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84년07월][3회]

2021.06.25 17:13

편집실 조회 수:74

5 2대 진주님의 가르침

 

예전에 저는 아프리카 콩고로 포교를 나가서 처음에는 정신없이 수훈의 리를 전했습니다. 이 길의 선배들이 남긴 이야기 중에 원하는 대로 모두 수호받았다.”라는 이야기는 과대포장 된 옛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것을 실감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성격이나 풍습도 다른 그곳 사람에게 수훈의 리를 전함에 있어 병자의 이름도 나이도 묻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일심으로 신님의 수호를 바라며 무작정 전할 뿐이었다. 초대 선배 포교사들이 맛보았던 것을 정말 조금 체험한 것입니다.

수도 브라자빌에는 국립병원이 있었으나, 의사라고 할 수 있는 10여 명의 사람은 모두 외국인이었습니다. 입원환자들은 복도와 통로를 막론하고 비좁게 침상을 놓고 누워있었습니다.

한편 지방에는 진료소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방 6미터 정도의 작은 방의 가운데에 책상과 걸상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으며, 일주일에 한두 번 간호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가운을 입고서는 책상 위에 알약이 들어있는 4개의 깡통을 늘어놓았습니다. 간호사가 왔다는 소문에 아침 일찍부터 7, 80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는 순서가 오면, “어디가 아픕니까?”라고 질문을 해서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 알약을 두세 개 건네고서는 다음 환자”. “어디가 아픕니까?” 다리를 보이며 여기를 베여서 아픕니다.”라고 하자, 머큐로크롬액을 바르고는 , 다음이라는 식이었다. 내가 빌린 집 앞에는 십여 명의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아침근행 후부터 정오까지 수훈을 전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6611월에 2대 진주님께서 순교를 오셨습니다. 현지 사람들의 실상을 보고드리면서 이런 일 저런 일 등 여러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듣고 계시던 진주님께서 잠시 뜸을 두고는 너는 콩고에 뭐하러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가만히 있자, “너는 교조님의 도구로서 구제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아프리카까지 왔으니 별스러운 것도 있겠지! 그러나 현지인들이 어쨌건 간에 그들을 위해서 힘껏 노력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을 네가 어떻게 기뻐할지가 문제다. 너의 과제다.” 이어서 콩고 또한 다 같은 어버이신님의 품속이 아닌가. 왜 좀 더 교조님께 의지하지 않는가. 너는 존명의 교조님을 어떻게 모시고 있느냐!”라고 일러주셨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단노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드리자, “단노, 단노라며 쉽게 말하지 마라. 단노가 됐다는 것은 교조모본을 90퍼센트 걸어온 것과 같은 거야. 그만큼 단노는 어려운 거야. 이런 곳에서 포교하기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기를 바란다. 끝까지 다하면 반드시 기뻐할 날이 있을 거야. 조금의 불안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다하는 그 길을 어버이신님께서는 단노로써 받아주실 거야.”

저는 이 깨우침을 듣고는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 어쨌든 하면 된다.’는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6 마디를 만났을 때의 깨달음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바라며 신앙하고 있습니다. 신상이나 사정처럼 골치 아픈 일이 없도록 서로 사이좋게 건강한 나날을 보내며, 인생을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기원을 품고 신앙할 것입니다. 신님의 수호를 바란다면 역시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나날이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이 길을 신앙하는 분들은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신앙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성실하게 꾸준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이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길을 신앙하는 대다수 사람은 교리 공부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신상이나 사정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라도 하면 나는 나쁜 짓을 한 기억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또는 남에게 폐를 끼친 적도 없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내가 왜 이런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마음에 침울해져서 부족을 품기에 십상입니다.

우리 이 길의 사람은 신상이나 사정 등 여러 가지 마디를 만났을 때, 신앙적인 리의 깨우침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참으로 죄송한 말이지만, 이 길의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에, 왜 그런 마디가 나타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는 운명이다. 숙명이다. 나쁜 별자리를 타고 나서 그렇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지혜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피할 수 없어서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포기하자니 포기할 수 없어서 힘들고 괴로운 나머지 더욱 티끌에 티끌을 쌓아가기 쉽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나타나는 것이 리, 인연이 나타난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7 깨닫지 못한 올바른 교리

 

그런데 인연을, 오랜 세월 이 길을 신앙한 사람도 걸핏하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운명과 같은 것인 양 뉘앙스(감각 또는 의미)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상이나 사정이 생겨서 좀처럼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 “나는 인연이 안 좋다든가 우리는 덕이 없다.”는 식으로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이번에는 단노라는 말을 끌어들입니다.

단노란, 충분히 만족한다. 또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노라는 가르침을 참고 견딘다.”는 말로 바꿔버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고 견뎌낸다는 뜻으로 단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사용합니다.

말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 버립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인연을 끊는다는 뜻에서 인연을 끊지 않겠습니까! 자아 이바지를 하세요.”라는 말이 와전되어서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세상 사람에게 나쁜 이미지를 쌓아갑니다. 그런 악평으로 인해서 신앙을 떠나가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는 하지 못합니다.

천리교의 근본 교리는 교조님 재세시부터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서 교리를 바깥으로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교리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부터입니다.

그때까지는 초대 선생들이 교조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그것을 들은 사람이 또 다음 세대에 전해가는 식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구제하는 사람의 구제 이야기와 깨달음 이야기 등이 섞여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빠트려버리거나 조금 다른 해석을 해서 그대로 전해지고, 틀리게 이해하는 예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인연의 교리에 관한 것과 이바지에 대해서 세상의 잘못된 오해는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신앙을 하면서도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인연이 나빠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도대체 인연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옛날부터 인연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연을 알지 못하면 참회를 할 수 없을뿐더러 반성도 할 수 없습니다. 히노끼싱의 의미도 이바지의 의미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신앙하고 계시는 많은 분에게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이유도 모르는 채 신앙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신앙하는 분들은 가르쳐주신 대로 열심히 신앙하고 있습니다. 상급이나 교회장으로부터 이바지에 관한 이야기가 있으면, 이바지를 합니다. 히노끼싱에 나오라고 하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히노끼싱에 나갑니다. 그 결과, 하면 한 만큼 그런대로 신님께서 활동해 주시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각기 신님의 수호를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신님의 고마움도 충분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족한 교리 공부로 인해서, 좀처럼 거기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제 전도·구제야!”라고 말하면서도 남 앞에 이 길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적당히 아무렇게나 말하고 또한 자신감도 없어서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욱이 신상이나 사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크건 작건 간에 모두 제각각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이유도 모르는 채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 사회만에 국한된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조차도 정성을 다해 신앙하고 있건만, 잇달아서 불행이 찾아온다.’고 생각해 버리면 엉터리로 하고 있어도, 이것 이상 더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대체 신님은 어디를 보고 계시는 거야!’ ‘세상만사를 꿰뚫어 보신다면서 신이란 정말로 계시는 걸까?’라는 마음도 가질 것입니다.

그럴 때 나쁜 인연이라든가, 이것도 인연, 저것도 인연이다. 인연을 납소하십시오.”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제 이건 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 길의 신앙을 하는 이상 나타나는 리를 생각해 보라.”고 하신 것처럼, 매일 내 몸, 내 집안에 나타나는 모습과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서 리의 깨우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상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12 [185년05월][12회] 2022.04.26
11 [185년04월][11회] 2022.03.28
10 [185년02월][10회] 2022.01.28
9 [185년01월][9회] 2021.12.27
8 [184년12월][8회] 2021.11.29
7 [184년11월][7회] 2021.11.07
6 [184년10월][6회] 2021.09.29
5 [184년09월][5회] 2021.08.24
4 [184년08월][4회] 2021.07.29
» [184년07월][3회] 2021.06.25
2 [184년06월][2회] 2021.05.28
1 [184년05월][인연의 이치 1] 202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