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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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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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173년 춘계대제 신전강화

 

인간생각과 신님생각을

돌이켜 보는 시순

이상봉(고성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춘계대제 많이 참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교조님 은신에 관련된 춘계대제로서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근행을 봤습니다만 근행보는 시간을 재어 보니 제의식 빼고 좌근, 12장 끝나면 한시간 20, 80분 걸렸는데 교조님 은신하신 1887년 정월 26일에는 근행을 어떻게 봤을까요? 기록에 남아있는 걸로 보면 40분 봤답니다. 좌근부터 12장까지를 40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후반은 빠르게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이것보다 배나 빠르게 보았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굉장히 빨리 보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어제 저녁 근행 후에 제가 말씀드린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교조님 은신하실 때 올린 근행에서 세 가지 악기만 빠진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악기만을 가지고 12장 근행을 올렸습니다. 피리와 여자악기 두 개만 가지고 12장 근행을 40분 만에 해치웠습니다. 그야말로 해치운 것이죠. 왜 그럴까요? 말하자면 경찰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박자와 북을 치면 멀리까지 들리거든요. 경찰이 바로 오기 때문에 겁이 나서 크게 소리가 나는 악기는 칠 수가 없었죠. 평상시에도 자주 단속을 오는 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오니까 순사가 올까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순사 귀에 소리가 들어갈까 봐 악기 소리가 적게 나는 걸로 하고 빨리 해 치운 것이죠. 그렇게 근행 올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죠.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겁을 내게 되었는가?

그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교조님께서 터전결정을 하시고 본석선생이 입신하고 나서 최초의 근행장소인 신전, 예배장소를 짓게 되었는데 상량식을 마치는 날 야마나까 추우시치선생이 오늘 우리 집에서 한턱낸다고 오라 해서 갔습니다. 그때 신사를 지나갈 때 교조님께서 참배를 해라해서 악기를 울리면서 근행을 올린 거죠. 그래서 잡혀가서 구류를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초로 관헌에 의한 탄압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은 천리교 신앙을 하면 어떤 수호도 해주시고 도움도 받고 다 행복해지는 길이 있다, 결국에는 115세까지 살 수 있게 되는 가르침이라고 믿었는데 난데없이 감옥에 잡혀가서 갇히게 되니까 수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다시는 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마디로 교조님께서 시키는 대로 근행을 올리면, 행복하고 잘 사는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경찰에 잡혀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신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은 교조님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결국 교조님 은신 후 그 장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오늘날 신자에 비하면 몇 줌도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조님 은신하시고 교조 10년제 때 300만 명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늘었냐면 수훈의 리 때문입니다. 교조님 재세 시는 직접 수훈의 리를 내려주셨기 때문에 한정된 사람에게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아무에게나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된 사람에게만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교조님 은신 이후에 내려주신 지도말씀에 지금까지는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처 주지 못한 것이 있는데 앞으로는 존명으로써 수훈의 리를 내려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훈의 리를 받고 신상 사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수호가 났기 때문에 신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수훈을 전해 주었던 사람들은 어떤 대단한 사람이었길래 수호가 났을까요? 아닙니다. 알아보면 수훈의 리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모두 수호가 났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실천이 강하기 때문에, 진실했기 때문에 특별히 수호가 난 게 아니라 수훈을 전했을 때 모두가 다 틀림없이 수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이 전해서 그렇게 늘어날 수 없었죠. 그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교조님을 순직한 마음으로 따르고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조님 은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교조전을 살펴보겠습니다.

[양력 14일 교조님 신상이 위급해 졌습니다. 교조님이 계신 옆방에서 본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자아 자아, 인제 충분히 찼다. 지금까지 어떠한 일도 일러두었지만 전혀 모른다. 아무리 말해도 아는 자 없다. 이것이 섭섭하다. 의심하며 살고들 있지만 잘 생각해 보라. 자아, 신이 말하는 것이 거짓이라면 49년 이전부터 이제까지 이 길은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까지 말한 것 나타나 있다. 이것으로 생각하라. 자아, 인제 이대로 물러나 버릴까. 마쳐 버릴까. (1887.1. 4)

라는 말씀이 계셨다.

너희들은 어버이의 말을 마음속으로부터 듣고 있지 않다. 이것이 어버이로서는 참으로 유감이다. 너희들은 세상 보통의 인간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사물을 생각하고 의심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어버이신님의 말을 순직하게 듣지 않고, 속속들이 한줄기마음이 되지 않으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어버이신의 말이 거짓이라면 49년 전, 1838년 이래 이 길이 이어져 왔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어버이신의 길이 옳은가, 세상 보통의 인간생각이 옳은가, 잘 비교해서 생각하라. 모두들 성인됨이 너무나 더디어 알아듣지 못할진대, 어버이는 이제 이대로 숨을 거두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이때 교조님은 잠깐 숨이 멎고 전신이 갑자기 차가워지셨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그 후 6일 후 110(음력 1217)에는, 교조님이 또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날 오후 3시경, 일동이 상의한 뒤에 옆방에서 이브리 이조오를 통해, 어떻게 하면 교조님의 신상이 좋아지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밤에만 올렸는데, 낮에도 근행을 올려야 합니까.하고 여쭈어 본즉, 교조님은

자아 자아, 이제까지 어떠한 일도 전부 말해 두었다. 인제 이래라 저래라고는 하지 않겠다. 49년 전부터 이 길의 일, 어떠한 길도 걸어왔겠지. 알고 있겠지. 도움받은 일도 있겠지. 지금 와서 깊이 생각하는 자 없다. 먼데서나 가까운 데서나 모두 이끌어 모아 두었다. 사정도 모른다. 인제 이래라 저래라는 지도말은 안 한다. 각자의 마음 나름. 이젠 아무것도 지도말은 안 할 테다. (1887. 1. 10)

이미, 지금까지 해야 할 말은 모두 말해 두었다. 이것을 각자가 확실히 판단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하나하나 어버이신에게 물어서 한때를 모면하고 나면, 또 마음이 흐려지고 둔해지는 그런 짓을 되풀이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이제까지 49년이나 걸어오면서 온갖 모본을 남겨 두었다. 모두들 용솟음치며 터전에 돌아온 날도 있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어버이가 감옥에 가는 것을 전송하던 날도 있었지. , 구제를 받은 자도 수없이 있겠지. 그러나, 그런 가운데를 헤쳐 나와 실지로 오늘까지 이 길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고 지금 어버이의 몸에 이상을 보여 서두르고 있는 그 진의가 무엇인지, 각자가 마음속으로 잘 깨달아 보라. 그리고, 각자 제멋대로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 잘 의논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의 심을 중심으로 굳게 뭉치도록 하라. 이렇게 깨우치셨다.]

이런 지도말씀 하에서 정월 26, 낮에 과감하게 근행을 올리는 것을 단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조님의 50년간 걸어가신 모본을 두 가지로 나눠본다면 처음에 20년간의 길은 적빈 가운데 빈한한 생활, 노고를 하신 생활이었습니다. 두 번째 30년은 순산허락을 내리시고, 근행을 올리기 위해 근행의 노래, 가락을 붙이고 손춤을 가르치고, 근행의 악기를 가르키고, 신악탈을 만들고 하는 근행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신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조님께서 은신하시면서 까지 근행의 완성을 서두르셨습니다만 가장 교조님이 어렵다고 생각하신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어떻든 근행을 올려야 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신악가는 교조님이 직접 지으셨습니다. 신악가 1절에서 5절까지는 굉장히 깁니다. 친필도 적으셨지만 교조님 생각으로 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손춤도 직접 가르치셨습니다만 그렇게까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근행의 노래를 만드시고, 가락을 붙이시고, 손춤을 가르치는 것도 물론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근행을 올리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지막 은신하시는 날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근행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세 가지 악기로 눈치를 보면서 해치우듯이 근행을 올린 것조차도 예전보다는 많이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교조님은 만족스럽게 생각하시면서 은신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그때와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근행을 올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근행을 올린다고 누가 조사하러 오거나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니구요, 만약 우리가 옥외스피커로 근행보는 소리를 방송한다 해도 근처 아파트 사는 분들의 민원이 들어가서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근행보는 데 어려운 사정이란 그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낮에 근행을 올릴 수 있는 오늘날과 근행을 올리면 잡혀 갔던 선인들과는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조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정성스럽게 근행을 올릴 수 있는 가, 없는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진주님께서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교조님이 계시던 당시와 현재는 사회도 틀리고 시대도 틀리고, 천리교 교세도 많이 틀립니다만 오늘날은 근행을 올릴 때 방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내면 다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님 마음에 맞춰 올리는 근행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근행의 소중함은 신한줄기 마음, 그것을 위해 우리는 우리생각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날이 올리는 조석근행, 다달이 올리는 월차제 근행을 과연 어떻게 올리고 있는 것일까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 날짜가 되면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올리는 것처럼 습관이나 타성이 되 버린 건 아닐까요? 과연 근행을 올릴 때 마음을 맑혀서 어버이신님께서 받아주실 수 있는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근행을 올리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근행을 올리는 것이 법률적으로 아무런 걱정없고 그런 현대에서도 근행 외에도 교조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신앙 실천의 여러 가지를 순직하게 실행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오늘도 월차제를 올렸습니다만 월차제 근행에 참배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직장일, 가정 사정 등 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다 사정이 있겠습니다만 저도 그런 이유에 대해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고 남습니다. 하지만 리에 관해 말씀드린다면 1887년 음력 정월 26일에 올린 근행, 그 때 선인들의 심정이 되어 생각한다면 우리들의 사정, 월차제에 참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은 결국 다 인간 사정이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조님의 신상이 위독해지시고 근행을 재촉하셨을 때 초대진주님이 본석님을 통해 어버이신님과 문답을 나눈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때 초대진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간세상의 법률과 신님의 일을 둘 다 지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고 여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응석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되고, 이것도 저것도 다 피해 갈 수 있는 우리가 편리한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한 것입니다.

그때 내려주신 지도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자아 자아 月日이 있어서 이 세계가 있고, 세계가 있어서 온갖 것이 있다. 온갖 것이 있어서 인간이 있고, 인간이 있어서 율()이 있다. 율이 있어도 마음작정이 제일이야. (1887. 1. 13)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근행을 올렸을 때 교조님이 끌려가지 않도록 여차하면 수호해 주시겠습니까?” 재차 다짐을 받고 싶어 이야기합니다. 그 때 답변으로써

자아 자아 실이 있으면 실이 있다. 실이라면 모를 터이지. 진실이란 물 불 바람. 자아 자아 실을 사는 거야. 값으로써 실을 사는 거야. (1887. 1. 13)

라는 말씀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인간사정, 즉 힘든 길을 피해가고 편리한 길만 잘 되는 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아니라 물 불 바람의 수호다. 물 불 바람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 수호이다. 너희들이 살려져 가는 수호가 어버이신님의 수호인데 그것은 너희들이 진실한 정성으로서 그것을 사야 되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공감을 많이 합니다. 지구반대편 아이티에는 지진이 나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아직도 수만 명이 매몰되어 있는데 이 자리에서 내 일, 내 걱정거리를 해결해 달라고 비는 것은 얼마나 염치없는 짓일까요? 그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버이신님의 수호라는 것이 목숨을 이어나가는 수호가 가장 절실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당시 사람에게도 근행을 올릴 수 없는 사정, 어렵고 힘든 길은 피해가고 편한 길만 가려는 것이 인간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901420일 지도말씀을 보면

아무리 좋은 옷이 많아도 즐거움이 없다. 세상의 인연,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길은 안 되는 가운데 어려운 가운데 나아가는 것이 이길.

아무리 옷이 좋고 그런 것이 많아도 즐거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리는 세상의 즐거움이란 것이 하룻밤 사이에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 세상의 인연이고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이길은 좋은 옷은 없어도 어렵고 힘든 가운데 나아가는 것이 이길이라는 말씀이죠.

그 뒤 1901515일 지도말씀에

지나기 쉬운 길만 걸어서는 지나기 어려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 도리에 맞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지나기 편하고 좋은 길만 걸어서는 나중에는 고생스런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 도리에 맞지 않다. 이것이 천리에 맞지 않는다. 산으로 비유하면 내리막길만 내려가고 있으면 나중에는 힘든 오르막 길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에 맞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교조님 은신하신 춘계대제에 올리는 근행은 인간생각과 신님생각, 어느 쪽을 소중히 생각해서 걸어가야 하는 지를 돌이켜 보는 시순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편안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만 소속교회의 월차제에 빠짐없이 참배하기란 인간생각으로 여러 이유를 대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저희 교회는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온가족이 소속교회 월차제 참배하기로 정했습니다. 그 말은 자기가 소속한 교회에 가족과 함께 참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월차제에 참배할 수 없다면 다른 시간있는 주말을 이용해서 참배를 하거나 혹은 월차제 근행을 보는 시간에 마음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터전에는 일참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매일같이 참배합니다, 하지만 거리상으로 도저히 참배를 못하는 사람은 편지나 팩스로써 참배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편지를 보내려고 해도 마음을 쓰고 정성을 쓰야 되고, 팩스를 한장 보내는 것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온가족이 소속교회 월차제에 참배합시다. 한달에 한번은 적어도 참배합시다. 그리고 수훈을 1만 번 전하기로 했습니다.

 

이야기는 바뀝니다만 2년 뒤면 고성교회 초대회장님이 포교를 하신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초대회장님은 특히 근행을 소중히 하시고 단노를 잘 하셨다고 합니다. 단노하는 데 가장 힘든 것이 인간생각과 신님 한줄기로서 리를 세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행과 수훈에 정성을 다하신 초대회장님의 정신을 이어서 구제에 매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올해 목표는 수훈 1만 번 전하기로 했습니다. 2년 뒤 다가오는 포교개설 60년을 맞이하여 올 한해도 근행과 수훈에 정성을 다하고 구제를 통하여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한 해를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28 [174년02월]정성의 마음으로-이상봉 2012.06.11
27 [174년01월]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의 차이-정선일 2012.06.11
26 [173년11월]5푼 5푼으로 더 성인하여 나아가자 - 이상봉 2012.07.10
25 [173년10월]전(前) 진주님이 오신 감사한 수호 - 최정욱 2012.07.10
24 [173년10월]인생 적자를 면하자 - 유병희 2012.07.10
23 [173년09월]상급의 뜻과 시순에 맞추는 실천 - 김규수 2012.07.10
22 [173년08월]수훈 전하기에 두배의 노력을 - 김영진 2012.07.10
21 [173년07월]팀플레이를 갖춘 교회로 - 이상봉 2012.07.10
20 [173년05월]바보는 이길의 기둥 - 김위태 2012.07.10
19 [173년04월]가난에 빠진 교조님의 모본을 되새기자 - 배재기 2012.07.10
18 [173년03월]신앙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 김대경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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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3년02월]남을 도우려면 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 이상봉 2012.07.10
15 [173년01월] 172년12월 월차제 신전강화 - 이상봉 2012.04.11
14 [172년12월]십전수호의 리에서 살펴본 여성의 역할 - 오대원 2012.09.09
13 [172년11월]고생하지 않고서 즐거운 삶의 실현은 없다 - 이상봉 2012.09.09
12 [172년10월]욕심과 집착을 버려서 포도알처럼 - 이상봉 2012.09.09
11 [172년09월]은혜 보답의 길 - 김규수 2012.09.09
10 [172년08월]즐거운 삶 - 전인수 201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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