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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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년08월]삶의 무게 - 김영진

2022.07.29 15:46

편집실 조회 수:188

7월 월차제 신전강화

 

삶의 무게

 

김영진(진양교회장)

 

오는 1120일은 고성교회 포교 70주년 기념제를 봉상하게 됩니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포교 60주년 사진을 제가 카메라를 사진관에서 빌려서 자동모드로 놓고 찍었습니다. 당시 사진이 잘 찍힐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무려 십 년 동안이나 걸려 있는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사진도 이제 몇 달이 지나면 교체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사진 담당을 도성소장님이 맡아 지금도 수고하고 계십니다.

고성교회 사진을 담당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전혀 몰랐던 예술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무슨 예술이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진을 찍기 위한 여러 과정을 보면 그냥 찍는 것 같아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술적인 것, 구도 등 여러 가지가 많은 작용을 합니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첩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저도 그 나름에서 많이 보고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디지털사진 시대라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 모으고 하는 일을 잘 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보는 것으로 그치기도 합니다만 제가 사진을 많이 찍을 때는 필름도 보관하고 인화된 사진도 따로 보관했습니다. 고성교회 역사를 사진으로 촬영 보관 정리하는 데 작은 힘이 되었다고 자평합니다. 또 진주님 내외분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 담당으로 활동하며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서 큰 영광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그림을 전공하셨던 지금 평화회장님 청년 근무 시절의 생각과 행동에도 많은 자극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소 엉뚱하기도 하지만 예술을 접했던 분이어서 그런지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예술에 눈을 뜨게 되면서 관심 있게 찍던 사진이 있었습니다. 삶의 무게라는 테마로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보따리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 괭이 같은 농기구를 허리춤에 걸치고 걸어가는 할아버지, 양손에 짐을 들고 가는 아주머니 등등의 뒷모습 사진들을 즐겨 찍었습니다. 아마도 3, 40대의 젊은 나이에 저 자신도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교회장이거나 포교소장이거나 일반 신자거나 누구든지 나름의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각자가 느끼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지요?

이렇게 삶의 무게를 주제 삼아 사진을 찍었던 것을 보면 저 자신도 제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고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삶의 무게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글이 검색되었습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에 대해 글을 쓰고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김명수 님의 역기를 들면서 생각하는 삶의 무게에 관해 쓴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삶에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있다. 지나친 의욕으로 자기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과장해서도 안 되고 자기가 들어야 하는 무게를 비겁하게 자꾸 줄여 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들어야 하는 무게를 남에게 모두 떠맡긴 채 무관심하게 돌아서 있어서도 안 된다.

 

힘들지만 자기가 들 수 있는 삶의 무게는 피하지 말고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시입니다. 신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시도 있습니다.

돌무덤이라는 시입니다.

 

내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돌덩이.

하나둘 모여들 땐 나름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돌덩이 숨이 막힐 만큼 가득..

 

어떤 이는 돌덩이를 하나씩 올려주며 가볍게 살라하고.

어떤 이는 돌덩이를 올려주며 행동이 굼뜨다고 놀리고.

어떤 이는 돌덩이를 올려주며 자기처럼 가볍고 홀가분하게 툴툴 털어버리라 하네.

 

가끔은 나의 돌덩이가 힘들게 보인다며 하나 들어 주겠노라며 그중에 작고 가벼운 돌 하나 들어주며 도로 자기의 큰 돌 하나 올려두고 가기도 하고.

가끔은 나의 돌덩이 하나 들어 주겠다며 나름 위안되는 예쁜 돌은 찾아가고 자신의 못나고 뾰족한 돌 올려주고 가네.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돌덩이 하나 살짝 내리려고 하니.

눈에 거슬린다고 다시 주워 담으라하네.

 

서로 같이 잘 살자고 하나 둘 담아둔 돌덩어리.

세월이 지나고 보니 주위에 걸림이 되고 스스로에게도 짐이 되네.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다듬어 돌탑이라도 되려나..

 

라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나의 삶의 무게에 도와주려 하는 행위가 오히려 돌덩이를 얹어 주게 되는 행위가 되는 아이러니가 되는 것을 말해 주는 글입니다. 우리는 서로돕기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돕는 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상대가 진짜로 필요한 것을 헤아리는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교육 방송 TV에서 어느 학자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가게 되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답니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31,734달러가 되었고 2021년에는 35,468달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학자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어가면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답니다. 그것은 사람들 각자가 개인주의가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이고 우리나라도 예기치 않는 이런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답니다. 다른 사람 생각은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현상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굶어 죽는 사람은 줄고 풍족하게 사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각자가 짊어지는 삶의 무게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월차제 제문에서 읽으신 것과 같이 어버이신님께서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도와가자는 말씀도 깊이 있게 되새겨서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고 그 결과로 저희도 변화의 가운데 있는 듯합니다. 활동에 제약이 많아져서 저를 비롯한 많은 용재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태도와 각오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런 때일수록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기본으로부터 다시 되새겨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부족함이 많은 중에라도 마음의 중심을 세워 조금이라도 성인 되어 갈 수 있게 노력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어느 교회를 참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젊은 교회장이 신악가에 맞추어서 혼자 12장 근행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저도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노력과 정성이 있는 한 천리교의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히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따라 정성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코로나19의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고 진전되어 우리를 괴롭히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각자의 신앙이 조금 더 기본에 충실하고 서로 돕는 마음을 갖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석에서 최상급 회장님의 감화 말씀에서와 같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이 모여서 교조님,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온 세계에 알리게 된다는 말씀을 되새겨봐야겠습니다. 이런 게 저나 여러분들의 사명이고 숙명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깊이 되새겨서 교조님의 말씀, 천리교의 교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서 전 세계적으로 어렵게 되는 이런 코로나19와 같은 어려움을 이겨나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되돌아보시고, 또한 다른 사람을 가볍게 해줄 수 있는 행동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의 무게를 안고 있는 사람들도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되새겨 근행과 수훈, 히노끼싱을 통해 덜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들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