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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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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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처럼

진양교회 김영진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이라는 동요가 생각난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하시느라 집에 같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간혹 집에 오셔도 살갑게 지내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신께서는 나름의 삶을 사시고 계셨던 듯하다. 요즘 수소차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는데 30년 전에 벌써 물로 가는 자동차를 연구하셨고 옥스퍼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등에 문의를 종종 하셨고 영어로 된 답변서를 받았다고 기뻐하시며 내게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물론 답변 내용은 형식적인 정중한 거절이었겠지만 그때만큼은 얼굴이 굉장히 밝으셨다. 사실 그때만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어도 아버지가 생각난다. 무관심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그게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이제서야.

 

나도 결혼을 앞둔 딸과 아들이 있는 아버지가 되었지만 나 역시 우리 아버지처럼 무관심한 아버지가 되어 가는 듯하다. 추억만들기는 커녕 무관심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처럼 후에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게 될까 생각해본다. 벌써 아주 이기적인 아버지가 된 듯하다.

 

얼마 전에 자녀들의 신앙을 어떻게 이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장인처럼 아버지의 신앙을 이야기해 줄 만큼 대단한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신앙을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 자연스럽게 신앙으로 연결될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신앙은, 아니 그보다 내가 생각하는 신앙은 즐겁게 살며, 남을 도우며 함께 사는 삶이다. 참 좋은 말인데 실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다. 아니면 내가 현실을 잘 모르고 이상만 쫓는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신앙에 허점투성이라는 생각이 많다. 결국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신앙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내가 보았던 신앙은 멀리 보며 이어지는 신앙의 힘에 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신기한 수호가 아니더라도 아침저녁 근행에 이어지는 은근히 젖어 드는 영혼의 정화 같은 울림. 그렇게 이어지는 신앙으로 차츰차츰 완성에 다가가는 성인의 길. 그렇게 익어가는 신앙이다.

 

내가 지나온 2~30대와는 다르게 요즘 젊은이들은 더 바쁘고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고성능의 컴퓨터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머니에 가지고 다녀도 더 빠른 것을 찾고 있고 추구하고 있다. 급격하게 달라지는 시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신앙처럼 느리다고 생각하는 곳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신앙을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모의 신앙을 이어달라고 강요는커녕 부탁이나 사정을 하기도 버거운 나의 신앙으로 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신앙을 통해서 아버지를 추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우 아쉽지만, 신앙으로 아버지도 추억하고 신앙 역시도 이어져 갔으면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