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권 351호 입교187년(2024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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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17:40
추계대제 신전강화
다가오는 것도 인연
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고성교회 입교 187년 추계대제에 이렇게 참배하시고 방금 즐겁고 용솟음치는 근행을 올리게 돼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잠시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박)
이달은 187년 전 교조님께서 우리의 현신이 되시고, 이 길의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시게 된 으뜸 하루의 유서 깊은 달입니다.
본부에서 10월 26일에 올리는 근행을 추계대제라 하죠. 보통 월차제 근행과 달리 10월 추계대제는 터전에서는 아침 8시에 근행을 시작합니다. 이것을 종종 모르시고 10시에 갔더니 그냥 근행이 거의 끝나 있었다. 하는 일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8시에 교조님께서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주신 그 시각에 맞추어서 근행을 올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는 7시 반부터 시작합니다.
교조님께서 1838년 10월 26일 그 날짜 그 시간에,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또 왜 교조님 나카야마 미키님이라는 그분의 몸에 어버이신님이 듭시고 또 터전의 그 장소에서 이 으뜸의 가르침을 펼치게 된 것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연으로서 하강했다.”라고 어버이신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그 인연이라는 것은 교조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할 때 여자추형묘상의리의 혼의 인연을 가지신 분이고, 터전이라는 그 장소는 인간을 창조할 때 처음 잉태했던 장소의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날짜는 어버이신님이 정해놓은 시간이 지나면 그 장소에 교조님을 이끌어 들여서 신으로 예배받게 하겠다는 그 시간의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인연이 모여서 그날 교조님이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지셨습니다.
이 길은 인연이라는 것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우연히 모여진 것이 아니고 다 인연이 있음으로써 여기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인연인가.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인연은 모두 다릅니다. 여기 모이신 분 중에 같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공통으로 해당하는 인연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도말씀에 보면 “듣는 것도 인연, 보는 것도 인연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따라오는 말씀은 자주 생략됩니다. 그 한 구절은 “다가오는 것도 인연이다.”라는 겁니다. 이게 적절한 번역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 이 길에서는 몸이 아프신 분에게는 수훈을 전하지 않습니까. 수훈을 전하게 될 때 수훈을 받는 사람과 수훈을 전하는 사람의 인연이 같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당신은 이런 습관을 잘못 들여서 이런 병이 생겼다.”라고 얘기를 하지, 환자에게 “나도 그렇다.”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천리교의 구제를 하는 사람은 수훈을 받는 사람과 내가 인연이 겹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핵심을 말하자면, 남의 일이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남을 도와야 합니다. ‘당신은 이런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려서 당신 잘못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이런 마음을 써왔기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렸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 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제를 할 수 있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세상 모든 일도 다 그렇습니다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남의 일이 되는 것이고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버이신님에게서 모두 빌려 받았지만, 마음의 자유를 허락받았습니다. 마음의 자유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일도 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쓸 수 있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전달되게 하는 것도, 모두 우리 마음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의 인연의 공통점에 대해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것은 무언가 남을 도와야 하는 인연이 겹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여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중에는 더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 더 가벼운 인연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공통적인 인연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길의 신앙은 어쨌든 교조님의 그런 인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인연이 겹쳐있으므로 이 자리에 모여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는 것도 인연, 듣는 것도 인연, 다가오는 것도 인연인 것처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남을 돕기 위해서 거기에 마음을 두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이 길을 가는 우리 전체의 공통적인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진주님 메시지를 10월 9일에 다 같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삶을 실천하는 하나의 도장이 돼서 즐거운 삶의 본보기를 나타내는 포교 활동의 거점이 되는 것이다.” 즐거운 삶을 실천하는 도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장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태권도 도장, 학원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길의 가르침을 한마디라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어버이신님에게서 빌려 쓰고 있다. 마음 하나가 제 것이다. 자유롭게 쓰는 마음에 의해서 어떠한 리도 나날이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의 지식이고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상생활 하면서 얼마나 인식하고 생각하느냐. 요즘의 사회 풍조를 보면, 우리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그 시비를 가려서 사과를 받거나 재판으로 가는 일 등이 왕왕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뭔가 잘못을 하면 사과해야 하고 사과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교조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단노를 하면 두고두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두고두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도 이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단노인 것입니다. 나는 알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알게 모르게 써온 마음이나 내 버릇이나 성품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이런 일로 한 번 보여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천리교인의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됩니까. 안 됩니다. 내가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냥 참지 못하고 시비를 가리고 사과를 받아내려고 하거나 남에 대한 험담이나 비방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이런 도장에서 가르침을 듣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행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든지 티끌을 쌓을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거나 욕심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감정에 쌓여서 계속 살게 된다면, 예를 들어, 옛날부터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거나 원망해야 할 사정이 있으면 그걸 오랜 세월 감정에 담아두고 지내게 되면, 제가 봤을 때는, 10년, 20년 지나게 되면 자신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것이 가르침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런 마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현명한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쉽사리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도장(교회)에 와서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잊을 때쯤 되면 스스로 다시 깨우치면서 ‘아, 그렇구나.’ 하면서 다시 반복해서 듣고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아, 내가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나서 마음을 바꿔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가르침의 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능력으로 뭔가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도 이 자리에서 근행 연습을 했습니다. 어제 근행 연습한 빠르기와 비슷하게 해서 아주 즐겁고 용솟음치게 근행을 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빠르기를 일정하게 맞추려고 해도 실제로 하면 그게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빠르기를 맞추려고 해도 근육이 움직여서 북을 치고 박자목과 제금을 치기 때문에 계속하게 되면 근육이 피로해져서 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 더 빠르게 하려고 하면 더 빠르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몸이 그렇습니다. 그 근육의 힘을 조절해서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연습을 계속해나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도장이나 학원에서 “이렇게 연습해 와.”라고 해도 그대로 연습해 오는 학생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도장에 나왔을 때만 연습을 하게 되고 계속 반복을 통해서 일정한 횟수를 채우지 않게 되면 그것이 몸에 배지 않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길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려고 하고 있어도 이야기를 계속 듣고 스스로를 깨우치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이 힘들게 되는 겁니다.
전도청이나 교회나 같은 맥락으로 보면, 교회는 세계 일류를 구제하시려는 어버이신님의 인도를 받아서 교회에 모여서 즐거운 삶을 배우게 된 사람들의 마음은 저절로 기쁨이 넘치고 온화하고 밝은 교회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런 분위기는 저절로 밖으로도 전해져 즐거운 삶의 가르침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들이 느껴본 기쁨을,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넓히는 구제한줄기의 활동을 전개하는 장소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역할과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남을 돕고 구제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을 전해가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밝고 따뜻한 장소가 되어야 하고 즐거움을 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지나온 과정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진주님 계승후계자이신 다이스케 님께서 한국에 처음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이스케 님은 천리교 청년회장을 역임하신 지 10년 정도가 됐습니다. 청년회의 젊은 이 길의 후계자들을 이끌고 상대하면서 느낀 감상에 대해서 느낀 감상을 몇 가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는 사람의 마음에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깔려 있어야 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없이 가게 되면 가기가 힘들겠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우리에게 마음의 자유를 줬는데, 우리가 속박당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마음이 즐겁지 못합니다. 물론, 신앙을 오랜 연한 하신 분들은 그런 것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겠지만,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속박당하고, 이 길을 무언가 어렵고 무거운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청년회장이 되고 나서 하는 일이, 이 길은 가볍게 갈 수도 있는 길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굳이 어떤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천리교의 가르침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 길의 후계자입니다.
앞에 드린 말씀대로, 마음의 티끌을 쌓게 되면 우리 주위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단노의 마음을 다스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나도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 길의 후계자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가면 반드시 교회에서,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충분히 가르침을 전해갈 수 있는 후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식을 가져야만 가볍게 이 길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고, 또, 일선에서 열심히 갈 수 있는 사람도 생기겠죠. 가볍든 무겁든,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이 길을 가겠다는 방향성에 목표를 두고 이 길은 진실하게 세상을 다스리는 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즐거움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교회나 구제하는 우리의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이 길을 따라오면 진실하게 구제받게 되는 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든 우리는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즐겁지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더 마음을 다스려서 즐거운 쪽으로 방향을 틀어가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시비를 가리고 사과를 받고 무언가 수정해서 세상을 바꾸고 조직을 바꾸는 것보다 내 마음을 먼저 다스려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가 성인된 모습으로 나아가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모습도 바뀌어지고 조직의 모습도 바뀌어가는 것으로 쌓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그 단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진주님 메시지에는 그것이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는 교조님의 제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조님 모본의 길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가야 합니다. 교조님이 제일 힘써서 구제한줄기를 위해 가르쳐주신 근행과 수훈을 진실하게 전하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이 관념이나 머리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교조님이 근행에 정성을 쏟으라고 가르쳐주셨을까요. 사람은 근행이라는 형태의 모습을 통해서 마음을 모을 때, 거기에 따라 완성되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운 근행을 올리는 데 정성을 들이고 그것이 구제의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수훈도 진지하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에 말씀드렸듯이, 듣는 것도 인연, 보는 것도 인연, 다가오는 것도 인연이듯이 내가 수훈을 전하는 상대방,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일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일이라고 생각할 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상관없이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활동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우리가 교조님의 제자라는 자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진주님의 메시지 마지막은 한마음 한뜻입니다. 한마음 한뜻은, 각자의 인연이 다르고, 경험과 연령도 다르고,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무언가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마음을 모아서 해나갈 때 큰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진주님 사모님과 다이스케 님께서 한국에 와서 아주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작년부터 해외의 전도청에 순교를 다니시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받은 인상은, 한국 사람들의 에너지에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것을 느꼈다는 겁니다. ‘근행을 볼 때도 신악가를 크게 부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맞추고 진솔한 표정을 짓는 것 등이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순직하고 순박한 성향을 가지고 있고 마음을 모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느낌과 에너지를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이 길을 위해서도 하나의 공통적인 목표에 마음을 모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우분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모아서 이 길의 가르침을 이 땅에 넓히기 위해서 노력해달라는 당부를 끝으로 진주님의 메시지는 끝이 나게 됩니다.
다음에 도우지에 실리게 되면 예사롭게 보지 마시고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진주님의 메시지는 일반적인 글과는 다릅니다.
이 길에는 원전과 준원전이 있습니다. 원전은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을 통해 직접 전해주신 신악가, 친필,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작성한 준원전은 천리교교전, 천리교교조전, 천리교교조전일화편이 있습니다. 진주님이 유달이나 이렇게 남겨주신 메시지도 준원전에 속합니다. 우리 교리의 지침서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인의 생각 등을 접어두고 그것을 위해서 마음을 모을 때, 교회 활동이나 구제 활동을 통해서도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우리에게 전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전도청장 취임 봉고제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주셔서 그 덕택으로 사모님과 진주님 후계자님도 아주 큰 인상과 즐거움을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린 리를 남기게 되어서 이 자리를 빌려서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추계대제 인사말씀에 대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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