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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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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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덕

 

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추석 연휴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부인회 참석해주시고 근행을 같이 올리게 되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잠시만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저희는 2년 전부터 추석에 영전에서 영제를 올리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산소에 가서 초대 회장님, 초대 회장님의 부모님, 2대 회장님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형태가 있는 산소에 절을 하면서 속으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인사를 속으로 항상 합니다. 조령전에서도 엎드려서 속으로 말씀을 건넵니다. 산소에 가면 공덕비가 서 있습니다. 고성교회는 초대교회장님의 공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에 나온 책 중에 사람은 혼의 덕으로 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안을 보면, ‘사람의 일생은 영혼의 덕으로 결정된다.’ 이 덕이라는 것은 영혼의 힘이자 운명을 개척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아무리 재산이 많고, 능력이나 체력이 있어도 영혼의 덕이 없다면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보이는 것은 똑같이 보일지라도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자신이 덕을 쌓지 않으면 운명을 개척할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덕이란 무엇일까요. 지난 8월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덕에 대해서 일화편을 예를 들어 말씀을 드렸는데요. 교조님 재세시의 일반적인 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정에 가면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일본의 초등학교에는 니노미야 손토쿠라는 사람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상 계몽가입니다. 이 사람이 덕을 쌓자.’라고 일본 국민을 계몽했습니다. 그때 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쌀을 예를 들어 비유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먹는 쌀은 작년에 지은 쌀입니다. 작년에 쌀농사를 잘 짓지 않았으면 올해 먹을 쌀이 없는 겁니다. 올해도 쌀농사를 잘 지었기 때문에 올해 지은 쌀로 내년에 먹을 겁니다. 그걸 덕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덕을 쌓아야만 다음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지은 쌀을 먹고 살고 올해 그걸 먹고 사는 것이다. 작년에 쌀농사를 많이 했다고 해도 올해 일을 하지 않으면 내년 사람들은 살기 위한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작년 사람의 일에 대해 감사하고 올해는 그 이상으로 일하고, 내년 사람들이 기뻐하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자기도, 세상도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 덕은 쌀과 같은 것이다. 덕과 이득의 발음은 비슷하지만 얻은 것, 받은 것,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신도 노력하고, 일하고 또 나만 그것을 누릴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도 더 많은 덕을 누릴 수 있도록 남겨가는 것이 앞사람의 덕에 보답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이 연결고리가 사회가 발전해가고 기초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근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지금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것에 빗대어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집을 짓고 있는데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벽돌 쌓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한 사람은 보이는 대로 나는 지금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벽돌을 쌓아서 수당을 받아서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나는 지금 멋진 집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각자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다른 겁니다. 교조님은 이런 것이 덕으로 연결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더라도 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신님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조님 재세시부터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여지는 근로에 대해 주장을 하셨던 겁니다.

교조전일화편 63편에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의 이야기에서는, 눈에 보이는 덕으로 도둑 맞거나 잃어버리게 되는 것, 즉 재산이나 금전, 신체, 의식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은 운, 인연, 마음의 힘, 매력이나 인덕, 신용 혹은 하늘의 인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체력이나 능력이 있더라도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 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해서 움츠리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성공을 하더라도 한순간에 전락해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길의 가르침으로는 눈에 보이는 덕은 아무리 익힐 수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이 부족하면 그것을 살려 나갈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은 어떻게 하면 쌓을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어버이신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조님은 본석선생에게 항상 이 길은 음덕을 쌓아야 해요. 남이 보는 앞에서 어떻게 노력을 하든, 일하든 뒤에서 대충 한다든지 해서는 신님의 수호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남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그 덕이 없어지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자기가 한 것을 자랑하고 칭찬을 받거나 보이는 데서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으로 쌓이지 않는 겁니다. 이런 것이 눈에 보이는 덕으로는 쌓일 수 있겠죠. 그래서 본선 선생은 밤마다 남몰래 부서진 다리를 고치거나 좋지 않은 길을 고치면서 교조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셨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은 주기만 하는데 나에게는 손해의 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덕을 쌓는다는 것은 자신 이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댓가나 보상이나 평가를 구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조님은 그것이 어버이신님께서 받아주시는 행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쌓게 된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은 나는 덕이 없다.’라고 깨달을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다고 깨달아야만 확실한 목적이 생기는 겁니다. 덕을 쌓아야 한다는 목적이 생깁니다. 나는 이미 충분하고 덕이 있어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다음에 남겨질 덕이 하나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게 쌀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쨌든 낮은 마음으로 덕이 없어서 덕을 쌓아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을 쌓는 것이란, 삶의 방식이며 인간이 잘살기 위해서 매년 열심히 일해서 쌀농사를 짓듯이 살아 있는 한 계속해야 하는 것이 덕 쌓기입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덕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힘들거나 고민이 있는 것은 끝이 없지만 그래도 신님이 인도하신 것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을 쓰러뜨리지 않고 항상 신님의 가르침을 쫓아서 살고자 부족하지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덕의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차이가 납니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신앙이 없는 사람은 부족과 불만이 나오고 거기서 좌절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있고 덕이 있는 사람들은 난관을 만났을 때 용기 있게 헤쳐나가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난관을 만났을 때 신앙이나 덕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쌀농사를 짓듯이 꾸준하게 덕을 쌓는 노력을 계속 해야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