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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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차제 신전강화

 

갠 날과 같은 마음

 

최영철(문산교회장)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월차제 근행을 올리기 위해 바쁜 일정을 멈추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돌아와 방금 모두가 한마음으로 코로나로 인해 긴장된 속에서도 12장 근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이제는 조금 완화가 되었다지만, 진주지역에는 목욕탕 발 코로나19로 인해 시민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속에서, 많은 제약을 받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지명을 받았기에 잠깐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끝까지 잘 들어주셨으면 합니다.(4)

 

갠 날과 같은 마음

 

비가 내리니 생각이 납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우울한데 이렇게 비까지 내리는 날은 기분이 별로 안 좋지요. 아침에 어떤 회장님이 용재실에 들어오면서 불이 꺼져있어 어둠침침하니까, 불을 켜라고 합니다. 어두워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해서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런 날은 기분이 여러 가지로 언짢을 때가 있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을 맞은 것 같습니다. 벌거벗은 산과 들녘에는 새 옷을 갈아입고 저마다 꽃망울을 틔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가운데 온 세계가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서도 세월은 어김없이 가는 걸 보니, 시간은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용재 님들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일 년이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많이도 힘드시겠죠. 하지만 이제 마냥 움츠리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기지개를 활짝 켜고 봄기운과 함께 각자의 변해가는 환경에 발맞추어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포교 방법을 모색해 활기찬 포교 활동을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이 불안한 생활 속에 이렇게 비까지 촉촉이 내리는 날은 왠지 마음이 침울해지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도말씀에

자아 자아, 마음이 침울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침울한 날에는 무엇을 하더라도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 이것을 단단히 분간해 들어라, 분간해 들어라, 분간해 들어라. 무슨 일이든 갠 날과 같은 마음으로써 하라. 갠 날과 같은 마음으로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순조롭게 되어간다. 세상에서도 날씨가 개면 사람들의 마음이 개어 하는 일이 순조롭듯이, 각자도 마음에 효능의 리를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갠 날과 같은 마음을 지녀라. 이것도 결코 잊지 않도록. (1888. 8. 9)

신님께서는 이 말씀이 용재에겐 얼마나 중요한지 세 번이나 분간해 들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나 좋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밝고 용솟음치며 갠 날과 같은 마음으로 포교에 임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요. 비 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바람 부는 날도 있고, 때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도, 요즘처럼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날도 있습니다만, 그때그때마다 불평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한 이로 인해 이득을 보고 좋아하며 그때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우리는, ‘신님의 의도에 따라 시순에 맞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버이신님이 바라시는 의도에 응하며 천법에 따라 걸어가는 것이 우리 용재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용재들을 보면 신앙심마저 의심할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를 핑계로 상급에 발길이 뜸해지는 게 조금은 걱정스럽습니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세 번 연속 되다 보면 마음에 질이나 신앙심마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몸 가는데 마음 가고 마음 가는데 몸 따라가는 법 아닐까요.

용재란,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음에 잡초가 생겨 신앙심마저 흐려지기 일쑤인데 갑작스럽게 변하는 환경과 여건에 다소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위축되어 있을 수만 없지 않겠습니까. 길이란 것은 끊어지거나 잘린 곳이 있어서는 길로서의 효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길에서도 그 목적지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지 않으면 마음의 길이 되지 못하는 법입니다.

 

히노끼싱

 

저 역시 요즘같이 집에서나 밖에서나 마스크가 일상이 되고 낯선 사람과 대화조차 하기 힘든 이런 시기에 마음 놓고 포교 활동하기도 어렵고, 어버이신님께 늘 죄송해서 신님께 은혜보답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 끝에 새해 들어 마음작정한 바가 있어 문산교회 내부수리 역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진행 중입니다.

처음 역사한 것이 36년 전인데, 중간에 한번, 교회장이 된 지 10년째 되던 해 신님께 은혜보답하는 마음으로 작은 역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작정해 전체 리모델링을 한 번 했습니다. 지금 16년 만인데 벽지며 도색이며 보기가 험해서 이제 다음 후계자에게 몸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미리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해 바통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신님께 고하고 조금씩 시간되는 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것도 나이라고 벌써 조금 일하고 나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마음 같지 않아 더 늦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전도청 역사도 그랬고 이번 저희 교회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어버이신님께서 한 때 죽을 뻔했던 나를 살려주신 것은 특별히 쓰일 데가 있어서 살려놓은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은혜보답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생각하고 작정을 했습니다.

지도말씀에

몸에 장애라 한다. 몸에 장애가 있어서 물으니 잠깐 깨우친다. 이제부터 한 가지 이야기할 테니 리는 틀리지 않는다. (1895. 3. 18)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질병을 앓고 괴로움을 겪는 데서부터 자신이 어떤 마음을 쓰며 나날이 지내왔던가를 돌이켜 보며 질병을 앓는 리, 괴로움을 당하는 리의 근본이 있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고치게 되며 그리고 밝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몸에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고 있다는 마음의 즐거움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근본의 리를 분간하여 새롭게 마음을 바꾸어 다스려가는 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나날이 용재에게 손질을 한다는 신님의 말씀처럼 신님의 훈계가 오히려 촉진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한 번씩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지도말씀에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마디에서는 작은 싹이 트지만, 큰 마디에서는 굵고 튼튼한 싹이 튼다. 굵은 싹은 여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 (1888.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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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것이 마디, 마디에서 싹이 튼다. 이거 마디야, 마디야, 낙이야 하고 큰 마음을 가져다오. (1894. 3. 5)

지난해에 교단사에 큰 마디를 생각하면 각자 개인의 마디에도 무관하지 않은 신님의 큰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결코 남의 일이라 생각지 말고 각자가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초창기 교조님께서 몸을 감추실 때도 옆에서 지켜보시던 많은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감이었겠지요. 하지만 그 큰 마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님의 말씀에 의지한 채 초대들께서 묵묵히 걸어오신 결과로 오늘날이 있다고 봅니다.

일전에 일어났던 터전이나 한국교단이나 모두가 어려운 시순에 때마침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마디와 겹쳐, 코로나로 인해 일반 용재들은 참배도 못 한 채 본부원들만 근행을 올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 현실 앞에 용재들의 바라보는 앞날의 시선이 매우 불안하고 절망감에 빠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린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게 우리들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지도말씀에

큰 마음이 되라. 큰 마음이 되라고 한 적이 있다.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하는 조그마한 마음로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1907. 3. 13)

라는 말씀이 있었듯이 지난해에 이어 지금도 전시와도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우리가 어떻게 발맞추어 이 길을 나아가야 할 것인가. 참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어 있을 줄 믿습니다만, 지도말씀처럼 용재는 어떠한 어려운 마디나 환경에 부딪히더라도 흔들림 없는 큰마음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순에는 히노끼싱 정신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히노끼싱이란, 항상 어떠한 일에서나 어버이신님의 혜택을 절실히 느낄 때 감사의 기쁨은 저절로 그 태도나 행동에 나타나는 것, 이것을 히노끼싱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히노끼싱이란, 말하자면 신앙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오늘날 얼마나 참된 의미의 히노끼싱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히노끼싱은 전도와 마찬가지로 본래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나날이 신앙의 실천, 이것이 히노끼싱이 아닐까요. 이 길의 역사는 히노끼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바로 깨닫고 교조님의 따뜻한 자애심으로 구제를 받은 사람이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서 은혜보답하는 길에 용솟음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구제에 임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히노끼싱이란, 몸으로 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나날이 사욕을 버리고 즐거움을 신에게 바치는 데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진실을 기울여 자신의 즐거움을 매일 끊임없이 계속 바쳐가는 것, 사욕을 버리고 자신의 진실을 순수하게 어버이신님께 바치는데 히노끼싱의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신님의 은혜를 받는 이상 히노끼싱 정신이 몸에 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전도청 역사 책임을 맡아 했습니다만 초대 때와 2, 3대로 갈수록 몸소 히노끼싱에 임하는 생각이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역사 시순이 와도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느긋한 모습에 아쉬움이 참 많았습니다. 시순이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시순에 맞는 씨를 뿌릴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세대는 초대와 비교해 몸으로 느끼는 바가 적어서 그런지 많이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어려운 시순일수록 몸으로 서로 돕기에 앞장서서 이 힘든 시순을 한마음한뜻으로 언제나 즐겁고 희망찬 마음으로 코로나에서 벗어나 구제 활동에 모든 힘을 다해 갠 날과 같은 마음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여튼, 우리 용재들은 갠 날과 같은 밝은 마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해 강조하신 이유를 생각해보면, 상대에게 밝은 마음으로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상대의 마음에 먹혀서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내가 밝고 맑은 마음으로 다가가야 상대도 밝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든 시순을 맞아 즐겁게 헤쳐나가기를 당부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