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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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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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05월][인연의 이치 1]

2021.04.26 15:59

편집실 조회 수:99

인연의 이치(いんねんの理合)

                                ; 高井猶久다카이나오히사

번 역 ; 이호열(천리교성천교회장)

 

 

시작하면서

 

19764월 콩고 브라자빌교회에서 돌아와서 천리교교근무를 하면서 천리교교 제2전수과 주임이어서 19887월부터는 천리교교장을 임명받았습니다. 햇수로 17년간 천리교교장이라는 나 자신의 능력 이상의 자리였지만, 졸업을 얼마 남겨둔 학생들에게 주임강화 또는 교장강화와 아침에 교장훈시를 통해서 단편적이나마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의 원고나 요점 등을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이 인연 이야기는 다카이나오키치(高井猶吉)가 남겨놓은 인연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젊은 학생들이 알기 쉽게 저 나름대로 덧붙여서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를 들은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너그러운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군데군데 거친 표현이나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길을 신앙하는 많은 교신자 중에는 모처럼 신님으로부터 신상이나 사정으로 인도받았으면서도 개중에는 그 신의를 깨닫지 못하고 신앙을 그만두는 사람이나 걱정이나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에게 다소나마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의 출판을 결심했습니다.

이 길 한줄기로 열심히 걸어가는 교회장 및 밤낮으로 포교활동에 종사하시는 포교사분들에게는 별로 소용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아무쪼록 관대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1 용재의 성인

 

지금처럼 세계적 규모의 경제불황의 시대에 차례차례로 일어나는 이상 현상과 천재지변 그리고 인간이 일으키는 광기 어린 사건과 사고, 범죄.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 이런 세계를 밝게 바꿔 나가기 위해서는 없던 인간, 없던 세상을 창조하신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길은 없습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는 그런 신념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위대한 어버이신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용재로서, 다른 사람보다 빨리 이 길에 인도되어서 근본 이치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귀여운 내 자녀를 구제하고 싶다는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도울 수 있는 리의 입장인 우리 용재입니다.

 

만일의 경우에는 월일의 대리라고도 말했다. 1902. 7. 23

 

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구제를 할 때 월일의 대리로서 일할 수 있는 리의 입장을 부여받은 것이 용재입니다. 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중에 하나 천리교를 우연히 자신의 조부모 또는 부모님께서 신앙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지금 천리교를 신앙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만, 남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자신이 천리교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하신 어버이신님의 길에 조부모 또는 부모님 대()에서 남보다 빨리 인도되어서 근본 이치를 듣고, 어버이신님께서 일렬 자녀를 구제하고 싶다, 즐거운 삶의 세계를 실현하고 싶다는 의도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인재로서 우리는 인도되어진 것입니다.

하물며 천리교 교회에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사명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차남, 삼남은 이 길의 신앙은 계속하지만, 일반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딸들은 천리교 교회에 시집을 가면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이 길을 신앙하는 일반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증거로 교회로 시집가고 싶지 않다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까요.

서로 이 길에 인도되어진 으뜸하루를 생각한다면 모두 각자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사정이나 신상으로 어떻게도 안 되는 가운데서 이쪽의 효험있는 신불을 찾고, 저쪽의 신불을 찾거나 이쪽저쪽 유명한 의사나 약을 찾아서 헤매다가 마지막에 이 길에 인도된 사람이 많았습니다.

모두 질병이나 사정·신상의 평온을 염원한 결과로써 부족함 없는 생활을 다시 찾았고, 대를 이어서 신앙생활을 계속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지 단지 부족함 없는 것만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어느 절이든 교회든 충분할 것입니다.

고맙게 되었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지금의 고마움은 부모 대대로 고생을 쌓아서 귀여운 자녀에게 입히지 못하고 먹이지 못해도 상급에 터전에 나르기 · 다하기 · 이바지하기를 한 덕택으로서 고맙게 잘 곳을 얻고, 먹을 것도 사람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로움에 취해서 앞뒤 가리지 못하는 교회가 없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이상을 생각한다면 혜택으로 얻어진 물질이나 금전, 인재가 앞으로도 더욱더 살려져서 좀 더 많은 용재가 모여서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수호로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회장 한 사람에게만 맡기지 말고 교회장을 둘러싼 역원 또는 선배 용재는 젊은 용재를 함께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을 가는 가운데 우리의 성인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99년마다 세 번의 환생과 출직을 되풀이했습니다. 사물의 성립 기본은 백 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런 되풀이를 통해서 성인시켰다고 생각한다면, 100년제 때 유달제3호에서 백 년은 십 년을 열 번 되풀이 하여 지나 온 세월의 무거움을 말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생을 거듭하는 리를 되풀이함으로써 충분한 리가 나타나는 어버이신님의 수호 이외에는 지금 세상을 구제할 길은 없습니다.

전도구제야말로 우리들의 생명이며 지상의 사명이다.라고 깨우쳐주십니다. 그리고 백지로 되돌아가 하나로부터 시작하라.”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진주님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재로서 각각 신앙신념을 확립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 부여된 입장, 틀을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일 개 용재로서 책임을 갖고 임무를 다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은 용재로서 확실하게 포교하는 것입니다.

 

 

#2 바라는 마음 하나로

 

원래 이 길은 전도 · 구제가 토대가 되어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신상과 사정을 통해서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알게 되고, 교조님의 따스함도 느껴서 어버이신님의 크나큰 섭리를 받아서 그 은혜를 알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로서의 값어치는 그곳에 인도되어진 사람들의 신앙심이 불타고 있는지 없는지, 열의가 있는지에 있습니다.

세계구제의 교회, 명칭은 틀리지 않게끔 붙여둘 뿐. 교회는 같은 색. 같은 열매를 맺게끔 허락했다.”고 남겨준 노인(선배)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건물, 모습, 형태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설비를 아무리 좋게 해두어도 그곳에 인도된 사람들의 마음에 신앙심이 불타고 있지 않으면 교회의 값어치는 없습니다.

현재 이 길은 포교력이 저하되어서 활성화를 빈번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신기로운 어버이신님의 섭리를 받지 못한다거나 구제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세상의 상식이 바뀌었다든가, 사람의 마음이 변했다거나 사회가 어쨌다든가 하는 이유를 붙여서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을 여러 가지 듣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수호가 구제가 안 되고, 신기한 구제, 진기한 구제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없어졌다기보다는 실컷 받고 있는 수호 또는 어버이신님의 섭리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 말을 바꾸면 너무 많이 받아서 인간의 감각이 무뎌져서 마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길은 애초에 바라는 대로 반드시 신기함이 나타났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마음 그대로 수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라는 성진실한 마음 하나에 어떤 수호도 한다. 다한 목숨이라도 이어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일반사회에는 무거운 신상이나 사정으로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 그냥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포교하기 힘든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라도 건강한 사람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습니다. 병자의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나가도 대부분 집은 비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그렇다고 해서 구제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나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며 뭐가 뭐래도 어찌 되었든 구제해 나간다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이 길이 신기로운 도움이 토대가 되어서 되어진 길이라면, 신기로운 구제야말로 본교의 생명입니다. 그런데도 신기로운 도움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본교의 생명의 불꽃이 줄어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기 위해서는,

 

값으로써 실을 사는 거야. 1887. 1. 13

 

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신기로운 구제의 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 서로의 마음에 실을 살 수 있는 힘이 엷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므로 12-90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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