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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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차제 신전강화

 

마음작정의 씨앗, 수호의 열매

 

 

전인수(진홍교회장)

 

반갑습니다.

예전에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왔던 대사 중에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문구가 요즘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오늘은 날씨가 좀 흐립니다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주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 며칠 새 무척 더워졌지만 바로 그 전까지만 해도 놀러 다니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좋은 날씨를 수호해주셔서 감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흐립니다만, 이런 날도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주신 날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날이 다 좋은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신전강화를 명 받았기에 준비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2019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316일에 일일 신규확진자가 621,328명을 최대치로 찍고 지금은 점차 감소해서 현재는 6천 명대까지 줄어든 상태입니다. 누적확진자가 1,800만 명이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을 독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회식하는 데 코로나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은 우리 때문에 코로나 걸릴 수 있으니 같이 못가니, 코로나 걸린 사람들만 회식을 하는 식으로 왕따를 당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빈약하면 사람들 놀러 다닐 때 놀러도 안 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곳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콕 틀어박혀 코로나도 안 걸리느냐고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백신 맞으러 병원에 갔다가 옆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잠깐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코로나에 3번 걸렸다고 합니다. 코로나 변이 나올 때마다 걸렸다는 겁니다. 그분은 인간관계가 정말 좋았나 봅니다.

저는 4월 말에 코로나에 감염되었습니다. 신님 수호로 밖에 나갈 일도 없이 집에서 1주일 동안 편히 잘 쉬었고, 후유증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독한 사람은 면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안 걸리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를 보면 여름에는 조금 줄어들었다가 가을부터 겨울에 다시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올가을에 다시 유행할 것에 대비해서 어버이신님의 수호로써 이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수 있도록 우리 먼저 어버이신님께 기원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게 맞는 실천을 찾아서

 

이야기를 바꿔서, 제가 지난달부터 저녁에 12장 근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제 나름대로 어버이신님께 최선을 다한다고 정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신자님들이 몇 분 안 계셔서 월차제는 12장까지 계속 올려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전과 비교해서 제전을 올리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서 지난달부터 12장 근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녁근행을 마치고 신악가 CD에 맞춰서 12장 근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 고성교회 신전강화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작정을 100일 작정 이런 식으로 길게 잡지 않고, 3일씩 끊어서 하고 있습니다. 3일 작정해서 12장 근행을 올리고 계속 이어서 할 마음이 있으면 이어서 3일 연장해서 하는 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100일 기원근행을 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몸 상태나 다른 일이 생기거나 하면 이어서 올리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 이렇게 억지로 하다 보면 몸은 12장 근행을 올리고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서 근행을 올리는데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날짜만 채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100일 작정을 했으니 100일을 채워야지 하는 마음만 있고 정작 정성은 들어가지 않고 몸만 그렇게 근행을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100일 기원근행을 이어서 하다 보면 정성이 그만큼 많이 들어가다 보니 많은 수호를 받을 수 있지만, 저에게는 부담감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 그렇게 날짜만 채우는 정성을 어버이신님께서 과연 받아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방법으로 찾은 것이 이런 식의 3일 기원근행입니다.

근행을 올리기로 한 3일간은 정성을 다해서 올리고 대신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생기거나 정신이 산만해지거나 하면 그 3일 근행으로 끝내고 또 다음에 정성을 올려야겠구나 하고 생각이 나면 다시 3일 작정을 해서 올리는 식으로 합니다. 3일 해보고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이 서면 계속 이어서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3일 만에 끝내고 어떨 때는 보름 정도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기원이 필요한 기간 동안 정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우리들의 정성을 보고 수호를 내려주시기 때문에 내가 어떤 실천을 하던 거기에 정성만 다한다고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수호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께서, 이 길을 신앙하면서 한 번쯤은 무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무리를 해서 작정하고 실천을 했는데 요즘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하셨습니다.

예전에 이 길을 신앙하시던 분들을 보면 약수 실천을 하시던 어머님들이 많으셨습니다. 매일 아침에 산속 약수터에 가서 약수물을 받아서 신님께 올려주십사 하고 아침근행에 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지금도 그런 약수 실천을 하라고 한다면 힘들어하실 것입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 이야기하시듯 옛날에는 젊어서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산에 올라가는 게 부담스러워서 약수 실천을 하기 힘드실 겁니다.

저희 산하에 문성소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 길의 신앙은 젊어서 해야 된다. 젊어서는 이것저것 실천을 할 수가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실천을 하려고 해도 힘들어서 못 하겠다.”라고 하시면서 하여튼 이 길의 신앙은 젊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젊어서는 젊은 나이에 맞게 실천을 하면 되고 나이가 들어서는 나이가 든 만큼 그에 맞춰서 실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실천 방법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저희 교회에 다니시던 할머니 한 분은 매일 고물을 모아서 파시고 그것을 쌀로 바꿔서 매일 한 줌씩 모아 놓으셨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실천을 교회에 나오시는 십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셨거든요. 자녀가 서울에 살아서 신앙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정성 덕분에 그 자녀가 변호사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예전에는 쌀 한 움큼을 모아서 오시는 등의 실천도 많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찾아서 어버이신님께 정성을 다하는 것이 이 길의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남이 어떤 실천을 해서 수호를 받았다고 하면 그 실천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천이 나에게 맞지 않아서 결국 다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때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상황과 형편을 살펴보고 마음을 작정하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내 상황과 형편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하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포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이 무리한 신앙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몇 년 전에 혜성교회장님께서 전도청 신전강화에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신자 한 분이 매일 전날 음덕한 것의 배를 음덕 하겠다는 작정을 했답니다. 그래서 첫날에는 1천 원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틀째에는 2천 원, 사흘째에는 4천 원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게 불과 열흘째에 50만 원이 넘고 보름이 지나니까 1천만 원이 넘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첫날에 1천 원으로 시작하니 배로 해봐야 얼마나 되겠나 하겠지만 계산을 한번 해보면 정말로 보름이 지나면 1천만 원이 넘어갑니다. 그래서 금액이 부담되어 결국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더랍니다. 자신의 형편을 살피지 않고 쉽게 마음작정을 해서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무리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정성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 정성만 다하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이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의 신앙에서 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어버이신님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어버이신님이 좋아하실까. 어버이신님의 입장이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바로 신한줄기의 마음이고 이 길의 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어버이신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작은 반찬거리를 하나 사더라도 먼저 신님께 올린 후에 그것을 내려서 음식을 해서 드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어버이신님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그만큼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예전만큼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안 난다고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결국 지금의 우리는 예전 선배 선생님들만큼의 정성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수호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모든 면에서 어버이신님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요즘엔 TV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하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 거기에 정신이 팔리기가 쉽습니다. ‘오늘 TV에서 몇 시에 무슨 드라마 하는데 그것을 꼭 봐야지.’ 라든가 유튜브 동영상 좋은 것 있는데 누구에게 보내줘야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재밋거리들이 많이 없다 보니 어버이신님께 정성을 더욱 쓸 수가 있었는데 요즘엔 어버이신님께 정성을 쏟는 데 방해되는 것이 그만큼 많이 생기다 보니 환경 자체가 예전보다 어버이신님께 정성을 기울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수호가 적게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정신을 빼앗길 것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정성을 올리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정성을 내려고 노력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어버이신님께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약수 실천을 하시던 어머님들이 지금은 할머니들이 되셔서 약수 실천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약수 실천이 힘들다면 다른 것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매일 교회에 일참하기 라든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매일 주변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호만 바라고 있어서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수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먼저 내가 정성을 내어야만 어버이신님께서는 수호를 내려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에 앞서 마음작정

 

진해에 동광교회가 있습니다. 현재 젊은 교회장님이신데, 이 교회장님이 경남교구 신전강화에서 하신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분 상급이 교리로 아주 유명하신 분입니다. 그분에게 이 길에 있어서 실천이 중요합니까. 마음작정이 중요합니까?” 하고 물어봤답니다. 그 상급회장님께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시길 마음작정이 중요하지.”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실천이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에 따라 어버이신님이 내가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시지만 방해하시기도 합니다. 그 실천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실천이라고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작정은 어버이신님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하면 거기에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주신다는 겁니다. 이런 게 실천보다 마음작정이 중요하지. 라고 하신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고, 내가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실천을 마음작정해서 실천하면 결국 어버이신님께서 내 마음을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수호를 내려주시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길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성이라는 씨앗을 뿌릴 때 어버이신님께서는 수호라는 열매를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씨앗도 뿌리지 않으면서 열매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마음작정을 해야만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내려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수호를 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마음작정을 하고 열심히 신앙을 하다 보면 결국 어버이신님께서는 수호라는 열매를 내려주시게 됩니다.

마음작정이라는 씨앗은 내 형편에 맞춰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하면 나머지는 어버이신님께서 내 마음을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수호를 내려주시게 되는 겁니다. 내가 어버이신님께 정성을 많이 쏟는다고 하면 어버이신님께서는 거기에 맞춰서 많은 수호를 내려주시게 될 것이고, 내가 어버이신님께 쏟는 정성이 작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서 작은 수호를 내려주시게 되는 겁니다. 나는 조금밖에 정성을 하지 않았는데 어버이신님께서 많은 수호를 내려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버이신님께서 내려주시는 수호에 만족할 줄 아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조석근행을 마치고 나면 조석송훈이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삼개훈, 팔계명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우리들에게 여덟 가지 티끌을 버리라고 가르쳐주셨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쌓게 되는 것이 이 티끌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교조님께서도 부엌에만 나가도 티끌이 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티끌이라는 것은 쌓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티끌의 마음을 털어내야지. 생각은 하면서 다른 데 마음이 가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저녁 근행 때 조석송훈에 포함된 팔계명을 매일 읽으면서 다시금 여덟 가지 티끌을 상기하면서 아침에는 오늘 하루 티끌의 마음을 쌓지 않도록 해야지, 또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떤 티끌의 마음을 쌓았을까 하고 반성하면서 털어내자고 하자는 의미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석송훈을 읽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것 역시도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팔계명을 매일 읽으면서 오늘 하루 여덟 가지 티끌을 쌓지 말아야지 하고 되새기고 또,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떤 티끌을 쌓았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석송훈을 읽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12장 근행을 올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저녁근행 때 가족들에게 이런 의미로 여덟 가지 티끌을 읽고자 한다고 알리고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이라도 생각이 나면 그것을 마음작정해서 매일 실천해나가다 보면 결국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그냥 잊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 마음작정을 해서 매일 실천을 해봐야지 해서 노력하는 것이 결국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는 힘들고 어려운 실천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조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길을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쉽고,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교조님께서는 이 길의 큰 마디 앞에 30, 38, 75일간의 단식들을 하셨지만, 한 번도 우리에게 너희들도 단식해 보라고 이야기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 신악근행도 당시 특권층들만 할 수 있었던 신악을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배우거나 안 배우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내 몸의 상태에 맞춰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하고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어버이신님께서 한번 이런 실천을 하면 어떨까. 하고 알려주시게 됩니다. 그때 그것을 마음작정을 해서 실천을 해나가는 것. 이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교회 활동이 제한되면서 여러모로 정성의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성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성의 마음을 세워서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어버이신님께 마음작정을 하고 정성의 마음을 세워나가야만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정성의 마음으로써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실 것을 당부드리면서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