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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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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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차제 신전강화

 

() 진주님이 오신 감사한 수호

 

최 정 욱 (원남성교회장)

 

반갑습니다.

오늘은 추석이 며칠 안 남아서 그런지 뒤에 배전이 썰렁합니다. 용재분은 많이 계신데 신자분들이 많이 안 계시네요. 오늘 저는 저번 달에 전진주님께서 순교와 주셨을 때 바쁘신 와중에도 고성교회 용재, 신자분들이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신자분들이 적게 오셔서 다 인사가 전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땠든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참배해 주셔서 전진주님도 너무 만족스럽고 기분이 좋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서 아직도 제 가슴이 설레입니다. 제가 남자라면 간단하게 감사합니다인사하고 끝낼지 모르지만 여자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뒷 이야기들이 궁금하실 것 같아 몇 가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금년 초에 대교회장님은 전진주님이 못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고령이시고, 건강이 안 좋으시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갑자기 8월에 오신다고 해요. 저는 좋기도 했지만 걱정도 많았습니다. 지난번에 한번 오신다 하셨다가 못 오셨는데 또 못 오시면 어쩌나하는 조바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용재들에게도 무슨 말로 변명을 하겠나 싶어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8월에는 태풍도 많이 오는 데 기상악화로 혹시 못 오시면 이 일을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라 입술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습니다.

전진주님이 오시는 전날은 저녁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히노끼싱하러 와 주신 분들도 텐트치고 하시느라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날 새벽근행후 바로 전진주님 숙소로 새벽같이 모시러 갔습니다. 가방은 가져가지 않아도 혹시나 해서 휴대폰은 가지고 갔습니다. “전진주님하고 같이 차를 탔을 때 전화가 오면 휴대폰은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대교회장님께 물어보니 안 된다해서 그럼 필요 없겠습니다. 놔두고 가야겠습니다.” 했더니 그래도 가져가야 한다. 혹시 긴급 상황이 생기면 문자로 주고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좁은 차안에서 저는 조수석에 타고 난생 처음으로 진주님과 같은 차를 타고 오는 데 그 긴장감이라는 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두 어른(전진주님과 진주실장님)이 자유롭게 대화하시면 그 틈에 나도 좀 긴강이 풀릴 텐데, 2530분 정도 두 어른이 한마디도 안 하시고 가만히 앉아 계셔서 정말 긴장이 너무 되어서 침 삼키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음악도 틀고 하면 좀 나을 텐데..

교회 가까이 오니 두 분이 스케줄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고, 교회 청년들이 거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회장, 교회가 가까이 다가오나 보지?” 물으셔서 , 다 되었습니다.” 대답한 게 전부였습니다.

제전이 마치고 전진주님이 식사를 하시는 데 저는 밥을 먹을 겨를도 없이 옆에 계속 꿇어않아 있었습니다. 너무 긴장이 돼서 그 때는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겠고, 가시고 난 뒤 다리 뼈마디가 아프고 입이 솟구쳐서 3일간 밥도 못 먹고 온 몸이 아팠습니다.

방에 계실 때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 하셨습니다. 우리 방이 여닫이문으로 되어 있어 한 쪽만 열어놓고 있으려고 했는데, 전진주님께서 두 문을 다 떼라고 했습니다. 저 문을 떼면 너무 썰렁할 텐데 싶었지만 전진주님 앉은 자리에서 문을 다 떼면 초대회장님이 노방전도하는 모습이 보여서 그것을 보고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저는 음식에 대해 모르는 데 고성교회 사모와 고성교회 부인회 여러분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이건 뭘로 만들고 어떤 음식이라고 고성사모가 옆에서 설명해 드리고 했습니다. 사실은 행사를 마칠 때까지도 너무 송구스럽다고 생각한 것이 부엌도 교회도 너무 좁으니까, ‘이 좁은 데서 행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까?’ 했는데 저보다도 고성교회 부인회 용재 분들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에어콘 있으면 뭐합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822일 그날 오후 4시 비행기로 가셨거든요. 다들 그러셨겠지만 저도 점심 먹을 겨를이 없이 바로 따라 나갈 정도였습니다.

 

공항에서 나가시는 데 마지막까지 개인적인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가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전진주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나가시다가 마지막 나가시는 순간에 제 옆에 서시더니 건강해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전 진주님의 눈빛을 보니까 제가 눈물이 핑돌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진주님의 눈빛을 뭐라고 해야 할지, 이건 뭐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정말 너무 너무 어버이의 자상함, 그 말씀 한마디가 너무 황송하고 너무 너무 좋아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 데 머리가 하얗게 변하더라구요. 그래도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건방지게 뒤에서 전진주님!”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 하고 돌아보시는데 그 자상한 목소리와 얼굴이……. 단지 높은 전진주님이 아니고 진짜 어버이, 진짜 부모같더라구요. “정말 건강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했더니 고맙다.” 하셨습니다. 그 눈빛, 그 목소리는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누워 자려고 하다가도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구름위에 떠있는 거 같았어요. 역시 전진주님은 이길의 고수중의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한방에 마법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너무 좋은 거라예.

정말 내 목숨을 바쳐도 안 아깝다 싶게 존경심과 사랑이 넘쳐나는 분은 우리 아버지 한 분 뿐이니 줄 알았습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 옆에서 쳐다만 봐도 좋았습니다. 아버지 그림자만 봐도 좋았습니다. 부모자식 간에 특히 딸들은 아버지가 좋지만, 나는 아버지 그림자만 봐도 좋은 거라... ‘아버지 대신이라면 목숨이라도,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진주님께서도 그 짧은 찰나에 그런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이건 보통의 리가 아니다. 진짜 어버이의 리를 가지고 계시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뒤이어서 고성회장을 대동해서 24일 터전에 뒤 따라가서 전진주님께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전진주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도사선생님, 전대교회장님은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고 대교회장님, 우리 상급 원화분교회에도 리를 세우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그 때, 전대교회장님과 대교회장님을 한 자리에서 만나지 않았지만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이번에 원남성에 전진주님을 모신 것은 대성공이다. 전진주님이 너무너무 만족하셨다. 첫번째 만족한 이유는, 근행이 훌륭하다. 원남성은 근행을 잘 본다. 근행이 훌륭하다, 두 번째, 사람이 너무 많이 참배 와서 참 즐겁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너무 많고 근행이 훌륭한 덕분에 전진주님의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셔서 원고에 없던 내용을 갑자기 말씀하시는 바람에 통역하는 남일회장님이 좀 고생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좁은 조립식건물에서 어떻게 저런 높으신 어른을 모시고 행사를 할 것인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가시고 나서 제가 느끼고 깨달은 것은 만약 아무리 훌륭한 건물에, 좋은 집에 전진주님을 모셨더라도 근행도 형편없다, 사람도 모여오지 않는다는 그런 인상을 어버이에게 남겼다면 그것 이상 불효가 어디 있겠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근행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이길에서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형체는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속에 용재들이 그 순간만은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해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리려는 그 마음이 전진주님께 비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마음에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너무 즐겁고 감사하고 이루 말할 수 없게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가시고 난 뒤 여러 날을 몸이 아프면서도 감사했어요. 너무 감사해서 행복하고, 너무 흐뭇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런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일본에 있는 산하 모토 쿄베 강회장과 야아와회장도 와서 근행에 참가해 주었는데, 코베 강회장이 뭐라고 하냐면 회장님! 일본에서도 회장님 나이 대의 젊은 회장님이 전진주님이나 진주님을 모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젊은 회장이 있는 데는 행사가 있어도 잘 안 가신답니다. 회장님은 덕이 많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닙니다. 제가 뭔데 감히 저를 보고 오셨겠습니까? 이건 초대회장님을 보고 오신 것입니다. 100% 초대회장님 덕입니다. 초대회장님의 리를 보고 지금 안 계시지만 계신다고 생각하고 와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맞는 말씀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초대회장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물론 사람이 많이 와서 약 천명 조금 넘게 왔습니다만 지금이야 천명 넘으면 아이고 많이 왔네 하겠지만 전진주님이 오신다는 데 옛날 같으면 천명이 많겠습니까? 초대회장님이 계셨다면 천명이 아니라 만명이고, 십만명이라도 안 왔겠습니까?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이 스스로 제 부덕을 탓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밖에 행사를 못 치른다는 자체에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습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초대회장님께 너무 죄송하고, 제가 아직 너무 미약하고 리와 덕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뭐든지 잘 될 때는 잘되는 대로 수호에 감사를 드리고, 안될 때는 나보다 더 못한 데 비하여 감사를 드려야 되지, 언제까지나 부족 불만을 사고, 한탄을 해서는 절대로 우리가 지닌 액운이나 마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든지 감사를 느껴야 합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결과적으로 볼 때 모두들이 최선을 다해 주셨고, 물심양면으로 고생한 가운데 모두가 다 힘을 쓰셔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수호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절이 생각났어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용재들이 가슴에 새겨서 걸어가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처음부터 아무리 큰길을 걷고 있어도

장래 있을 좁은 길 보지 못하니 (3-34)

라는 친필말씀이 있습니다.

용재는 잘 나갈 때 더 순직하고 낮은 마음이 돼서 어버이에게 더 효도하는 마음이 되어야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 될 때일수록 교만, 아만, 자만에 빠져있으면 정말 지금 큰길 걷고 있는 것 같아도 다가올 좁은 길을 보지 못한다는 그런 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그렇게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있습니다. 용재는 매 순간 자신이 자만, 교만, 아만에 빠졌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큰 행사 때 마다 제가 느끼는 것입니다. 뭔가 작정을 하고 그것을 이뤄내어 흐뭇하다, 만족하다고 방심하면 딱 마디가 나옵니다. 오죽하면 오선생이 당신도 너무 좋아할 건 아니다. 큰일 치고 나면 마디 나오잖아? 그것을 경험삼아 마음을 조여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 안합니까?” 합디다. 가만 생각해 보면 맞습니다. 제가 회장 되고 10년이 되었는데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우리 원남성교회 50주년이나, 팔목대교회 110주년, 교조 120년제라든가, 큰 행사가 있어서 작정해서 해내고 만족감에 젖어 있을 때, 상급이나 산하에 확 물밀 듯이 태풍 같은 마디가 나오더라구요. 그렇게 경험해보니 지혜가 생기고 조심이 생겨서 아, 과연, ‘좋을 때 좋은 것만이 아니고 나쁜 때도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조여서 더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일을 잘 치루었을수록 낮은 마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시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자기 입장을 살펴봐서 자신이 바닥에 떨어져서 다시 올라 올 일만 남았는가, 아니면 꼭대기라서 앞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는가, 아니면 중간쯤이라서 내려갈 것인 지, 아니면 올라가고 있는지 항상 자기입장, 처신, 이런 모든 앞뒤 옆 분별을 잘해서 낮은 마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순직한 마음과 어버이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이번에 어버이가 오신 이 시순에 정말 감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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