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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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년11월]마음 하나 - 교회장

2022.10.28 14:57

편집실 조회 수:155

추계대제 신전강화

 

마음 하나

 

 

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고성교회 입교 185년 추계대제 근행에 참배해주시고 즐겁게 근행을 올리게 되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생각하는 바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추계대제의 각자에게 부여된 의미

 

이번 달은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으로부터 185년 전인 1838년 음력 1026일에 교조님께 어버이신 천리왕님께서 듭시어 처음으로 인간의 입으로 신님의 생각을 듣게 된 달입니다.

이곳 고성교회에도 어버이신님께서 진좌하고 계시지만, 어버이신님은 입을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어버이신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카야마 미키님이라는 교조님의 몸 안에 듭셔서 교조님의 입을 통해서, “입은 인간 마음은 월일이야.”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입은 나카야마 미키라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어버이신 천리왕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교조님을 통해서 이 길의 가르침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다 같이 부른 신악가의 노래도 교조님이라는 인간의 입을 통해서 가르쳤지만, 그것은 결국 신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18381026일을 기념해서 우리는 추계대제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이신 인간 나카야마 미키님의 몸에 어버이신님이 들어가셔서 미키를 신의 현신으로 삼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 교조님은 마흔살로서, 일가의 주부로서 가장 바쁘고 힘들 때 어버이신님이 몸 안에 듭셔서 신의 현신으로 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남편을 비롯해서 가족들, 일가친척들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이쪽은 한 집안의 주부로서 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인데 제발 물러가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지만 신은 어디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신님이 보기에 교조님이야말로 999999년 전 아주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분이다. 약속된 영혼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어버이신은 다른 데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 들어준다면 세계 일류를 구제해주겠다.”고 해서 승낙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1838년 음력 1023일부터 어버이신님이 교조님 몸에 듭셔서 3일 동안 응답을 해서 1026일 아침 8시에 미키를 신의 현신으로 바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함으로써 이 길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천리교가 시작된 으뜸하루라고 합니다. 교조님이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지신 것도 그냥 정해진 것이 아니라 태초에 어버이신님이 약속한 혼의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 교조님께서 살고 계신 집터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한 인연이 있던 장소라는 것, 18381026일이라는 날짜는 태초로부터 어버이신님께서 약속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장소와 시간, 이 세 가지가 겹침으로써 천리교가 시작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도, 교조님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각자가 혼의 인연을 가지고 있고 장소와 시간이라는 씨줄과 날줄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운명적인 순간에 천리교의 신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각자에게도 신앙을 시작하게 된 으뜸하루가 다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고성 초대회장님께서 신앙을 시작하게 된 것이 집안의 으뜸하루이지만, 제 개인의 으뜸하루는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근행을 보는 것을 들으면서 생활해왔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어버이신님이 계시고, 신앙을 해야 하겠다.’라고 진실로 마음을 낸 그날이 으뜸하루라고 생각합니다.

신앙하는 집안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게 으뜸하루가 아닙니다.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신앙을 몇십 년 하고 교회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입신을 안 한 것 같다.” 하고요. 어버이신님이 존재하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해서 모두 움직이고 있다고 진실로 믿으며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마음을 굳게 먹은 그날이 각자의 으뜸하루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으뜸하루가 누구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을 하는 집안에 태어나더라도 말이죠.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회에서 말하는, 상대적인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주로 살고 있으면 아직 으뜸하루는 오지 않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앙생활과 어버이신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사회에서 일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물질을 누리고 생활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신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 동안에는 으뜸하루는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어떤 계기로 되든 간에 시간도 필요하고 장소의 인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그런 날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상과 사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신상과 사정이라는 마디를 통해서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았을 때 , 신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이고 가장 믿고 의지할만한 존재가 어버이신님이구나.’ 하고 내 마음에 굳게 들어왔을 때 비로소 으뜸하루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누가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려고 생각하더라도 본인이 진심으로 납득해서 시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교조님의 으뜸하루는 태초에 어버이신님께서 약속하신 그날이 도래해서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라는 세 가지 큰 인연이 마주친 곳에서 천리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우리는 각자의 장소와 때라는 인연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하나

 

10월의 가을철 대제는 천리교가 시작된 날에 빗대어 각자의 삶과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버이신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빌려주고 있지만, 마음만 각자의 자유로 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도말씀에 마음 하나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 길에서는 마음 하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과연 그 마음 하나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 몸은 어버이신님이 빌려주시고 마음 하나가 나의 리이다. 마음 하나가 내 스스로 사용해도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어버이신님에게 빌린 것입니다. 내 몸도 빌린 것이지만, 내 아내, 남편이라든지, 아이, 형제, 경우에 따라서는 옆집 사람들도 다 빌린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빌린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신에게 빌린 것,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음 하나라고 신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음만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잘못 쓰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마음을 잘못 썼을 때는 신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하고 안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병이 나거나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는 나 자신이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 하나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신의 가르침입니다. 마음 하나의 자유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 하나는 상냥한 마음도 있고 무서운 마음도 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쓰는 마음도 있다. (1912113)

사람이 마음을 상대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쓰는 때도 있지만, 아주 무서운 마음을 쓸 때도 있고, 내가 무슨 마음을 쓰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중에 쓰는 마음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것을 보여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그날뿐이야. 저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뿐.

이라는 지도말씀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보여도라는 의미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 신상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 사정에 휘말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신님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신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어떤 일을 보아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남의 일이 됩니다.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저런 마음을 써서 저런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 자업자득이다.”라고 말해버리는 예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남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일은 곤란한 사람이 어떤 마음을 써서 곤란한 일을 겪고 있더라도 내 일처럼 생각하면 돕게 되는 겁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곤란한 일을 겪고 있을 때 그놈 자업자득이다. 잘 됐다. 평소에 그리하더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어떻든 그런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이 길의 으뜸하루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도말씀입니다.

남의 일처럼 무심코 넘기면 결국 남의 일이 되는 겁니다. 그것만큼의 인간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이라도 내가 나서서 도와주게 되면 내가 성인하게 되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우리의 밥그릇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덕의 그릇이라는 것이, 남은 그럴 만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라고 지나가게 되면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이 와도 담아낼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갑자기 복권이 당첨돼도 몇 년 지나고 보면 다 없어지고 남는 게 없습니다. 자기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안 되는 겁니다. 자기가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다.

교조님의 으뜸의 인연을 생각하면, 우리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심어놓은 으뜸인 인연이 서로 도와 즐겁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가장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훌륭한 직장에 다녀서 출세하고 물질적으로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들은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절대적인 가치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다고 해도 별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가족부터 도와가는 겁니다.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좋게 지내는 것이 서로 돕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모, 자식, 형제간에도 서로 왕래를 안 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지 않습니까. 세상 보통의 상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혼의 인연에 비춰서 생각해보고 인연납소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원만한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되는 겁니다. 천리교에 인연이 있어서 들어온 우리 용재들은 어쨌든 그런 것을 외면하지 말고 어쨌든 나의 일로 받아들여서 돕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은 곤란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으면 될 것인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신님께서는 당신이 도우세요.”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내게 보여주는 것은 그 사람을 돕고 싶은 신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은 즐거운 세상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보여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일, 내 가족의 일, 나의 일로서 받아들이면서 생각하면서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은 성진실한 마음으로서 어버이신님이 받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천리교는 정성의 마음으로써,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음으로써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하나란 착한 마음도 있고 무서운 마음도 있고 있는 줄 모르고 쓰는 마음도 있다. 어떤 것을 보여주어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그것뿐. 저건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그만큼의 것.

제가 임시로 번역해서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기뻐하는 마음을 갖고 동시에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 하나의 자유를 인간에게 준 이유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을 갖고, 마음 하나가 우리 것, 마음 하나가 자유의 이치라는 뜻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보는 것도 인연 듣는 것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들어도 전부 자신에게 신님이 보여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추계대제 근행을 올리기 위해 많은 분이 참배해주셨습니다. 다음 달에는 고성교회 포교 70주년의 시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더 많은 분이 오셔서 70주년에 즈음하여 초대로부터 이어져 온 길을 근행을 정성스럽게 올려서 어버이신님께 은혜보답을 했으면 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