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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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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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14시경 우리 교회 제2대 교회장이셨던 이병석 선생께서 향년 81세로 출직하셨다. 장례식장은 고성장례식장이었으며, 우리 교회에서는 배재기(광일교회) 선생을 위원장, 최영철(문산교회) 선생을 부위원장, 역원들을 위원으로 하는 장례 위원회를 구성하여 4일 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고 이병석 선생은 초대 교회장님의 41녀 중 차남으로 1940328일 고성군 영현에서 출생하여 소년 시절부터 부모님의 신앙에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고향인 영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 고성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친 후 부산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초대회장님이 재직할 당시에는 회장님을 보좌하면서 고성교회 청년회장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1976522일 초대회장님의 출직으로 고성교회 제2대 교회장에 취임하였다. 2대 교회장으로 재직 중에는 초대회장의 모본과 그 유지를 계승하여 소속 교회와 포교소를 정비하였다.

또한 고인께서는 젊은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한국교단의 미래 비전에 대한 특별한 해안으로 포교의 다음 단계로 신자들의 자녀 신앙에 역점을 두고 197872일 학생회를 창립하여 대학부, 고등부, 중등부, 어린이학교로 나누어 여름과 겨울 연 2회의 학생수련회를 개최하였으며, 1975년부터 1983년까지 부산수강원 강사(종교사) 재직, 천리교 부산교구장과 교의연수학교 학교장을 봉직하였다. 1979년에는 으뜸장학회를 설립하여 용재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1980년에는 교회부지 1,600평을 매입하여 교육회관 145, 기숙사 96평을 신축하였다. 1982년에는 새노래 모음’ 1집과 2집을 발간하여 교회음악을 보급하였으며, 1983년에는 경상대학교 천리교 학생회를 등록하여 대학에서 종교활동이 가능하게 하였고, 1984년에는 진주지역에 재학 중인 용재 자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계성학숙(桂星學宿)을 설립하셨다. 1986년에는 유아 교육을 위한 은혜 유치원을 설립하는 등 용재 자녀 교육을 위해 노력하던 중 198757일 교회와 교단의 어려운 사정 속에 2대 회장직을 사임하였다.

영결식은 178시 교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유가족, 친지를 포함한 많은 용재, 신자들이 고 이병석 선생을 보내드리기 위해 모였다. 영결식을 마치고 우리 교회에 잠시 들렀다가 고성 화장장으로 향하였으며, 이후 초대 회장님 산소 아래 장지를 마련하여 모셨다. 고인을 장지에 모신 후 우리 교회에서는 초령제를 준비하여 고인의 영을 추모하였다.

, 1220일 월차제를 마친 후 고인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올렸다. 위령제는 영제와 같은 식순으로 진행되어 가족 참배, 역원 참배, 교회장 참배, 포교소장 참배, 신자 참배의 순으로 참배하였다. 팔수 봉상에는 박자목에 교회장, 창인에 배재기(광일교회), 피리에 전인수(진홍교회)가 올랐으며, 위령제를 마친 후 산소 참배로 이어졌다.

 

 

고인 교력

 

1940328일 출생

1958년 입신

1963322 수양과 수료(29)

1976522일 고성교회 제2대 교회장 취임

197872일 학생회 창립

1975부터 1983년까지 부산수강원 강사(종교사) 재직, 천리교 부산교구장과 교의연수학교 학교장 봉직

1979년 으뜸 장학회 설립

1980415일 수훈의 리 배대,

1980425일 검정강습 수료(교인등록),

1980522일 교회장자격 임명강습 수료,

1980617일 교회장의 리 배대

1980년 교육회관 145, 기숙사 96평 신축

1982년 새노래 모음 1집과 2집 발간

198335일 경상대학교 천리교 학생회 등록

1984926일 계성학숙(桂星學宿) 설립

1986310일 은혜 유치원 설립

1987572대 회장직 사임

2020 1214일 출직

 

조사

 

천리교 고성교회 2대 교회장님 영결식전에

회장님!

이렇게 시린 계절에 떠나려 하옵니까?

모든 걸 다 내어준 빈 벌판에 찬바람만 남은 자의 슬픔인 양 곡성을 울리고 갑니다.

떠나고 나면 가벼워지는 것을 저희들에게 가르치고 가시는 겁니까?

회장님 생전에 남기신 흐르는 강물처럼 시에서 노래하듯이 그렇게 쉬 떠납니까?

이제 가고 아니 계시니 님이라 하겠습니다.

님을 보내는 마음 슬픔의 강이 되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옵니다.

이 눈물을 감추는 것도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남이 있으려니 그 순리를 어리석게 믿어봅니다.

우리들 믿음 속에 헌 길이 있어 새 길이 있다는 가르침을 믿으며 님께서 닦아놓은 그 길을 저희들이 넓은 행길이라 생각하며 님의 발자취 따르려 하오니 가시는 길 멀더라도 고이고이 가시옵소서.

님께서 가시는 그곳 멀지라도 만 리도 접으면 한 뼘의 부채살이듯 이승과 저승도 한 뼘입니다.

님께서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회장님은 긴 잠을 주무시니 잠시 이별이라 윤회의 은총으로 다시 오는 그날에는 천만년 살고지는 복락 누리는 세계로 인도되시어 큰 나무 용재되시어 큰 그늘 밑에서 함께 어우르는 그 날 땜에 슬프지도 않은 날이라 믿어 보내드립니다.

아직도 바람 불고 창이 흐린 것은 눈가에 슬픔 때문입니다.

회장님!

저리도 굽이진 들길을 따라가시옵소서. 정든 집 멀지 않는 곳 높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보내드리려 이별 아닌 이별을 고하옵니다.

생전에 외로웠습니까?

저희가 떠나도 외롭지 않을 겁니다. 계절이 오면 실바람이 불어와 님 계신 곳 어루만질 것이며 이름 모를 풀꽃들이 님이 남긴 유덕처럼 여기저기 피어날 것입니다.

님이 계신 곳 이름 모를 산새들이 노랠 할 것입니다.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때론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함께했던 용재들께서도 늘 찾을 겁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서럽습니다. 생전에 모습 가슴에 안고 이별 아닌 이별을 고하며 살아서 좋아했던 시 한 편 읊으며 잠시 후 내키지 않는 발길을 옮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