길의 기둥 - 김위태 2012.07.10
19 [173년04월]가난에 빠진 교조님의 모본을 되새기자 - 배재기 2012.07.10
18 [173년03월]신앙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 김대경 2012.07.10
17 [173년02월]인간생각과 신님생각을 돌이켜 보는 시순 - 이상봉 2012.07.10
16 [173년02월]남을 도우려면 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 이상봉 2012.07.10
15 [173년01월] 172년12월 월차제 신전강화 - 이상봉 2012.04.11
14 [172년12월]십전수호의 리에서 살펴본 여성의 역할 - 오대원 2012.09.09
13 [172년11월]고생하지 않고서 즐거운 삶의 실현은 없다 - 이상봉 2012.09.09
12 [172년10월]욕심과 집착을 버려서 포도알처럼 - 이상봉 2012.09.09
11 [172년09월]은혜 보답의 길 - 김규수 2012.09.09
10 [172년08월]즐거운 삶 - 전인수 2012.09.09
9 [172년07월]행복의 조건 - 유상준 201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