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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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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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39

여덟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26

 

이 시 중

4. 편애

4) 자기사랑, 자기학대, 자기포기

편애의 티끌이란 지나치게 자기 몸을 귀히 여기고,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고, 자기 가족을 감싸고, 지나치게 자기가 속한 모임이나 조직- 동아리, 사는 지역, 종교, 국가 -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영역을 만들어 벽을 치고, 그 속에 갇혀 지나친 자기사랑, 자기들만의 사랑에 빠져버리는 거죠.

자기 영역에 끼이지 않은 부류가 있으면 쉽게 배타적으로 되고 왕따를 시킵니다. 자기네들이 뭔가 잘못을 해도 바로 인정하지 못하고, 방어하고, 변명합니다. 심지어 남을 나쁘게 말하거나 잘못을 떠넘기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남들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이고 비난합니다. 비뚤어진 자기사랑입니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바로 고쳐나가느냐 아니냐하는 점이지요. 그리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봐 주느냐 아니냐 하는 점 아니겠어요?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고쳐나가려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사람이고,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봐 주는 사람이야말로 마음이 넓고 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사랑하기 이전에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진실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남더러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집착이고 탐욕의 표현일 뿐입니다.

문제는 자기를 향한 사랑 자체가 아니라 비뚤어지고 지나쳐서 자기만을 사랑하는 게 문제이지요.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남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러지를 못해서 사회가 혼탁하고 갈등으로 요동치는 거죠.

 

지나친 자기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자기학대입니다. 이것은 극과 극입니다. 그래서 통합니다. 자기사랑이 지나치면 기대를 많이 하게 되고, 기대한 만큼 잘 하지 못할 때는 남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주눅 들고, 자기를 몰아붙이고, 비난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완벽을 추구합니다. 더 잘 하고 싶고, 더 잘 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완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서툴고, 틀리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인간이지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부족하고 또 부족한 인간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완벽할 수 없고,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은연중에 완벽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런 까닭에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데 열을 올리게 됩니다. 남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온갖 욕설에 비난을 마구 퍼붓습니다. ‘좀 더 좀 더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에 사로잡힌 줄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더더구나 벗어나지도 못하지요.

서툴 수 있고, 틀릴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자기 내면은 위로 받고, 다른 사람 역시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위로받는 영혼은 어떤 학대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잘하면 잘 하는 대로 인정해 주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안아주는 것, 많으면 많은 대로 고마워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을 아는 것, 이것이 치우침이 없는 진정한 사랑이고 온전한 사랑이 아닐까요.

 

자기사랑이나 자기학대와 또 다른 것으로 자기포기가 있습니다. 자포자기라고도 하지요.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어떤 의욕도 없는 모습입니다. 미워하지도 못하고 사랑하고 싶지도 않을 때 생겨나는 마음이지요.

어느 때, 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가 우리 집에 한 달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에게는 발랄함이나 자신감이 없고, 호기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기주장도 없구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몰라요.”

어디라도 데려 갈 테니까 한 군데 정해 봐.”

아무데나요.”

이렇게 시작한 외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때가 되어서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뭘 먹을래.”

몰라요.”

그래도 하나 정해 봐.”

같은 걸로 하죠.”

자기주장이 지나쳐도 골치 아프지만 이렇게 자기주장이 없는 활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을까요. 그런데 이런 겉모습을 보고 얌전한 아이 착한 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얌전한 것도 아니고 착한 것도 아닙니다. 자기사랑과 자기학대를 줄다리기 하다가 어느새 자기 존재 기반을 포기한 모습, 자기포기, 자포자기입니다. 엄마를 미워할 수도 없고, 아빠를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를 사랑하기도 싫고, 아빠 역시 사랑할 수 없을 때 생겨나는 것.

이것이 편애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요.

5) 마무리 하며

편애는 치우침, 쏠림이 있다는 말입니다. 치우침 쏠림이 없다는 것은 중용 중도를 지킨다는 말이 되겠지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남에게 휩쓸려가지 않는 자리,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자리, 어떤 분별심이나 차별심을 여윈 자리가 중용이고 중도입니다. 이것을 ‘55라 하고 둘하나가 천리라고 하는 것이지요.

<지도말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는 것이 교조의 길이라 한다. (1900. 12. 4)

고 했습니다.

차별하는 것은 이길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차별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입니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과 남의 집 아이를 어떻게 같이 볼 수 있겠습니까. 자기 몸같이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으며, 소속이 다른 상급과 산하를 편애하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분명해 보입니다. 차별하지 않는 것, 편 가르지 않는 것, 편애하지 않는 것, 55, 둘하나 이지요.

편애는 속 좁은 마음을 헤아리게 하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보통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따지려합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분쟁이 주변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법의 잣대로 재판까지 받으려 합니다. 여기서 이기고 지는 편이 있겠지만 모두에게 상처만 남을 뿐이지요. 우리가 얼마나 속 좁은 인간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마음이 넓고 큰 사람은 좋고 싫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적기 때문에 편애하는 마음도 적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지도말씀>에서도

이 길은 모두 즐겁게 사는 길, 잘 분간하라. 오고가는 사람 모두 신이 데리고 돌아오는 리를 분간하라. 차별은 전혀 없다. 오직 하나의 리에서 이루어진 길. 모두 귀엽다 귀엽다. 역할은 달라도 같은 리, 이것만은 잘 분간하라, 잘 분간하라.

(1899. 9. 28)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즐겁게 사는 길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역할은 각각으로 모두 다르지만 차별하지 않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남이 하는 일은 별 볼일 없는 것처럼 여기구요. 그리고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이라고 손쉽게 구별하지만 사실은 으뜸인 어버이로부터 시작된 길이며, 어버이신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길이라는 이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하는 사람, 구제 받아야할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 역시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구제받아야할 사람이지요.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구제받을 대상이지 누가 누구를 구제한다는 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구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어버이신님이시고 교조님일 따름입니다. 구제 선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내 인연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서로가 서로를 도울 구제의 파트너인거지요. 비록 역할은 다르지만 말입니다.

<교조전>에서는

이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즐겁게 해 주지 않고서는 한 사람도 그냥 보낼 수 없다. 어버이에게는 온 세상 인간은 모두 자녀인 거야. (교조전 20)

하셨습니다. 누구든 차별없이 즐겁게 해 주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버이신님의 마음이고, 우리가 언제나 지녀야할 마음이지요.

 

한편, 편애와 미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편애가 지나치면 반대급부로 미움도 커집니다. 내 마음에 드는 일은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치미는 미움으로 밀쳐내려고 하지요. 편애는 편애하는 대상이 멀어질까 전전긍긍하고, 미움은 미운 대상이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서 괴롭습니다. 편애와 미움은 같은 마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혼동해서 일어나기도 하구요.

편애도 미움도 벗어난 자리, 유유자적하며 초월한 자리는 어디쯤에나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려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을 텐데요.

있는 그대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모든 존재를 존중하며 살고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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