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둘하나 113

 

세상을 바꾸는, 말 한 마디 7

 

이시중

 

4. 이 길과 세상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 (3)

 

세 번째는 신인화락(神人和樂)이다. 신과 인간이 함께 용솟음치는 즐거운 삶이다. 신만의 즐거운 삶이 아니고, 인간들만의 즐거운 삶도 아니다. 신의 즐거움과 인간의 즐거움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의 즐거움이란 인간들이 서로 도와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함께 즐기는 즐거움이다.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운 삶, 이것이 이 세상이 태어나고 유지되고 성장해 나가는 대전제다. 이 대전제를 가슴에 늘 새기고 있으면 늘 용솟음칠 수가 있다.

내 속에 용솟음이 있을 때, 곁의 사람을 용솟음치게 할 수 있고, 곁의 사람을 용솟음치게 해야 어버이신님도 용솟음쳐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곁의 사람을 통해 우리는 늘 신을 보게 된다. 이 길의 신앙은 내 속에 내재한 신적 존재와 온 세상을 주재하는 신적 존재와 합일을 이루는 일이다.

 

이 세상은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일방적으로 신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아니요, 인간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신의 로봇이나 꼭두각시도 아니다. 인간한테는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 이 자유의지로 할 수 있고, 안 할 수 있다.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 인색 탐 미움 편애 원망 분노 욕심 교만의 온갖 티끌 된 마음을 쓸 수 있고, 안 쓸 수도 있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주체적으로 하라는 배려고 사랑이다. 이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어버이신님마저도 인간의 무한 자유의지를 훼손하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단지 어버이신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은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신의 자유의지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행한 모든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각자 자기 행동을 이해하고 책임을 지라고 할 뿐이다.

신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55부로 만들어가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여기에 대물차물의 이치가 있고, 으뜸인 인연과 개별 인연이 있다.

대물차물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자유의지가 하나 되어 각자 몸이나 주변 환경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으뜸인 인연은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한 섭리이고, 개별 인연은 각자 인간이 살아온 마음의 길이다. 결국 인연의 자각이란 각자 몸이나 주변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통해 대물차물과 으뜸인 인연과 개별 인연을 이해함으로써 온전하게 납득되는 것이다.

 

신인화락은 신과 인간이 함께 열고 함께 누리는 용솟음치는 즐거운 삶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이고, 가슴 설레는 강력한 비전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차별이 없다, 벽이 없다,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누릴 수 있다. 너와 나 사이에 차별이 있고, 벽이 있고, 높고 낮음이 있다면 함께 누리는 즐거운 삶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나 혼자 즐거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1 같은 작은 마음을 써도 가능할 수가 있다. 그러나 너와 나 둘이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려면 1 같은 작은 마음으로는 턱도 없다. 2 같은 큰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2가 된다는 것은 둘 사이에 차별이 없고 벽이 없고 높고 낮음이 없을 때 가능하다. 이렇게 더 넓혀 나가면 다섯 식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5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고, 100명을 담고 있는 조직이 있다면 100 같은 마음을 내어야 다 함께 차차차하는 즐거운 삶을 누릴 수가 있다. , , 억과 관계를 할 때는 당연히 천, , 억 같은 마음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공존과 공동 번영을 위해서는 전 지구적 마음 크기를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 , , , , 억의 마음으로 차츰차츰 키워나가는 것이 마음성인의 길이다. 그러므로 마음성인의 길은 끝이 없다. 마음성인을 향해 나날이 정성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일, , 백으로 점점 키워나가는 마음성인의 길이 쉽지 않다. 인색, , 미움, 편애, 원망, 분노, 욕심, 교만한 마음이 각자 내면에서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것을 끝없이 자극하는 외부의 유혹들이 너무도 많다. 특히 내편 니편을 가르는 편가름과 그 편가름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공작은 간교하고 집요해서 거기에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편가름의 논리에 빠져버리면 둘 사이를 가르고, 열 사이를 가르고, , , , 억 사이를 쉽게 가르고 만다.

 

세상을 보라! 절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둘 셋 다섯으로 갈라 세우는 줄이 얼마나 많은가?

지방의 이름으로 갈라 세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종교의 이름을 갈라 세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민족의 이름으로 갈라 세운 한국, 중국, 일본.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가르는 인종차별.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보호주의와 자유주의,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로 갈라 세우는 이데올로기의 만연.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갈라 세우고, 세상에서는 각종 권력을 쟁취하려는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기득권과 사회적 약자 사이에는 끝없이 벌어지는 양극화가 심화된다. 풍요에 대한 욕망과 뒤처짐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행되는 무한 경쟁, 자연 파괴, 모습만 달리하면서도 계속되는 식민지 쟁탈과 약탈,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전쟁들.

 

자기 스스로 치고 있는 벽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둘러치고 있는 울타리는 또 얼마나 많고, 얼마나 높은가? 그들만의 리그, 우리만의 리그라는 편협한 무리들의 장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렇듯 차별의 벽과 높고 낮음은 너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온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끊임없이 낳고, 키우고, 확산시키는 가치체계, 신념체계, 조직, 체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왜 세상은 아주 작은 너와 나 사이에서부터, 더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까지 갈라치기 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일까? 갈라치기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욕망이 있고, 그것이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득을 얻는 자가 있고, 빼앗기는 자가 있으니. 빼앗기는 자, 가만히 있으려 할까? 아니다. 어떤 형태로서든 모반을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으로 옮긴다. , 이것이 무한 반복되는 역사! 이러한 굴레는 언제쯤에나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답이 신과 인간이 함께 용솟음치는 신인화락의 즐거운 삶이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궁극적 이해가 담겨 있고, 삶에 대한 흔들림 없는 정확한 방향이 있다. 이보다 더한 강력한 비전은 없다. 신과 인간이 함께 한다면 더는 욕망이 필요치 않고, 더는 두려움에 떨 필요도 없다.

 

신과 인간이 함께 한다는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 차별이 없고, 벽이 없고,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의 마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신의 자녀라는 말속에 다 담겨 있다. 신의 자녀인 우리 인간들이 하나 같이 서로 도와 즐겁게 살아가는 그 이상 그 이하의 바람은 어버이신님께 있을 수가 없다. 어버이신님의 자녀가 전 세계 80억이라면 어버이신님 마음의 크기가 80억 이상이라는 말이 된다. 그에 상응하는 우리들 마음의 그릇도 그만큼 키워나가지 않으면 다 함께 누리는 즐거운 삶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네 마음을 작게 만들고, 쪼잔하게 만드는 온갖 굴레들, 병든 가치들, 잘못된 고정관념들, 여러 가지 모순을 하나하나 차츰차츰 거부하고 깨어 부수는 기나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뒤처진 사람을 기다려 주고, 적게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병든 사람을 돌봐 주고,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주고, 소외된 사람 손 잡아 주고, 갈 길을 잃은 자에게는 갈 길을 바르게 안내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함께 1의 마음을 2로 키우고, 2의 마음을 10으로 키우고, , , , 억의 마음으로 키워나간다. 하지만 이것은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방향 외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없다.

 

한 번 안 되면 두 번 하고, 두 번 안 되면 열 번 하고, 열 번 안 되면 백 번, 천 번 만 번 하면 된다. 오늘 해서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이달에 해서 안 되면 다음 달에 하면 되고, 올해 해서 안 되면 내년에 하면 되고, 이생에 해서 안 되면 내생에 하면 된다.

어버이신님께서도 신인화락하는 즐거운 삶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이래, 오늘날 인간으로 될 때까지 수천 번의 과정과 10억 년의 정성을 기울여왔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느긋하시다. 이 세상은 길게 길게 이어져 왔다. 우린들 하루아침에 혹은 10, 20년 만에 인간다운 인간, 궁극적인 마음성인을 이룰 수 있겠는가? 우리 역시 수많은 과정과 수 없는 세월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을 서둘 필요는 없다. 수십억 년을 관통하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가더라도,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더라도 신과 인간이 함께 용솟음치는 신인화락의 즐거운 삶은 언제나 변함없는 삶의 목표다. 전 인류가 지향해야 할 북극성 같은 존재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관통하는 정확한 좌표고, 강력한 비전이다. 이런 목표, 이런 비전을 바르게 인지하고 있으면 잘못될 일이 없다. 잘못 갈 일이 없다. 잘못 이해할 일이 없다. 세상의 온갖 헛소리에 놀아나지도 않게 된다.

 

이 길의 신앙은 마음성인을 지향하는 길이다. 마음성인이란 단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 마음을 어버이신님의 마음에 맞추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버이신님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티끌을 말끔히 털어낸다. 여기에 온 세상 사람들을 즐거운 삶에 이르게 하는 길이 열리고, 월일도 확실하게 용솟음쳐 주신다. 그러므로 이 길은 월일도 인간도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길이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져서

즐거움이 넘치게 살아가게 되면 7-109

月日도 확실히 마음 용솟음치면

인간들도 모두 다 같은 것 7-110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용솟음치면

月日도 인간도 다 같은 거야 7-111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