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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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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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인연

박혜경(진홍교회)

십수 년 전, 우리 집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회장님이 아는 사람인 걸 보니 예전에 신앙하셨던 분인 것 같았습니다.

손님은 키가 크신 할머니셨는데 잠시 그분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우리 교회에서 신앙하셨고, 자녀 중에는 강습을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하나에 딸이 넷이었는데 아들이 일찍 출직하여 며느리하고는 오래전에 연락을 끊고, 작은딸 집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따님과 사이가 안 좋아지시고 하다 보니 교회가 생각이 났고, 몇 년 전의 기억을 되새겨 그 먼 거리를 택시를 타고 우리 교회에 찾아오셨다는 겁니다. 저희가 이사를 안 하고 계속 머물러서 헛걸음을 안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집을 다녀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집이 거실이 따로 없이 큰방 겸 거실을 지나야 주방이 있고, 화장실을 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길은 큰방을 거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방을 들어갈 때는 회장님하시다가, 다시 나갈 때는 총각하시다가 완전히 횡설수설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치매 환자이시구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가 딸과 사이가 안 좋아서 교회에서 살려고 오신 걸 알게 되었고, 저희는 연락처를 몰라서 그날은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니 할머니 치매가 더 심해져서 주무시다가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지르시는 바람에 거의 잠을 못 자고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마침 할머니와 같이 사는 큰 손자가 혹시나 해서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해서 할머니의 가족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따님과 큰 손자가 와서 이야기하다가 가족들은 할머니가 치매인지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집에 돌아가시거든 꼭 치매 검사를 해 보시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가 담배 피우시다가 담뱃재를 아무 데나 떨어뜨리고 불을 켜고 하다가 장판도 태우고 위험한 일이 있기도 했고, 딸의 험담을 하다 보니 더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아마 치매 때문에 더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같이 살면서도 치매인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머니가 댁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인연 Number1.

위에서 말한 우리 집에 왔던 손자가 제가 고성교회 학생회 수련회에 처음으로 가서 맡았던 조에서 저는 조장, 그 학생은 부조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통해서 그 아이가 할머니의 손자인 걸 알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거의 10년 만에 만난, 보고 싶은 아이였습니다.

제 말을 잘 따라주고 열심히 수련회에 참가한 아이가 가끔은 생각이 났었는데, 이런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던지 모릅니다. 그리고 참 신기한 우연이구나 했었습니다. 지금은 딸 아이를 하나 둔 아빠이지만, 저는 늘 어릴 적 그 모습이 생각이 나고 늘 마음으로는 시동생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 Number2.

두 번째 인연은 할머니가 댁으로 가시고 몇 달이 지나 설을 맞이하게 되었고, 설날 다음날 성묘를 다녀와서 쉬고 있는데 할머니 손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께서 출직을 하셨다고요. 그래서 집에 차도 없고, 아이도 어려서 회장님 혼자 문상을 하러 갔습니다. 나중에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할머니 가족들이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셨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여서 제 의사를 물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정어머니께 남의 제사를 지내는 게 엄청난 좋은 일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교회고 하니까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우리 어머님 제사도 모시고 하니까 한 접시만 더 음식을 만들면 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우리 집의 명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어릴 적 저의 친가와 외가가 같은 지역에 있어서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이므로 친가에서 점심때까지 제사를 지내고는 외가로 가서 밤에는 외가 친척들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명절은 시끄럽고 어수선하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명절이었는데, 시집을 오고 우리 교회에서 제사를 지내지만(어머니 제사만), 형제들은 아무도 안 오다 보니 명절이 너무나 외롭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가족들 제사를 지내고 나니 저녁에 각자 집에서 우리 집으로 다 모이면 20명 내외가 오는데 다들 재미있고, 성격이 좋아서 일 년에 한 번 보는데도 꼭 매일 보는 동네 사람 같고 말도 많아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늘 한바탕 배를 잡고 웃다가 돌아가는 그런 모습이라서 설날이 너무나 좋고 기대되는 날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맛도 나는 집인 것 같아 저희도 덩달아 좋았습니다.

이 집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데, 작은딸이 친정엄마를 모시면서 딸 넷의 가족들이 너무 자주 모이다 보니 어떨 때는 명절이 지나도 2주 정도를 놀다 가기도 하고, 그 집도 제사를 모시는데 시댁 식구들 보기도 그렇고 늘 정신없이 사람이 드나드니까, 좀 조용히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절날 김해, 부산, 창원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집까지 왔다가 밀리는 차를 타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가더라도 제사를 우리 집에 부탁을 했던 겁니다. 작은 따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설날 다음날 출직하시다 보니 자연히 기일이 설날이 되어 설날 한 번만 제사를 모시러 와도 되고, 추석은 저희가 대신해서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설에는 웃음 보따리 한 아름을 주고는 갑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우리 집과 인연을 만들려고 출직하시기 전에 우리 집을 들렀다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신기한 인연이지요?

 

또 다른 인연 Number3.

할머니 제사를 모신지 얼마 안 되어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께서 출직을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걸어서 관으로 직접 들어가시려고 하는 겁니다. 분명히 저는 아는 할머니였고, 제가 할머니께 가지 마시라고 소리 지르며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돌아보시더니,

울지마라. 나는 가도 아들 하나 보내줄게.” 하시고는 돌아서 관으로 걸어가시고는 꿈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후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게 태몽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임산부의 배만 보아도 아들인지 딸인지 다들 알아맞히시는데, 저도 어르신들이 보시고는 , 딸이네.” 하셨습니다. 많은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꿈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꿈에서 뵌 할머니는 교조님일 수도 있고, 그 할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제사를 본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모셔주니까, 고마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모습은 제가 꿈에 그리던 자그마한 인자한 할머니를 보니 교조님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이렇게 할머니 한 분으로 시작된 인연은 우리 가족과 그 집과의 신기한 인연으로 아직 잘 이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인연도 다시 돌아보면 아주 오래될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대단한 인연처럼 느껴지다가도 금방 끊어져 버리는 인연이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며 무엇 하나도 소중하지 않고, 허투루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얼굴도 모르는 많은 여러분과 저와의 인연도 소중하게 이어 간다면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인연이 오래 이어져 가기를,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바랍니다.