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6월 월차제 신전강화

    용재에게는 항상 손질을  

 

최영철(문산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유월 월차제를 즐겁고 용솟음치는 가운데 함께 올려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부덕하지만 오늘 제가 임명을 받았기에 잠깐이나마 신님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4)

감사합니다. 감화당번이라는 말씀을 집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만, 바쁘게 지나다 보니까 잊었다가 어제 저녁에 부랴부랴(웃음)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정신줄을 놓으니 뭣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하루하루가 즐겁고 용솟음치는 가운데 걷다보니까 세월도 잘 가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전에 진양회장님께서는 상급회장님도 안 오셨으니까 오늘 넉넉하게 천천히 많이 하라고 그러는데, 한쪽에서는 한 십오 분 내지 이십 분이 제일 좋은데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두서없이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어떻게 갈지는 모라도 제가 겪은 바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용재에게는 손질을 한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오다보니까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도 그걸 잊고 있다가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머리가 히끗히끗 세면서 세월이 금방 이렇게 갔나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벌써 그런 맘을 먹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피부로, 몸으로 느끼는 바를 생각하면, ‘세월이 그래도 가는 구나라고 느껴집니다. 우리 용재님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지만 모두가 다 그런 맘이 아닐까하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까지 걸어오는 동안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참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그때그때 마디를 통해서 조금 씩 조금 씩 마음이 성인되어가는구나라고 느껴집니다. 옛날 강습을 받고 처음에 왔을 적에는 감화를 시켜주면 참 좋겠다.’ 이런 맘이 들더니만 갈수록 이 감화석상에 선다는 게 참 지옥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왜 그런지 모르게 여러분 앞에 선다는 게 부끄럽고 죄송스럽다는 맘이 많이 듭니다.

? 그럴까요. 어버이신님은 많은 수호를 주시는데,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죠. 정말로 노력을 할 적에는 줄줄 신님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 같은데, 조금 노력이 부족하면 정말 마음이 조여 옵니다. 그래서 용재는 언제나 어버이신님과 마음이 닿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님하고 마음이 조금만 멀어져도 마음이 흐려지고, 멍해지는 거죠. 그럴 때 신님이 몽둥이를 한 방 주시면 또 정신을 차리고 갑니다.

요즘, 신앙이 어렵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시죠. 추세가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주위에도 모든 여건들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 어렵다고 자꾸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더 용기를 내서 신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이 돼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신님은 가만히 보고 계신다고 항상 느낍니다만 정신 줄을 놓다보면 어느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티끌이 쌓여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용재에게는 손질을 한다

어디가 나쁘다고 전혀 생각 말라 (3-131)

라고 했는데 용재에게는 항상 손질도 필요한 것 같애요.

저도 이번에 큰 마디를 만났습니다. 평소에 저는 불효인연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게 힘이 될 만한 사람이 떠나고, 의지할 만하면 떠나고 해서 불효인연이 많다고 항상 느낍니다. 이번에 또 뜻하지 않은 마디를 만나 위에 어른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주위의 많은 분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그것도 불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길을 걸어가면서 악인연에 대해서 참 말을 많이 합니다. 인연을 자각해서 나쁜 인연을 끊어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기 악인연에 대해서 남이 한 소리를 하면 마음이 즐거울 리는 없습니다. 물론 안 좋은 일을 끄집어내서 단노를 하고 참회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먼저 백인연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용재로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연도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좋은 인연이 있고 안 좋은 인연이 있겠죠. 그리고 마디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저에게 닥친 일련의 마디를 통해서 저는 많은 수호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고, 큰 중상을 입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안 다쳤으면 더 좋았겠죠. 그러나 인연이 있으면 누구든지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을 짓지 않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금생에 와서는 안 지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생으로부터 가지고 온 인연도 있고, 조상의 인연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벼락은 피해도 인연은 피하지 못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인연은 정말 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맛만 보고 지나가면 참 좋겠죠. 그러나 그것도 인력대로 안 됩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나날이 우리 마음 하나하나, 용재들의 모습 하나하나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용재는 어쨌든 신님과 마음이 이어져 있어야 하고, 신님이 즐거워하는 일에 이유없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오늘이 아니라도 내일이든, 언제 어떤 식으로든 어버이신님은 일립만배로 돌려주신다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물론 다 알고는 있겠지만, ‘사과도 먹어본 사람이 잘 안다고 하듯이 겪어보지 않으면 실제로 모릅니다.

 

차 사고를 통해

제가 이번에 조그만 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여러 용재들이 함께 초대회장님 산소에서 히노끼싱을 하였는데 먼저 내려와서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앞을 바로 보고 갔는데도 가만히 있는 지게차 위에 빔이라는 큰 쇠가 얹혀있는 게 안 보이더라고요. 사고를 당하려고 하면 평길에서도 사고가 나기도 하죠. 그날 사고가 나려고 했는지 지게차 위의 빔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갔는데 충돌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 위를 치고 갔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 큰 쇠가 떨어지면서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서무주임한테 전화를 걸어서 좀 내려오라고 했더니 금방 왔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다쳤구나.’하고 생각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다친 데는 크게 없는 것 같애요.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어깨가 좀 아픈 것 같고, 목은 그때 많이 아팠던 것 같애요. 서무주임이 큰 병원에 가자고 그래요. 고성이 가까우니까 일단 고성에 가 보자고 했습니다. 이래가지고 마침 고성에서 병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타박상밖에 없는 것 같고, 엑스레이를 찍어보아도 아무것이 안 나왔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목에 씨티(CT)를 찍었는데, 2주 진단이 나왔다고 그래요. 그래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상급교회 특별당직의 다음 당번이어서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도가 되면 당직을 서면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충분하겠다싶어서 의사선생님한테 제가 퇴원을 해야 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전치 2주가 나왔는데 1주일 지나서 나가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계속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리 아픈데 나가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다시 사진을 찍어보자고 그래요.

사진을 찍으니까 여기(어깨)가 파열이 됐다는 겁니다. 어깨 인대가 파열이 됐다는 거죠. 만일 그 결과가 하루만 늦었어도 퇴원하겠습니다하고 나왔을 겁니다. 일반사진으로는 이게 안 나옵니다. 의사도 괜찮다고 했고, 저도 아픈 건 세월이 가면 낫겠지하며 지냈거든요. 그런데 어깨 인대가 파열이 된 것을 알게 되어서 한 달 더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여기(어깨)가 조금 아프긴 했습니다만 그것이 곪아 있다가 이번에 파열이 된 것 같애요.

예전에 상급교회 역사를 하면서 누누이 아팠습니다만 교회장 처지에 교회에서 아프다 소리를 못합니다. 신자들 앞에서 아프다 아프다 소리를 못해요. 특히나 우리 장모님은 조금만 배탈이 났다고 해도 병원에 가라고 해요. 신님한테 고하라는 소리보다는 병원을 먼저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다 소리를 못하고, 엠알아이(MRI)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찍자고 하면 도망을 오고, 항상 침 몇 방 맞고 말았는데 이번 사고로 신님의 수호를 받아 보험처리해서 완전히 수술을 하고 리모델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역사에서 역사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깨가 많이 아플 때는 이제 역사는 못 하겠구나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의 역사에는 제 몸이 아프니까 안 한다고 했는데, 다행스럽게 광일교회 역사 때는 조금 도운다고 했습니다만 많이 고통스러웠어요.

그 이후 그렇게 다쳐서 수술을 하고, 경남교구 역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신님이 아직까지 써 먹을 데가 있는지 수리를 해주셨습니다. 만일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이건 평생 가져갔을 겁니다. 아파도 그냥 가끔 운동하고 몸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우면 남 몰래 달려가서 침 한 방 맞고 물리치료 한 번 받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어버이신님께서는 아직도 더 부려먹을 것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수술해서 낫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못해 오늘도 제물은 못 올렸습니다만 이게 육개월, 일년 정도 간다고 그러더라고예. 아직까지는 좀 고통스럽습니다.

 

신님일만 열심히

올해 새해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우린 그런 거 믿지 않습니다만 아홉수니 삼재니 하는 말들이 많죠, 사회에서는. 올해는 안 좋은 해라고 하는데, 내가 올해 열심히 해야 되겠네라고 말을 했더니 집사람도 우리 열심히 신님일만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크나 적으나 한겨울 정월부터 뛰기를 시작했죠. 그러나 많이 한다고 신님이 많이 주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애요. 어떻든 하루라도 빠짐없이 신님의 은혜 갚는 보답으로서 전도지 한 장이라도 돌려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나서며는 또 전도가 되는데 사람이 항상 안 그렇거든요. 그만 앉아있으면 하기 싫어요. 한 며칠 가버리면 마음이 툭 주저앉아 버려요. 그런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왜 합니까? 안 좋은 것을 좋게 하기 위해서 신앙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 좋으면 어쨌든 신님한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을 해 왔습니다. 정말 한겨울에도 추위를 아랑곳 않고 조금 조금씩 신님일을 본 것이 그나마 이렇게까지 수호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우리 용재들은 물론, 다 열심히 합니다. 주위가 어렵다 어떻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밝고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편한 길은 걷기가 쉽다

요즘은 교구 역사에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퇴원하고 나서 거의 하루도 안 쉬다시피 교구에 쫓아다닙니다. 그것도 신님일이다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습소 와서 인재로 키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야 할 장소다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도 거기에 혼신의 힘을 다 합니다. 물론, 우리 상급이 아니라도 일단 한 교구에 속해 있는 저로서는 책임을 맡고 여러 가지 많은 손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되어갑니다만 그것도 저는 신님일이다 하고 매일 왔다 갔다 하는데 더러 피곤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314일 병원에 입원하고부터 계속 신님일을 못 봤는데 지금 교구역사에 쫓아다니며 신님일을 한다 싶으니 즐겁습니다. 저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신님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일과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즐겁게 하고 갑니다. 누구든지 신님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신님은 언젠가는 거기에 못지않는 수호를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제가 적어온 것을 잠깐 읽어볼까 합니다.

234대를 거듭해 가는 가운데 부모들이 쌓아놓은 덕을 받아 지금은 감사한 처지가 되었음에도 입신의 으뜸하루를 잊어버린다든지 알고는 있지만 남의 일처럼 여기고 있어서는 나날이 신앙생활의 감동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연한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진실한 마음으로 걷지 않는다면 살이 없는 것이 되어 리도 따르지 않는다. 연한이 오래되고 마음의 진실을 다스려 나간다면 마음에 리가 쌓여 붙기 때문에 그 리는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덕이다.

이길에서는 을 또 라고도 합니다.

각 교회는 지금 초대에서 2대로 거의 다 넘어가고 있죠. 저는 초대가 다 해놓은 상태에서 걷다보니까 아무 걱정 없이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초대의 십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가나 싶은 게 항상 자책을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초대의 모습을 보아왔어요.

지금 강습소에 한번 가보면 우리가 얼마만큼 노력을 안 하는가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은 강습소 사람도 몇 없는데 강습소를 없애면 안 되나하는 사람도 있고, ‘강습생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왜 역사를 하며, 새롭게 꾸미느냐이런 말씀도 합니다만 그거는 잘못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전도해서 자기가 신자 키워낼 겁니까? 한 사람이 됐든, 두 사람이 됐든, 강습소는 언제나 영원히 갈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강습생들이 많이 없지만 없는 것도 누구 탓입니까? 다 우리 용재들의 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전도를 잘 못합니다만 일 년에 강습생 한 사람을 못 낸다 하며는 참 서운하겠죠, 어버이신님께서... 저도 못 내는 때가 많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정말 열심히 전도를 해서 보내면 강습소에 사람이 많겠죠. 강습소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탓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이대로 편안하게 가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는 정말로 신님의 수호를 받지 못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신님의 일을 보고 있겠죠. 그러나 초대 때의 무조건적인, 신님 밖에 모르고 전도 밖에 모르던 그때와는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고 봅니다. 먹을 거 있고 배부르고 등 따시죠. 마음만 먹으면 편안하게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말씀>

이제 이 만큼 되었으니 되었으니, 이제는 괜찮다 하는 마음은 안 된다. 편한 길은 걷기 쉽다. 자아, 힘이 든다고 하여 잠깐 쉬고, 춥다고 하여 불을 피우고, 이럭저럭 잠깐 잠깐 잠깐 쉰다는 식이 된다면, 이것 생각하고 저것 생각하여, 아무리 애태우고 어떻게 하더라도, 분명히 이 길을 즐겁게 지나기 어렵다 어렵다.

(1901. 3. 7)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거의가 공부도 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로지 신상의 사정을 수호를 받아서 신님 밖에 모르고 갔지만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다 머리 영리하죠, 배울 것 다 배웠죠. 학식이 풍부하니까 더 잘 되어 가야 하는데 왜 안 되느냐. 그건 우리들 용재 각자의 마음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열 사람 아래 마음을 두라

교조님께서 이부리이조에게

리를 세움으로써 몸이 선다. 남이 세운 리에 의해 내 몸이 선다. 반드시 남을 세우도록 하고 자신은 올라서지 않도록 하라. 만약, 남들이 받드는 입장이 되어도 높은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 사람 위에 서게 되면 열 사람 위의 일은 해도, 그 마음은 가장 아래에 두도록, 백 사람 위에 서게 되면 백 사람 위의 일을 할지라도, 그 마음은 백 사람 아래에 두도록, 천 명 만 명 위에 서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천 명 만 명의 밑으로 낮추도록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실지로 나이가 어려서 다 회장되고 마음이 벌써 높아 있습니다. 물론 자기는 아니라고 여길지 몰라도 대부분 그런 것 같애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조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끌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만 사람 밑에 가지 않고서 어떻게 만 사람을 끌어 들이겠습니까? 우리 용재들은 항상 마음을 아래로 낮춰서 신님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이길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실천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하나 하나 마디를 통해서 신님의 은혜를 받아 차츰차츰이라고 하듯이 조금 조금씩 성숙되어 가는 것 같애요. 어쨌든 여기 계신 신자 용재님께서 신님과 통하고 신님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대로 잘 따라 가는 훌륭한 신앙인으로 수호받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교조130년제를 앞두고, 또 대교회 120주년, 시월이면 고성교회 포교60주년이 있죠. 이런 행사 하나하나는 정성이 없으면 안 되겠죠. 상급회장님을 심으로 삼아서 모두가 마음을 합쳐서 나아가면 앞에 어떠한 일들이 와도 즐겁게 헤쳐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부족합니다만 잘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들의 각 가정마다 신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원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