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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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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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차제 신전강화

 

어버이신님께 이어지는 마음

 

전인수(진홍교회장)

 

(4) 반갑습니다.

빗님이 촉촉하게 내리는 가운데 정성스럽게 근행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전강화 지명을 받았기에 준비한 이야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계속되다 보니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되기도 했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마스크를 쓰고 상단에 올라가 제전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근행에 참가하는 것이 당연하게 됐습니다.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겠죠.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버스 기사를, 식당 주인을 폭행했다는 뉴스가 들렸는데, 1년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제는 마스크 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대표적인 것이 해외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불과 작년 1월만 해도 해외여행 가는 것이 이렇게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는데, 이제는 해외여행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이 그동안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었던 터전귀참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터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빨리 이 사태가 끝나서 터전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체인 커피숍 커피 기프티콘을 줬는데, 사용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집사람과 같이 커피숍에 갔습니다. 저희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사람들이 많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갔는데,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커피숍에 갈 때는 가도 되나 해서 사람들 눈치가 많이 보였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코로나가 끝나갈 때가 다 돼가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야기를 바꿔보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이 현재 삼성에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 LG에 다니다 삼성으로 옮겼습니다. 이 친구는 신기하게도 요즘도 해외 출장을 바쁘게 다니는데, 더 신기한 것은 위험할 때 위험한 지역으로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입니다. 거기에 또 덧붙여 신기한 것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해외 출장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스가 한참 유행하던 2003년 설에는 중국에 출장을 가 있었고, 메르스가 한참 유행하던 2015년 추석 때는 두바이에 출장을 가 있었습니다. 또 작년 추석에는 중국에, 올 설에는 중동에 출장을 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LG에 취직되어 서울로 올라가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가가 좀 잘살아서 우리나라에서 집값이 제일 비싸다는 강남에 집을 구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친구의 아내가 아이들 학원을 이유로 명절에 시댁에 안 내려오기로 선언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아내의 결정을 잘 이해를 못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선 명절에 고향집에 내려올 때, 친구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같이 교대로 운전을 합니다. 집에 오면 친구의 아내는 운전하느라 피곤한데 명절 준비도 하고 시어머니랑 온종일 음식 준비하는데, 이 친구는 자다가 밤에는 고향 친구들 만나러 나갑니다.

요즘은 친구들 따라 부모들이 서울로 올라가 만나기 힘든데, 예전에는 친구들이 고향집에 내려오면 우리 집에서 모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아내와 애들 모두 데려와서 아이들 크는 모습도 보고, 아이들 이야기, 세상 이야기도 하고 했는데, 이 친구는 집에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아내를 못 데려 나온다고 혼자만 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아내를 결혼식 때 한 번 보고 그 뒤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우리 집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처가가 강남의 자기 집에서 5분 거리인데, 명절에도 아내와 아이들만 처가에 보내고, 이 친구는 잘 안 갑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아내 측에서는 니도 우리 부모님 집 잘 오지 않는데, 왜 나는 너그 부모님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생겼을 겁니다. 서울 강남 쪽은 요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원과 상담하여 대학과 과를 어디로 갈지 정해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그 무렵부터 학원에 더 열심히 다녀야 한답니다. 그 핑계로 안 내려오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명절에 혼자 내려오기 뻘쭘하니 해외 출장을 핑계로 고향집에는 잘 안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한 친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친구는 결혼하고 설에는 고향집에, 추석에는 충청도에 있는 처가로 갔습니다. 추석에는 추석 전에 벌초를 하면서 미리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기 때문에 고향집에 내려오지 않고 처가로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또 설에 고향집에 내려오면 꼭 우리 집에 아내와 애들이 같이 와서 놀다 가곤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애들도 커서 스마트폰이 더 좋다고 애들은 안 오더라도 아내와 함께 와서 이야기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이 친구의 어머니가 출직하셨는데, 그때부터는 어머니 제사가 있다 보니 추석에도 내려오게 되었는데, 대신 명절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점심 때쯤에는 처가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간에 사이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시작에 길게 친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친구들의 모습에서 천리를 찾을 수 있고, 이것이 이 길의 가르침과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한 친구는 처가의 도움으로 집까지 장만해서 잘살고 있지만, 처가가 너무 부자이다 보니, 부담스러워 잘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부모님께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가가 자기 집 보다 잘살아서 기가 죽어서 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처가에 가기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친구 어머님이 한 성깔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고향집에 와서도 어머니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인데도 어머니께 같이 갔다 오겠다고 못 하고 혼자만 빠져나온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마음고생도 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내의 처지에서 보면 집 사는데 우리 집에서 거의 다 보태주었는데, 왜 우리 집은 안 오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집은 꼬박꼬박 가자고 하네. 우리 집에 잘 안 오는데, 왜 불편한 너희 집에는 꼭 가야 해. 나도 안 갈련다.’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죠.

또 다른 친구는 자기 집에 잘하는 만큼, 처가에도 잘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내가 상대에게 잘해주면 상대도 나에게 잘해준다. 이것이 천리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은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가 아내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잘하지 않으면서 아내나 아이들이 나에게 잘해주길 바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겠죠. 내가 잘해줘야 아이들이나 아내도 나에게 잘해주는 겁니다. 내가 할 것을 해주지 않고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결국 여덟가지 티끌 중에 욕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하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저는 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간단한 이치가 바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리교교조전 제3장 행적에 보면 이 길의 최초의 구제라 할 수 있는 순산허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조님의 셋째 딸 오하루 님이 초산으로 집터로 돌아왔을 때 교조님께서는 무엇이든 안에서부터 시험해 보일 거야라고 하시며 배에다 숨을 세 번 불고, 또 세 번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순산허락의 최초의 모습입니다. 배에다 세 번 숨을 불고, 세 번 쓰다듬어 주는 행동, 이것은 별 특별한 것이 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초라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교조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

방금 우리도 근행을 올렸습니다. 터전에서 감로대를 둘러싸고 올리는 근행을 신악근행이라고 합니다. 이 신악근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악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전례에 계승되는 것을 이어받아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교조님께서는 신악근행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요즘은 생략하거나 한글로 바꾸어 제문을 읽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한자로 된 것을 읽었습니다. 축문이라고 하는데, “유세차...” 하는 식으로 시작했었죠. 저도 어릴 적에 몇 번 들었습니다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당시의 신악도 한자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은 들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 전승을 받았기 때문에 동작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교조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반인이 쓰는 히라가나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길의 가르침을 가나의 가르침이라고도 합니다. 가나처럼 누구나 알기 쉬운 가르침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이처럼 교조님의 가르침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운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순산허락을 받고 수월하게 아기를 낳은 오하루 님의 모습을 보고 순산허락을 청한 유키에게 해주신 인간생각은 일체 필요 없다. 어버이신님께 의지하도록.”이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을 믿는 마음만 된다면 어버이신님께서는 어떠한 수호도 반드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길의 가장 기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계신다고 믿고, 어떻게 하면 수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길의 신앙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방법은 거창할 필요도, 복잡할 필요도, 대단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앞서 제 친구들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들으시기에도 앞에 친구의 아내가 왜 시댁에 오기 싫어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뒤의 친구가 금실이 좋은 이유 역시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이런 당연한 이치가 통하는 것이 바로 천리이고, 이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파고들면 복잡한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인간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에서의 인간생각은 어버이신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않는 겁니다.

이처럼 어버이신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이 길의 신앙의 가장 기본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교조님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교조님께서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셨을 리는 없어 무언가 다른 뜻이 계실거야.’라고 하면서 어렵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실 저는 지금껏 신앙하면서 큰 실천을 한 것이 없습니다. 두세 번쯤 12장 근행을 100일 작정하여서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0일 작정이 저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어느 날은 엄청 피곤한데 12장 근행을 올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엄청 바빠서 힘들게 12장 근행을 올렸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피곤한 가운데 100일 동안 12장 근행을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형식적으로 근행을 올리는 것을 어버이신님께서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실천할 일이 있으면 가볍게 3일 작정으로 바꾸었습니다. 3일 동안 작정해서 이 기간에 12장 근행을 정성껏 올리고, 다음날 부담이 없으면 3일을 또 연장하고 하는 식으로 3일씩 연장해가는 식으로 근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3일 작정해서 근행을 올렸는데, 4일째 근행을 올릴 형편이 안 되면 5일째에 다시 작정해서 3일 올리고, 3일씩 연장하는 식으로 올리곤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겠냐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나름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자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아이들 공부상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동네 쓰레기 버리는 곳에 마침 공부상이 하나 버려져 있었습니다. 외관이 깨끗해서 주워 와서 보니 어디 하나 부러진 곳도 없이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걸레로 닦아서 10년을 넘게 잘 사용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신기하게도 머가 필요한데 하면 며칠 뒤에 갑자기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져 있거나, 아는 분이 주거나, 어디 응모했는데 당첨이 되거나 해서 생기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저희 진홍교회가 농촌지역에 있다 보니 신앙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받은 일부를 음덕하시다보니 정성금을 얼마 못 올리십니다. 20여 년 전, 이 신전 역사를 할 때 우리 교회도 다른 교회들처럼 천만 원씩 정성금을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자님들의 형편상 그렇게 올리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공동소유의 논이 택지 조성한다고 팔렸다고 200만 원 가까운 금액이 보상금으로 들어오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어머니의 저금한 금액을 알게 되어 800만 원 가까운 금액을 찾게 되어 저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정성금으로 올릴 수도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큰 수호는 상급교회 신전 역사에 정성금 올린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꼭 필요한 만큼의 수호는 받아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떤 순간에도 어버이신님을 믿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작은 실천만 하다 보니 한 가지 단점은, 저 자신이 큰 실천을 하지 않다보니 크게 어버이신님께 바라는 마음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어버이신님께서 수호해주시는 대로 살려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만 하지, 어버이신님께서 이렇게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보니 어버이신님께 부족불만을 가질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실천, 큰 실천보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해나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버이신님께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큰 실천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마음 쓰러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해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쨌든 어버이신님을 믿고 마음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의 선배 선생님들 이야기 중에 반찬거리나 먹을 것을 사면 어버이신님께 먼저 올린 후에 그것을 내려서 반찬을 하거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생활의 중심이 어버이신님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 그렇게 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해봤는데, 그렇게 간단한 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 선배 선생님들이 어버이신님을 믿는 마음이 대단했구나.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런 수호가 났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주변에 너무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예전보다 어버이신님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 더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어버이신님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실천이라도 해나갈 수 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큰딸이 올해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지금 다니는 대학을 입학하게 된 것도 큰 어버이신님의 큰 수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관한 내용은 고성교회보에 집사람이 적은 글이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학을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아이의 통장에 키다리아저씨라는 이름으로 후원을 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또 지난달에 제 통장으로 신님의선물이라는 이름으로 큰 금액을 후원해주신 분도 계십니다. 아마도 딸의 대학 등록금에 보태쓰라고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군지 알면 직접 인사를 드릴 건데,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더불어 딸이 초등학생 때부터 매달 학원비에 보태 쓰라고 후원해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분들의 정성 덕택인지 딸이 학교에서 근로하면서 매달 20만 원 정도의 금액을 학교에서 받는데, 그중 5만 원을 신님께 올려달라며 매달 보내오고 있습니다. 딸의 입장으로는 20만 원 중에 5만 원이면 제법 큰 금액일 텐데, 돈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신님께 올리고 나머지 금액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딸의 이런 마음이 대견하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어버이신님과 정성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 준비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